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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23화 (12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23화]

“아, 하지 마! 하지 마! 기브 업! 내가 졌어.”

“그래, 그래!”

신이 나서 깡충깡충거리는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석민은 카운터로 갔고 알바를 불렀다.

“여기 짜장 둘이랑, 탕수육 소짜 하나. 그리고 소주도 한 병.”

“예.”

내기는 끝났고, 그들은 가볍게 포켓볼을 치기로 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지? 어린애? 교육은 어찌되고 있어?”

차마 천사를 직접 이야기할 수 없어 석민은 그것을 어린애라 말했다. 이 세상에 아는 게 없고 말도 얼마 전부터 시작했으며 아이처럼 말도 어눌하고 어색하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럭저럭 괜찮긴 한데. 못 해 먹겠어. 지루하고.”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가장 지루하다.

오래 지켜보고 기다린다는 점에서 타깃을 감시하는 것도 다를 바 없는 업무지만, 그건 타깃을 처리하면 거기서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천사는 아니었다.

게다가 천사는 그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다루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느낌이 그러했다.

전에 마주쳤던 교단 놈들이 천사에게 어린아이처럼 굴고 칭찬받으려 애쓰던 모습을 보아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확실한 것은 천사들은 인간을 하등 생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라던가.’

그래서 자신도 혜원에게 똑같이 그것을 어린애라 칭해버린 것도 있었다.

석민의 표정이 썩어가려던 무렵, 혜원이 석민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뭐해? 니 차례야.”

다시 정신을 차린 석민은 당구봉을 잡았다.

노란색 공이 딱!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공이 2개가 남을 무렵 혜원이 입을 열었다.

“아, 저기 벌써 왔군.”

그녀의 말대로 패딩 점퍼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남자가 철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석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주문을 하고 시간이 고작 10분밖에 안 지났다.

‘배달을 시킨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너무 빨리 온 거 아닌가?’

중국집이 가까운 곳이었나?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항상 목적지 주변 식당이나 다른 가게 간판들을 기억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당구장 주변에 중국집이 없었다.

카운터 알바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배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철가방을 열기 전, 당구장의 문이 열리더니 비슷한 인상착의에 철가방을 든 또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석민은 이상함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먼저 들어온 이의 철가방에서 mp5로 보이는 검은색 기관단총이 튀어나왔다.

총구가 놀란 알바에게 향했고, 동시에 석민의 손이 혜원의 멱살을 붙잡아 당겨 당구대 아래쪽으로 끌어 내렸다.

“어? 왜?”

질문에 대답할 새도 없이 총성이 연달아 울리면서 알바가 쓰러졌다. 두 번째로 들어온 남자 또한 기관단총을 꺼내 당구를 치던 다른 남자들에게 난사했다. 망할 자식은 대용량 탄창을 가지고 무자비하게 난사를 했다.

삽시간에 내부는 총성과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몸을 숨기면서 석민의 손은 당구대 위를 더듬었다. 이윽고 그의 손에 빨간 당구공이 쥐어졌다.

이윽고 총성이 멎자, 그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기관단총에 재장전을 하던 남자에게 당구공을 던졌다. 빨간 당구공이 훌륭한 바람 소리를 내면서 그자의 헬멧 바이저를 부수고 얼굴에 깊숙이 박혔다.

그자는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알바생을 쓰러트리고 카운터를 털려던 남자가 놀라 석민을 향해 총을 쏘았다. 석민은 다시 바짝 엎드렸고 허리춤의 권총을 뽑았다.

그자는 1, 2발씩 제압사격을 하면서 접근했다. 석민은 바짝 누운 상태에서 당구대 아래를 통해 다가오는 강도의 발을 확인한 직후 그자의 발목을 쏘았다.

“으억.”

비명과 함께 상대가 쓰러지면서 헬멧 바이저가 석민의 시야에 보이는 순간, 얼른 다시 총을 쏘았다.

바이저에 총탄 자국이 2개나 나면서 남자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만일을 대비해서 남자들의 가슴에 2발씩 더 쏘았다. 원래 확인 사살은 머리에 쏘는 거였지만, 간만에 평정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난 석민은 그런 기본적인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분노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개 쓰레기 같은 놈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시체에 대고 총 쏘는 취미를 가지지 않은 그는 뒤돌아서 카운터로 걸어갔다.

알바는 이미 절명해 있었다. 끔찍하게도 강도 놈이 한 탄창을 그대로 퍼부은 듯했다.

당구대 쪽에서 남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끼리 같이 당구를 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들 최소 못해도 총상 4-5개씩 입은 듯 보였고, 상처도 심했다.

“여기서 나가…자.”

석민은 빨리 이곳에서 혜원을 빼내고 싶었다. 자리를 옮기기 위해 혜원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 그는 그리 좋지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움직이면서 부러졌는지 끝이 날카롭게 변한 반쪽짜리 당구봉을 붙들고서 흐느끼는 혜원이 보였다.

벌벌 몸을 떠는 모습이 너무 처절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아, 안 돼… 안 돼.”

당구 치는 데 방해된다고 그녀는 권총을 점수판 쪽에 두고 있었다.

‘PTSD군.’

“…가자.”

석민이 그녀의 양어깨를 감싸려는 순간, 혜원이 비명을 지르며 깨를 숙인 채 부서진 당구봉을 마구 휘둘렀다. 석민이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으나, 눈 밑에 조금 깊은 자상이 생겼다.

주르륵 흐르는 피를 소매로 대충 닦고서 당구봉을 붙잡아 멀리 던져버렸다.

“진정해! 봐봐, 나야, 나라고. 안전한 곳으로 가자. 다 끝났어. 걱정하지 마!”

