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12화]
더듬이
김지형의 일은 교단 내에서도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졌고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이미 3명의 소개꾼들의 명단을 확보했고, 그중 가장 발이 넓으면서도 그들이 확보해두었던 9x39mm 탄환을 쓰는 자를 자주 소개해주던 이를 알아두었다.
교단은 이 킬러가 사는 위치조차도 찾지 못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인물로, 그가 산다고 알려진 집도 교단의 사람들이 찾아갔을 땐 이미 비워져 다른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서 찾을 수 없었다.
새로 집을 차지하고 있는 양반과 원래 집주인에게 정보를 구하려고 했지만, 세를 주는 집주인은 그 남자의 생김새라던가 쓸 만한 것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경기도는 사태 이후로 만성적인 주거 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세세한 정보를 캐내지 않았다.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단지 월세만 제때 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집주인은 그저 나이가 많고 눈이 침침한 노인일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탐문했지만, 그 남자는 여차하면 바로 총을 꺼내서 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거친 성격이라 악명만 상당하다는 사실밖에 건질 게 없었다.
석민은 보통 작업 시 CCTV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사진을 구할 수 없어서, 그들에게서 이 사람이 맞는지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모은 정보를 취합하자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다. 그의 키는 대략 180전후, 한때는 살이 많이 쪘었는지 홀쭉해지면서 살가죽이 좀 처진 얼굴, 눈이 작은 북방계 얼굴보다 남방계에 가까운 외모, 양손잡이라는 것 정도.
또한 오토바이를 타기도 한다는 것인데, 번호판의 번호를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몽타주를 만들려고 했으나, 대부분 오래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 그들을 통해 만든 몽타주는 각자 생김새가 너무 달라 쓰기엔 너무나도 애매했다.
김지형은 일단 3명의 소개꾼들 중 가장 접촉하기 힘든 용석을 주목했다.
용석은 형사였고 공무원이기 때문에 더럽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그들이 접근하기 가장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용석을 통해서만 그 남자에게 의뢰를 넣을 수 있었다.
접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칫 잘못하다간 바로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될 가능성이 있어서, 사전에 접촉을 매우 조심스럽게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 용석에 대한 정보를 단기간 동안 최대한 많이 확보했다.
용석은 자신이 평상시 사용하는 휴대폰 말고도 3개의 휴대폰을 더 사용했다. 그것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 명단에 분명 찾고자 하는 이의 번호가 있을 테니 용석을 통해서 그 남자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접촉 때 만난 용석은 김지형에게 정보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수박 겉핥기식의 질문에 용석은 응답해 주긴 했지만, 그에게 의뢰를 넣고 싶다고 했을 땐 그자는 지금 일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밖에 받을 수 없었다. 물론 어디에 사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소개꾼들과는 달리 용석은 김지형이 따로 모은 자금원으로 막대한 뇌물을 건넸을 때도 마다했다.
이제 용석에게 정보를 얻으려면 따로 ‘만남’이 필요했고, 막대한 심문이 필요했다.
하지만, 용석은 경찰이고 나름 경찰 내부에서도 지위가 있기 때문에, 교단에 소속된 경찰 상부 사람들도 그를 건들기 까다로웠다.
설령 따로 만남을 가진다해도, 억지로 심문 하다가 유사시에 뭔가 잘못되면 그 뒷감당을 김지형의 선에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매우 치밀하게 준비를 해나갔고 용석이 평소에 다니는 동선과 거리의 CCTV, 그리고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수까지 계산해서 준비했다.
부패한 경찰이나 다름이 없는 용석은 바지사장을 통해 자신의 맥주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제법 평판이 좋아 손님이 많았으나, 오전 12시부터 오후 4시까진 사람이 적었다. 그렇게 가게가 한가할 때면 혼자 맥주가게에서 조용히 맥주와 흡연을 즐기는 것까지 알게 된 김지형은 거기서 그를 급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 김지형은 용석 가게의 구조를 알아내고, 가게 지하에 괴수들이 나타날 때 대피하는 대피실도 있단 사실을 알아내었다.
보통 대피실이 패닉룸처럼 방음이 완벽했고 문 또한 견고해서 전문장비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뚫을 수 없게 설계되었다.
일은 빠를수록 좋기 때문에 그는 길어봐야 하루 이틀 이내에 모든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
서울로 막 돌아온 석민은 오랜만에 박선우와 통화하게 되었다.
박선우는 여전히 석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간만에 석민과 하는 통화에 상기된 목소리로 자신의 근황들을 이야기했다.
-아주 즐거운 일이 있었지요.
그의 말에 석민은 살짝 미소 지으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왜? 뭔 일인데? 구세주라도 나타났어?”
불신자의 조롱 섞인 질문임에도 박선우는 불쾌한 기분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구세주께서 강림하신 게 아니라 그분의 전령께서 오셨었지요.
“응? 전령?”
석민은 다시 진지해졌다.
-얼마 전에 그분의 전령께서 우리 앞에 강림하셨지요. 형님도 그것을 보셨어야 합니다. 어찌나 영광스럽고 거룩하던지.
그는 천사의 강림에 함구령이 떨어진 것을 알았지만, 석민 앞에서는 그 명령을 무시했다.
