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15화]
“박민국. 이름 박민국 나이는 29세.”
“그래, 계속해봐.”
김지형은 이번엔 대충 맞다고 생각하는지 휴대폰의 녹화 어플을 켰다.
“키가 대략 180 정도이고.”
“사는 집은?”
“예전에 성남에서 살았어. 지금은 몰라.”
“쓰는 무기는?”
“AS Val.”
그 말에 김지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김새 말해봐.”
“그냥 평범하게 생겼는데. 이봐, 사진이라든가 뭔가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냥 그놈 사진 찍힌 거 보여주면 네가 찾는 놈이 내가 아는 놈이 맞는지 알 거 아냐?”
그 말에 김지형은 잠깐 눈을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거 없어.”
“그러면? 뭐, 나보고 그놈 주민등본이라도 알아내라는 거야? 소개꾼은 어디까지나 소개꾼일 뿐이라고. 나 같은 애들 보면 잘 알겠지만, 우리는 소개만 해주지 의뢰인이나, 피의뢰인에 대해서 알지 못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잘 알고 있으면 지금 이런 꼴 나니까.”
“최대한 아는 선에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뭘 좋아하는지, 습관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아는 것 전부.”
“말했잖아. 그런 건 잘 알지 못한다고.”
그 말에 김지형은 작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러면 전화번호를 이야기해 보실까?”
그 말에 용석은 킥킥거리면서 그를 비웃었다.
“요즘 세상에 다들 전화번호를 등록만 하지 외우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냐?”
“안전하게 돈을 받고 모든 것을 잊은 채 이 방에서 나가려면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아니, 정말 모른다니깐!”
하지만, 김지형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용석의 말대로 요즘 세상에 전화번호를 등록해도 외우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전화번호 수첩을 사용하던 부모 세대도 이제 스마트폰으로 가족이나 지인, 친척의 번호를 등록해놓지, 직접 외우진 않는다.
하지만, 용석은 다르다고 김지형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특성상 돈줄이나 다름없는 장부를 거리낌 없이 버렸다는 것은 어딘가에 백업이 있다는 것이고, 그 백업 장부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내면 된다.
전화번호만 안다면 그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아내는 것은 매우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알면 다시 말해. 진실의 종이를 가져와.”
그 말에 뒤에 있던 남자가 키득거리면서 한지에 물을 적셨다.
“진실의 종이?”
용석은 한쪽 눈썹만 치뜨며 되물었다.
“아니, 정말 그걸 개그라고 떠든 거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번엔 5장 붙여. 아마 숨을 전혀 못 쉴 거다. 죽을 거 같을 때 종이를 빼서 살려 놓기만 해.”
“알겠습니다.”
이미 도모지로 지독하게 당했던지라, 이번엔 용석도 차분하게 있지 못했다. 덜덜 떨고 있는 용석을 향해 한지를 들고 남자가 다가왔다.
그때, 얼굴인식 문이 열렸다.
***
‘더 로드’에 도착한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문 앞에 선 경찰들을 보았다.
경찰들은 방한 잠바에 바지,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그의 예리한 눈에 저들은 절대로 경찰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목석처럼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경찰 제복에 달린 계급장이 경장과 경사였다.
얼굴 나이대로도 딱히 어울리는 계급이 아니었지만, 만약 계급이 맞다 쳐도, 보통 이런 사건 현장에서 경비를 서는 이들은 대부분 의경들이었지 경장과 경사급은 아니었다. 저 계급을 달고 경비를 서는 모습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하더라도 순경이 하지.’
물론 세상이 흉흉해져서, 일선 지구대에서 나온 거라면 보통 경찰 2명과 의경 2명이서 순찰을 돌고 함께 움직이기에, 다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안에 있는 자까지 포함해도 고작 3명이었다. 게다가 안에 있는 사람은 마치 과학수사대처럼 차려입고 행세하고 있었지만, 일단 그곳에서 사람을 한 명만 파견할 리 없었고, 용석에게서 전화 왔을 때 시간을 생각하면 벌써 배치될 리도 없는 부서였다.
