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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11화 (111/226)

[게이트 오브 서울 111화]

⌜공짜 술이라고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니야? 조금 천천히 마셔.⌟

그녀의 말에 석민은 피식 웃었다.

⌜술이 너무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네. 게다가 눈앞에 미인도 있고.⌟

⌜그래? 드디어 내게 관심이 가나봐?⌟

석민은 대답 대신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도 남자고 그녀가 매혹적이 않은 건 아니다. 그래도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최대한 하반신의 욕구를 인내하고 있었다.

그때 알렉산드라가 자신의 손으로 목에서부터 가슴, 배를 이어 쓰다듬듯이 만지더니 이윽고 자신의 둔부에 위치한 검은색 리본 끈을 가느다란 손가락에 돌돌 말았다.

그대로 손을 빼면 바로 풀릴 것이다.

⌜좀 더 관심 가져주면 안 될까?⌟

‘돌겠네.’

석민은 피곤함에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해서 한번 떠본 것인데 바로 예상했던 행동이 보이자, 그는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떴다.

핏발이 선 두 눈이 그 손길을 따라 저절로 움직였다. 오만 잡생각이 들었다.

혜원도 그렇고 알렉산드라까지. 요즘 이게 트렌드인가? 잠시 헛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알렉산드라는 만나 지 얼마 안됐을 때부터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거부감이 들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은 성욕에 굶주린 인간이 아니다.

최소 혜원은 이해가 갔다. 일단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귄 뒤 관계가 있었다. 또 그녀는 자신의 일 외엔 취미도 없었고, 좋아하는 거라곤 총이나 담배, 술이 전부였다.

어찌 보면 그녀와 자신은 조선시대 농사꾼 가족들이 해 빠지면 할 게 없어서 부부끼리 정을 두텁게 쌓아가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레 빠른 진도가 이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자신 또한 그녀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당황스러울 뿐이지 그 시간들은 소중하고 즐거웠다.

…아마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아니었다.

눈 딱 감고 그녀와 화끈한 하룻밤을 안 보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자극적인 옷을 입고 대놓고 대쉬하긴 했어도, 그런 쪽의 직업여성이 아닌 것 또한 알고 잘 알고 있었다.

이쯤 되니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려는지가 오히려 궁금해졌다.

자신이 러시아 군인들과 친하게 지내서, 그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대하단 건 알았지만, 그 이유로 자신과 불태우려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석민은 자기가 남자로서 매력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아니면 러시아 말을 잘해서? 겨우 그걸로 이렇게까지? 보통은 단순 흥미로 끝나지 않을까?

석민의 의심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아까 알렉산드라가 라디에이터 온도를 낮춰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녀온 사이에 술잔에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르니까.

그의 몸의 스탯은 신체능력을 뛰어나겐 해주지만, 약엔 일반인들과 다름이 없었다.

⌜싫어?⌟

석민의 머리가 다른 세계로 간 사이, 참다못한 알렉산드라 스스로가 자신의 손가락 끝에 말고 있던 끈을 풀었다.

석민은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너 진짜 미인계 못 한다.⌟

그의 말에 알렉산드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석민을 바라보더니, 시선을 살짝 떨어뜨리며 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말이 그거야? 좀 슬프네.⌟

⌜왜 나야? 이유가 뭐야?⌟

⌜…하는데 시발, 이유가 어디 있어?⌟

조급함인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그녀는 처음으로 욕을 했다.

⌜미안한데, 난 이미 여자 친구가 있어.⌟

⌜그런 것쯤은 둘만의 비밀로 하면 그만이지.⌟

그 둘만의 비밀이 아니게 될 수 있지 않은가? 여기 안에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알겠어. 술은 잘 마셨어, 샤샤. 이만 나가보지. 잘 자.⌟

이대로 나가면 이 여자와의 인연은 끝이 날 것이다.

⌜잠깐!⌟

알렉산드라가 외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석민의 손을 잡자, 석민은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이야기할게.⌟

알렉산드라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고 다리를 조금 벌린 채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 목적이 있어. 네 말대로 난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야.⌟

석민은 그녀의 맞은편에 다시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처음 만났을 땐 아무런 의도 없었어. 진짜로 그땐 널 처음 보는 거였고, 진심으로 러시아어를 오랜만에 사용하게 되어서 기뻤거든. 정말 기뻤지. 하지만, 그 이후에 내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어.⌟

‘역시.’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관계를 구축하라는 거지? 이유가 뭐야?⌟

⌜몰라. 내가 비록 말단은 아니지만, 상부에서 내려주는 명령은 절대로 목적이나 목표를 말하지 않아. 나중엔 알지도 모르지만.⌟

⌜어디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

⌜어딘지 알 거라 생각하는데?⌟

그녀는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았다.

‘역시 러시아 정부군.’

석민은 그리 판단했다. 사실 알렉산드라가 러시아인인데다가, 거기 아니면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미인계를 자주 사용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오만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안 것인지 몰라도 그들은 석민과 아영의 존재,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이 우리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이 일을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정보가 샜다는 거잖아.’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래, 그런 거군.”

석민이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넌 우리가 하는 일은 알아?”

알렉산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널 파견한 거야?”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드래곤하트 산업 정보를 얻기 위해서.⌟

석민은 그녀가 너무 술술 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이유가 뭐겠어? 우리 러시아는 소련이 망한 뒤 에너지 사업으로 GDP를 간신히 끌어올리고 있어. 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공업 생산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였지만, 지금은 그거의 반의반도 안 되지. 우리의 경제에서 석유나 가스 같은 에너지 부분의 비율이 너무 높으니까, 기존의 에너지산업을 위협할 만한 드래곤하트 에너지 산업은 우리나라에 매우 위협적이지.⌟

‘그렇구나.’

