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04화]
“어디서 대기할 생각이지?”
잠시간 시간이 흐르고, 석민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업무에 대해서 묻자 아영이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곤 답했다.
“역시 봉화산이죠. 거기 말고는 고지대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비트는 경원…씨와 그 아버지가 계시던 집을 이용할까 합니다.”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 된 건가? 마음이 약하군.’
석민은 아영이 경원의 이름을 부를 때 말끝을 흐리자 속으로 혀를 찼다. 얼른 마음의 정리를 해야 임무에 지장이 없을 텐데 말이다.
“대통령이 뭐라고 하든? 그 드래곤하트 말이야.”
“아, 그거요.”
아영이 대답하길 주저하자 석민은 의아하게 여겼다.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하더군요.”
대답하는 그 말투가 의심스러웠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주저하는 듯했다.
“아무 능력이 없어?”
그녀는 시선을 석민에게 돌리지 못하고 대답했다.
“예,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아영은 역시 거짓말이 서투르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건 아쉽군. 그리고? 뭐 다른 이야기는 없어?”
“예, 없습니다.”
석민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숨기려 한다 생각지 않았다. 그저 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대통령은 뭘 숨기려 하는 걸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도 아니니까.’
어차피 서로를 이용해 먹는 사이였다. 이에 대한 건 접기로 했다.
그나저나 아영은 또 갈팡질팡하는 건가?
석민은 그녀와 전장에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믿을 수 있는 관계라 생각했다. 그러나 걸리는 점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명과 정부의 일을 동일시하거나, 정부의 일을 우선으로 두었다.
낮게 한숨을 쉰 석민은 고개를 흔들며 목 근육을 풀었다.
그들은 말리나에 들리지 않고 바로 구리사암대교로 와서 전동자전거로 이동 중이었다. 길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괴수나 감염된 인간도 없어서 빠르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석민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전투드론이 자신들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마치 그에 답례한다는 듯이 전투드론도 좌우로 흔들거렸다.
석민은 웃으며 드론을 지나쳐 갔다. 그렇게 터널을 지나 그들은 돌처럼 굳어 있는 드라니트의 시신과 마주했다.
일부는 깨지고, 뱃속은 파헤쳐진 흔적이 있었다. 아마 헌터들이 드래곤하트를 노리고 파헤쳐 본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죽어서 돌로 변한 시체를 들쳐봤자 나오는 건 돌 부스러기뿐이다.
“가지.”
멈춘 발걸음을 석민이 다시 재촉했을 때, 총성이 울렸다. 그런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소음기 총성인데요?”
소음기를 꼈는데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들린단 소리는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었다. 석민과 아영은 서로 눈짓으로 대화를 나눈 뒤, 전동자전거에서 내려 짐가방과 함께 근처 구석에 숨겨두고는 무장을 했다. 석민은 VSS를 들었다.
“100미터도 안 될 것입니다.”
총성이 다시 울렸다. 석민과 아영은 총성이 울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진 곳인지라, 다행히 숨을 곳은 많았다.
석민은 반쯤 무너진 건물들 틈새를 따라 기어갔다. 그리곤 자신의 얼굴만 한 구멍이 뚫린 곳을 통해 반대편 밖을 보았다.
그 순간 연발의 총성이 마구 울렸다. 놀란 석민이 급히 고개를 숙였으나, 총이 향한 곳은 그가 있는 쪽이 아니었다.
총탄들이 바닥에 이리저리 박히거나 튕기면서 둔탁한 소리들이 났다.
그는 총구 섬광이 나는 쪽으로 시야를 확대했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남자가, 한 손으로 사방에 총을 쏘고 있었다. 거리는 대략 300미터쯤.
석민은 무전기의 마이크 단추를 눌렀다.
“울프 1, 확인했나?”
-확인
바로 답장이 왔다.
-습격을 당한 거 같은데, 이쪽에 시체가 보입니다.
그러나 석민이 있는 쪽에는 버려진 폐차가 많아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마구잡이로 난사하던 남자는 탄약이 다 되었는지, 탈칵거리며 빈총의 방아쇠를 눌러댔다. 이내 총을 집어 던진 남자는 미쳤는지, 아님 자포자기를 했는지 그 자리에서 웃고 서 있었다. 곧 한 발의 총성이 울리더니, 남자의 머리에서 피가 뿜어지며 쓰러졌다.
‘찾았다.’
석민의 양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 명뿐이지만 목표했던 헌터를 찾았다. 그자는 잿빛으로 칠한 헬멧을 쓰고, 위장복을 입고 있었으며, 소음기가 달린 M4 소총을 쥐고 있었다.
석민은 그자의 뒤통수를 조준한 채 대기했다. 그자 말고도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자는 그대로 총구를 주변에 돌리면서 살피고 있었다. 아마 주변에 적이 더 없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뒤쪽을 살피지 않는 걸 보니 뒤쪽은 방심하고 있거나, 아님 다른 동료들이 지켜주고 있는 거 같았다.
대략 10분 후, 그자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다른 곳에 숨어있던 자들도 일어났다. 그 숫자는 15명이나 되었다. 헌터들치곤 너무 많았다.
‘숫자가 너무 많아.’
-공격하지 말죠.
아영의 무전이 왔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지.”
그들은 자신들이 잡은 헌터들의 시신의 상체를 들어 올리더니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빌어먹을 약탈자 놈들이군.’
보기 좋지 못한 광경에 스코프로 응시하는 석민의 눈가 주름이 깊어졌다. 그런데, 군장이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았다.
‘착각인가.’
