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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05화 (105/226)

[게이트 오브 서울 105화]

석민은 밖으로 나가 벙커를 바라보았다. 벙커는 관리를 위해 총안구 쪽에 검은색 비닐로 망을 씌워 놓아서 연기는 피어올랐으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석민은 흘러내리는 콧물을 장갑으로 닦고는 아영을 향해 말했다.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불빛이 거의 안 보여.”

“잘됐네요.”

그는 몸을 돌려 스트레칭을 하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시길 반복했다. 도시 쪽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하늘의 별처럼 보였다. 추위 때문에 도시에 들어선 헌터들이 불을 밝힌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곳은 대략 500미터 남짓.

‘역시, 이 뭐 같은 폐허 속에 많이들 숨어 있었군.’

불을 피운 숫자만 대충 세어봐도 40은 훨씬 넘어 보였다. 그럼 최소 못해도 40팀, 어쩜 더 넘을 수도 있단 말이다. 분명 그들 중엔 다른 나라 정부와 일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석민은 대략적인 위치를 알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고 불빛을 찍었다.

***

갑작스런 강추위와 바람에 박선아의 팀은 오랜만에 잡은 드레이크의 해체작업을 중단하고, 근처에 마련한 안전가옥으로 들어갔다.

종합상가에 위치한 찜질방으로, 건물이 무너져서 하늘이 뻥 뚫렸지만, 둥근 이글루같이 생긴 찜질하던 공간은 멀쩡했고, 단열도 잘되며, 바닥도 대리석이라 청소 한 번 하니 말끔해서 지내기 좋았다. 또 찜질방 특성상 입구가 좁아 괴수들로부터 농성이 가능했다.

추위가 좀 가시자, 팀장인 박선아는 담배를 꺼내서 물었다. 입이 뚫려있는 형태의 방한용 발라크라바를 쓰고 있었기에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데 문제는 없었다.

“시발, 겨우 한 마리 잡았는데, 드래곤하트도 채취 못 했잖아.”

“어쩔 수 없지.”

박선아의 동료이자 연인인 정원석이 말했다. 점심도 먹고 몸도 녹일 겸 그는 고체 알코올 버너로 데우던 물에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넣었다. 그 옆엔 전투식량 통조림도 데우는 중이었다.

“어차피 이번 달은 할당량 맞추기 어렵겠지만, 이 근방은 헌터들이 없어. 그 말은 드래곤하트를 가져갈 사람이 없단 말이지.”

“맞아.”

그들의 친구인 안영석이 맞장구쳤다. 이 3명이 1개의 팀으로, 전부 전직 특전사이자 전우였다. 안영석이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드레이크가 보여. 누군가 가져가려고 하면 이걸로 쏘면 그만이야.”

그는 k2c1소총에 최대 6배율이 되는 가변배율 조준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자, 점심이나 먹자. 프랑스산 전투식량이야. 아주 맛있는 거래. 소시지 캐서롤이라 적혀있네.”

“그래봤자 군바리 식량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선아는 그것을 받았다. 익히는 도중 바닥을 휘젓지 않아서 그런지 탄 맛이 났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그러나 정원석의 입맛엔 별로였는지, 그는 다 먹고 난 뒤 빈 깡통을 던져버렸다.

“난 프랑스 요리가 맛있다고 들었는데.”

박선아가 데워진 커피잔을 들어 정원석에게 주었다.

“프랑스 군바리들도 힘들겠어.”

“다 먹었으면, 교대해. 나 배고파.”

안영석의 말에 정원석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k-2소총을 들었다. 2배율짜리 도트사이트가 달린 것이었다.

교대를 한 직후 박선아는 커피잔을 양손으로 잡고서 한 모금씩 음미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박선아가 입을 열었다.

“그 망할 것들이 서쪽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

“어, 확실해.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쪽으로 갔어.”

그들을 떠올리며 박선아는 살짝 이를 악물었다.

