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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07화 (107/226)

[게이트 오브 서울 107화]

작렬탄의 텅스텐탄심이 방탄판을 꿰뚫고 그자의 흉부에 박혔다. 작은 불꽃과 함께 약간의 폭음이 울렸다.

상대가 받쳐 입고 있던 플레이트캐리어도 박살이 나 있었다. 석민은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데?’

새삼스레 혜원에게 고마움이 들었다. 석민은 총검을 뽑아서 SVDK에 장착했다.

그리고 뒤를 돌자 아까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이가 거의 반 죽어있는 상태로도 총을 들어 자신을 쏘려고 하고 있었다. 석민은 그에게 다가가 발로 차서 총을 멀리 치우고는 목 뒤를 쳐 기절시켰다. 그리곤 나머지 다른 자들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확인사살을 했다.

총성이 연달아 울리면서 폭음과 섬광이 번쩍거렸으나 상대들은 미동도 없었다. 전부 다 죽은 것을 확인한 후, 석민은 창가에 서서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만들어 아영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때 뒤쪽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석민은 얼른 총구를 돌렸다.

포로로 잡혀있든 3명이 낸 소리였다. 폭발에 죽었다 생각했는데, 살아있었다.

포로 주변에 죽은 교단 사람들이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포로를 살핀다고 곁에 있었던 것이, 오히려 파편으로부터 인간방패가 되어준 것 같았다.

석민은 이들을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잔뜩 겁먹은 박선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조적인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살리려고 했던 것은 죽고, 죽으라고 했던 것은 살았네.’

“이 사람, 살아있네요.”

그사이 합류한 아영이 석민이 기절시켜 구석에 옮겨 놓은 교단 사람을 보고 입을 열었다.

“어, 데리고 갈 놈이야.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겁먹은 눈들이 아영에게 돌아갔고, 그에 응답하듯 아영의 단호한 목소리가 나왔다.

“아까 말했지만, 절대 건들지 마세요. 풀어주세요.”

석민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SVDK에 장착해둔 총검을 뽑아서 그들의 케이블 타이를 제거해 주었다.

“그놈은 데리고 가지. SVDK를 썼으니 감염자들이나 괴수가 몰려들 거야.”

석민은 포로들에게 말하고는 교단인을 챙긴 후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고도 박선아의 팀은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저것들 뭐하는 놈들이지?”

정원석이 입을 열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났단 것이었다.

“저 인간 말이 맞아.”

정신을 차린 박선아는 바닥에 버려진 AKS-74U를 집어 들었다. 수류탄 폭발에 도트사이트가 망가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떼어내고는 탄창 3개를 챙겼다.

“그것들이 몰려들 거야. 무기 챙기고 여길 뜨자고. 이젠 지긋지긋해.”

체력장

안전가옥의 주변은 여전히 춥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근방엔 사람도 살지 않았고, 주변 가까운 마을도 비어있는 상태였다.

지난번 길게 자란 풀들을 군인들에게 부탁해서 자르고, 유리창도 수리했건만, 겉으로 보기에도 해지고 색이 바래서 더 삭막하게 보였다.

그래도 내부는 제법 아늑했다. 보일러도 틀려있고, 마룻바닥엔 오래됐지만 고급스러운 양탄자도 깔려있었다.

석민은 운동복차림으로 자신의 방문을 닫았다. 그는 통화 중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겨울용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던 아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 미안한데, 오늘은 못가 할 게 있어.”

언뜻 언성이 높아지는 통화 상대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석민의 인상을 찌푸려졌다.

“들어봐, 나도 벌어 먹고살아야…….”

‘김혜원이라고 했나.’

아영은 석민이 드래곤이나 괴수, 헌터들의 돌발적인 상황 외에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봐서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심지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도대체 어떤 여자기에 저 인간이 저렇게 쩔쩔매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공처가 기질은 보이지 않았는데.’

“알았어. 그럼, 내일 일찍 갈게…. 그래, 아침에 말이야…….”

통화를 끝내고 작게 한숨을 쉬던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아영과 눈이 마주쳤다.

“왜?”

“제가 알던 그 남자인가 싶어서요.”

석민은 괜스레 부끄러움에 대답 대신 낮게 투덜거리며 목 근육을 풀었다.

“임무 끝내고 바로 안 온다고 화를 내더라고.”

어지간히 콩깍지가 씌었나 보군, 아영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낼 뻔 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석민으로서도 조금 난처했다. 그녀가 여전히 좋지만, 일 때문에 못 간다고 했는데도 삐져서 풀리지 않았다. 결국 30분 가까이 달래야만 했고, 끝없이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말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시간이 늦었네.”

“이미 30분 전부터 준비는 끝났거든요?”

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스트레칭 해준 후 패딩을 입었다. 석민도 겨울용 오토바이 재킷을 걸친 후 자신의 헬멧을 챙기고 아영에게도 헬멧을 건넸다.

“자.”

“고마워요.”

그들은 석민의 오토바이를 타고, 성남시 중심부로 갔다. 스탯을 찍으면서 힘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확인해 보고자 헬스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병원이나 다른 데서 좀 더 정밀진단을 받을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면 정부에 들킬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가 좋겠네.”

석민은 대로변에 있는 헬스장 앞에 멈추었다. 간판이 조금 오래되어 보였지만, 주차장은 있었다.

석민이 오토바이를 주차하는 동안 아영은 언 몸을 풀었다. 강추위에 느리게 서행을 했는데도 온몸이 얼어붙었다. 추운 날에 오토바이는 역시 아니었다.

그녀는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로변이라 그런지 순찰을 도는 전투경찰, 의경들과 군인들 그리고 경찰차나 군인들의 차량이 보였다.

