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103화 (103/226)

[게이트 오브 서울 103화]

“12.7mm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탄자가 큰 편이라서 적당히 화력은 나오는 편이야. 사람은 물론이고, 괴수들도 충분히 효율성 있게 처리할 수 있어. 뭐, 더 단단한 상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부에 텅스텐 탄심도 넣어놨고. 그래도 이 이상 탄환을 견딜 수 있는 괴수면 차라리 RPG를 쏘는 게 나을 거야.”

“내가 한 번 쏴 봐도 되나?”

“뭐, 그러던가.”

새로운 마네킹이 준비되고, 얼마 안 가 박살 나 버렸다. 석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탄두 하나를 들어 보았다.

[9.3mm 작렬탄]

내구도:100%

품질:상

건스미스 김혜원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탄환, 공장에서 생산한 정식 생산품이 아니지만, 품질이 아주 좋다.

혜원은 정말 좋은 건스미스였다. 핸드메이드 탄약치고 아주 잘 만들었다. 물론 재생탄환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주 좋아. 고객대만족이야.”

그는 현금을 꺼내서 그녀에게 넘겼다. 혜원이 주머니에 돈을 챙기다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석민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석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래?”

“나에게 뭐 할 말은 없어?”

아직도 인가? 석민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 정말 그러지 마. 혹시 서울 가서 전화나 문자 안했다고 그러는 거면 좀 이해해 줘야지. 원래 서울 들어갈 땐 휴대폰 반입도 안 된다고.”

“서울에서 바로 온 건 아닐 거 아냐?”

“아니야.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 바로 너 보려고 온 거라고.”

진실을 말했는데도 혜원의 눈은 가늘어졌다. 의심하는 것이다.

‘젠장, 차라리 전장에서 싸우는 게 속 편하겠군.’

석민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입을 댓 발 내고 있던 혜원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구했어?”

“아니… 못 구했어.”

조금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혜원은 이해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살아남기 힘든 곳이니까.”

“오늘도 한잔할래?”

“너는 맨날 술 마시려고 나 만나러 오냐?”

석민은 속으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 나가지도 못하니까 어차피 할 게 없잖아.’

별로 좋지 못한 사연이지만 이 최우수 방콕족을 데리고 나갔으면 했다.

“그럼 외식?”

“외식?”

“그래, 근처에 피자집 있던데. 화덕 피자집이더라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한 판에 10만 원이나 받아 처먹는 곳이라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었지만, 일단 내부는 근사했기에 혹시나 하고 꺼낸 말이었다.

“……거기 가까워?”

“걸어서 한 15분?”

그 말에 혜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과거에 안 좋은 경험으로 극도로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지난번에 같이 나갔었잖아.”

“거기는 별로 안 머니까 그렇지.”

“걱정하지 마. 같이 가는데 뭔 일 있을까?”

“그런 말 했던 자들이 다 죽었지.”

“난 아니야.”

석민이 목소리가 조금 높고, 단호해졌다.

“난 다르다고.”

“오, 그러셔.”

혜원이 팔짱을 낀 채 삐뚜름하게 석민을 바라봤다.

사실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물론, 그가 정말 남들과 달랐다면 그의 여동생이나 가족이 안 죽었겠지만, 이런 사실까지 꺼낼 필욘 없었다.

그녀도 사람인 이상, 해를 보고 바람도 쐬고 싶었다. 스스로를 가둔 채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너무 비참한 삶 아닌가.

그의 말은 결국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줄 테니 나가자는 소리였고, 기뻤다.

‘짜식, 그래도 꽤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군.’

그녀가 석민을 대견해 하는 사이, 석민은 괜한 말을 해서 부끄러워 속으론 후회 중이었다.

“그래, 알았어. 준비할게. 좀만 기다려.”

“…알았어.”

콧노래를 부르며 씻으러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석민은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러댔다. 창피해서 얼굴에 홧홧한 김이라도 나는 거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기 1시간 30분. 그제야 그녀가 나왔다. 그녀의 ‘조금’엔 씻고 닦고 화장하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석민은 오늘에서야 알았다.

***

식당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주 메뉴인 피자가 쓰레기였다. 가스식 화덕이 푸른 불꽃을 피워내는 모양새는 겉보기만 번지르르했지, 그곳에서 구워져 나오는 피자는, 피자라기보다 토르띠야에 가까웠다.

시중에 파는 멕시코 빵을 피자라 속이는 꼴이었다. 심지어 양은 쥐꼬리보다 못했다.

‘시발, 사기꾼 놈들 같으니.’

이 수준이면 차라리 ‘더 로드’의 피자 안주가 더 맛있을 것이다.

그렇게 석민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는 와중, 눈앞에서 혜원은 맛나게 먹고 있었다.

그녀는 맥주 한 잔을 반주 삼아 3종류의 피자와 파스타 한 그릇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정말 잘 먹었어.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 올만 했어.”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님 내 체면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맛알못? 아무래도 후자인 듯싶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진심으로 행복아우라가 뿜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다행이네.”

“2차나 갈까? 2차는 내가 사지.”

“술 먹자는 거지?”

“어, 생맥주도 안 먹어본 지 오래되었거든.”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이참에 수원으로 가서 ‘더 로드’에 갈까?

