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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10화 (110/226)

[게이트 오브 서울 110화]

그들이 터널 사이를 이어주는 비상통로를 지날 무렵, 아영에게 20명쯤 되는 감염자들이 덮쳤다. 석민이 총구를 돌렸지만, 아영에게 사선이 겹쳐 쏠 수가 없었다. 그사이 아영이 총을 돌려 그것들을 도륙했다. 붉은색 예광탄들이 그것들을 뚫고 벽에 총탄 자국을 만들었다.

석민이 눈을 돌려 아영을 보는 사이, 돌연변이 되어 몸집이 2미터 넘게 부풀어 오른 감염자가 봉고차 위로 뛰어올라 석민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너무 가까워져 총을 쏠 수 없었다. 그는 총을 휘둘렸다. 총열이 돌연변이의 얼굴을 쳤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석민은 쓰러진 그것에게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으나, 빈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다른 감염자들이 밀어닥쳤다.

석민은 오른손으로 기관총을 휘둘러서 그것들을 다 쳐서 뒤로 넘어트리고 기관총을 몇 발씩 쏴서 무력화시킨 후에 돌연변이를 향해 3발을 쐈다.

‘할 수 있네?’

돌연변이가 일어나려다가 부서지면서 쓰러졌다. 석민은 어느덧 기관총을 한 손으로 잡아 쏘았다.

그는 람보가 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감염자들이 너무 가까워 조준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났을 무렵, 그들의 눈에 움직이는 감염자는 보이지 않았다.

치익- 거리며 잔뜩 달아오른 기관총의 총열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하얀 김을 피워냈다. 따끈하게 달아오른 주변 공기에 추운지도 몰랐다.

“탄약이 얼마나 남았지?”

아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멀리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아까 보았던 돌연변이보다 더 크고 뚱뚱한 돌연변이가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허벅지는 석민의 허리만 했고, 배는 툭하고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자세히 보니 몸에 하얀 산호 같은 것도 보였다.

‘지방이 비누화된 건가?

오래 생각할 수 없었다. 석민과 아영은 서로 말할 필요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여지없이 그것에게 박혔다. 예광탄이 박히면서 작은 불꽃을 일으켰는데도 그것의 달리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석민은 침을 삼켰다. 거리는 어느덧 50미터쯤으로 가까워졌다.

몸이 너무 비대해서 총탄이 통하지 않는 건가? 그리 생각하던 차에 석민의 눈에 육중한 다리가 들어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돌연변이의 양 무릎을 향해 총탄을 쐈다.

돌연변이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쓰러졌다.

“끝났군.”

긴장이 풀리면서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젠 따뜻하다 못해 더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안심하며 손부채질을 하던 때, 돌연변이의 비대한 배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뭐지?”

석민과 아영이 경계하며 총구로 배를 조준했다. 배는 점점 심하게 들썩거리더니 배꼽 부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런 젠장, 쥐잖아!”

석민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뱃속에서 쥐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왜 이딴 것들이 뱃속에 있는 거지? 설마 저 안이 따뜻해서인가?

“가자. 이런 것은 샤샤가 처리하라고 해.”

그들은 쏟아지는 쥐를 피해 두 번째 터널로 들어갔다. 아영은 쥐를 밟지 않게 조심하며 움직였다.

“탄약 얼마나 남았어?”

“대충 400발은 쏜 것 같아요. 이 돌연변이한테 50발을 쓴 거 같지만요.”

아영은 뒤에 멘 가방을 몸으로 흔들어 보며 무게를 가늠하고 대답했다. 석민 또한 대충 그 정도 남았다.

“좋아.”

얼추 탄환이 맞을 것 같았다.

그들이 다음 입구로 가기 무섭게 총소리를 이미 들었던 감염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까처럼 기관총을 쏘아댔다.

감염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총을 쏴 맞고 쓰러진 감염자 위에 새로운 감염자들이 겹겹이 쓰러져 포개졌다.

