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14화]
“너무 무모했어. 방탄조끼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야. 일어나. 저 친구 좀 도와서 저자를 옮겨.”
“예, 예.”
그자는 헛기침을 하며 용석을 붙잡았다.
남은 1명은 미리 준비를 해둔 하얀 천으로 알바생의 시신에 덮어두고 곳곳에 번호표를 달아두었다.
마치 총격사건이 일어난 범죄현장을 조사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었다.
경찰복으로 위장을 한 자들은 유리창과 입구에 출입금지 테이프를 붙인 후 문밖에 경비를 섰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섬광탄이 폭음이 울렸는데도, 거리나 근방 창가에 고개를 내미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신고를 받았는지 경찰들이 왔지만, 그들은 문 앞에 경비를 서는 경찰들을 보고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돌아갔다.
지하로 내려간 자들은 지하 대피실 입구카메라에 용석의 머리를 대었다.
안면인식기로 열리는 잠금장치였다.
용석의 머리를 인식한 기기가 삑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그곳은 페인트칠도 되지 않은 벽이 사방을 감싸고, 가구 하나 없이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한구석엔 만일을 대비해서 둔 생수통과 즉석식품들이 놓여 있었고 간이 칸막이가 있는 변기, 수도꼭지 정도는 보였다.
“이걸로 충분해.”
김지형은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문은 닫혔고, 철컥하고 잠금장치가 작동했다.
***
석민은 다급하게 혜원의 가게에 도착했다.
그가 온 것을 확인한 혜원은 석민이 안으로 들어오기 전 자신의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서 입 냄새가 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시침을 떼면서 최대한 침착한 척 앉아있었으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문이 거칠 게 열리자 그녀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왔네?”
“권총 좀 사자.”
석민은 기관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만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총기구매인 건가?
혜원의 얼굴은 금세 실망으로 가득했다.
“지난번에 보았던 CZ P-09, 그걸로 줬으면 좋겠어. 지금 상황이 급해.”
석민은 자신의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보여주었다.
[HK Mk.23 Mod.0 ]
내구도: 5%
품질: 하하
탄약: .45ACP
독일 헤클러 운트 코흐(Heckler & Koch)사에서 생산한 권총, 슬라이드에 총탄을 맞아 뒤틀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격을 한 나머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상태.
“이거 완전히 망가졌어. 새 총이 필요해. 여분탄창 6개와, 9mm 파라벨럼으로.”
그는 혜원이 잔뜩 실망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알고 지내던 형이 잡혀갔어.”
“아, 그래?”
사안의 심각성을 이해한 혜원은 그제야 얼굴의 표정을 좀 다듬을 수 있었다.
그녀는 권총이 든 상자를 꺼냈다.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
“본적 없는 사람이야. 내가 하는 일을 중계해주는 소개꾼인데, 형사이기도 하고.”
석민은 권총을 들고 슬라이드를 당겨보며 대답했다.
“전화가 왔었는데, 위험을 알리는 거였어. 내가 하는 일 특성상 날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 교단 놈들이 가장 심하고.”
교단이란 말에 혜원의 손이 살짝 멈칫거렸지만, 석민은 방아쇠를 당겨보느라고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이윽고 9밀리 탄약상자가 나오자 석민은 그것을 전부 탄창에 끼워 넣었다.
“위치는 어디인지 알고?”
그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탄약을 넣었다.
“알아냈어. 그리고 어디로 이동을 했는지도 알아냈고.”
그는 휴대폰을 통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대충 몇 명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적어도 저녁은 함께할 수 있을 거야.”
“혼자 가도 괜찮아?”
“물론이지. 난 원래 혼자 활동하니까.”
탄창을 장전한 직후 그는 슬라이드를 뒤로 당겨 약실에 탄환을 넣고 안전장치를 걸어둔 뒤, 허리띠에 달린 홀스터에 넣었다.
그러는 사이 혜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뭐하려는 거지? 석민은 가만히 그녀가 움직이는 걸 보고만 있었다. 아영은 새로운 권총이 담긴 상자를 가지고 와서 꺼냈다.
글록 시리즈의 작은 권총이었다.
“이것도 가져가.”
