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02화]
울적한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고, 그 모습에 알렉산드라도 미소를 지었다.
너무 독한 것만 연이어 들이켰다 생각했는지, 그들은 맥주를 원했고, 알렉산드라는 양갈비구이까지 대접했다.
그들은 러시아어와 한국어,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고,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알렉산드라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을 꺼냈고, 석민과 아영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깔깔거렸다. 아마 안 좋은 기억을 덮어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렇게 오늘의 일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
만족스러운 포식이 끝나고 방에 들어간 그들은 전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헌팅 트로피.”
창이 뜨면서 역겨운 머리들이 나오자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드라니트의 머리는 다른 머리들의 크기에 맞춰 작게 축소된 채 걸려 있었다.
그나마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드래곤의 머리라서 그런지, 다른 머리들에 비해 부담스럽진 않았다.
[드래곤 드라니트]
탐욕스럽고, 즐거움을 위해 살육과 포식을 하는 드래곤은 결국 자신이 사는 세계를 멸망시켰다.
끝없이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은 탐욕으로 물든 그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 세계로 넘어왔으나, 미래에 이어질 향연과 포식을 위해 자신의 동족들을 기다려왔다.
“어, 음….”
설명글에 석민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고, 아영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저 문 너머에 이런 놈이 좀 많다는 소리 같은데….”
그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아영의 안색을 살폈다.
“우리가 사명을 이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겠죠.”
아영이 말했다.
“저런 게 넘어와서는 안 돼요.”
그 순간 아영은 잠깐 숨을 들이마셨다. 저런 것이 넘어오지 못 하게 하려면 게이트를 닫아야 한다.
그런데 문을 닫아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국가의 미래 에너지 경제를 지탱해 줄 드래곤하트를 수급할 수 없게 되지 않나?
‘아니야. 사명이 문을 닫는 것이라면….’
그녀는 애써 그것을 부정했다.
문을 닫으면 좋긴 할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가리는 구름도 사라질 것이고 이 지긋지긋한 추위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대한민국은 어떡하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지역총생산량(GRDP)이 370조 원에 육박했고, 경기도도 400조 원이었다.
대한민국의 중심지인 만큼 수많은 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본사나 한국지사가 몰려있었으며 각종 기관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었다.
그게 다 망가졌고, 경제는 추락했다.
6.25전쟁 때는 그나마 냉전이란 이름 아래 미국 같은 여러 강대국들의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미래의 신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하트의 수급마저 사라져 버리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다시 부활은 할 수나 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나라는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부터 가난한 나라였다면 몰라도,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을 거듭해가는 나라였다. 그러나 사태로 나라는 무너졌다. 이는 언론에서 매일 말하던 경제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작은 번영을 이룩한 나라는 과거의 영화로 가난을 더욱 비통하게 여기는 것이다.
‘아니겠지.’
그녀는 사명에 대해 깊게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이 나라를 더 좋게 만들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음 한편이 계속 거슬렸으나, 애써 부정했다.
‘아직 정확하게 사명이 무엇인지 밝혀지진 않았잖아.’
그녀는 애써 그리 자신의 마음을 추슬렀다.
***
“그래서, 놈을 잡았나?”
“아니, 아닙니다.”
대답하는 김지형은 한숨을 쉬었다.
잠깐 동안 다른 일이 벌어져 수색을 중단하긴 했지만, 교단은 여전히 석민을-정확히는 교단인들을 죽인 9x39mm 탄환을 쓰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김지형은 최선을 다해 주변을 뒤졌다. 박재만의 무능으로 발발한 일이기에, 자신이 범인을 찾아낸다면 박재만을 치고 교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도 전역을 뒤져도 9x39mm 탄환을 쓰는 사람은 찾지 못했다. 무기상들을 족치고, 헌터 해결사들에게 수소문도 해보고, 흥신소나 심부름센터까지 찾아가 보았으나, 그나마 찾은 사람들도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뭐, 그렇다고 그들을 가만히 둔 건 아니었다. 교단의 무력이 알려져선 안 되니까.
실제로 몇 놈을 제거해도 전과 같은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실제로 범인을 이미 잡은 게 아닐까 판단되기까지 했다. 실제로 교구장 박재만이 그리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네 무능이 감춰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 말에 부동자세를 취하는 지형의 주먹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박재만도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에 새로 보낸 강북지역의 대원들 중 1개 분대의 소식이 두절되었는데, 다른 부대의 통신을 통해 그들로 추정되는 불타버린 시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드라니트가 화풀이로 태워버리고 잡아먹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천사가 내려준 지엄한 사명, 그리고 교주가 준 마지막 기회, 박재만도 매우 위험했다. 그는 손가락 깍지를 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불안 증세를 보였다.
“이렇게 하지. 처리한 놈들 중에 적당한 놈 하나 가지고 그놈이라고 내게. 진술은 종이로 알아서 쓰고 말이야. 난 더 이상 이 일을 신경 쓸 수 없네.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잘 알겠나?”
“알겠습니다.”
“교주님께서 점점 조급해지고 있어.”
박재만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더니, 이내 담뱃갑을 열어젖혔다. 그리곤 김지형을 향해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한 개비씩 입에 문 그들 때문에 이내 사무실엔 연기로 차기 시작했다. 박재만은 가늘게 뜬 눈으로 지형을 지긋이 보았다. 지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새끼가, 이번에 어느 정도 정신 좀 차렸겠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머지않아 성전이 벌어질 것이야. 그때가 된다면 이 일은 자연스레 묻힐 것이야. 그러니까. 딴생각하지 말아 알겠어?”