넋이 나간 혜원의 눈은 다른 어딘가를 보는 듯했다. 석민은 차마 정신 차리라고 때리지도 못하고, 높이던 언성조차도 낮춰서 그녀를 달래고자 노력했다.

“다, 다들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오빠도…….”

“지금은 아니야. 자, 가자.”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품에 폭 감싸 안고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제 집에 가자, 업어줄게.”

한동안 몸을 계속 떨던 혜원도 조금 진정이 되는지 품에서 꼼지락거렸다. 석민이 살짝 몸을 떼고 눈을 마주하자 어느 정도 또렷해진 눈동자가 보였다. 석민은 파이프와 권총을 대충 챙기고 그녀를 업고서 밖으로 나왔다.

이미 이곳에 너무 긴 시간을 머물렀다. 자신들의 직업 특성상 경찰과 엮이면 그다지 좋지 못했기에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

혜원이 완전히 안정을 되찾은 건 그녀의 가게이자 집, 그리고 그녀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방탄유리벽 안으로 들어온 직후였다.

울고불고 난리를 친 덕분에 화장이 번지고, 업혀 오는 와중에도 계속 울어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석민은 자신의 겉옷에 묻은 그녀의 화장 자국을 걸레로 닦았다.

생각보다 겁이 많은 여자였다. 그럴 만도 했다. 과거에 그다지 좋지 못한 경험을 했으니까. 그 좋아하던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죽을 뻔했으니 과거의 트라우마가 나온 것이리라.

물소리가 멎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혜원이 나왔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아니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석민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혜원이 생각보다 너무 침울해져 있어서 걱정되었다.

“다음부터는 꼭 무기를 가지고 다녀. 정 권총이 불편하면, 우리가 전에 바꾼 칼 있잖아. 페어번 샤익스(Fairbairn-Sykes)말이야. 팔에 걸 수 있게 칼집도 줬잖아. 그거라도 써. 그 칼 어딨어?”

혜원은 서랍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던 칼을 꺼냈다.

“평소에 차고 다녀야 그런 불상사가 안 생기지. 여긴 안전하긴 하겠지만, 혹시 모르잖아. 위험한 순간에 오늘처럼 내가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는 직접 그것을 혜원의 왼쪽 팔뚝에 채워주었다. 혜원은 쑥스러움에 석민을 향해 제대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시발, 뭘 이딴 걸로 감동을 하냐.’

그녀는 자신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겨우 단검. 심지어 자기 물건을 고작 남자친구인 사람이 채워줬다고 심장이 미친 듯 뛰다니.

물론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걱정해주며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겨우 이런 거에 감동받았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했다.

반지나 꽃다발도 아니고. 칼, 그것도 중고 단검이라니! 너무 구렸다.

“다음부터는 가지고 다녀.”

“…그럴게.”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구급상자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너 얼굴에 상처 났었지?”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석민은 이미 얼굴에 묻었던 피를 전부 닦아낸 뒤였다.

“그래도 그냥 두면 흉져.”

그러면서 혜원은 그의 상처를 보기 위해 얼굴을 살폈지만,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응?”

“살짝 스친 거라 바로 나았어.”

석민이 말했다.

‘이상하다. 피가 많았던 것 같은데.’

피가 났는데,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바로 나을 수 있나?

혜원은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큰 상처가 아니었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었나보다 하고 흘려 넘겼다.

***

“컴퓨터에서 찾은 건 없고?”

박재만의 물음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네, 아무래도 따로 자료를 모아둔 것 같은데 휴대폰은 복구가 불가능해서.”

“제길, 이거 곤란하게 되었군.”

김지형은 죽어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재만이 고심에 빠진 사이에 검시실의 문이 열리고 수술복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검시관님이 들어오시랍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검시관은 살짝 묵례를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검시는 다 끝난 건가?”

“네, 요즘 자주 말하는 것 같은데 상당히 총을 잘 쏘는 양반입니다.”

시신을 검시한 검시관이 말했다.

천국의 문 교단의 정찰대는 죽은 전탐군 대원들을 찾을 수 있었고, 그들의 시신 수습해서 가지고 돌아왔다.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은 시신들이었지만, 영안실에서 저온으로 해동한 덕분에 검시가 가능했다.

“탄착군도 매우 작고 몸통에 2, 3발, 머리에 최소 1발씩 쏘았더군요. 전부 심장, 기도 혹은 미간에 맞았습니다. 전에 가져오신 시신도 그렇지만, 모든 시신이 이런 것을 보니 동일 인물인 거 같고. 뭐,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상당히 잘 훈련받은 자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난번 시신들과 대조해 볼 때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박재만이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검시관은 냉장보관중인 시신을 힐끗 보고는 김이 나는 커피를 들었다.

이런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까? 박재만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검시만으론 100% 동일 인물이라는 것까진 모릅니다. 다른 방법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9X39mm 시신들에 박힌 아음속탄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박재만은 이 친구를 싫어했다. 시신들로 가득한 이 춥고 으슥한 곳에서 혼자 커피를 홀짝이거나, 수술대 위에 회를 놓고 먹는 등 기이한 행동을 자주 했다.

‘사람을 바꾸든가 해야지.’

아직까진 소문일 뿐이긴 하지만, 들어오는 시신으로 시간(屍姦)한다는 말까지 도는 인간이었다.

실력이 있어서 참고 있었지만, 최대한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기 싫었다.

애초에 그런 소문이 돈다는 건, 그만큼 또라이라는 거겠지.

“총신 안에 있는 강선은 마모됩니다. 그리고 총마다 제각각이죠. 탄두들을 찾아서 대조해 보면 같은 총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나?”

박재만은 탄식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런 것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탄두를 조회하면 누가 쏜 총인지 알 수 있다니. 마치 영화 같았다.

검시관이 갑작스럽게 손바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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