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08화]
정부는 경기도 지역의 인구가 포화상태여서 다른 곳으로 이주정책을 추진 중인데, 시민들을 위해 입주지로 선정된 신도시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단 소식이 방송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중년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아직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인간들을 여기로 입주시켜? 정부가 미쳐가지고, 지역주민 안전도 생각해야지?
다른 인터뷰에서 나온 여자도 똑같은 말을 했다.
-경기도에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그… 거지나 다름이 없잖아요.
‘저게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할 말인가?’
석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몰려 살면 여기는 대부분 슬럼가가 될 텐데, 슬럼가가 되면 치안도 안 좋아질 거고…. 그러면 밤거리를 돌아다니기 좀 불편할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난 직후 기자가 나와 뉴스 마무리 멘트를 하였다.
-평화롭던 지역주민들은 아직 입주하지 않은 옛 서울과 경기도권 난민들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렇게 뉴스 하나가 끝난 직후 아나운서가 다음 사건을 전달했다. 대전에서 총격전을 동반한 폭동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헌터들이 드래곤하트에 대한 너무 적은 정부 보상금에 항의하는 시위였는데, 그들은 지역이동이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몰래 경기도를 빠져나와 기습적으로 임시 정부청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더러운 애국심 따위를 들먹이며 우리의 피와 땀으로 구한 자원을 헐값으로 매입 하냐?
-이게 공산주의가 아니고 뭐냐?! 최소한 총알 값이라도 지원해라!
집시법 위반에 지역이동제한법을 어겼기에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진압복을 입고서 방패봉을 가지고 강경진압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왔다.
살수차가 헌터들을 향해 고압의 물을 뿌리고, 방패를 앞세운 전투경찰들이 달려들었다.
시위를 하는 헌터들은 고작 20명이었는데, 진압하는 경찰들의 숫자는 2개 중대 병력이었다. 이어서 경찰들의 무자비한 곤봉세례를 맞던 헌터 하나가 등허리 쪽에 손을 집어넣더니, 권총을 꺼내 경찰의 머리를 향해 쏘는 장면이 송출됐다.
그 장면을 찍던 카메라맨이 놀랐는지 화면이 흔들리고는 영상이 끊겼다. 그리고 기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경찰을 향해 발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 5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다치는 등 사상자가 생겼으며, 분노한 경찰들의 폭력진압에 헌터들 또한 4명이 죽고, 12명이 다치고 체포되었다고 한다.
뉴스를 본 석민은 작게 혀를 찼다.
‘조금이라도 올렸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옥죄이기를 하니까, 다른 나라 정부나, 기업에게 넘어가 버리는 거지.’
아무리 애국자라도 매입가격이 너무 짰다. 석민도 가끔가다 돈이 궁해질 때가 있었다. 특히 탄약값.
뉴스의 아나운서는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토론을 나누기 위해 패널을 모셨다며 무슨무슨 전문가들이 우르르 소개되었다.
-그런데, 헌터들은 어떻게 무기를 가지고 경기도 밖으로 나올 수 있었죠?
그리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뉴스의 아나운서가 패널에게 질문을 던지자 패널의 답변은 동문서답이었다.
-이 헌터들은 매우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처럼 무기 소지가 매우 자유롭죠. 물론 경기도 지역이 괴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소유할 수밖에 없다지만, 자동화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헌터들뿐입니다.
‘일단은 그렇겠지.’
석민은 인상을 썼다.
그렇지만 경기도 지천에 널린 것이 무기인데 너무 심하게 하는 말은 아닌가?
-국내법상, 헌터들도 경기도 외 지역에선 무장을 할 수 없습니다. 경기도 지역과 다른 지방으로 연결된 모든 도로에 검문소가 있어서 경기도 지역 거주민들은 걸러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일로 우린 검문소에 큰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던, 이런 비체계적인 헌터 집단은 전부 해체시키고 전문적인 특수부대들을….
