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24화 (124/226)

[게이트 오브 서울 124화]

“아, 그리고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뭘?”

검시관은 손바닥을 비비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느 여성의 시신을 덮은 천을 젖혔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사진 찍어 단서를 남겼던 백아연 성도였다. 박재만과 비서의 눈에 기이해 보일 정도로 검시관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시신을 보더니, 이내 목을 뒤로 젖혀 칼에 찔린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자상이 아주 특별합니다.”

“그게 특별하다고?”

“그럼요.”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소리를 통해 그가 혀로 입술을 핥는 걸 알아챘다.

“교단에서 가지고 있는 칼이란 칼은 모두 대조했지만, 맞는 게 없더군요.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칼입니다. 아, 물론 흔한 패턴이긴 합니다만, 양아치들이 흔히 쓰는 주머니칼이 아닙니다. 그것들보다 칼날의 폭이 넓고, 깁니다. 모양새가 마치 뭐랄까…. 중세 단검이라고 할까요? 전투용 칼은 확실합니다.”

“전투용이면 대검 아닌가? 국군에서 쓰는 대검도 안 맞아?”

박재만이 자신의 경험상 떠오르는 칼을 말했지만, 검시관은 고개를 저었다.

“대검과는 안 맞습니다. 이런 모양의 칼날을 가진 군용 칼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일반적인 칼이 아닙니다. 사람을 찌르기 위해 고안된 아주 긴 칼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중세 단검과도 같은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단순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요즘 군용대검 중에 이런 모양 칼이 나오지 않습니다. 깡패나 양아치들이 쓰는 포켓나이프는 길이가 짧아 이렇게 깊게 찔리지도 않지요. 감히 추론하건대 이런 칼은 흔하지 않으니까, 칼의 종류를 알아내면 금방 좋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박재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시신들에 나온 탄두를 알아보면 같은 인물인지 알 수 있고, 또 그런 칼을 가진 자를 찾으면 범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이군. 탄환 관련 전문가를 수배해.”

그의 말에 뒤쪽에서 안색이 창백해진 채 애써 헛구역질을 참던 비서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단검 쪽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하지.”

박재만은 이런 것을 잘 아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그가 폰으로 호출했으나, 남자는 바쁜 사람이라 바로 오진 않았다.

***

천사의 자습은 1주일을 넘었다. 석민과 아영은 교대로 천사의 곁을 지키거나 대통령의 의심을 피하고자 다른 헌터들을 사냥했다. 천사의 곁을 멀리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냥은 시원찮았고, 헌터 1개 팀과 그들의 식량을 운반하던 운반꾼 5명을 잡은 것 말고는 소득이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 사냥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호텔 말리나로 가서 맥주병을 기울였다. 이곳과 다리 주변은 알렉산드라와 그의 조직 덕분에,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아마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 것이다.

물론 샤샤의 말대로 근래에 몬스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강남 쪽은 괴수들 씨가 말랐어. 덫은 소용없고 이젠 이 잡듯이 뒤지는데도 안 나타난다고.”

석민의 귀에 걱정스러운 헌터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러게. 요즘 하늘에도 와이번이 안 보인 지 오래됐어. 옛날엔 괴수의 괴성이 그렇게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덜덜 떨리게 만들었는데, 요즘은 그리워.”

헌터들은 자신들의 밥줄인 괴수들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아차 하면 괴수 밥이 되지만, 이 일만큼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없는 건 아닐 거야. 지금은 겨울이니 죄다 둥지 속에 숨은 게 분명해. 지하 쪽이나 지하철에서 다른 팀이 재미 좀 봤다는데, 우리도 찾아봐야지.”

그들은 돼지기름으로 입술을 반들반들하게 하고, 기름진 목구멍을 시원한 맥주로 닦아냈다.

“여하튼, 요즘 괴수가 줄어드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라에서 3차 서울 수복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육군 1기갑여단에 근무하는 내 상사 친구가 귀띔해 줬어.”

대통령이? 석민은 귀를 더울 기울었다.