계속 그들의 행동을 살피는데, 뭔가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헌터들의 몸을 뒤져 자신들 것과 맞는 탄약은 챙겼지만, 헌터팀이 가지고 있던 드래곤하트는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약탈자들의 행동과 맞지 않았다.
‘약탈자들이 아닌가?’
-물러나죠.
“알았어.”
그들이 물러난 후, 아영의 무전이 들려왔다. 아영과 석민은 물건들을 챙겨 사가정역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그들이 가는 동안 그들과 마주치지 않아, 안전하게 상봉역까지 갈 수 있었다.
그들은 애써 경원의 아버지를 넣어두었던 기계실문을 외면한 채 경원의 집으로 향했다. 아영이 맡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
짐을 다 푼 직후 석민은 SVDK, 아영은 t-5000을 들고 봉화산을 올랐다.
봉화산은 시간이 오래 지나고 드라니트의 둥지로 사용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등산객들을 위해 계단과 등산로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들은 구 중랑구청 뒤쪽 공원을 가로질러 계단을 따라 주변을 경계하며 올랐다.
“여기에 군사시설이 있었나?”
녹이 슬어 읽기 힘든 경고판에 군사지역임이 표시되어 있었다.
“원래 산 정상 부근에 군용 통신탑인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것 말고도 구 57사단인가? 용마부대에서 만든 참호도 있고요. 이 지역을 장악하면 서울 중심부라던가, 망우역 같은 주요 철도선을 차지할 수 있다던데,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녀의 말대로 석민의 눈에 참호와 진지가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바스러진 모래주머니와 폐타이어로 만든 참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이 산엔 그 흔한 와이번이나 드레이크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여기도 다리를 지키던 괴수 같은 게 있나? 그래서 괴수들이 오지 못하는 건가?
그러나 그 참새마냥 흔하던 와이번마저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고 여겼다. 알렉산드라의 말처럼 괴수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건가.
정상은 조금 눌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드라니트의 거대한 몸에 짓눌리면서 화산의 화구마냥 움푹 파인 게 분명했다.
그는 거대한 화강암 암반을 딛고 올라선 후, 서쪽과 서남쪽을 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이곳 말고는 근방에 고지대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시커먼 중랑천 쪽 하천을 보았다. 다리들은 대부분 끊겨 있었지만, 철도교로 보이는 다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기 위해 근처 말라죽은 나무 위로 올라간 아영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아영은 굵은 나뭇가지에 엉덩이를 걸터앉은 채, 건빵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예, 중앙선 전철이네요. 경춘선 철도이기도 하구요. 저 철도를 이용해서 왕십리역 쪽으로 가면 되겠습니다.”
석민은 아영의 손끝 너머 흰 구름 사이에 가려진 곳을 보았다. 그곳엔 누구는 게이트, 누구는 태풍의 눈이라 불리는 것이 존재했다.
저 신비로운 태풍의 눈은 신기하게도 밑에서 보면 구름처럼 하얗게 보였지만, 위성사진 상으론 블랙홀마냥 검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왕십리로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이번엔 헌터들을 잡아야 했다.
“이제 찾아보지.”
길 확인이 끝나고,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헌터들을 찾았다. 종종 감염된 인간들이나 드레이크, 하늘을 나는 와이번들도 보였으나, 그놈들 외에 다른 헌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략 1시간이 지난 후 석민이 무전을 했다.
“뭐 보이는 거 있어?”
-아뇨.
“꽤 많은 헌터들이 강북으로 갔다고 아는데, 그 망할 드래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거면 얼마 없는 거 아니야?”
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석민도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처음엔 그저 날씨가 쌀쌀할 뿐이었는데, 바람까지 불어대자 체감기온이 뚝 떨어졌다. 석민은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
좀 더 감시하고 싶었으나, 순식간에 손발이 얼어갔다. 이대로는 헌터를 발견한다고 해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내려가자!”
석민은 아영이 답하기도 전에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아영 또한 나무에서 내려와 석민을 따라 산 밑으로 내려갔다. 숨을 쉴 때마다 찬 공기의 유입으로 폐가 얼어가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대로 아파트까지 내려갔다가는 얼어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석민은 산을 내려가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잠시 추위를 피해갈 만한 곳이 없을까 해서였다. 그때, 마침 과거 군인들이 파놓은 참호와 콘크리트로 만든 벙커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석민은 벙커 입구를 막아놓은 반쯤 썩은 나무문을 발로 차서 부숴버렸다.
“이쪽으로!”
쉽게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야전 벙커가 그러하듯, 막혀있다 뿐이지 바람은 숭숭 들어왔다.
석민은 부서진 나무문을 손으로 부러트렸다. 그리곤 땔감 대용으로 쌓아 올렸다.
“라이터, 라이터.”
석민이 라이터를 찾자 아영이 꺼내서 건넸다. 석민은 밖에 널려있는 바스러진 나뭇잎을 한 줌 쥐고 들어와 라이터 불에 붙였다. 곧 불이 붙기 시작하고, 연기가 피어났다. 둘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부채질을 하거나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꺾어 넣었다.
그러기를 1시간쯤. 바람이 조금씩 멎었고 불은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들은 불 가까이 바싹 붙어 앉아 손발을 녹였다.
“위험했어.”
그 말에 동의하듯 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손발을 주무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거 불빛이 주변에 보이지 않을까요?”
“불빛?”
일리 있는 아영의 말에 석민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확인해 볼게.”
화톳불 덕분에 따듯하긴 했으나,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한 내부가 텁텁하기도 해서, 마침 바깥 공기도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