그는 주변에 몰려있는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천천히 허리춤에 끼워둔 홀스터에 걸어 둔 권총의 안전장치를 안전에서 격발로 바꾸고, 권총을 쉽게 꺼낼 수 있게 잠바의 지퍼를 풀었다.
구경꾼들은 대략 10명이었다.
“가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석민이 사람들 속에서 나와 그들에게 물었다.
“강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석민의 물음에 경찰로 위장을 한 교단의 대원이 대답했다.
그들은 박선우가 속한 사도대의 일원들이었고, 석민이 군중들 속에서 나오는 모습을 경계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석민의 잠바 지퍼가 내려가 있어서 위협을 느끼고 한층 더 경계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그들의 오른손이 자연스레 허리춤으로 향했다.
“여기 사장님은 무사하십니까?”
석민은 고개를 돌려 가게의 창가 쪽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조카입니다. 저희 삼촌은….”
그는 접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석민과 가장 가까이 있던 대원이 권총집에 손을 올리는 순간,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접근한 석민의 왼손이 그자의 팔을 붙잡았다.
엄청난 힘에 팔이 묶인 그자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팔과 석민을 번갈아 보았다.
“아.”
권총을 뽑은 석민은 그자의 가슴에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그 직후 석민은 바로 반대편에 있는 남자의 가슴에 2발, 머리에 한발 쏘았다.
갑작스러운 총격전에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머리를 관통한 총알은 유리창에 박히면서 유리에 금을 새겼다. 가게의 유리가 방탄유리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밖에서 총성이 들리자, 과학수사대 행색을 하던 자가 품속에서 기관단총을 꺼내며 몸을 숨겼다.
석민은 문가로 들어가려다가 낮게 울리는 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탄조끼 덕분에 살아남은 대원이 권총을 꺼내서 석민을 겨누려 했다. 석민이 얼른 몸을 뒤로 빼자 총알이 허공을 지나갔고, 석민은 그자에게 권총을 쏘았다.
왼쪽 어깨에 총알이 박히면서도 몸을 뒤틀어 총을 쏘려하는 그자의 모습에, 석민은 그자의 손목을 노려 쏘고는 머리에 한 발 더 총알을 박았다.
안에 있던 자는 그사이 기관단총을 장전하면서 섬광탄을 준비했다.
석민 역시 새 탄창을 꺼내 장전을 마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다 안에서 던져진 섬광탄에 몸을 돌려 반대로 뛰었다.
섬광탄이 펑 터지면서 그는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재바르게 몸을 돌려 뛴 덕분에 그는 눈이 나가는 것을 피했지만, 머리가 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석민이 낮게 신음소리를 내자, 안에 있던 자는 지하에 있는 이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꺼냈다.
석민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기듯 낮은 포복으로 가게로 향했다. 가게 입구에 엎어져 있던 식탁을 넘어뜨리고는 그걸 방패로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 인기척에 휴대폰을 열던 남자는 연락을 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손만 내밀어서 기관단총을 발사했다.
남자는 3, 4발씩만 조금씩 점사를 해서 석민이 몸을 들지 못 하게 했다.
석민은 몸을 기어서 식탁 오른쪽으로 움직였고, 살짝만 몸을 내밀어 권총으로 그 기관단총을 쏘았다.
하지만 자세가 좋지 못했는지,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손이 크게 흔들리면서 조준이 빗나갔다.
총알이 손을 스치자 그는 기관단총을 도로 거두었고, 새 탄창을 꺼내어서 장전하는 듯했다.
석민은 권총을 쏘면서 그자가 못 일어나게 하면서 조금씩 접근했다. 새로운 권총의 장탄수가 19발이나 돼서 가능한 일이었다.
석민이 계속 권총을 쏘자 상대는 기세에 눌려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장탄수가 늘었다 해도, 결국 끝은 있는 법이다.
석민은 우선 접근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무작정 총을 쏘면서 전진했고 바 테이블을 넘어 놀란 표정을 짓는 상대의 머리를 날리려는 순간, 슬라이드가 후퇴에 고정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젠장!”
그는 인상을 쓰며 얼른 뒤로 빠졌다.
