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09화 (10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09화]

석민의 오토바이가 향한 것은 혜원의 가게였다. 회원카드로 문을 연 직후 조금 빠른 걸음으로 석민이 가게 내부 문을 열자, 무기를 정비하고 있던 혜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 빨리 왔네? 뭔 일이야? 뒤엔, 아?”

혜원은 아영과 눈을 마주치자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급한 일이라서 그런데 기관총 좀 빌릴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오더니 무기를 달라고 하다니. 혜원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거기다 아영까지 달고서 왔다. 혜원은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빌리는 것은 안…….”

“부탁해. 지금 급히 서울로 가봐야 해. 그리고 200발짜리 탄통 4개도 필요해.”

혜원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석민을 노려보았다. 그때만큼은 석민도 간절하게 그녀의 눈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혜원은 그런 석민을 매몰차게 외면할 수 있는 인간이 못됐다. 결국 낮게 혀를 차더니 어쩔 수 없단 듯이 한숨을 쉬었다.

“……몇 밀리?”

“7.62밀리로. 탄약은 링크 달린 거랑 송탄띠도 있으면 좋고.”

“니가 들어와서 꺼내.”

그녀가 턱짓으로 물건들을 가리키자 석민이 방탄유리 안으로 들어가서 물건들을 골랐다. 그사이 아영과 혜원의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는 거지?’

불편한 시선에 아영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혜원은 눈을 위아래로 훑어내며 아영을 바라보았다.

‘시발, 나보다 이쁘네.’

전엔 석민과 사귀기 전이라 대충 봐서 몰랐는데, 탄탄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얼굴을 가진 미인이었다.

혜원은 거의 다 핀 궐련의 필터를 으적으적 씹어대다가 재떨이에 탁 뱉었다. 그 모습에 아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전에 본 적 있죠? 내 애인이랑 무슨 사이에요?”

애인이라는 단어에 억양이 조금 강하게 묻어나온 걸 아영은 눈치 챘다.

“그냥… 일적으로 건너건너 아는 사입니다.”

아영이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혜원은 피식 웃었다.

‘그다지 친해지진 못할 것 같네.’

뭔가 의기양양해진 혜원과 다르게 아영은 그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려 보이는데 자신에게 대놓고 반말하는 것도 그렇고 말투나 행동거지가 썩 품격 있어 보이지 않아서였다.

‘석민 씨는 이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만나고 다니는 거지?’

둘 사이에 안 좋은 기류가 흐를 무렵, 석민은 200발짜리 탄통 4개와 송탄띠, M240기관총을 챙겨서 나왔다.

“조준경은 필요 없어?”

혜원이 묻자 석민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필요 없어.”

“젠장, 예광탄이 섞인 거잖아. 그거 비싼 건데.”

그녀의 푸념을 뒤로하고 석민은 탄통을 개봉한 후 링크탄째 그것들을 꺼내더니 잘 사려놓은 후 다른 탄통도 열어서 그것들을 연결하려고 했다.

“뭐하는 거야?”

“군용가방 있지? 그것도 빌리자.”

“시발,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녀는 짜증이 섞인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더니 가방을 창구 밖으로 던졌다. 석민이 그것을 받아서 탄약을 넣은 후 대충 가방에 송탄띠를 고정시키더니, 송탄띠를 통해서 기관총에 장전을 했다.

“아.”

그것을 본 아영도 탄성을 지르더니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영은 아는데 자신만 모르는 것 같자 혜원이 코를 한번 실룩거리고는 참지 못하고 석민에게 물어보았다.

“뭐하는 거야?”

“임시로 데스머신이라는 급탄배낭 만드는 거야.”

월남전 때 네이비씰 특수부대가 사용하던 것으로, 부사수 없이 사수가 기관총을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오랜 화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임시로? 너 서울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 저거 800발이면 대충 탄통포함무게 35킬로그램이야. 그 탄약 무게에 기관총이 12킬로그램 조금 넘고 거기에 송탄띠도….”

석민이 쉽게 가방을 메고 기관총을 들어 보이자, 혜원은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가방이 끊어질 것 같았다.

‘힘이 센 건 알았지만 저 정도였나?’

“좋아.”

아영도 똑같이 만든 걸 어깨에 멘 후 들어 보았다. 석민은 그렇다 쳐도 아영까지 저렇게 쉽게 들자, 혜원은 입을 벌리고서 쳐다봤다.

“어때, 들 수 있겠어?”

“예, 조금 무리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이요.”

저 여자, 저렇게 힘이 강했나? 혜원은 기가 질렸다.

“좋아, 일단 옷 좀 갈아입은 후에 서울로 가지.”

서울이라니? 혜원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언성을 높였다.

“잠깐! 바로 가는 거야? 너 어제 돌아왔잖아?”

“급한 일이라서, 다음에 이야기하자. 약속한 대로 내일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가자.”

혜원이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도 꺼내기 전에 석민이 쌩 나가버렸다. 아영이 그 뒤를 따르며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 혜원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못 하고는 서 있었다.

‘저것들 뭐하는 놈들이야.’

혜원은 아직 자신이 생각보다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 저렇게 냉정히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는 석민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유혹

석민과 혜원이 호텔 말리나에 도착한 것은 알렉산드라가 전화한 지 대략 2시간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여느 때처럼 몸에 딱 붙는 드레스를 입고 있던 알렉산드라가 조금 땀을 흘리며 급히 들어오는 그들을 맞이했다.

