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20화]
“박선우 성도?”
박재만은 차량 밖으로 끌려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박선우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박재만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숙였다.
“교주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대답하는 백은호의 목소리에서 노기가 서려 있었다.
“자네 사무장이 박선우 성도를 통해서 우리 교단시설을 공격한 자를 잡으려고 했던 것 같더군. 자네에게 비밀로 하고 말이야. 그 이유가 뭔 줄 아나? 자네가 그것을 막았다지?”
“예?”
박재만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얼굴에선 스스로 느껴질 만큼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대충 예상은 했지만.’
설마 그가 생각한 가장 한심한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박선우 성도, 김지형 성도에게 들은 것을 말하게.”
“네, 그것이….”
박선우는 김지형한테서 들은 녹음음원파일에 대해서 설명해 나갔다.
“…그 후 김지형 사무장은 제게 사람 지원을 요청했고, 저는 사도대의 인원 3명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죽었지.”
백은호가 마무리를 지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
박재만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너는 지금 나의 사도대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가?”
그 말에 박재만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사도대는 특별한 줄 아냐? 결국에는 너와 같은 인간인데.’
박재만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박선우 성도를 모욕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김지형 성도, 성남교구의 사무장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백은호는 계속 서 있기 힘들었는지 손짓을 했고 그것을 본 사도대의 대원들이 의자를 준비했다.
교주는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황들이나 입을 법한 두꺼운 흰옷을 입고 장갑과 가면을 썼으니, 서 있는 것이 힘들 것이다.
백은호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손을 휘저었다.
“계속 말하게.”
“김지형 사무장은 예전부터 제 자리를 노리던 자입니다. 근래에 제가 일이 많아, 교단의 시설을 공격한 자를 찾는 일을 김지형 사무장에게 위임한 상태입니다. 박선우 성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성도님이 말씀하신 것을 증명할 만한 증거물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실 그것은 박재만으로서는 거의 도박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 말에 박선우의 양 귀가 시뻘게졌고, 박재만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똑똑히….”
박재만은 박선우의 항변을 얼른 잘라버렸다.
“해당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니, 가지고 있는 것이 도움 되겠지요. 하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 김지형 사무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 순전히 자신의 공으로 독점하고 싶어 했을 테니까요. 아마 달라고 하면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안 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박선우를 비난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말을 가려서 말했다.
박재만은 한숨을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음성만으로 증거라 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제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일이 많아 그에게 일을 넘긴 것인데, 뭐 하러 교주께서 내리신 일을 안 하겠습니까?”
“그러면 음성은?”
“맹세코 말씀드리는 건데, 절대로 제가 아닙니다. 요즘은 음성변조도 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김지형 사무장의 행동을 보면 그의 주장은 대단히 모순되어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교주께서 내리신 일을 제가 거부하려고 했다면, 정식 절차를 통해 보고를 해서 처벌받게 하는 방법도 있었겠지요.”
그 말에 목석같이 있던 사도대의 대원들도 약간 풀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선우도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김지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 자신이 전공을 전부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승진에 방해가 되는 저를 끌어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까 박선우가 설명을 할 때 박재만은 죽은 김지형과 그 일행들의 유품으로 남은 휴대폰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에 주목했다.
김지형은 분명 그 파일을 자기만 가지고 있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에다만 보관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원본이 사라졌단 걸 의미했다.
박재만은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잘 말하기만 하면….’
박재만은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렸다. 엄청난 추위로 콧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데도 이마는 진땀으로 가득했다.
“그자는 사도대 3명 말고도 성남교구의 교인 2명을 더 데리고 갔습니다. 이미 아시고 있겠지만, 그 2명은 김지형의 심복들입니다. 그들은 제게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오기 전까지 그 3명이 무단결근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3명은 제대로 된 전투원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김지형은 안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선우 성도를 끌어들인 거고요.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게 되었지요. 애초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자는 교단시설을 단신으로 무력화시킨 자입니다. 그런 자를 고작 6명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했지요.”
말을 마친 직후 박재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이 모든 것이 김지형의 그릇된 행동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교주님, 저와 그리고 순진한 박선우 성도도 속은 것이고, 심지어 교주님도 김지형에게 기만당한 것입니다.”
교주는 가만히 앉아서 박재만을 노려보았다.
무시무시해 보이긴 했으나, 오랫동안 교단에 몸담은 박재만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보건데 교주는 그저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아니었으면 진즉에 입을 떼고 불호령을 냈을 양반이었다.
‘아마 교주는 믿지 않을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믿음과 신앙을 설파하지만 교주는 사람을 절대로 믿지 않지. 모순적이지만, 그래도 신앙은 진짜이니깐.’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교주는 입을 열었다.
“그대를 믿기로 하지. 풀어줘라.”
사도대 대원들이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대 말대로 김지형이 죽으면서 그가 가진 자료는 전부 사라졌어.”
교주는 그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는지 비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우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인데 말이야.”
여기서 점수를 따야겠다. 박재만은 그리 생각했다.