석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저들에겐 드래곤하트는 그들의 경제에 큰 위협이 될 만도 했다.

⌜알았어. 그러면….⌟

그의 손을 알렉산드라가 잡았다. 툭 치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주 미약한 힘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너에게 신뢰를 주고 싶어서야.⌟

석민은 그녀의 눈가가 살짝 젖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살짝 뒤로 몸을 뺐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말하지 않을 거야.⌟

그가 말했다.

⌜다만,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알렉산드라는 숙이던 고개를 올려 석민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의외로 담담하고 신의가 담긴 눈에 놀랐다.

⌜믿어주는 건가?⌟

⌜어.⌟

⌜어째서?⌟

⌜그 말을 매우 민감한 거잖아. 안 그래?⌟

석민은 잡히지 않은 손을 그녀의 손등 위에 올렸다.

⌜적어도 이 방안에 카메라나 도청장치가 없다는 것은 알겠어.⌟

그 말에 알렉산드라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거기서 석민은 살짝 소름이 끼쳤다.

⌜…그런 건 없어. 여긴 내 사생활 공간이라고.⌟

그녀는 눈을 살짝 훔쳤다. 화장이 그 손짓에 살짝 번졌다.

⌜음… 말 나온 김에 계속 말하자면….⌟

그녀는 잠깐 시선을 돌렸다.

⌜난 말이지. 비록 임무 때문에 이 일을 벌인 것이긴 하지만, 너와 함께하는 것은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 말은 석민의 철옹성 같은 이성을 거의 다 허물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시선이 레카미에 소파 앞쪽 바닥을 향했다.

아까 그녀는 검은색 리본 끈을 스스로 풀렸고 그리고 그 결과가 저기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궁금하지 않아?⌟

뭐가? 라고 그는 바보같이 되물어 볼 뻔했다.

그녀는 석민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팔을 통해서 푹신한 촉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허리와 엉덩이가 요염하게 흔들리면서 옷자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괜찮다면 여기 남아주겠어?⌟

석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알렉산드라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눈으로 그는 알렉산드라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을 마주친 순간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임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 잠에서 깬 아영은, 눈을 비비며 상체를 세우고 일어났다.

‘머리가 좀 아프네.’

역시 어제 술을 조금 과하게 먹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1리터짜리 물 통째로 물을 마셨다.

‘석민 씨도 아직 자고 있고.’

그녀는 맞은편 침대에 곤히 자고 있는 석민을 보다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6시. 아직 더 잘 수 있었다.

깊게 잠에 빠진 석민은 평소와 다르게 살짝 코까지 골았다.

‘겨우 6시간 잤잖아.’

그녀도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적어도 9시까진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어제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안전가옥으로 돌아가자마자 하루 종일 늘어지게 쉬어야지 생각한 그녀는 다시 꿈나라로 들어갔다.

***

성남시 어느 길거리에서 김지형은 담배를 힘껏 빨아 당겼다.

그는 담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담배라도 피지 않으면 초조함에 미칠 거 같았다.

주변에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그를 보며 눈을 흘기거나, 인상을 찌푸렸으나 김지형은 그딴 것들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벌써 10분째 늦고 있었다. 손이 담배를 쥔 손이 살짝 떨렸다.

이 일은 교구장 몰래 진행되는 것이고, 그래서 교구장과 교구장의 더듬이들인 성남교구의 성도들 시선도 피해야 했다.

그래서 외부인원의 지원이 필요했고….

“좀 늦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외부인원의 목소리가 김지형의 귀에 꽂혔다. 김지형은 아직 반절 이상이나 남은 담배를 꺾어 끈 뒤,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것을 본 박선우는 인상을 가득 찡그렸다.

“자, 들어가지.”

“아뇨, 바쁘기 때문에 여기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김지형은 박선우를 빤히 바라봤다. 박선우는 그와 잠시 시선을 맞추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3명만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 사도대도 바쁘기 때문에 제가 차출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그것뿐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성도님.”

김지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직속이고 믿을 수 있는 부하는 고작 2명이었기 때문에 사람 하나가 아쉬운 판국이었다.

또한 그가 하려는 일은 사람이 많아봤자 주위의 이목만 집중시키고 좋지 못했기에, 소수면 충분했다. 단지 그 수가 2명인 건 너무 부족했을 뿐이다.

“그 정도 인원만 있어도 우리가 하려는 일은 반드시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교단 성도님과 시설을 파괴한 자이니 반드시 잡아야지요.”

박선우는 김지형이 들려준 교구장의 녹화 목소리를 듣고 적지 않게 분노했기 때문에 김지형의 의도에 쉽게 말렸다.

“하지만,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사도대의 인원을 차출하는 건 민감한 사항이기에, 교구장님께서 분명 대단히 싫어하실 겁니다. 사도대가 이 일에 동원된 것은 절대로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그러면 공은 다 내가 먹지.’

김지형은 언뜻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우는 진심으로 범인을 잡기 위해 사람들을 빌려준 것이고, 김지형은 그 순수함을 이용한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성도님,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시고 이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럼.”

그는 떠나가는 박선우를 바라보며 휴대폰을 들었다.

“됐어. 차량이랑 무기 준비해둬.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바로 일을 시작할 테니까.”

그는 매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거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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