“그럴 리가. 2차 수복 작전도 괴수 출현빈도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시도했다가 망했잖아. 아직은 상황을 주시하기만 할걸? 게다가 나라에서 드래곤하트를 신에너지 산업의 동력으로 쓴다고 했는데, 서울을 그대로 두겠지. 발전소도 완공되었는데, 지금 서울 수복하고 괴수들 다 잡아봐. 기껏 없는 돈 다 끌어 모아서 만든 발전소인데 완전 무용지물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맞은편에서 양갈비를 뜯던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거 짓는다고 국민복지 관련 예산이 전부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그 친구가 말하는 건데 여단이 포천에서 성남 쪽으로 이동했다고 하던데. 여단 전체가 말이야.”

“군부대 이동은 흔한 일이잖아. 사단들도 서울방벽 지킨다고 휴전선에서 순환근무 중인데 뭐.”

“그래도 여단급 부대가 한 번에 움직이는 건….”

“그래도 아녀. 1여단은 수복작전 때 부대장비를 대부분 잃어서 재편성 중이잖아. 수복작전에 참가할 여력 없을걸?”

그러더니 이야기는 곧 다른 곳으로 흘렀다.

“경기도 밖은 요즘 경찰이나 공무원들이 단속 나가서 뭐 하나 경범죄를 저지르면 여지없이 딱지 붙인다는데. 벌금 내게 하려고.”

그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그 헌터는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더러운 놈들, 살인적인 소득세로 세금을 다 걷어가면서.”

“대통령이 지랄 맞아서 그래. 애초에 그 양반은….”

“그만.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지. 싸움 나.”

그 뒤론 시시콜콜한 내용뿐이었다.

석민은 그들의 대화 엿듣기를 그만하고 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영은 독하디 독한 발티카 9번을 3병이나 마시고서는 혼자 흥얼거렸는데 상당이 들떠 보였다.

“이제 천사가 공부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될 겁니다. 정말 기쁜 일이죠.”

그녀는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예상은 됩니다만, 분명 서울에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글쎄요. 들을 수 있을까요?”

석민이 쏘아붙이자,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눈을 살짝 흘기더니 술을 입에 대면서 대답했다.

그들이 있는 호텔 라운지는 지난번만큼은 아니었지만, 헌터들로 인해 북적였다. 그 덕분에 호텔 라운지라는 이름과 무색하게도 내부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흘러나오는 노래, 웃음소리로 아주 시끄러웠다.

그래도 석민의 생각에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가 귀에 박히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그들의 말을 못 듣는다 장담할 순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석민은 지금 그녀가 자신과 대화하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애초에 그녀는 석민이 천사를 가르치겠다고 했을 때 부정적이었다.

그것에 답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조금 취한 불그스름한 얼굴로 석민을 빤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고백할 것이 있어요.”

“뭔데?”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 여자, 교육시키는 거. 저는 ‘인도하는 자’잖아요. 하지만 실상은 인도하기는커녕 당신이 리드했죠. 전 별로 도움 되지 않았어요.”

‘취했군.’

아영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천사보고 그 여자라니, 뭐 여성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 여자라고 할 줄은 몰랐다.

웬일로 머리를 풀고 있던 아영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넘겼다. 그러나 술에 취해 고개가 고정되지 않은 채 까딱거리는 탓에, 그녀의 머리는 계속 앞으로 축 처졌다.

꼴이 퍽 전투 끝나 술에 꼴은 병사처럼 보였다.

“아니야,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그것은 사실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피곤함의 한숨이 아니었다. 긴장이 풀리며 나온 한숨이었다. 그녀가 풀어지는 모습을 보니 석민 또한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영은 새로운 맥주병을 열었고, 석민도 따라 맥주병 땄다.

“다음에도 잘 부탁해요.”

“나야말로.”

술김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땐 마치 모든 일이 다 끝난 기분이었다.

전말

석민과 아영이 천사와 만나기로 한 날은 자습이 이어지고도 3일이 더 지나서였다. 그날 서울은 영하 42도를 기록했고 바람도 세찼다.