‘헬스장도 선바이저 코팅이 되어 있으니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순 없을 테고. 내부 CCTV만 조심하면 되는 건가.’

석민은 헬스장을 이용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사실 사태가 터지기 전엔 운동과 먼 사람이었다.

그는 헬스장을 둘러보았다. 사태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운동하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헬스장도 재정난에 시달리는지, 러닝머신은 칠이 벗겨져 곳곳에 녹이 슬어있었다.

“너무 낡은 거 아니야?”

“뭐, 덕분인지, 사람이 별로 없으니 부담 갖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 같아요.”

아영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 그는 불만을 누그러트렸다.

“괜히 괴력을 보여줘서 사람들에게 눈에 띄면 그게 더 곤란하죠.”

“맞는 말이긴 한데….”

석민은 말을 흐리고는 그냥 몸 풀기에 돌입했다. 그들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일단 달리기부터 하고. 속도는?”

“최고로… 해야겠죠?”

“몇 킬로미터?”

“음…….”

아영은 잠시 시선을 돌려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누가 먼저 지치는지?”

명백한 도발이었다. 석민은 자신과 그녀의 스탯을 생각해보았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6

지구력:5

체력:4

활력:6

시력:5

[아영, 전달하는 자.]

레벨:16

지구력:5

체력:5

활력:5

시력:5

지구력은 비슷하고, 활력은 그가 스탯이 부족하지만, 체력은 그가 높았다.

‘아니, 지구력이 같으니 별 차이 없으려나.’

그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있나 보네? 내기인 거지? 뭘 걸까?”

그녀는 턱짓으로 러닝머신 유리창 너머, 그리고 길 건너 카페를 가리켰다.

“커피 내기하죠.”

딱히 내기까진 생각지 못했지만,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그만큼 자신을 친근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서 놀랍기도 했다. 그래서 아영은 흔쾌히 내기에 응했다.

‘뭐, 이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커피는 너무 약한데?”

석민이 대답했다.

“그 이상 살 것도 없네요. 전 석민 씨와 다르게 가난하거든요.”

사실이라 석민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이번에도 임무를 하면서 교단인과 심도 깊은 대화-라는 이름의 고문-를 통해 천국의 문 교단 정찰대를 전멸시키고 무기들을 잔뜩 챙겼다. 덕분에 정부에서 주는 수익만큼 혹은 그보다 더 얻을 예정이었다.

이거 돈도 많은데 나보고 사란 소린가?

‘젠장, 생각이 짧았어. 내가 생각해도 돈도 많이 버는데, 내가 사는 게 맞지.’

거기다 그녀는 공식적으론 군 제대라 해도 공무원 신분이라 월급이 짰다. 자신처럼 추가 수동도 없고.

석민은 부끄러움에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열을 누르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면 내가 지면 말이야. 점심을 사지.”

석민은 단순히 자신이 돈이 있으니 사주겠단 소리였으나 그것은 아영에게 새로운 오해를 불러왔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뇨,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지면 커피이고 석민 씨가 지면 점심을 사는 걸로 하죠.”

“그러지. 그럼 해볼까?”

그들을 달리기를 시작했다. 러닝머신의 속도를 최대로 맞추고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매우 빠르게 달렸으나, 둘은 여유로웠다.

석민은 달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러닝머신 앞에 달린 작은 TV를 켜 오락채널을 돌렸으나, 그 모습을 본 아영은 불쾌감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밥을 사주겠다니. 난 질 일이 없으니 어디 한번 해보자고 한 건가?’

생각해보니 그는 그녀에게 한 번도 밥을 사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밥을 사준다고 하는 건가?

‘그러면 더 불쾌하지. 일부러 져준다는 거잖아. 아니야, 아냐.’

아영이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흔들자, 하나로 묶인 포니테일이 그에 맞춰 흔들거렸다.

방금은 자신이 너무 깊게 생각한 게 분명했다. 자신이 아는 한 석민은 단순한 사람이었다. 말속에 뼈를 숨길 타입도 아니었고.

그녀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달리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들은 20킬로미터를 주파했으나 숨만 조금 거칠어졌을 뿐, 땀도 별로 흐르지 않았다.

헬스장을 지키던 트레이너는 카운터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그러한 사실을 눈치 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지치지 않나요?”

그러고 30분이 더 지난 뒤, 땀이 흐르기 시작한 아영이 입을 열었다. 석민은 홍조가 띤 얼굴로 미소만 지었다. 그의 앞머리도 땀에 젖어 여러 갈래로 합쳐졌다. 그 미소에 아영의 마음이 조금 설렜다.

‘역시 잘 뛰네.’

석민은 여자의 몸인데도 아영이 지치지 않고 잘 뛰는 것을 보고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스탯 덕분인가? 하지만 이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정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는 여자이기에 약할 것이란 편견을 가진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녀는 강했다. 애초에 특수부대 출신이지 않나? UDT였지. 거길 아무나 가나?

절대로 얕잡아 봐선 안 됐다. 거기다 함께 활동하는 전우가 아니던가? 전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허투루 하면 안 됐다.

‘잡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

그는 달리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2시간이 또 지날 무렵, 석민과 아영은 숨을 크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들의 러닝머신은 이미 60킬로미터를 돌파했다.

‘슬슬 힘들어지는데.’

그래도 지구력 스탯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석민은 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지 못 하도록 스포츠용 헤어밴드를 하고 있었고, 상의에 입고 있던 운동복은 벗은 채 스포츠브라만 한 채 달리고 있었다.

석민은 TV에 뜨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30분. 슬슬 점심시간이었다.

그러나 집중하고 있는 아영에게 밥 이야길 꺼내기 그랬다. 그사이 오락채널이 끝났다. 석민은 채널을 바꿨다.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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