그 모습에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대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기관단총을 고쳐 잡고 바 테이블을 넘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기에, 석민이 권총을 새로 장전할 시간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원은 석민이 몸을 숨긴 테이블 아래쪽을 조준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석민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맞은 그는 충격으로 상체가 오른쪽으로 꺾였다.
‘어?’
그가 미처 다른 행동을 하기도 전에, 석민은 머리에 한 발 더 쏘아서 쓰러트렸다.
석민은 손에 쥔 글록 26을 잠깐 빤히 보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자신이 아무리 권총을 빠르게 장전할 수 있어도 몸을 급히 숨긴 상태에서 고작 1, 2초 만에 탄창을 빼고, 허리춤에 둔 새 탄창을 꺼내서, 탄창을 넣고, 슬라이드를 전진할 수는 없었다.
혜원이 준 이 글록이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거 정말 고마워해야겠군.’
멀리서 들리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잡념에서 깬 석민은, 급히 몸을 움직여 죽은 남자의 기관단총을 빼앗고 여분의 탄창 하나를 챙겨서 계단 쪽으로 갔다.
안면인식 방식의 문이 나타나자,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석민은 이곳 안면인식 프로그램에 얼굴이 등록되어있지 않았다. 여기에 안면인식이 되어 있는 것은 실질적인 사장인 용석과 알바생뿐이었다.
안면인식프로그램은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문을 부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열지 못했다.
하지만, 안면인식 프로그램의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실제 얼굴이나 사진 상의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석민의 휴대폰사진 목록 중에 용석의 증명사진이 있었다. 예전에 용석과 거래를 틀기 전, 사전에 그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찾아두었던 사진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여태껏 그것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안면인식용 렌즈 앞에 휴대폰 속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이 눈앞에 나타나자 안면인식 프로그램은 화면 속 사람얼굴을 분석했다. 곧 등록된 사람으로 인식했다는 표시로 짧은 알림음을 내었고, 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석민은 문이 열리기 무섭게 한 손에 든 mp5k 기관단총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자를 쏘았다.
기관단총에 맞은 그 남자는 바로 쓰러졌다. 상체에만 쏘았기 때문에 석민은 그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석민은 고개를 돌려 젖은 종이를 버리고 총을 꺼내 드는 사람을 향해 총알을 날리고는 새 탄창을 끼웠다.
용석에게 심문을 하던 김지형은 갑작스런 총격전에 빠르게 안마의자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당황한 나머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급히 권총을 꺼내려 했으나, 그의 손은 빨리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뇌와 달리 행동이 굼떴다. 권총집의 고정장치를 풀지 못하고 몇 번이나 헛손질하던 그는 억지로 권총을 꺼내려 하다가 이마에 닿는 차가운 금속에 행동을 멈췄다.
슬쩍 고개를 들자 석민이 김지형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일어나.”
석민은 한 손으로는 김지형을 겨누면서 다른 한 손으론 글록을 이용해 쓰러진 자들의 머리를 한발씩 쏘았다.
“억.”
“윽.”
총성이 울릴 때마다 김지형은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그가 깨끗한 인간은 아니나, 직접 나서서 더러운 일을 처리한 적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못했다.
“무기 버려.”
김지형은 순순히 허리띠를 풀어서 권총집을 내려놓았다. 석민은 그것을 한쪽으로 차버렸다.
“풀어줘.”
“케이블 타이를 끊을 칼이 없어서….”
석민은 자신의 왼 손목에 끼워두는 단검을 뽑아서 그에게 주었다.
“괜한 짓 하면 바로 대가리 날아가는 거야.”
석민은 김지형이 케이블타이를 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방음문 밖으로 약간 어수선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경찰이 온 것 같았다.
“형, 괜찮아요?”
“난 괜찮아.”
김지형은 날카롭게 갈린 단검을 빤히 보았다.
이 정도의 날카로움이면….
그는 자신의 경험과 석민의 기세로 추론해 보건데 그는 절대로 자신을 살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협상을 해야겠지.’
김지형이 케이블타이를 다 풀기 무섭게 용석은 안마의자에서 나와 몸을 풀었다.
“그럼, 이제….”
석민은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