그것들은 사람을 사냥했다. 전문적으로 보였으나 약탈자와는 달랐다. 그들은 사람들의 짐을 건드리지 않았으며, 드래곤하트도 챙기지 않았다. 오히려 죽인 시체와 드래곤하트를 미끼로 다른 헌터들을 끌어들여 죽이는 데 혈안이었다.

박선아의 팀도 미끼에 걸려 죽을 뻔했으나, 드래곤하트를 채취하기 전이 미리 퇴각로를 설정해두고, 기민하게 연막탄을 사용하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요즘 이 주변에서 감염자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드레이크 사냥이 힘들어지고 있던 터였다.

‘강북 쪽으로 가면 괴수들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어. 차라리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북서쪽이나, 북쪽으로 더 갈까?’

그녀는 폰에서 지도 어플을 켰다. 이곳에서 인터넷은 안 터지지만 지도로 지형은 볼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드래곤이 사라진 후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른 이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얼른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야지.’

그녀는 새로운 담배를 물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박선아의 머리가 있던 허공을 지난 총알이 근처 바닥에 박히면서 날카롭게 튕기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갑작스런 총성에 보초를 서던 정원석은 얼른 몸을 던져 숨었고, 마지막으로 밥을 먹던 안영석은 놀라서 뜨거운 소시지를 그대로 꿀꺽 삼킨 와중에도 몸을 바닥에 낮췄다.

“빌어먹을, 어디야?”

“시발, 몰라. 개 같은 것이 저격질이야.”

박선아는 바짝 기어서 자신의 m14 socom을 들었다. 그건 12배율짜리 고정 스코프가 달린 총인데, 그녀는 저격수로 활동했기에 현재도 자주 애용하는 총이었다.

“소음기 달린 총이야. 총성으로 보건데 최소 4명, 5명이고.”

“빌어먹을 그놈들 아니야?”

알 순 없었다. 소음기를 낀데다가 총구 섬광 같은 게 보이지 않아서 어디서 쏘는지 대략적인 파악만 가능했다.

“찾을 수 있겠어?”

“기다려봐.”

박선아가 품속에서 쌍안경을 꺼내 고개를 살짝 들어 주변을 살폈다. 잠시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젠장, 안 보여.”

“총성으로 보건데 5.45mm나 5.56mm 탄이 분명해. 사거리가 200미터밖에 안 될 거야. 그사이에 숨어있어. 찾아봐.”

“내 눈이 그렇게 좋은 줄…….”

박선아는 그 이상 투덜거릴 수 없었다. 총탄이 그녀의 주변으로 튀었고, 그녀는 머리를 낮추었다.

박선아는 마지막 연막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떠나야 할 은거지를 조금 아쉬운 눈길로 보았다. 그곳엔 30일 치 식량과 여분의 탄약, 그리고 보급품들이 있었다. 전부 사비로 사들인 거라 아깝지만 그래도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연막을 피우고 퍼지길 기다렸다. 연막이 퍼지기 시작하자 총탄이 쏟아졌다. 그들은 좀 더 참고 기다리다가 잠잠해지는 순간, 몸을 일으켜 탈출용으로 마련한 굴에 다가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곳은 지하 2층 주차장과 이어진 곳으로, 차량전용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안전하게 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수류탄이 튀어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비명을 지르며 3명이 단번에 은거지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수류탄이 터지면서 은거지 밖에 있던 음식과 컵, 커피들이 쏟아졌다.

다행히 파편들은 은거지의 벽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은 출입구는 하나였고, 높이는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할 정도로 낮았다.

박선아의 눈에 절망이 물들었다. 정원석과 안영석도 크게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 순간, 열린 문틈 사이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문을 닫아!”

박선아가 외쳤다. 하지만 나무로 된 문이라 닫아봤자 겨우 몇 초의 삶이 연장될 뿐이었다.

그들의 귀에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졌고, 여럿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수류탄 준비해.”

그들의 대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이봐, 우린 드래곤하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이러지 말고 협상하지, 협상!”

안영석이 소리쳤지만, 상대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의도적인 침묵이 분명했다.

이윽고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울 무렵, 그림자가 급격하게 쓰러졌다.

“뭐야?”