그 덕에 석민과 아영은 총 쏘는 게 한결 편했고, 다 처리하는데 고작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을 마칠 쯤 석민은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총열은 심하게 달아올라 살짝 불그스름한 기를 띠며,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탄환을 탈탈 털어 썼더니 등 뒤는 가벼워졌다. 석민은 남은 탄환을 확인했다. 12발이 전부였다.

“너는?”

“대략 20발정도 남았네요.”

그들은 기관총을 조준하며 터널을 따라 걸었다. 혹여 다른 감염자들이 있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여기 드론이 있네.”

그들의 눈에 2대의 전투드론이 박살 난 것이 보였다. 그 드론들의 주변에도 수많은 감염자들의 시체가 보였다. 드론들은 탄환을 다 썼는지 무기들이 비어있었다. 그 후 감염자들에게 부서진 것이 분명했다. 감염자들은 이 이상 없었다.

그 순간, 석민을 감싸던 긴장이 탁 풀렸다. 마치 1-2시간 빡센 노동을 하고 난 피로가 그를 덮쳤다. 심지어 땀이 식으면서 추위까지 닥쳤다. 그는 살짝 몸을 떨었다.

알렉산드라의 빚은 이제 갚았다.

***

알렉산드라는 그들을 위해 샴페인을 깠다.

뻥- 소리를 내면서 마개가 열리고 하얀 거품이 병 주둥아리에서 솟구치자, 그녀는 트레이트 마크인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것을 잔에 따랐다.

“크림반도산 샴페인이야. 도수가 좀 높지만 아주 맛있어.”

석민과 아영은 그렇게 주는 공짜 술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그 잔을 들었다.

“…아주 맛있네.”

샴페인과 같이 신선한 과일안주 세트도 딸려 나왔다. 그랬기에 술 마시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다.

샴페인치고 도수도 높고, 평소보다 피로가 쌓인 상태여서 그들은 빠르게 취해갔다.

신체적 피로보다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샴페인을 마시고, 브랜디까지 2잔 마셨을 때쯤, 아영은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술기운에 달뜬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사라졌지만, 석민은 아직 술이 부족했다.

알렉산드라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미소를 띠며 그에게 술을 더 권했다.

⌜한 번에 처리할 줄은 몰랐어. 너희들 실력은 정말 대단해. 덕분에 호텔이 이렇게 비어졌잖아.⌟

그녀의 말대로 그렇게 사람으로 붐비던 호텔은 한산해졌고, 바에 남은 손님은 그 석민과 알렉산드라뿐이었다. 술기운에 몸과 마음의 빗장이 봄눈 녹듯이 풀어진 그는 살짝 감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 마치 뭐랄까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 그거랑 완전 비슷했어.⌟

석민이 그게 뭐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알렉산드라가 의자를 바싹 붙여서 석민에게 밀착했기 때문이었다. 코끝으로 알렉산드라의 향수 냄새가 맡아질 정도였다.

알렉산드라는 과일 안주를 옆으로 밀고는 러시아식 꿀 케이크 메도빅과 달지 않은 초콜릿을 권했다.

⌜이 브랜디는 뭐지?⌟

석민이, 자신이 이미 반 이상을 비워버린 브랜디 병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알렉산드라는 그의 러시아 발음이 평소보다 꼬여있단 것을 알았다.

⌜두글라제? 술이 좀 달아.⌟

⌜원래 단 술이야. 오늘은 하루는 마음껏 마셔. 네 덕분에 곤혹에서 벗어난 거니까 내가 ‘즐겁게’ 해줄게.⌟

평소라면 그 말에 바로 경계했을 석민이었으나,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술에 취해 그녀가 해주는 접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술병을 다 비우고, 케이크 조금과 초콜릿까지 맛본 석민은 그제야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날따라 술을 절제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체력장에, 알렉산드라의 부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다 떨어졌네. 조금 더 마셔도 돼?⌟

어디선가 느껴지는 찬 공기에 석민이 살짝 몸을 떨었다. 바는 분명 난방이 될 텐데, 이상했다.