‘그게 가능했으면 지금 이러고 있지 않겠지.’
그 잘난 특수부대는 1차, 2차 서울 수복작전 때 사그리 전멸했다.
특수부대는 서울수복작전 때 기계화보병사단과 보병사단, 예비군들의 진공로를 만들기 위해 선행 침투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아군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운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과 부대를 기리기 위해 일부 전멸한 공수여단들은 재편성하지 않은 채 영원히 명예부대로 두고 군기를 박물관에 전시한다고 했었다.
정예 병력들을 재편성하기도 벅찬데, 얼마 남지도 않은 정예요원들을 다시 끌어 모아서 소모품으로 쓴다고? 석민은 불쾌해졌다.
석민은 TV를 껐다. 그리곤 시선을 아영에게 향했다. 그녀도 대원들을 다 잃지 않았나?
그러다 불현듯 대통령에게 불신이 들었다. 나라를 위한다면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르려는 건가? 정말 이 자식 뭘 하는 거지?
분노가 차면서 그의 얼굴도 급속도로 빨개졌다. 잡생각과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스텝이 엉켰다. 그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서 러닝머신 뒤로 넘어졌다.
“아, 젠장!”
“괜찮아요?”
급히 러닝머신을 끈 아영이 석민에게 다가갔다. 그의 오른발이 살짝 부어올라 있었다.
“괜찮아. 부은 건 1시간쯤 뒤면 나을 거야. 결국, 내기는 졌네.”
아영은 설마 석민이 일부러 졌나 생각하다가, 그의 찡그린 얼굴을 보고 생각을 고쳤다. 진심으로 짜증난단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누가 자기 다리 다치면서 지려고 하겠어?’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싼 거 먹을 겁니다.”
석민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키득거리면서 그 손을 잡았다.
“기꺼이 비싼 걸 사주지.”
***
그 비싼 것은 동네 김밥 집의 돈가스와 라면 그리고 김밥이었다.
‘더 비싼 것을 시켜도 상관없는데.’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석민은 아주 고급스러운 식당을 생각했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 아니면 회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김밥 집을 고르는 아영을 보고 오히려 석민의 김이 샜다.
굳이 김밥 집을 고른 아영을 석민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영은 마지막 라면 국물까지 싹싹 긁어 마시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네요. 발은 좀 어때요?”
“괜찮아, 붓기가 금방 빠졌어. 스탯 덕분이야.”
그는 발목을 움직여 보았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고, 처음엔 자두 하나 넣어 놓은 것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지금은 모기에게 살짝 물린 수준으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거야?”
“예? 왜요? 아, 그렇게 돈 많이 쓸 필요는 없어요.”
“그래, 알았어.”
석민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목구멍 밖으론 나오지 않았다. 그는 뭔가 더 대단한 것을 사주지 못해서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마저 해야겠지?”
석민은 옆에 놓여있던 휴지를 꺼내 입을 닦으며 일어났다.
그들은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와 이번엔 아령을 들어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거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아영이 50킬로그램으로 맞춘 바벨을 가리켰다. 석민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비빈 후 왼손으로 그것을 들어 보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힘들어요?”
“조금.”
석민은 하박을 접어보다가 이내 다른 손에도 들었다. 아영은 옆에서 80킬로그램짜리로 맞추고 들어 보았다. 조금 힘들어하는 듯했지만, 역시 쉽게 들어 올렸다.
“들 수는 있지만, 오래 들고 싶지는 않네요. 하지만, 경기관총이라면 오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무기에 맞춰서 하는 건가. 석민은 저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힘의 최대를 아는 거니까. 조금 무리해도 되겠지.”