그녀는 여분의 탄창 2개도 꺼내서 직접 9mm 권총탄을 넣어 준 후 그에게 내밀었다.
여분의 홀스터와 권총탄창이 들어가는 파우치도 준비되었다.
“필요 없을 거 같은데.”
“만일을 대비해야지. 보조로 써도 괜찮을 거야.”
그녀가 여전히 내민 팔을 내리지 않자 석민은 권총을 건네받았다.
[GLOCK G26]
내구도: 99%
품질: 상상
탄약: 9×19mm Parabellum
오스트리아 글록(GLOCK)사에서 생산한 소형권총, 조금 사용감이 있다.
이것은 혜원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권총으로 적지 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다치거나 돌아오지 못할 것에 큰 트라우마를 가진 그녀는 염원을 담아 그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설명글을 읽은 석민은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그것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괜찮은 거네.”
“그래? 그건 의외네. 글록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생긴 게 마음에 안 들 뿐이지, 글록이 훨씬 좋지. 성능이 좋잖아.”
그는 허리띠에 파우치와 홀스터를 끼웠다.
보조무기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등허리 쪽에 끼워 넣었다.
“고마워. 금방 돌아올게.”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움직였다.
그가 나가고 난 직후 혜원은 뭐라 중얼거렸지만, 너무나도 작게 말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
“물을 뿌려.”
김지형의 말에 남자 하나가 청소용 양동이에 물을 담아 기절해 있던 용석에게 뿌렸다.
물벼락을 맞은 용석이 가쁜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지하실에는 용석이 대피했을 때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둔 육중한 안마의자가 있었는데, 그곳에 온몸이 꽁꽁 묶인 상태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어찌나 잘 묶어 놓았는지 머리를 움직이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민지는? 알바생은?”
그가 뭐라고 하든 말든 김지형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은? 어떻게 되었나?”
그 말에 휴대폰을 회수했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망가져서… 일단 맡겨보긴 하겠지만, 기대하지 않는 것이….”
“괜찮아. 자네 잘못이 아니니까.”
김지형은 괜한 죄책감을 내비치는 남자를 다독여준 후, 일부러 더 매서운 눈으로 용석을 내려다보았다. 일종에 기선제압을 위해서이지만, 용석은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후 마음을 차분하게 다듬고서 그를 마주 볼 뿐이었다. 이미 그땐 심장 박동도 일정하게 뛸 정도로 그는 매우 담담해진 상태였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불법적인 짭짤한 부업을 하면 할수록 원한은 쌓여갔고, 당연히 앙갚음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자들은 많았다.
저들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그래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좋아.”
김지형은 시선을 거두고 상체를 세웠다.
“몇 가지만 물어보지.”
그 말에 용석은 비소를 흘렸다.
“뭐, 말할 기분이 들진 않는데. 너 뭐야? 뭐하는 놈이야? 내가 누구인지 알아?”
“그건 이미 다 알고 있어.”
김지형의 말에 용석은 혀를 낮게 찼다.
“…알고 있다면 더더욱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 당할지 알 수 없었지만, 다 말했을 때는 보복이 두려워 자신을 죽일 것은 명백했다.
용석이 걱정하는 것이 그것이었고 그 또한 김지형은 고려하고 있었다.
“협조만 해주면 바로 6천만 원을 입금시켜주지.”
김지형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은행 어플을 켰고, 통장에 든 1억 5천만 원을 보여주었다.
“바로 입금시켜 주겠어.”
돈이 궁하고 인간관계를 중시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혹하겠지만, 용석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지랄, 갑자기 내 통장 안에 대량의 돈이 들어가면 나라에서 뭐라 생각하겠어? 감찰부가 공무원들 통장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거 몰라?”
“…그러면 현금으로 주지.”
“현금으로?”
용석은 의도적으로 눈알을 굴리며 오랜 시간 동안 고심하는 모습으로 시간을 끌었다. 김지형은 그런 그를 보며 딱히 재촉하지 않은 채 그의 입에서 유의미한 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래, 그러면 알고 싶은 게 뭐야?”
“네가 소개해주는 사람 중에 9x39mm 러시아제 아음속탄환을 쓰는 사람을 찾고 싶은데.”
