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17화 (117/226)

[게이트 오브 서울 117화]

두 사람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석민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영이었다.

“……무슨 일이야.”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급히 서울로 들어가야 합니다.

“서울? 왜?”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방금 저도 대통령님께 호출 은 것이라….

아영이 우물쭈물하며 괜히 말끝을 흐리자,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석민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런 젠장! 빌어먹을 하필.’

혜원은 석민의 반응을 보고 글렀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녀는 입 밖으로 욕을 하지 않았을 뿐, 풀렸던 기분이 다시 꼬여 감을 느꼈다. 전화를 건 아영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부도 대통령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담배를 물었고 석민은 몸을 씻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옷을 입었다.

“급한 일이래.”

“아, 알았어.”

대답하는 것이 까칠했다. 석민은 자기가 한 잘못도 아닌데 자신에게 신경질 부리는 것 같은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다녀올게.”

조금이라도 달래졌으면 하는 마음에 석민은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꾹 붙였다 뗐다.

“언제 오는 거야?”

들은 게 없었기에 석민은 대답할 수 없었다.

“되도록 빨리 올 거야.”

석민이 나가고 혼자 남은 혜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방 안은 적막감만 돌았다. 한창 달아오른 몸은 식지도 않았다.

사람을 달아오르게 해놓고 바로 가버리다니.

석민이 나가고 간 빈자리를 메운 차가온 공기가 그녀의 앙상한 등과 어깨를 감싸자,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녀는 지독한 고독감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떨쳐버리고자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고 했지만 라이터의 부싯돌만 번쩍일 뿐 불이 안 붙었다.

불을 붙이려는 손가락이 점점 빨라져 갔다. 한 손으로 하던 게 두 손이 되었고 그래도 불이 안 붙자 그녀는 거칠게 라이터를 집어 던졌고 손에 쥐고 있던 담배는 부러트려버렸다.

“제기랄!”

마치 비명처럼 들리기도 하는 고성과 함께 그녀는 부러트린 담배도 집어 던졌다.

***

“지난번에 보았던 천사를 우리 UAV가 확인했답니다.”

아영은 이미 짐을 다 싸서 준비가 끝난 상태였고, 밖에는 군에서 보낸 차량도 대기하고 있었다.

멀리서 석민이 오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달려와 옆에 붙어서 같이 걸으며 말했다. 그녀의 코끝에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났다.

잠시 석민과 석민의 그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을 때 석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어디 있는데?”

딴생각을 한 덕분에 대답하는 그녀의 말이 흔들렸다.

“아, 저 그… 중화역 방향이랍니다. 중랑천 쪽은 아닙니다. 우리 UAV가 놈들에게 격추당했어요. 대통령님은 놈들의 은거지를 알길 원합니다.”

“전엔 천사에 대해 알 필요 없다고 한 것 같은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들이 천국의 문 교단의 소속으로 보이는 자들과 접촉했습니다.”

“응?”

석민은 이상함을 느꼈다.

“전에 내가 박선우를 통해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교단 내부의 일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그냥 말만으로 바로 믿기는 그렇지요.”

군용차 앞으로 당도한 그녀는 직접 문을 열었다.

“짐은 다 챙겼습니다. 차에 타시죠. 바로 갈 겁니다.”

석민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일 끝나면 한 1주일은 휴가 받아야겠어.”

그 말에 아영은 미약하게 웃었다.

차 안에 탄 그는 조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분명 혜원은 다시 저기압이 되었을 것이다. 잔뜩 화가 난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그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 있어요?”

“음….”

그는 아영이 여자이니 혹시 잘 알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감히 그런 것을 아영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의 말에 아영은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석민과 아영은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급히 간다고 그는 VSS에 탄약만 챙겨왔다. 그들은 지난번에 애용한 전동자전거를 이용해, 중화역까지 가는데 겨우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봤다. 오전 7시 30분, 생각보다 더 빠르게 왔다. 급히 와서 그런지 전동 자전거의 배터리가 다 닳아 있었다. 돌아갈 때는 좀 걸어야 할 것이다.

“그 빌어먹을 놈들이 천사를 만나서 무언가 대화를 나눴다는 게 뭐 진짜였단 말이지?”

“예, 하지만 알아낸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석민 씨가 저에게 전달해준 게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솔직히 석민도 박선우의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한 마음이었지만, 애초에 아주 가능성이 낮은 이야긴 아니었다.

그런데 천국의 문 교단의 배후는 정말로 저 천사들인가? 생각은 길지 않았고, 곧 석민은 확신했다.

“정확한 위치는 어디야?”

아영은 마지막 영상으로 돌렸다.

“이런 것으론 알아보기 좀 그런데.”

영상만으로는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영상으로 지역을 추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 근방은 철저하게 박살나서 고지대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말은 즉, 발품 팔며 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이었다.

석민은 천사들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그는, 정오까지만 찾아보고 못 찾으면 혜원의 품으로 달려갈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차피 전투식량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서울에 오래 못 있어. 돈도 안 챙겨왔으니 말리나로 갈 수도 없지. 그러니 오늘 저녁에는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석민의 생각처럼 아영도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데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혹독한 추위 때문에 괴수들도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그 망할 천사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날아다니는 것들인데, 찾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서쪽으로, 중랑천을 향해 움직였다. 석민 때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난번에 보았던 철도교나 확인해 보자.”

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영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반론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기에 그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거나,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꽤 먼데?”

무시할 만큼 멀었다. 경험상 못해도 최소 600미터, 최대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총성이 또 들려왔다.

