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19화]
VSS의 탄피가 걸려있었다. 장전손잡이를 당겨보았지만, 탄피가 바로 빠지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알림글을 확인했다.
[VSS, Vintorez]
내구도: 80%
품질: 중하
탄약: 9X39mm
러시아제 저격소총, 꽤 오래 사용해서 탄착군이 벌어졌고 탄매가 심하게 낀 상태라 장전불량이 벌어질 수 있다.
‘아까 사격한 것 때문인가?’
석민은 이를 악물고 백아연을 보았다.
총을 놓친 그녀가 다시 총을 줍기 위해 온몸을 움직였다. 거리는 가까웠기 때문에 총을 옆에 던진 석민은 그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오른손이 왼쪽 소매 안으로 들어갔고, 곧 단검 두 개가 튀어나왔다.
그것을 본 백아연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얼른 총을 잡아채 석민을 겨눴으나, 그땐 이미 늦었다.
석민의 손이 총구를 쳐내고 총성이 울렸을 땐 단검의 끝이 그녀의 목덜미를 뚫고 나왔다.
생명이 아스라이 사라지는 눈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거품을 확인한 석민은 단검을 뽑아 죽은 아연의 옷에다 피를 닦아냈다.
“젠장.”
그는 장갑에 묻은 피도마저 닦아낸 후 아영을 향해 몸을 돌렸다.
“괜찮아? 어디 맞은 데는?”
“전 괜찮아요.”
석민은 쓰러진 천사에게 다가갔다. 천사의 몸에서 붉은 피가 나왔다.
“치료 키트 줘 봐.”
그 천사는 몸무게가 많이 나갔지만, 석민은 아무렇지 않게 쓰러진 그녀의 어깨를 잡아들어서 등을 보았다. 키와 질량에 비해 생각보다 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다.
“총알이 관통했어. 다행히 주요 장기는 안 맞은 거 같아. 지혈대부터.”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는 천사도 인간과 신체가 비슷할 거라고 대충 어림짐작했다. 그가 보기엔 천사의 상처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옮기자. 아니지,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이봐, 일어날 수 있어?”
석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디랭귀지를 시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천사는 이해한 듯싶었다. 그것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 따라와. 따라올 수 있어?”
“어디로 가시려고요?”
아영이 물었다.
“우리 은신처, 비트 중 하나로 가면 되겠지. 거기가 가장 따뜻하고 안전하니까.”
“이 큰 천사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별수 있나. 일단 이동하지.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그는 천사의 무기와 갑주를 들어보았다. 이게 정말 총탄을 막아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가벼웠는데, 그래도 총이 스친 자국들이 여럿 나 있는 것을 봐선 제 기능은 하는 듯했다.
그는 천사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직 서로 간에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이 천사는 자신을 살려주었다.
그는 그것을 천사에게 내밀었다. 천사는 잠시간 그것을 내려 보더니 다시 석민을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아니, 어쩌시려고…….”
하지만, 이미 무구는 천사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천사는 석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듯싶었다.
천사는 빠르게 무구를 착용하고 무기를 들었다.
1명의 천사와 2명의 남녀가 서로에게 신뢰를 가지게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석민은 지금 천사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바로 해부되거나 혹은 드래곤하트를 채취당할 거라 보았다. 그러나 석민과 아영이 받은 사명이 ‘거짓된 전령’이니, 그들은 천사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었다.
***
-그래서, 천사는 발견 못 한 건가?
“네, 하지만, 천국의 문 교단의 대원들은 처리했습니다.”
휴대폰을 통해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영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통령의 답변을 기다렸다.
-잘 알겠네. 수고했어. 바로 서울에서 나올 건가?
그 말에 아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늦었고, 내일 중으로 나올 생각입니다.”
-알았네. 아쉽게 되었군. 그러면 내일 복귀하게.
“알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되고 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닫고 석민과 천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잘했어.”
석민이 만족스런 미소로 화답했으나, 아영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직도 천사에 대해 숨기는 것에 회의적인 눈치였다. 석민은 얼른 한마디 더 거들었다.
