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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13화 (11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13화]

방을 나서는 석민을 붙잡으며 그녀가 카메라가 없다고 했음에도, 그는 약점거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미인계는 원래 다 그렇다.

게다가 러시아는 예전부터 미인계로 악명이 아주 높았다.

설령 알렉산드라의 말이 진짜라도 그 자리에선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꼬드긴 자리가 그곳이 아닌, 석민이 안전하다고 여긴 곳이었다면 또 상황은 다르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게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그만큼 참 애절했단 말이지.’

그 생각이 들자 석민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꾸만 어제 보았던 알렉산드라의 모습이 생각났다.

인터넷 사진으로만 보던 그린 듯 한 미인이 대놓고 유혹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충격과 심장의 소요를 동반했다.

가식이 섞였다고는 하나 몸과 마음을 다 주려고 하는 여인이었는데.

자꾸만 어제 보았던 검은색 팬티 리본 끈이 생각났다. 너무나도 자극적이어서 이성이 불타 사라질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다시 보게 된다면 그는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머리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습에, 그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야하게 차려입은 미인이 작정하고 유혹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윤리적으로 올곧은 사람이 아니다.

혜원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는 올바른 사람이 아니다.

아니, 있든 말든 욕정의 일탈을 즐기고 혼자 마음속에 두면 됐잖아, 이 멍청아! 하면서 그의 내면의 자아 하나가 소리쳤다.

등신 같은 놈, 차려줘도 못 먹네.

그러나 애초에 그녀는 미인계로 유혹한 것이었으니 접근 자체부터가 불순했다. 그는 약점을 잡혀선 안 된다.

그게 가짜라면? 거기까지 계산하고 그의 마음을 무너트리려는 계략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윤리가 올곧지 않아도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 없던 평판마저 나락으로 떨어지면, 자신이 아무리 뻔뻔한 인간이라도 얼굴을 함부로 들고 다니기 힘들어진다.

‘기존에 있던 인간관계가 전부 무너지겠지.’

없다던 카메라의 렌즈가 그들의 색정 어린 모습을 찍거나 녹화해, 그 영상을 정부에 뿌린다든지, 아영이나 혜원에게 알린다고 협박하면, 석민은 코 꿰인 소처럼 순종하며 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진짜로 노예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원하지도 않는 타국정부의 노예가.

석민은 이번 일로 그녀에게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말했다. 알렉산드라도 결국 이해하노라 말하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속으론 어떤 생각을 가질지, 앙금을 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입장상 자신을 내치거나 할 순 없을 것이다.

석민은 알렉산드라의 임무를 이해했고, 어느 정도 정보를 주기로 확답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피해 안 가는 선에서.

그들의 목적을 알고서 선을 그어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목적은 달라도 서로 원하는 것은 비슷해 보였다. 적어도 아영과 석민이 하려는 사명에 방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각축장이 되고 있는 드래곤하트 자원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설마 그 나라 정부가 우리나라가 하는 일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니 적어도 알렉산드라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명은….’

석민은 아직 사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사명이 아무래도 저 차원의 문을 닫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부 입장에선 매우 싫은 사명이겠지만, 저 문을 닫고 서울과 경기도가 광명을 되찾는다면, 그리고 다시 여기에 안정과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것만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통령을 존경하고 그의 비전이나 생각을 수긍하긴 했지만, 그 자원 때문에 광명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봤다.

‘뭐,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까.’

그것은 아직 예상과 작은 생각으로 머물고 있을 뿐이므로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 그걸 선택해야만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아영은?’

생각만 해도 별로 좋지 못한 예상들이 들었기에 그는 얼른 그 생각을 닫았다.

아직은 모른다.

혹여 다른 사명이면 기우로 끝날 일로 고민하게 된 것이니까.

잡생각은 행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걸어 나갔다.

그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 생각만으로 아영과 엇갈리게 되었다. 그 엇갈림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의 머리는 혜원으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혜원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도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다다른 생각은 또 방향을 휙 틀어서 야한 쪽으로 가버렸다.