“교주님, 그렇지 않아도 정탐군에게서 새로운 정보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정보?”
“그렇습니다. 여기서 보고 드리기엔 조금 그러니….”
“교단본부로 가지.”
박선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간악한 김지형의 농간에 속아 고명하고 교단에서 가장 유능한 교구장을 위험에 빠트렸다. 그랬기에 자리를 이동하는 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했다.
“교구장님, 정말.”
하지만, 박재만은 그를 거칠게 밀어 뒤로 밀려나게 만들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눈으로 박선우를 노려보았다. 박선우는 놀라서 뭐라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대충 일이 마무리되자 박재만은 자기 내면의 역겨운 본성을 한없이 드러내었다.
그는 눈알을 부라리며 박선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너 따위가 감히 나에게 말을 거냐는 눈초리로.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절대 박재만이 선한 성직자가 아님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고 교주에게 한 말이 거짓말인 것도.
알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에 그는 몸을 떨었다.
***
“백아연 성도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교단본부에 도착한 박재만은 자기가 보았던 사진을 올렸다.
“천사와 함께 있는 이 2명이 우리의 적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기에 백아연 성도가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 분명합니다. 둘 다 러시아 군장에 러시아제 무기를 쓰고 있습니다.”
“2명, 러시아 군장에 러시아 무기라.”
교주가 중얼거렸다.
“9x39mm 탄환이 러시아제였지?”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러시아에서도 특수부대 위주로 사용하던 탄환으로, 국내에서도 심지어 러시아 내부에서도 구하기 대단히 까다로운 무기입니다. 분명 이들은 절대로 일반적인 헌터가 아닐 것입니다.”
석민과 아영에겐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저들이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으로 추정하지 않았다.
“러시아인일 수도 있지 않나?”
교주의 말에 박재만은 고개를 저었다.
“막연하게 바로 추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구할 수 있는 것이 군장과 군복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가만, 저자. 쓰는 무기가 9x39mm 탄환, 지난번에 우리 보급창고를 습격한 놈과 같은 놈일 수도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말에 교구장은 가만히 몸을 등받이에 기울인 채, 잠깐 상념에 빠졌다.
“이미 예전부터 활동했다는 말인데….”
교주는 가만히 있다가 대뜸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 탄환을 쓰는 거지?”
그걸 내가 낸들 어떻게 알겠나? 박재만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해당 탄환은 무성무기로 최고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탄환을 보유하고 저렇게 쉽게 무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면 배후에 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분석도 하지 않고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건가? 내게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예전부터 찾으라고 말한 자와 천사께서 찾으라고 한 적이 동일인일 수도 있단 사실뿐인가? 어떻게 찾을 것인지는 말을 못 하고?”
가면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시선과 마주하게 되자 박재만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열병 환자마냥 진땀이 흘렀지만, 겉으론 무덤덤한 표정을 최대한 유지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또 대답하는 목소리가 단호해 보였는지 교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계속하게.”
일단 위기를 넘긴 박재만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번째 분석으로 정탐군이 마지막으로 보고 드렸던 것이 천사께서 타천사를 잡는 데 도와달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기 저 쇠사슬에 잡혀있는 천사가 그 해당되는 타천사임이 분명합니다.”
천사가 타락했다니, 교주는 잠깐 몸을 살짝 뒤척였다.
“하긴 악마도 원래 천사였다고 하니 그 말이 맞는 말이겠지.”
그는 한숨을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대책은?”
“저들이 타천사를 데리고 갔지만, 서울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울에 타천사를 숨기고 헌터들처럼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할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놈들을 찾기 위해 최대한 많은 수의 성도들을 중랑구 지역으로 파견해 수색할까 합니다.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게 하게. 성남 교구장.”
“예.”
“성도들의 무장은 어찌 되었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만 기일을 맞추기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주거래 무기상이 죽은 이후 다른 소규모 무기상들을 통해 수집하고 있었는데, 일부 무기상들이 터무니없이 낡은 무기를 신품이라 속여 팔기에 거래처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북한제 무기도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아 성도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 걸린 무기상들은 그보다 품질이 더 떨어지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조잡한 대장간제 무기를 정식 공장에서 생산한 무기인 것으로 속이고 팔다가 적발되었다.
“거짓으로 속인 자들은 적절하게 처리하였겠지?”
“예,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기일에 맞춰서 장만하게.”
박재만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백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재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제기랄, 어떻게 마련하라는 거야.’
깜깜한 앞날에 박재만이 뒤에서 욕지거리를 하고 있을 때, 백은호는 기도실로 향했다. 대원들이 죽었으니 그들의 영이 무사히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싶었다.
기도실에 온 백은호는 그대로 엎드려 기도에 들어갔다.
물론 그들의 영을 걱정하진 않았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 중 죽은 순교자들이었으니 신께서 직접 그들을 거두어 갔으리라.
‘당신을 위에 죽은 성도들과 앞으로 죽을지 모르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마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