“잘한 거야.”
그리고 시선을 천사에게로 돌렸다. 여성체로 보이는 천사를 보며, 석민은 그냥 여자라 지칭하기로 했다.
여자는 다소곳하게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무릎 꿇은 자세로 앉아서 그들을 내려 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다소곳한 소녀가 조용히 앉아있는 것 같았겠지만, 이것은 그들보다 적어도 3배나 큰 신체를 가진 천사였다.
그때, 아까까진 돌발 상황에 몰랐으나,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뭘 먹여야 하나? 지혈대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되려나? 상처가 도지면 어쩌지. 아니면 항생제라도?”
“아뇨, 지금 당장 추가적인 치료는 무리예요. 우리가 가진 약이 통하는지도 모르잖아요. 지금 당장은 기본적인 치료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 땅의 풍토병? 혹은 박테리아라던가, 사람에게 카페인이 든 커피나 초콜릿은 해롭지는 않지만, 개나 고양이에겐 독이 듯이요.”
지금 천사를 개와 비교한 건가? 석민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하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하긴? 대화를 해봐야지. 우리말도 가르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천사는 사람이랑 있고 싶어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까 사슬 봤지? 쉽게 끊을 수 있는데 일부러 잡혔잖아. 거기에 천사들이 이 녀석을 죽이려고 했어. 즉 그 말은, 다른 동료들에게 배신자, 혹은 반역자라는 뜻이지.”
그 말에 아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정부쪽과 접촉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정보를 넘길지도 모르는데.”
“아니야. 이 천사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어.”
사실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심적으로 그는 확신이 있었다. 대화만 할 수 있다면 그놈의 망할 사명이 뭔지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움이 될 거야 일단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알아내야겠지만.”
그렇게 말했으나 석민도 막상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
출근하고 업무준비에 들어간 박재만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온 여비서에게 사무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무장 김지형 성도가 출근을 안 한 지 얼마나 되었지?”
“이틀이 되었습니다.”
박재만의 물음에 여비서가 대답했다.
박재만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그와 사이가 그리 좋진 않으니, 이렇게 무단으로 출근을 하지 않으면야 쫓아낼 좋은 기회이나, 자신이 아는 김지형은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도 밀려있는데 사무장이라는 놈이.’
“전화도 안 받고?”
“그렇습니다. 저, 그리고 사무장 말고도 사무장과 친한 교인 2명도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교단소속 법인차량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았어, 그만 나가봐.”
비서가 나간 직후 백은호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뭘 하려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 같은데.’
혹시 교단시설을 공격한 자를 계속 수사하다가 이런 사단이 난 게 아닐까? 그래서 늦게 오는 것이고?
‘그렇다면 출근을 하지 않는 건 뭐지?’
그는 설마 김지형이 죽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좀 더 생각을 이어가다가 아무런 결말이 떠오르지 않자, 곧 생각을 접고는 자신의 일과 작업을 시작했다.
천사들의 계시와 더불어 교주가 예정보다 성전을 앞당겨서 그의 일이 상당히 많아졌다.
무기와 탄약을 모으는 일은 대단히 위험했고 보는 눈들을 피해야만 했기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박재만의 야근도 잦아졌다. 그는 예전처럼 부패한 목사의 신분을 영위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술 마시고 여자를 만나는, 사치스러운 일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렇게 노력함에도 한계는 너무 명확했다.
아무리 교단이 곳곳에 암약한다지만, 정부는 정부였다. 세상이 막장이라 해도,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유지되는 이유는 정부가 유능한 덕분이었다.
그들은 점점 더 집요해지고, 교단에 대해 알면 안 되는 비밀들까지도 알아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단서를 가지게 된다면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엮일 것이다.
‘제시간에 전 교인들을 무장시키는 것은 역시 무리야.’