“아무리 1년 내내 구름으로 가려져서 추운 동네라지만,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온도야?”

비현실적인 온도에 기가 질린 석민이 중얼거렸다.

“고작 구름으로 뒤덮였다는 이유로?”

“뭐, 일반적인 구름이 아니니까 그렇죠.”

석민과 아영은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창문 밖의 성애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베란다가 있는 덕분에 마루는 상대적으로 따뜻했지만, 난방을 할 수 없어 쌀쌀했고 방금 우려낸 커피도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추위가 더 심해지면 밖에서 활동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슬러시를 급히 먹은 것마냥 찡하게 뇌가 아려올 정도로 강추위였다.

그 때문에 지하철에서 헌터들끼리 마주쳐도 암묵적으로 싸우지 않는 게 룰이 되었다. 심지어 이 룰을 약탈자들도 지킬 정도로 바깥의 추위는 살인적이었다.

“별수 없지.”

석민이 커피를 홀짝일 때 안방 문이 열리면서 천사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앉은키가 천장에 닿으니 어쩔 수 없었다.

“때가 되었다.”

그녀는 가부좌를 하며 그들의 앞에 백과사전을 내려놓았다.

[천사 베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짓된 전령을 만났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석민과 아영의 눈앞에 새로운 알림글이 나왔다.

침묵이 감돌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

그 말에 아영은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꺼내 들었고 스마트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베르, 이름이 베르다.”

그건 알고 있었다. 알림글이 나왔으니까.

아영이 입을 열려는 순간, 베르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 세계의 지능이 있는 고등생물이다. 인간과 같지. 너희가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천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하늘을 날 수 있게 태어났지.”

“조물주가 보낸 사자가 아니라고?”

석민이 중얼거렸고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저들은 신적인 영이 아닌, 거짓된 전령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그들도 추리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암시가 많았다.

“우리는 너희처럼 소리와 성대로 하는 ‘말’이 발달하지 않았다. 너희가 텔레파시라 부르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지.”

베르의 손이 석민을 가리켰다.

“네게 두 번이나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너는 대화가 안 되더군.”

“대화가 안 된다고요?”

석민은 저도 모르게 존칭을 썼다. 그리고 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은 되는데 넌 안 되더군. 그리고 머리를 아파했어.”

“아!”

석민은 왜 이 천사 앞에서 두통이 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왜 나만 아픈 것이지?

석민의 표정으로 하고픈 말을 대충 눈치 챘는지 천사가 먼저 선수 쳤다.

“그건 내가 알고 싶다. 내가 여태껏 보았던 모든 너희 족속들 중에 텔레파시가 안 통하는 자는 너뿐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나의 흥미를 끌었느니라.”

‘느니라?’

석민의 눈이 살짝 경련이 일어나듯 흔들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말투였다. 석민은 남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들이켜 마음속에서 올라오던 마그마를 가라앉혔다.

“그것은 아무래도 저도 해당될 것 같네요. 아니, 그렇다고 지금 시험하지 말고요.”

아영은 이마에 엄청난 두통이 오자, 다급하게 말했다.

“하여튼, 우리는 너희 인간과 다른 종족이다.”

천사는 손을 높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높은 곳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너희들이 드래곤, 와이번, 드레이크라 부르는 괴수들이 너무 많고 퇴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부유섬, 아주 높은 산, 너희의 에베레스트쯤 되는 높이에서 살았지. 우리의 성대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바람도 많이 불기 때문에 소리를 통한 대화보단 그게 더 났지.”

“그러면 당신은, 아니 당신들은 평화를 위해서 이곳으로 오신 건가요?”

“평화? 아니, 우리는 이주를 위해 온 것이다.”

“이주?”

석민이 되물었다.

“괴수가 너무 많았다. 그것들의 식탐은 왕성했고, 다른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잡아먹기도 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우리 종족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다. 특히 드래곤은 우리와 같이 고등종족이었고, 강했다. 그들은 먹이보다 유희를 위해 생명체를 난도질했지. 우리 종족처럼 텔레파시나 정신지배도 가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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