“미안, 난 그 탄환이 뭔지도 잘 몰라.”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러시아제 무기, AS Val, AK-9, SR-3, VSS, 9A-91, OTs-14를 쓰는 사람.”
그 말에 용석은 흐음- 거리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을 하는 척했고, 한참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돈을 가지고 싶긴 한데 정말 모르겠어.”
“거짓말.”
슬슬 분노가 올라오는 김지형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다 알고 온 거야. 단 한 명, 혼자서 활동하는 남자말이야. 그놈 이름, 나이, 생김새를 말해. 전화번호도 불면 더 좋고.”
“내가 소개해주는 사람들 대부분은 혼자서 일해.”
“웃기고 있군.”
김지형은 코웃음 쳤다.
암살하는 사람들 중에 혼자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금이라도 전문적으로 일하는 자라면, 세부적으로 팀을 나눠서 분담을 하지. 혼자 하지 않는다.
타깃의 정보를 모으는 사전조사팀, 그리고 그 정보를 가공하고 작전을 짜는 지휘부, 현장실행팀(혹은 킬러 본인), 그리고 만일을 대비하고 도주로를 확보하는 엄호팀.
김지형은 인상을 썼다.
그가 아주 싫어하는 교구장 박재만이가 알려준 것이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만약 진짜 그 일을 혼자 한다면 둘 중 하나였다. 돈이 없어서 절박한 초보 암살자라던가, 진짜 고수라던가.
‘그리고 그놈은 고수겠지.’
김지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용석을 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제기랄.’
별로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는데 벌써 1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시간을 끌었군.”
그렇지만, 김지형은 용석이 설마 도움을 요청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단지 경찰 공무원인 그가 부재중이라면 경찰 쪽에서 그를 찾을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아직 많아.’
적어도 하루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이라 여긴 김지형은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그 남자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가지고 있던 보조가방에서 종이들을 꺼냈다.
‘한지?’
용석은 그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경악에 물들었다.
‘도모지라고?’
다른 남자가 그것을 받아 양동이에 담아 둔 물에 한지 한 장을 적셔 가지고 왔다.
“생각이 나면, 말해봐.”
그는 그대로 그것을 용석의 얼굴에 붙였다.
한지가 얼굴에 붙으면서 용석의 얼굴윤곽이 드러났고, 그가 숨을 마시고 내쉴 때마다 코 부분 종이가 살짝 부풀어 올랐다가 쪼그라들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자 그는 입으로도 숨을 쉬려고 했고, 그마저도 힘들자 종이를 이로 씹거나 혀로 구멍을 뚫으려 했다.
용석이 겨우 작은 구멍을 터서 숨을 몰아쉬려는데, 김지형은 다시 새로운 종이를 붙였다.
두 번째 종이가 얼굴에 붙으니 처음보다 더 숨이 막혔다.
“생각이 안 나? 하나 더 붙여.”
“므흐끄(말할게)!! 읍-!!!”
종이 때문에 말은 뭉개졌지만 말하겠다고 소리 지르는 용석을 보고 김지형이 잠시간 더 지켜보다가 몸이 부르르 떨며 헐떡이는 모습을 보이자, 젖은 종이를 그의 얼굴에서 떼어냈다.
“하아, 하-, 권율이라고 히트맨 하나가 있어.”
숨을 급히 들이마시며 용석이 말을 쏟아내자 김지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권율? 이름이 특이하군. 말해 봐. 나이? 키? 그리고 사용하는 무기 전부, 얼굴도 말하고.”
“키는 대략 170 정도에.”
그 말에 김지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거짓말을 하고 있군. 다시 붙여 이번엔 3장.”
“이런 젠…!”
용석은 욕지거리를 퍼붓다가 다시 종이가 붙자, 숨이 막혀 온몸으로 몸부림쳤다.
‘이 자식들 거짓말인 건 어떻게 알았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아냐?’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 잡았다. 다 알고 있으면 그에게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대충 키와 인적사항을 알고 심문하는 것이겠지.
그가 이번에도 말하겠다고 하자, 종이가 얼굴에서 벗겨졌다. 눈앞에 김지형의 얼굴이 어른거리자 용석은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