아무래도 아까 알렉산드라에 대해 떠올린 것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디 또 놀러 나간다던가.’

나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녀를 설득하는 것은 꽤나 힘들지만, 맨날 방안에 틀어박혀서 만나자니 그다지 할 게 없었다. 그의 박약한 아이디어는 침대 말고는 없었다.

‘적당히 생각해라.’

그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다른 쪽을 생각해보았다.

집에서만 노는 것을 좋아한다면 게임기라던가, 게임용 컴퓨터를 들여서 같이 게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게 되었다.

‘용석 형이 웬일이지.’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 가까이 댄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는 집중하여 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희미했으나, 그 속에선 비명과 총성이 들려왔다.

총 맞아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소리였다. 여자의 목소리였는데,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석민은 대충 짐작이 갔다.

자주 가던 가게의 알바생 여자의 목소리다.

단골로 자주 다니던 곳이기에 그는 발걸음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토바이는 근방에 주차되어 있었다.

***

용석은 추위에 몸을 떨었다.

날씨는 여느 때처럼 영하권에 그날은 유독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기온이 실제 기온보다 2배 정도 더 낮게 느꼈다.

그는 가게에 들어가지 전 가게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봉고차가 보이자, 인상을 찌푸렸다. 가게 앞에 이렇게 주차를 해놓으면 장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를 빤히 보았지만, 유리창은 썬 루프 코팅이 되어있었고 안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차 안까지 살펴보진 않았다.

‘이따 교통과에 전화해서 딱지나 떼어버리라고 해야지.’

추위 때문에 밖에 오래 있을 생각하지 않은 그는 발걸음을 놀려 자신의 가게 더 로드에 들어가 늘 마시던 맥주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하, 오늘따라 춥네.”

내부는 히터를 틀어놓기는 했지만 추위가 가시지 않아, 그는 손을 비비면서 녹인 이후에 알바생이 가지고 온 맥주를 받자마자 한 입 축였다.

“오늘은 유독 춥더군요.”

알바생도 그렇게 말하며 거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 거 같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알바생이 내온 감자튀김을 한 번에 6개씩 집어서 입에 넣어 으적으적 씹었다.

“그래, 오늘 번 건 얼마냐?”

“아직 낮이니까 수익은 별로 안 나왔어요. 한 30만 원 정도요.”

이른 낮 시간 때치곤 30만 원씩이나 나오자 그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30만 원? 좀 나왔네.”

“아까 손님 4명이서 2시간 동안 그렇게 먹었습니다. 술은 각자 1잔씩 시켜놓고 안주는 엄청 시키더군요.”

“그래?”

어떤 미친놈이 술 가게에 와서 비싼 안주만 시켜 먹지? 라고 생각하며 그는 맥주를 마셨다.

“그래도 술에 금방 취했는지 자기가 가지고 온 차에 들어가서 움직이지 않더군요.”

“응?”

그 말에 용석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차? 무슨 차?”

“저 밖에 있는 봉고차 있잖아요.”

형사 생활 수십 년으로 갈고닦은 그의 촉에서 위험신호를 보내왔다. 용석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근래에 그는 천국의 문 교단과 접촉을 했고, 그들이 석민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했다.

그의 가게 유리문과 유리창은 방탄유리로 되어있었고, 차를 끌고 와서 들이박지 않는 이상 망가질 일은 없었다.

그는 빠르게 눈알을 돌려 창밖의 봉고차를 슬쩍 훑어본 직후 다시 알바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잘 들어.”

“네, 말씀하세요.”

알바생은 위협을 눈치 채지 못하고 유리잔을 닦으며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걸어가서 가게 문 잠가. 알겠지?”

그 말에 유리잔을 닦던 손이 멈추었다.

“…알겠습니다.”