“내가 아는 괜찮은 곳이 있는데, 그게 수원에 있거든? 택시 타고 한번 가볼 레?”

그리 멀리 나가고 싶지 않았던 혜원은 거절하려 했으나, 딱히 그럴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뭔 맥주를 먹으려고 거기까지 가냐? 맥주가 거기서 거기지.”

괜스레 혜원이 퉁명스레 대꾸했으나 석민은 일단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거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혜원의 손을 잡고 이끌며 식당 계산 후 택시를 잡았다.

‘더 로드’에 도착해 문을 열자, 역시나 주인장인 최용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용석이 따로 이야기 좀 하자고 눈짓하는 게 보였으나, 석민은 일단 혜원을 끌고 자리를 잡았다.

용석이 석민의 옆에 앉은 혜원을 보고 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석민은 괜히 이곳으로 왔나,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혜원은 즐거워하고 있었단 것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잘 먹고 잘 마시며 잘 웃고 말도 더 많아졌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무렵, 용석이 석민에게 다가왔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한데, 간단히 말할게.”

“아, 여기 주인장이죠? 맥주가 정말 맛있네요!”

반쯤 풀린 눈으로 혀가 꼬인 채 혜원은 빈 술잔을 들고 소리쳤다. 용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과 양해를 구한 후 석민의 옷깃을 살짝 잡고 카운터 쪽으로 그를 끌었다.

“형, 왜 그래요?”

“너, 마지막으로 내가 중계해준 의뢰 있잖아.”

“그런데요.”

그의 눈짓에 카운터에서 일을 보던 웨이터가 음악의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교단이 9x39mm 탄환을 사용하는 해결사들을 찾고 있어. 놈들이 네가 쓰는 탄환을 알아낸 것 같아.”

귀찮게 되었군. 그거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놈들이 형에게까지 왔나요?”

용석이 고개를 저었다. 석민은 역시, 라고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래서 그가 용석을 신뢰했다. 용석은 이렇게 일 처리가 확실한 남자였다.

“그렇지만, 아마 조만간 그놈들이 나한테로 올 거야.”

그 말에 석민은 사뭇 진지하게 표정이 변했다.

“당분간은 그 탄환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 말고도 널 찾을 방법은 많으니까. 하는 말이야. 너 전에 살던 집을 그놈들이 이미 수색한 것은 아냐?”

거기까지 갔었나? 석민은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안전가옥으로 가지 않았으면 위험했단 소리였으니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사례의 의미로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주었다. 그것을 받아 지갑에 넣은 용석은 그것만으로 안심이 안 되는 눈치였다.

“만약을 대비해서 말하는 건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더 낮추고선 석민의 귀에 바짝 대고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연락할 테니까, 그땐 진짜로 잠적을 하던가해.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

갑자기 왜 이렇게 자신을 챙기지? 이 아저씨도 술을 마셨나? 석민은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용석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진짜 술 마셨냐고 묻진 못했다. 대신 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제가 찾아갈게요.”

그 말에 용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맙기는 한데 그럴 필요는 없을 거야. 여하튼 조심해. 사방에 적이 있어. 그 사이비들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야.”

“알았어요.”

자리로 돌아온 석민은 인사불성이 된 혜원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지.”

3,000cc짜리 생맥주를 2번 마셨으니 취할 만도 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맥주에 이렇게 약했나? 양주 마실 때는 이렇게 취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계산을 한 후 혜원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9시. 그리 늦은 밤은 아닌데, 날씨는 아주 매서웠다.

“야, 춥다.”

석민이 시선을 내려 혜원을 쳐다봤다. 뭔가 그녀의 발음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완전 꽐라가 되었다기엔 미묘한 부자연스러움.

평소 눈치 없다 욕먹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혜원의 의도가 명확히 보여서 웃음이 났다.

“그러냐? 하긴, 바람도 세차네.”

“좀 쉬었다 갈까?”

자신을 또렷한 눈으로 마주 보는 혜원을 보니 더 확실해졌다.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뭐 그곳에 박혀있어도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사고.”

석민이 편의점을 가리키며 미소 짓자 혜원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커피 사 올게. 조금 기다려.”

석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편의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새끼, 이번엔 어떠려나.’

편의점에 들어가는 석민의 뒷모습을 혜원은 지켜보았다. 그녀는 역시 취하지는 않았다.

***

“즐거운 일 있었나 보군요?”

“음, 그랬어.”

이틀 뒤 서울로 들어온 석민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발라크라바를 쓰고 있었는데도 얼굴에 여유가 넘치고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아영의 기분은 별로 좋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헌터들 사냥 성과가 별로라고 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천사를 찾기보다 헌터들 사냥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터였다.

“이번에는 말리나에 들리지 않고, 바로 강북으로 갔으면 하는데 괜찮나요?”

“그러던가.”

석민은 딴생각에 빠져 건성으로 답했다. 아영은 그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으나, 굳이 작업 시작 전부터 그의 기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그가 본래 업무에 집중할 때까지 기다렸다.

석민은 이번에 작정하고 헌터들을 처리하기 위해 ak-107과 SVDK, VSS 거기다 10발의 러시아제 방어용 수류탄 등을 챙겨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