“젠장! 엄폐해!”

갑작스런 고성이 오가면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총성이 들리지 않았지만, 이후 비명소리가 여럿 들리는 것이, 상대가 공격을 받는 것이 분명했다.

이때가 그들에겐 기회였다. 박선아가 정원석에게 완수신호로 수류탄을 말했고, 그것을 알아본 정원석 자신의 짐가방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져주었다.

박선아는 안전핀과 레버를 날린 직후 대략 3초 뒤에 문을 열고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다급한 음성들이 울렸고 이내 폭발에 묻혔다.

저들이 전멸한 건가? 그러면 이제 나가면 되는 건가? 아니다, 아마 상대를 제거한 이들이 자신들을 구하려고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나가자.”

그녀의 말에 두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기어서 나갔다.

수류탄에 당한 사상자들의 숫자는 5명이었다. 그중 2명은 아직 숨이 붙은 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굴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들이 사라진 후 대략 30분이 지난 뒤, 석민과 아영이 그곳으로 걸어왔다.

“명단에 없는데요?”

아영이 죽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석민은 그들을 보자마자, 권총을 꺼내려는 부상자의 손목을 발로 누르고선 SVDK의 총검으로 찔렀다.

“다른 헌터들을 노린 거 봐서 약탈자들인가 보군.”

전에 보았던 자들과 군장이 다른 걸 봐선 약탈자인 듯했다. 그들을 처리한 후 석민과 아영은 원래 있던 자들을 찾으려 했으나, 사람 대신 굴만 발견했다.

석민은 버려진 식량과 탄약들 그리고 아직 따뜻한 통조림 하나를 발견했다. 석민은 대수롭지 않게 소시지 하나를 까서 입 안에 넣었다.

“이거 맛있네.”

아영이 눈살 찌푸리며 이상하게 쳐다보자 석민이 눈썹을 올렸다.

“부비트랩이 있으면 어쩌려고요?”

“그런 거 없으니까 걱정 마.”

그는 찜질방 안쪽을 살피더니 여러 가지 보급품들이 가방째 버려져 있자, 그것들을 챙겼다.

이것들이 있으면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영은 클레이모어로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프랑스산 군용식량이라…. 돈이 좀 있었나 보네.”

***

석민이 찍어놓은 사진과 지도를 대조한 덕분에, 그 뒤부턴 다른 헌터들을 찾는데 한결 수월했다.

석민은 이왕이면 이번 기회에 SVDK의 작렬탄을 써보고 싶었으나, 아직까진 기회가 없었다. SVDK가 좋은 총이긴 하나, 기습엔 소음기 달린 VSS가 적합했다.

현재 드라니트가 죽고 그의 권속이었던 감염자들이 이성을 잃은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어서, 웬만하면 소음을 내지 않으려 했다. 아주 작은 총성만 나도 해당 방향에 모여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처음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3개의 팀을 전멸시키며, 밥값을 제대로 하는 중이었다. 특히 마지막 팀을 처리할 때 쓴 방법은 아영의 아이디어였는데, 섬광탄과 노획한 수류탄을 사용하여 소음과 섬광을 일으켜 감염자들이 그들을 처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헌터팀은 감염자들 때문에 숨어있던 중이어서 가능했던 방법이었다.

“4일 동안 3개 팀이라, 나쁘진 않지?”

그들의 비트에서 아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녀는 부엌의 식탁에 앉아 무전기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안 돼?”

“예, 고장난거 같아요.”

무전기 없이 행동하면 팀워크가 힘들어져서, 아영은 그것을 고치는데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석민이 보기엔 무모했다. 그녀는 군인이지 전파상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지금 납땜이나 다른 전문적 장비도 없었다.

“스탯창.”

여전히 무전기 고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아영을 잠시 쳐다보다가 할 일이 없어진 석민은 스탯을 점검했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16

지구력:5

체력:4

활력:6

시력:5

그는 레벨이 2단계나 올라서 지구력과 활력에 스탯을 찍었다. 지난번 드라니트와 싸울 때 오랜만에 피로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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