자연스럽게라고 주문을 했지만, 바짝 긴장을 한 알바생은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용석은 매우 자연스럽게 왼손은 감자튀김으로, 오른손은 허리춤으로 가져다댔다.

그가 오른손을 쓰지 않고 왼손으로 감자튀김을 먹자, 차 안에 있던 이들이 어수선해졌다.

“…눈치 챘다, 움직여!”

차 안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나오자 다급해진 알바생은 급히 달려가서 유리문 위에 달린 잠금장치에 손을 뻗었고 용석은 허리춤에 있던 글록 17 자동권총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가장 앞서 달리던 이가 몸통박치기로 문에 부딪쳤다.

잠금장치의 돌림쇠를 돌리던 알바생이 문에 부딪쳐 그대로 튕겨 나가고, 용석은 바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 후 권총으로 앞서 들어온 이를 쏘아서 쓰러트렸다.

용석은 방아쇠를 연속으로 3번 당겼다. 그의 사격은 매우 정확해서 앞서 들어온 이의 가슴에 3발이 맞았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이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뒤로 빠졌다.

낮게 신음소리를 내던 알바생이 기어서 그가 있는 쪽으로 기어 왔다.

“얼른 와! 얼른.”

용석은 권총을 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스마트폰의 잠금화면을 열기 위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손만 내밀어서 그가 있는 방향으로 소음기 달린 권총을 쏘자 알바생이 낮게 비명을 질렀고, 통화버튼을 누른 그는 휴대폰을 바 아래쪽 선반 구석에 숨겨 넣었다.

이윽고 그는 품속에서 휴대폰 2개를 꺼냈다.

그것은 업무용 휴대폰이 아니라, 그가 소개꾼 일을 할 때 쓰는 것이었다. 이게 노출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그는 반격으로 권총을 쏘면서 전자레인지의 문을 열고 그것들을 안에 넣은 후 돌려버렸다.

“휴대폰을 파기하고 있잖아! 당장 들어가!”

그것을 본 이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치더니 안으로 총을 쏘면서 무작정 돌입했다.

그들이 소음기 달린 우지기관단총으로 갈겨대자 용석은 찍소리도 못 낸 채 권총만 간신히 내밀어 반격했다. 그러나 하나도 맞지 않았고, 그 사이 밖에 있던 이들이 전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용석이 가지고 있는 권총은 2개 탄창분이었지만, 탄환이 순식간에 비어져 갔다.

그의 주변으로 총탄이 잔뜩 박히면서 나뭇조각과 먼지의 파편이 잔뜩 튀었다.

바 테이블이 탄환을 막아주지 못하고 알바생의 등에 탄환 3발이 맞으면서 피가 터지듯이 나왔다.

“쿨럭.”

알바생은 몸을 웅크린 채,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눈앞에 무언가 하나 떨어졌다.

섬광탄이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사용하는 강력한 것으로, 기절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터지면서 천장에 달려있던 형광등과 선반에 있던 술병들이 깨졌다. 엄청난 충격파와 고음에 용석은 그대로 필름이 끊기듯이 기절하고 말았다.

그가 기절을 하자, 남자들은 바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용석이 확실하게 기절했는지 확인한 직후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던 알바생에게 총을 겨눠 쏘았다.

그때까지 차 안에서 대기하던 김지형은 그제야 밖으로 나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좋아, 지하로 끌고 가고. 너희 둘, 예정대로 준비해.”

그에게 지목이 된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고 있던 검은색 외투를 벗었다.

“알겠습니다.”

검은색 외투를 벗자, 안에 경찰들이 입는 방한잠바가 나왔다. 직후 그들은 주머니에서 경찰들이 쓰는 캡모자를 꺼내 쓰고 밖으로 나갔다.

김지형은 가슴에 총을 맞아 쓰러진 남자를 발로 툭툭 쳤다. 미동도 하지 않던 그 남자는 김지형이 발로 툭툭 치자, 낮게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자는 방탄조끼를 입은 덕분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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