⌜일찍 왔네? 좀 쉬었다 가라.⌟

⌜돈 없다. 빨리 일 끝내고 쉬게.⌟

딱딱하고 단호한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성미 하나 급하긴, 그거 무거워 보이는데.⌟

⌜오히려 급한 건 너 아니야? 고객들이 지금 터널을 못 지나서 아우성인 것 같은데?⌟

그의 말대로 호텔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강북으로 가려던 헌터팀이나, 그들에게 보급품을 옮겨주는 운반꾼들이 강북으로 가지 못해 호텔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너희가 못 처리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헌터들은 왜 그것들을 없애지 않는 거야?⌟

⌜표본 채취에 도움 될 것 같지만, 수가 너무 많고 탄약값에 비해 소득이 별로 없으니까 그렇지.⌟

그녀도 불만인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때문에 여기서 즉석으로 고용할까 생각도 해 봤는데, 돈이 안 된다고 다들 거절했어. 심지어 돈 많이 준다고 했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지.⌟

그녀의 말대로 아무도 안 나선 덕분에 호텔에 사람들이 대기하니 어수선했다.

그녀는 호텔이 난데없이 대기실, 혹은 피난처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술도 여자도 찾지 않고, 숙박을 하지도 않았다. 시켜봤자 제일 싼 음식이거나, 6명이서 술 한 병 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선 노숙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뜨거운 커피 3잔을 주문했다.

⌜보다시피 호텔은 포화상태야. 저것들이 거의 반강제로 여길 점령했어. 게다가 나가지도 않아. 저런 것들은 손님도 아니지.⌟

⌜잘 알겠어.⌟

바텐더가 쟁반에 커피 잔 3개를 담아 가져왔다. 커피에 뜨거운 우유를 넣고, 각설탕 2개에 크림까지 얹어있었다.

커피 잔을 내려놓고 인사한 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던 바텐더의 엉덩이를 운반꾼으로 보이던 남자 하나가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비명을 지르자, 운반꾼과 일행들은 더 즐겁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렉산드라의 입 꼬리가 살짝 짙어진다 했더니, 곧 손짓으로 경비를 불러 귓속말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경비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남자들을 잠시 살피더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커피 마시고 다녀오자.”

석민은 자신의 일이 아니어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커피 잔을 들고서 한 모금 마시며 아영에게 말했다.

커피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스탯을 찍었지만, 무거운 짐을 가지고 평소보다 급히 왔기 때문에 피로 회복이 필요했다.

겨우 커피 한 잔이지만, 추운 날씨에 크림까지 얹은 커피는 심신을 노곤하게 만들어주었다.

달콤한 커피를 마시니 씁쓸한 담배가 당겼다. 그러나 급히 온다고 챙겨온 담배가 없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 알렉산드라가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럭키 스트라이크?”

“고맙다.”

석민이 한 개비를 입에 물자 알렉산드라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뿜어져 나오는 연기에 아영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석민은 연기가 아영에게 가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다시 한 모금 빨아 당겼다. 그가 담배를 다 피우는 데는 고작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남은 커피도 단숨에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다녀오지.⌟

알렉산드라에게 그렇게 말한 뒤 아영을 재촉했다.

“일어나자.”

“예.”

아영도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무기를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터널이 그렇게 큰 게 아니라서 둘이서 커버가 가능할 것 같긴 한데, 터널이 2개라서 어찌 될지 모르겠네.”

석민은 그렇게 말하며 장전 손잡이를 당겼다.

“노 러시안처럼 난사하지 마.”

그 말에 아영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 게임 해봤죠.”

아영도 장전을 하고는 그들은 다리에 진입했다. 2대의 전투드론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것들은 터널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접근하자 드론 하나가 머리를 돌렸다. 알렉산드라가 분명했다. 석민은 손을 흔들었고, 드론이 좌우로 움직였다.

‘정체가 궁금하단 말이야.’

그는 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왼쪽부터 가자.”

석민과 아영은 총구를 전방으로 겨누었다. 터널은 역시 어두웠지만 스탯 덕분에 시야가 불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깊고 어두운 터널 속 옆으로 치워지고 쌓인 폐차들 틈새에서 과거 사람이었던 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들은 바짝 몸을 낮춘 채 배를 깔고서 기어 다니거나, 기이하게 뒤틀리고 부푼 몸으로 굴러다니며 석민과 아영을 주시했다.

수도 많았고, 꿈틀거리는 몸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냄새도 좋지 못해서 터널 초입부에 들어선 석민과 아영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석민은 숨을 크게 마시고 얼굴을 더욱 찡그렸다. 동태처럼 바짝 마르고 얼어버린 사람 냄새였다. 그는 코를 실룩거리면서 아영보다 조금 앞서 걸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감염자가 바짝 마른입을 크게 벌렸다. 벌린 입 안 사이로 검푸른 혀가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감염자의 괴성 대신 공허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그래도 그 외침으로 충분했다. 감염자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쏴!”

석민은 방아쇠를 당겼다. 첫 3발이 입을 벌리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던 감염자의 목과 머리에 맞았고 그대로 박 터지듯이 박살났다.

아영도 방아쇠를 당겼다. 2개의 총구에서 엄청난 총구화염이 나오며 터널 내부가 번쩍번쩍거렸다.

석민은 되도록 감염자들이 모여 있을 때 쏴서 한 발에 많은 녀석들을 처리하려고 했다. 예광탄이 날아가며 맨 앞에 섰던 감염자의 텅 빈 눈구멍을 지나 뒤에 감염자 둘의 머리까지 부수는 모습이 보였다.

석민은 총을 재장전하고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감염자들의 숫자가 많아서 이대론 끝이 없을 것 같았다.

‘300명은 조금 넘는 것 같은데?’

석민은 탄약 800발밖에 안 챙긴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들은 터널을 천천히 걸어 나가면서 감염자들을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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