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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16화 (116/226)

[게이트 오브 서울 116화]

갑작스러운 총격에 용석은 몸을 움찔거렸다.

총에 맞은 김지형의 대가리 뒤통수가 터지면서 바닥에 뇌 조각과 피, 두개골과 두피가 흩뿌려졌다.

“왜 그랬어?”

용석은 김지형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잡아다가 한번 심문하는 게 낫지 않았어?”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칼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게 무심한 대답에 용석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 쫌! 나 지금 맨 얼굴이잖아요. 얼굴을 보았으니 살려둘 수 없어요. 그리고 놈이 칼을 가지고 있으니까. 형을 어떻게 하려면 어쩌려고요?”

석민은 김지형의 시신에서 단검을 다시 찾아 검집에 넣었다.

바깥에서 문을 열려고 시도를 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경찰신분증 가지고 있죠? 밖에 경찰들 있어요. 저 대신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

그는 지갑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냈다.

“가서 설명할 게 좀 있을 거야. 네 신분을 보장할 거고 또 기록에 남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얼마 안 걸려. 한, 두 시간 정도?”

용석이 문을 열 준비를 하자 석민은 무장을 풀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면인식을 풀고 문을 열었냐?”

“아, 그거 사람 얼굴이랑 사진 구분 못 해요.”

그 말에 용석은 잠깐 멈칫거렸다. 여태껏 안면인식 장치를 꽤나 신뢰하던 것 같았다.

아마 섬뜩했을 것이다.

석민이 만일을 대비해 그를 처리할 수 있게 다 대비해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 테니까.

“…잠금장치를 바꿔야겠군.”

“되도록 오래 떠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 그것도 그렇고.”

용석은 자기가 사는 집 말고도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안전가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을 느꼈을 땐 거기에 가족들을 보내고, 자기는 경찰서 내부의 숙직실에 살았다.

“안전한 것 같으면 연락해라.”

“그러죠.”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수많은 레이저 불빛이 그들을 겨누었다. 그들은 양손을 들고 무릎을 꿇었다.

거친 손길들이 그들을 매우 강하게 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려날 수 있었다.

용석이 말한 대로 그는 조사받고 끝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용석과 입을 맞춘 대로 무장 강도 사건이라 해도, 총을 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명이 필요했다. 결국 용석이 말한 시간보다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서를 떠날 수 있었다. 그땐 이미 밤이었다.

근래에 경기도는 밤이 되면 가게들이 빨리 문 닫았기 때문에 석민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

저녁 9시가 되었는데도 석민이 오질 않자, 혜원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일하는 틈틈이 시계를 주시하다가 분침이 4를 지날 때쯤 결국 가지고 있던 공구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공구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빨리 온다더니 이게 뭐야.’

그녀는 석민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그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몰라 두려움에 차마 전화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점점 조급해져 갔다.

“하아, 어쩔 수 없지.”

한숨을 내쉰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순간, 컴퓨터에서 알림음이 뜨면서 화면에 석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치킨과 생맥주가 가득 든 페트병이 석민의 양손에 가득 쥐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자연스레 방탄유리문을 열고 선반 위에 그것들을 올려놓았다.

그의 무사한 모습에 안도감은 느꼈으나 여전히 화가 난 혜원의 얼굴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너무 늦게 왔잖아.”

투정 섞인 혜원의 말에 석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빙긋 웃었다.

그에게선 살짝 피 냄새가 났다. 아마 급하게 오느라 바지 밑단이나 신발에 묻은 피를 미처 닦지 못해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혜원의 인상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일은 마무리 된 거야? 이제 안전한 거야?”

석민에게 대답이 없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그녀가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대답이 없어? 너 정말 괜찮은….”

석민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덕분에 그녀는 그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잠깐 몸이 뻣뻣하게 굳었으나, 이내 그 몸과 마음이 봄눈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혜원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석민의 얼굴을 한 번 째려보았다.

“상당히 치사한 놈이야, 너.”

그 말에 석민은 큭큭 거리며 웃었다.

반역자

“일어나.”

혜원의 말에 석민이 번쩍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끈적거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또 악몽을 꾸었다.

지난번처럼 잠꼬대를 하면서 발작 비슷하게 몸부림쳤을 테고 그것이 잠든 혜원을 깨어나게 만든 게 분명했다.

“미안해.”

혜원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일 리 만무했지만, 스탯 덕분에 석민은 그녀가 부엌으로 가서 물을 떠 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혜원이 건네주는 물잔을 감사히 받아 그대로 쭉 들이켰다.

“고마워.”

자기 전 석민은 그녀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잠들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쉽네.’

원래 계획은 밖으로 나가길 꺼리는 그녀를 데리고 당구도 하고 산책도 하는, 그럭저럭 활동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어제의 급한 일로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젠 즐거웠고, 혜원도 결과적으로 좋아했기에 나쁘지 않은 하루의 마감이었다.

그런데, 악몽이라니……. 기분이 더러웠다.

“지금 몇 시지?”

그 말에 혜원이 시계를 확인했다.

“5시.”

“5시간밖에 자지 않았군.”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혜원도 잠이 확 깬 얼굴이었다.

잠시 후 방 안은 그들의 대화 소리로 도란거렸다. 석민은 지난번 혜원에게 기관총을 빌리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총이 필요했던 거야. 다행히 일은 잘 마무리되었어.”

말을 끝마쳤던 석민은 잠시 혜원의 눈과 마주 응시한 후 다시 입을 뗐다.

“네 덕분이야.”