지금이라도 전 교인들에게 총기는 쥐어 줄 수 있었다. 문제는 군용 자동화기가 아닌, 민간에서 사용하는 이름도 촌스러운 2연발짜리 괴수용 국민호신총 샷건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슬러그탄이 괴수에게 아주 효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투용이라 볼 순 없었다.
다 떠나서 겨우 2연발짜리라 절대 전장에서 쓸 수 없었다.
‘정예교인 1만 인이라지만, 그것은 너무 적지.’
게다가 탄약수급도 문제였다.
그가 거래하는 무기상들은 대규모 탄약을 수입하지 못했다.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수동으로 생산하는 거라 원하는 만큼 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는데….’
골치가 아파진 그는 자신의 팔목을 차지한 롤렉스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뒤면 점심이었다.
머리 빠지게 고민해서인지 그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직도 산더미같이 쌓인 일을 보며 점심 먹는 시간을 줄이기로 마음먹고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노크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교구장님.”
다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여비서가 방해를 하자,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짜증으로 가득해졌다.
“뭐지? 무슨 일이야? 난 지금 바쁘다고. 지금 탄약을 구하는 일 때문에 짜증나는데 별일 아니기만 해봐.”
그 말에 비서의 얼굴도 매우 안 좋게 변해갔다.
“그게….”
그때, 전화가 울렸다. 박재만은 비서의 말을 일단 자르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뭔가?”
-정탐군들이 복귀했습니다. 사망자는 16명, 생존자는 4명입니다.
“겨우?”
겨우 그것밖에 안 살아 돌아왔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교구장이 다시 말을 꺼내기 전에 전화기 안에서 먼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백아연 성도가 죽기 전에 마지막 영상을 남겼습니다. 이미 메일을 보냈는데 보시면 많이 흥미로우실 겁니다.
보고를 하는 자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말했지만, 박재만은 기분이 팍 상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박재만은 인상을 찌푸렸다.
“알았어. 지금 보도록 하지.”
통화를 끝낸 그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이메일을 열었다. 첨부된 파일을 확인하며 가만히 서 있는 비서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뭔가?”
“교단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주께서 교구장님을 찾으십니다.”
“뭐?!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가?”
‘빌어먹을 놈이….’
교구장 박재만은 신경질적으로 물었고 이에 비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자기 말을 자르는 걸 대단히 싫어하는 놈인지라, 그녀는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주께서 찾으신다고?”
“그렇습니다.”
박재만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영상을 보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명령을 내렸다.
“차를 준비해. 바로 가도록 하지.”
“저, 그런데 직접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응?”
박재만은 영상에 떠오른 석민과 아영의 모습에 비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밖이 소란스러운 것도 영상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뒤늦게 알아챘다.
“밖에 조용히 좀 하라고 해.”
“네.”
비서가 나갔으나, 여전히 밖은 거친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고, 곧 사람을 제압하는 소리, 그리고 낮은 신음소리까지 났다. 박재만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을 땐 소리가 문 앞까지 닿아있었다.
이윽고 거센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것처럼 문이 열리더니 양복쟁이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박재만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뭐, 뭐야?”
박재만의 물음에 양복쟁이들은 입도 떼지 않았다. 그저 매우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볼 뿐이었다.
박재만은 본능적으로 그들이 사도대인 것을 알았다.
“박재만 교구장, 교주님의 호출입니다.”
얼굴만큼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오자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가도록 하지.”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도대의 대원들은 그의 양팔을 붙잡아 끌고 나갔다. 박재만은 그들이 타고 온 검은색 세단 뒷좌석에 강제로 앉혀졌고, 사도대 대원들이 양옆에 자리 잡았다.
***
그가 끌려간 곳은 교단 본부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차량은 1시간 넘게 이동하는가 싶더니 인적이 드문 폐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에 대문을 지키고 있던 사도대 대원이 입구를 막은 쇠사슬 줄을 풀었고, 차량이 들어가자 다시 쇠사슬을 걸었다.
차량은 공장 안으로 그대로 들어갔다. 그곳엔 십 수 명의 사도대 대원들과 교주 백은호, 그리고 그 앞에 팔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박선우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