-그런데 조금은 별로 좋지 못한 위협을 알려주셨지요. 적이 나타났다고 하셨으니 까요.
“적이라? 그게 누구인데?”
-그건 모릅니다. 다만 아는 것은 그들이 강북에 갔다는 것만 알고 있지요. 그래서 교단내부가 조금은 분주합니다. 새로 훈련하는 훈련생들도 속기로 훈련시키고 있으니까요. 제 말이 맞다니 까요. 형도 얼른 교단에 입단하시는 게 좋을걸요.
“그래? 흥미는 가네.”
석민이 말했다.
-물론 저희가 예전에 본 천사는 매우 끔찍한 자이긴 했지만, 그 천사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는 화젯거리를 돌렸다.
“그래서? 그 강북에 갔다는 적은 뭔데?”
-진짜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교단에서 강북에 있는 자들을 전부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갔던 우리 신도들이 더 죽었더군요. 매우 비통한 일입니다. 저나 형이 거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교단에선 제가 서울에 가는 것은 반대하고, 여기서 햇병아리들을 가르치라고만 하니 좀이 쑤십니다.
그래서 교단 놈들이 강북에서 헌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던 건가?
석민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의문이 해소되었다.
“아직은 못 믿겠지만, 하여튼 잘 되었다니 다행이네.”
-아니, 진짜라니까요.
선우의 말에서 조바심이 났는지 그는 얼른 긍정하는 의미를 보였다.
“하긴, 그 좀비 천사가 있었으니 천사도 진짜 있긴 하겠지. 근데 그게 성경에서 나오는 진짜 천사인 건가? 내가 보기엔 사람의 총에 맞아 죽는 그걸 진짜 천사라 보긴 좀 그런데.”
그 말에 박선우는 자신의 마음 구석에 있던 의문이 다시금 샘솟았다.
-의심은 불신을 만들어요. 형.
“그렇긴 하지. 하여튼 조만간 보자, 맥주 한잔하자고.”
-저희는 금주인데요?
“엥? 또?
석민의 말에 선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그때고요 지금은 아니에요,
“그러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밥이나 먹는 것으로.”
-아, 네.
통화가 끝난 직후 석민은 자기가 들었던 내용을 아영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천사가 나타나서 적을 찾으라고 했다고요?”
“응. 강북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래도 그것과 연관이 있었던 것 같네.”
“조금은 곤란하게 되었네요. 아니, 어떤 의미로는 우리의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해줄 것 같기도 하지만… 교단의 사람들이 대량으로 서울에 간다면, 그건 정말로…. 곤란해질 것입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들이 서울로 들어가서 사태 때와 비슷한 대량 학살이라도 벌어진다면 정부 입장에선, 아니 정권 입장에선 별로 좋지 못하니까요.”
“대통령도 많이 곤란해지긴 하겠지.”
석민이 말했다.
“일단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그러면 우리 다음에 만날 땐 다시 한 번 그 천사를 찾아봐야겠어.”
“어디로 가실 거죠? 서쪽? 북서쪽?”
석민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쪽으로 혼자 날아갔던 그 천사를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직 추측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천사는 아무래도 혼자 활동하는 것 같거든. 무리로 날아다니는 그것들과 무언가 트러블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석민은 드래곤 드라니트를 없앤 직후 찾아온 그 천사 무리는, 그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혼자 날아다니는 그 천사를 찾으러 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놈을 찾으면 뭔가 또 다른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쪽이 더 안전해 보이니까요.”
그들은 천사의 저력을 보았기 때문에 아영은 여러 무리보다는 혼자 돌아다니는 것과 접촉하거나 잡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크게 기지개를 했다.
“그러면, 저는 안전가옥으로 가서 쉴게요. 석민 씨는 다시 그 건스미스 분한테 갈 거죠?”
“그래.”
아영의 눈에 혜원은 매우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범법자였고, 품행이 바르지 못한데다가, 말하는 것도 천박스러웠다. 게다가 성격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석민의 연애사정이었고 그녀가 핀잔을 줄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괜한 사람을 만나 석민이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아영의 불만이지 석민의 생각은 달랐다.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총은 줘. 내가 들고 가지.”
무거울 테지만, 석민은 괜찮았다.
“그런데 어제 몇 시까지 마신 겁니까?”
아영이 물었다.
“안색이 안 좋네요. 술은 적당히 마셔요.”
“괜찮아. 술독도 없어.”
석민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자 아영은 의심이 들었다.
그녀가 술에 취해 먼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생각해보건 데 바에 남은 것은 석민과 알렉산드라였다.
‘뭐, 별일은 없었겠지.’
그녀는 애써 그렇게 넘어갔다.
설마 애인이 있는데 양다리를 걸쳤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아영은 진짜로 석민을 경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영은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털어내고는 석민과 헤어졌다.
***
아영과 헤어지고 난 이후로 석민은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알렉산드라는 정말로 매력적이다.
그래, 매력적이다. 내면의 마음은 여전히 전혀 모르겠지만, 외모만 보면 아주 매력적이다.
생각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에게 신뢰를 주고자 진실을 내뱉을 땐 석민도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석민은 함락되지 않았다.
그는 제법 그녀를 신뢰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아영이나, 혜원, 그리고 용석과도 같은 범주에 속하진 못했다.
그는 알렉산드라와 동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