석민은 100킬로그램짜리 바벨에 손을 올렸다. 힘이 좀 들었지만, 버거울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바벨의 무게를 더 채워 넣었다.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아영이 그것을 보더니 말했다. 그녀는 살면서 여태껏 저렇게 무거운 건 들어본 적도 멘 적도 없었다. 그들이 처음 서울에 들어갔을 때, 더블백에 최대한 짐을 욱여넣어도 80킬로그램이 되지 않았다.
“괜찮을 것 같은데.”
석민은 살짝 긴장한 채 심호흡을 한 후 바벨을 잡아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이런 미친.’
점심밥으로 계란 몇 개를 먹고 있던 헬스트레이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절대로 들 수 있는 체격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이 생각보다 쉽게 들어 보여서 놀란 듯했다.
석민은 머쓱한 표정으로 바벨을 내려놓았다.
‘다음부턴 보급품을 이 정도 챙기면 되겠어.’
그는 다른 바벨을 살피며 더 무게 나가는 것을 들어 보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자신이 하던 일 특성상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다. 석민이 다시 140짜리 바벨을 들어 올릴 무렵, 해당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러시아어였다.
[전화해. -샤샤-]
샤샤였군. 석민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 오랜만이야. 빚진 이후로 우리 호텔도 안 들리고 강북으로 가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거기다 내용에 날까지 서 있으니 귀가 근질 따끔한 기분이었다. 석민은 반대쪽 귀를 손가락으로 후비며 말했다.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젠장, 언제 갚으라는 말은 없었는데, 하필 쉴 때 전화하냐.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어?
-비밀
석민은 이번 일이 끝나면 번호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빚 좀 갚아달라고?
-어, 네 도움이 필요하거든. 빨리 올 수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이지? 아, 혹시….
-뭔 일인데? 혹시, 교단 놈들이?
-아니, 니들이 잡은 드래곤, 그것들이 감염자들을 노예처럼 부린다는 건 알지? 그 드래곤이 죽고 나서 강북지역이 소란스러운 것도?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것들이 터널을 점령했어. 좀 처리해줘야겠어.
-터널을?
그는 벤치프레스에 앉았다.
-다리 쪽은? 괜찮아? 거기는 멀쩡해?
-그쪽은 오지 않더라.
역시, 뭔가 있어.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튼 그것들이 점령을 했어, 우리 전투드론 2개도 파괴되었지. 이 이상 출혈은 무리거든. 좀 도와줘.
-숫자는?
-겨우 한 300명쯤?
겨우? 이 여자가 지금 장난하나. 석민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뭐?! 겨우 300명쯤? 얼마나 싸우라고? 인간적으로 그게 가능하냐? 폭발물 써도 돼?
-안 돼.
-그럴 줄 알았다.
석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저 요구를 맞추려면 기관총이 필요했다. 5.54mm가 아니라 최소 7.62mm 탄환이 필요했다.
‘젠장.’
-언제 가면 되지?
-되도록 빨리 와. 우린 지금 매우 곤란하다고.
그리곤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기분은 뭐 같은데, 신세를 진 것도 맞고, 빚도 있으니 그로선 거부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죠?”
석민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아영이 다가와서 물었다. 석민은 알렉산드라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당연히 아영의 표정도 단박에 안 좋아졌다.
“2명이서 어떻게 300명을 처리하죠?”
“아니야, 됐어. 넌 가지 마.”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아영이 따라나섰다.
“저도 가겠습니다. 그 빚, 저한테도 있어요. 실제로 그 드론들 아니었으면 우린 죽었을걸요.”
“알렉산드라에게 도와달라고 한 건 나야.”
“그리고 전 묵과했죠. 그건 동의했단 뜻입니다.”
그러나 석민은 혼자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자, 아영은 그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같은 팀이잖아요.”
“미안해서 그래.”
“그럴 거 없어요. 여하튼 같이 가요.”
“…알겠어.”
헬스장을 나온 그들이 오토바이를 탈 무렵 석민이 입을 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화기로는 그거 못해.”
“생각한 게 있나요?”
“어.”
석민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