“그래, 알고 있으면 됐어.”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조금 삐져있는 것 같았다. 석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빌려간 m240은 신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었기 때문에 가격이 원래 가격의 절반으로 깎였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긴 했는데, 그 두 정을 사진 않고 탄약값에 얼마를 더 붙여서 지불했을 뿐이었다.

권총은 제대로 된 가격을 지불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역시 그녀의 감정을 풀어줄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어젯밤 자신 나름 그녀를 최대한 즐겁게 해주려 했다.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녀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감성을 숨기지도 않았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녀와 감정을 나누고 몸을 섞을 때, 그녀가 쾌감에 허물어져 본래의 표정을 내비칠 때마다 석민은 역시 더 큰 쾌감과 욕망,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석민은 그녀가 원하는 만족감을 제공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조금 민망한 사실이지만, 활력 스탯은 매우 중요한 곳의 회복능력 또한 높여주었다.

석민은 여전히 토라져 있는 혜원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르리라 생각하지만, 머리 만져주는 것을 좋아했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 아무것도 안 입은 채, 이불 한 장을 같이 덮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이라는 장막을 이용해 이불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있었지만, 시력 스탯을 찍은 석민에겐 너무나 잘 보였다.

‘이쁘다.’

석민은 찬찬히 그녀의 몸을 감상했다. 그 어떤 아름다운 모델이나 연예인의 몸이 아니었지만, 그에게 혜원은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되도 않는 미인계로 자신을 포섭, 혹은 함정에 빠트리려던 샤샤는 자신이 이제껏 본 그 어떤 여성보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에게 최고는 역시 혜원이었다.

물론 혜원의 얼굴이나 몸매가 객관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할 순 없었다. 앙상하게 튀어나온 갈비뼈들을 볼 때마다 석민은 어디 수용소에서 굶다가 나온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랑스럽다는 감정은 변함이 없었다.

입은 열 때마다 걸레를 물었지만, 그런 것도 그저 귀여운 작은 단점 정도로 여겨졌다.

자신 혼자만 혜원을 뚜렷하게 바라보니, 훔쳐보는 기분이었으나 죄책감은 그다지 없었다. 서로의 몸을 이미 볼 만큼 본 사이고.

그러나 혜원은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다.

잠깐 머리를 허락하던 그녀는 이내 그의 손길을 뿌리치더니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어 덮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왜 그래?”

결국 참지 못한 석민이 입을 열었다.

“결국 니 말은, 시발 존나게 아주 위험했단 거잖아. 서울도 그렇고 어제도 그렇고.”

침묵이 감돌았다.

“언뜻 의미로는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 아니라 쳐맞는 말이지, 새끼야.”

석민은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가 일반인의 몸이었으면 그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체력 스탯이 없었다면, 총열로 그 돌연변이를 쳐내지 못했을 거고, 용석을 구하기도 어려웠을 게 분명했다.

“……너무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야?”

“뭐라고?”

혜원이 작은 목소리로 너무 조곤조곤하게 말하자, 듣지 못한 석민이 귀를 가까이에 댔다. 그러자 잠시 수그러든 것처럼 보였던 혜원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아씨, 쫌 조심하라고! 위험한 일하는 거면 몸 좀 조심히 해!”

짜증스런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석민은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 보았던 그녀와 지금 자신을 걱정해주는 저 말이 너무 상반돼서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그녀가 주었던 글록 26에 나왔던 설명글도 생각났기에 웃음은 배가 되었다.

“뭐야, 뭐가 웃긴 거야?”

“아니, 네가 그 말을 하니 웃겨서 말이지.”

그 말은 혜원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새끼가 애써 말해줬더니.’

기분이 너무 나빴다. 기껏 생각해서 말을 해줬더니 저따위로 말하다니, 게다가 그녀는 그가 죽길 원하지 않았다.

석민은 그녀가 상당히 기분나빠한다는 것을 눈치 챘다.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건가? 하긴, 어떻게 하면 기분을 풀게 해줄까 생각이 들었다.

혜원이 담배를 피기 위해 몸을 돌렸고 잘록한 허리와 달항아리 같은 엉덩이가 드러났다.

석민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의 손이 자연스레 그녀의 양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하는 거야?”

“글쎄?”

“아, 하지 마. 그럴 기분 아니야.”

저항하는 낌새를 보이던 그녀가 끝에는 슬쩍 힘을 빼고 있단 사실을 석민은 재빠르게 눈치 챘다.

“하지 말라고.”

“흡연보단 낫지 않아?”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

“아, 하지 마.”

새침한 목소리로 거부하는 말을 입 밖에 내뱉지만, 손으로 석민을 막지도 않았다. 석민은 슬그머니 더 달라붙어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자다 일어나서 그대로 키스하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를 준비는 충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혜원의 작은 등을 양손으로 쓰다듬었었고 후엔 척추를 따라 손끝으로 스치자 혜원의 등골이 살짝 움찔거렸다. 석민은 그 반응을 즐기며 좀 더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입술과 혀가 목덜미 쪽으로 스치자 혜원은 간지러움에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입에서 뜨거운 호흡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눈을 감으며 점차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석민은 그녀가 준비될 때까지 세심하게 움직였다.

신음소리와도 같은 한숨이 나왔다. 석민은 그녀를 부드럽게 침대에 눕히고는 위로 올라탔다. 혜원의 손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자신보다 높은 체온과 부드러운 감촉에 석민의 등골을 따라 쾌감의 전율이 돋았다.

욕망과 열정 어린 눈길을 서로 주고받으며 몸을 섞으려던 그 순간, 석민의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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