“예.”
풀 죽어 보이는 김지형의 모습에 박재만도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지형이 자신의 자리를 노린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렇게 기죽은 모습 보니,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 것 같았다.
‘뭐, 다시 노리려고 한다면, 그때쯤에는 성전이 끝나있을 거니까.’
물론 이 일이 끝난다 해도 위기를 넘겼다 보긴 어려웠다.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분대 하나가 전멸한단 말인가? 교주께 보고하진 않았지만, 분명 귀에 들어가면 주도권을 다른 교구장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교구장들이 일개 성남시 교구목사에 불과한 자신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편애한다고 뒷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무능의 낙인이 찍히면 곤란했다. 특히 그는 교회 공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거나 개인 향락에 이용했기에 더 그랬다.
그리고 교주도 그걸 알고 있으리라.
다만 자신을 내버려 두는 건, 유능하고 이용할 데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을 넘지 않는 자신의 수완도 한몫했지만.
그런 와중에 무능하다고 평가가 박히면 교주도 더 이상 안 봐주겠지.
어느새 담배는 꽁초만 남았다. 그는 재떨이에 비비며 이번엔 다른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든 무기를 수입하고 있으나, 생각보다 모이지 않았다. 물론 대규모로 구하려면 못 구할 건 아니지만, 자칫하다가는 정부에서 눈치 챌 것이 분명했다.
1만의 성도들이 쓸 무기와 탄약, 예비물품, 군장이나 여러 장비들을 은밀히 준비하는 건 매우 방대하면서도 까다로운 업무였다.
교주의 조급으로 인해 차근차근 준비하던 일정이 확 앞당겨져 버렸다.
“다음으로 해줄 일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강북에 있는 적을 처단하기 위해 출정한 정탐군들이 새로운 장비를 주문했는데, 일부 물품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아. 자네가 조금 구해줄 수 있나? 난 지금 다른 일로 바쁘네.”
“알겠습니다.”
사무장인 자신에게 그리 어려울 것 없단 계산에 지형은 빠르게 대답했다. 겉으론 매우 비굴해 보였으나, 속으론 그가 내린 명령을 따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딴 자가 더 이상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찾아내서 반드시 네놈을….’
김지형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교구장실을 나온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녹음된 것을 확인했다. 제대로 녹음이 되었다.
‘교주를 기만한 죄가 추가되면 어떻게 될지 뻔 하겠지.’
그는 작은 실마리를 잡은 상태였다. 바로 해결사를 원하는 사람에게 연결시켜주는 소개꾼이었다.
소개꾼을 찾아서 족쳐본다면 반드시 그가 찾는 사람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럿 소개꾼의 정보를 모아두었고, 그들과 접촉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바로 찾을 수 있겠지.’
작렬탄
혜원이 레버를 내렸다. 레버가 내려가기 무섭게 총탄재생기의 기기가 움직이면서 화약과 탄두를 채워 넣었다.
그것을 꺼내 탄피의 표면에 눈을 대고 확인에 들어갔다. 공장에서 받아온 탄피의 노란 황동 표면이 반짝거렸다. 혜원은 한숨을 쉬며, 그것을 옆에 상자에 넣어두었다. 이미 수백 번을 반복한 이 행위는 재미없는 단순 노가다일 뿐이었다.
“아 씨, 괜히 했나?”
하지만 근래에 손님들이 물건을 사는 추세가 줄어드는 중이라,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수지에 맞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 며칠이지? 그녀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석민을 마지막으로 본 지 5일 정도 지났다. 문자나 전화로 생사확인이라도 해달라고 했건만, 그날 이후 연락은커녕 얼굴도 못 보고 있었다.
“쌍놈의 새끼, 언제 오는 거야. 에이씨.”
자신이 먼저 전화해도 되건만, 자존심이 막았다. 너무 쉬운 여자로 보이는 게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의 컴퓨터에서 전자음이 울리더니 화면이 떠올랐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녀는 궐련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새끼, 와서 뭐라고 하려나? 양심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하겠지. 혜원은 그가 문을 열기 전에 대충 묶은 머리를 빠르게 정리하고, 옷매무새도 점검했다. 그래봤자 검댕이 잔뜩 묻은, 작업할 때 입는 커버올인지라 그다지 변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칸막이 문이 열리면서 석민의 모습이 나타났다. 혜원은 평소처럼 시크하게 입을 열었다.
“왔냐?”
“탄환은 다 만들었어?”
쌍놈의 새끼, 그럴 줄 알았다.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 혜원은 인상을 가득 찌푸렸다.
“하, 시발. 여전히 눈치 없는 새끼네.”
“뭐야, 왜 보자마자 욕부터 시작해.”
“아, 됐고, 그래 탄환 말이지? 있어. 들어와, 들어와.”
짜증스런 대꾸에 석민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
총성이 울리기 무섭게 표적으로 있던 마네킹이 폭발의 화염에 휘말려 박살 나 버렸다. 사방으로 파편들이 튀어대는 와중에 폭음이 실내를 쩌렁쩌렁하게 채웠다.
잠시 후 석민의 휘파람 소리가 났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굉장한데?”
“그치? 죽이지?”
혜원이 귀마개를 벗고 SVDK의 장전손잡이를 당겨서 약실에 탄환이 있는지 확인한 후 조정간을 안전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