⌜저녁이 되면 난방을 끄거든. 조금 있으면 문 닫을 시간이야.⌟

석민이 떤 이유를 안다는 듯이 그녀가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바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잔들을 닦고,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다.

⌜뭐, 더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아까 마셨던 샴페인이 나을 듯하네.⌟

석민의 말에 그녀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술 진열장으로 갔다.

오늘따라 그녀는 더 타이트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오늘도 빨간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차이나 드레스였으나, 가슴엔 가슴골이 보이도록 하트모양으로 뚫려 있었으며, 옆트임은 둔부가 언뜻 보일 정도로 트여있었다. 거기에 비치는 검은색 스타킹에 높은 하이힐까지.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트인 부분을 통해 몸의 굴곡이 더 매혹적으로 흔들렸다.

심지어 둔부 옆쪽엔 검은색 리본이 달려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를 리가 없었다.

찬 공기로 소름이 돋을 정돈데도 저렇게 얇은 옷을 입고 있다니, 이곳의 주인장다운 프로의식이 투철한 자라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석민은 점점 술이 깨어간다는 걸 느꼈다.

이윽고 그녀가 술병을 꺼내든 순간 종업원이 마감 시간을 알려왔다.

“바의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어?”

그녀는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내 방으로 가서 더 마실래?⌟

⌜그럴까?⌟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알렉산드라는 싱긋 웃으며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그녀의 방은 지하 2층이 아닌 1층, 다른 곳에 위치했다. 보통은 기계실이거나, 역무원실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아늑하고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튼튼한 나무 패널로 된 외벽에 천장엔 화려한 조명등이 달려있었으며 편안한 안락의자와 레카미에 소파가 자리 한중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과 햐얀 짐승의 털로 된 양탄자가 깔려있었고, 커다랗고 푹신한 더블 침대도 보였다.

그녀는 탁자에 샴페인 병을 놓았고 잔을 꺼내왔다.

석민은 샴페인이 담긴 잔을 받아 소파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고, 잔을 든 그녀도 등받이가 없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그러자 옷의 옆트임으로 잘 빠진 다리와 팬티의 리본 끈이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석민은 시선을 피하며 샴페인을 단번에 마셨다.

⌜여기는 훈훈해서 아주 좋네.⌟

⌜그렇지? 여기는 내 방이라서 항상 따뜻해. 라디에이터도 항시 가동 중이고.⌟

그 말에 석민은 벽에 붙어있는 라디에이터들을 흘끗 보았다. 그리곤 다시 샴페인을 홀짝였다. 다행히 술에서 이상한 맛이 나진 않았다.

‘술에다가 뭘 타진 않았네.’

⌜그거 알아?⌟

그때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뭐가?⌟

⌜너에게 관심이 가긴 했는데,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 내 부름에 바로 답해서 온 것도 너무 고맙고, 일도 단번에 처리해주고. 실력 하나는 정말 좋아.⌟

⌜덕분에 빚은 갚았으니, 뭐 셈셈이지.⌟

석민은 새로 잔을 따랐다.

⌜네 드론의 지원이 없었으면 그 괴물을 잡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됐어?⌟

알렉산드라는 미소를 지으며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석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마시는 한 모금은 기껏해야 티 한 스푼 정도였다.

⌜그랬으니 다행이네.⌟

그녀는 ‘더운지’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는 시늉을 했다.

⌜좀 덥네. 너무 따뜻한가 봐. 라디에이터 온도 좀 낮춰줄 수 있어? 콘솔기는 저기 벽에 붙어 있어.⌟

석민은 그 기기에 시선을 돌렸다.

⌜미안한데 샤샤, 처음 보는 기계라서 다룰 줄 몰라.⌟

그 말에 알렉산드라는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콘솔기로 온도를 내렸다.

석민은 3번째로 잔을 새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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