단발음이 아닌 기관총의 연사음 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거리는 멀었고, 자신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어느 정도 긴장을 풀었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이 떨어지자, 석민의 머릿속은 다시 잡생각으로 가득해졌다.

만약 독심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 한심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임무에 집중이나 하라고 말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생각들이었다.

그래도 아영은 석민보다 임무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잡생각으로 자연스레 보폭이 좁아지고 뒤처진 석민을 살짝 째려보고는 무전 감청기를 꺼내 들었다.

석민은 자신의 시야에 잡힌 감청기를 보고서 잡생각을 떨치고 빠른 걸음으로 아영에게 다가왔다.

“그건 뭐야?”

“무선 감청기요.”

그녀는 헤드셋을 낀 채, 기기를 조작했다. 부채처럼 펴지는 방식의 안테나가 석민의 호기심과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신기한 것도 있네.’

하지만,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도 오늘은 헌터들을 사냥하지 않을 거야.”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추위로 매우 떨렸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서울의 추위는 점점 더 혹독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낀 손으로 기기 조작이 힘들자 장갑을 벗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손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석민의 시선에도 하얗던 아영의 손이 추위로 빨개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대략 10분 같던 1분이 지날 무렵 아영의 귀에 신호가 잡혔다.

-잡았다! 잡았어!

아영의 귀에 또렷하게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오른쪽 헤드셋 귀덮개 부분을 살짝 옆으로 돌리자 석민이 거기에 뒤를 대었다.

-천사를 잡았다! 잡았다고! 족 같은 비둘기 새끼, 드디어 잡았네!

“위치가 어디지?”

질문하는 그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하지만 바로 알 순 없었다. 감청기는 어느 쪽에서 신호를 잡았는지는 알려주지만, 거리를 알려주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향은 알 수 있었기에 아영은 감청기를 꽉 잡은 채 몸을 움직였고, 석민은 그 뒤를 따랐다.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방향을 잡아 걸어가고 있을 때 석민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완파된 건물에서 의도적으로 넓힌 것 같은 구멍 하나가 보였다.

“저기가 의심스러운데, 무전은 어디로 들려?”

“저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혜원이 감청기는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올라간다고 했어요.”

그들은 주변 폐허에 엎드렸다. 그렇게 아영과 석민은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무 코팅이 된 쇠사슬을 가진 남자가 올라왔다. 남자는 온몸에 방한복과 방한장비로 완전무장 되어 있었고, 표정은 잔뜩 들떠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쇠사슬을 끌자, 이내 구멍에서 사람, 아니 무장을 한 천사가 올라왔다.

‘어? 저거.’

지난번에 보았던 파란 머리에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바로 그 천사였다.

지난번 보았을 때보다 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갑주와 투구는 벗고 있었는데, 뒤 따라 나오는 남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큰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는 별로 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일행은 그들 말고도 5명 더 있었다. 천사는 여전히 얇아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추위에도 괜찮은 건가? 아니, 괜찮으니까 저렇게 있는 거겠지.

천사는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서 뭐라 전달받은 거 있어?”

“아뇨.”

그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원래 목적은 은거지를 알아내는 거지, 저것을 구하거나 생포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전 켜서 물어볼 수는 없나?”

“단거리 무전만 가지고 와서.”

“휴대폰이라도 써보던가.”

“비화폰은 따로 있는데….”

그래, 두고 왔겠지. 우리는 정부와 연관성이 없어야 하니까.

석민이 품속에서 2G폰을 꺼내 들어서 보여주었다.

“대통령 전화번호는 알지?”

“농담이시죠?”

전화번호에 관해서가 아니라 암호화되지 않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한다는 것에 대해 우려한 대답이었다.

석민은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래도 스마트폰보다 2G폰이 도청하기 힘들어. 빨리해.”

아영이 전화기를 두드리는 동안 석민은 스코프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마음속엔 저 천사를 저들에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것들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나저나 키가 정말 컸다. 과장이긴 하지만, 걸리버 여행기의 난쟁이들이 거인을 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천사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지친 건가?’

마법 같은 것도 못 쓰고 저 무기를 쓰지 못할 정도로 지친 것인가? 그렇게 보기엔 멀쩡히 서 있는데.

천사를 잡은 무리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는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남자의 머리를 조준했다.

“여보세요? 대통령님, 예, 저입니다. 긴급한 상황이라 전화를 할 수밖에….”

총성이 마구 울렸다. 헌터들이 쓰러지고, 살아남은 자들은 얼른 엎드렸다. 그 소리에 천사도 몸을 웅크렸다.

아영은 핸드폰을 닫고 얼른 총을 꺼내 들었다.

“뭐죠? 무슨 일이죠?”

“나도 몰라. 3시 방향에서 소리가 났어.”

살아남은 자들은 필사적으로 엄폐물 뒤로 숨었다. 이후 총격전이 벌어졌다. 물론 먼저 기습당한 쪽이 매우 불리했다. 그들은 기습을 당했고 숫자도 부족했다.

공격을 하는 쪽의 총성이 더 많이 들렸고, 또 기관총까지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들은 서서히 제압당했고, 곧 그들은 고개도 내밀지 못한 채 총만 내밀어서 사격하는 소극적인 저항 말고는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질 못했다.

“기습을 가한 쪽은….”

아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총성이 멎었기에 의아스러웠다.

갑자기 뭐지? 석민이 고개를 돌린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도 없었다.

은빛의 화살들이 하늘에서 작렬하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헌터들을 하나둘 처리했다.

지난번에 본 천사들이었다. 그것들은 가지고 있던 기다란 창이나 검을 이용해, 이쑤시개로 과일 찍듯 사람을 쉽게 찍어버렸다. 헌터들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