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01화]
키가 한 3미터쯤 되는 듯싶었고, 명백한 사람의 얼굴이었지만, 얼굴만으론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석민은 총을 쥐고 천사에게 다가갔다. 천사는 석민이 가까이 오는데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건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그에게 남은 탄환이 없었다.
‘거짓된 전령.’
천사의 창이 움직였다. 그 모습에 석민은 걸음을 멈추고 경계를 취했는데, 천사가 창을 거꾸로 잡는 것이 아닌가?
‘적대행위를 안 한다는 건가?’
그러더니 그 천사는 손짓을 했다.
마치 사람처럼 오라는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석민은 경계를 풀진 않았지만, 천사처럼 비적대 한다는 뜻으로 총을 건슬링으로 어깨에 멘 후 천천히 다가갔다.
“내 말을 알아듣나?”
그가 먼저 입을 열었지만, 그 천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천사가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것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아닌가? 뭐지? 왠지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석민은 머리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뭐지?? 천사가 인상을 찌푸렸고, 약간 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뭐랄까 집중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왜 내 머리가 더 아픈 거지?
“무슨 짓을?”
석민은 알 수 없는 현기증과 두통으로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그때 고성과 함께 총성이 울렸다. 아영이었다. 아영이 자신의 마카로프 권총을 천사에게 쏘면서 접근했다.
갑작스런 총격에 천사는 자신의 날개로 몸을 가렸으나, 몸을 움찔거린 것으로 보아, 어딘가 맞은 것 같았다.
천사는 그대로 하늘 높이 올라가더니, 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뭐하는 거야? 왜 쏜 거야?”
석민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뭔가 대화를 하려는 것 같았다고.”
“제정신으로 말하는 겁니까? 제가 보기엔 천사가 노려보니까 석민 씨가 쓰러지던데요?! 저게 대화를 하려는 것이었으면 왜 여태껏 접촉했던 사람들이 죽어 나갔던 거죠?”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갑작스런 비난에 화가 난 아영이 언성을 높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석민은 엄청난 두통을 느꼈으니까.
“죽이려고 했으면 진즉에 죽였을 거야. 비적대적인 행위를 하면서 오라고 제스처까지 취했단 말이야.”
그 말에 어이가 없어진 아영이 대답하려는 순간, 날갯짓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근처에 무너진 건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시간이 흘러도 괴물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의아해진 석민이 파편의 틈새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을 차지한 것은 괴물이 아닌 천사들이었다.
‘6명.’
천사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아영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까마귀 떼처럼 주변을 빙빙 도는 그 천사들을 지켜보았다. 천사들은 무언가를 찾는 듯싶었지만, 찾는 것이 보이지 않는지 이내 북쪽으로 날아갔다.
안전이 확인되자 석민과 아영은 건물에서 기어 나왔다.
‘뭘 찾고 있었지?’
드래곤? 아니다. 드래곤 시체를 못 찾을 리가, 그 천사를 도우러 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서쪽으로 갔다.
‘동료를 찾고 있는 건가?’
석민이 천사에 대해서 골몰할 때, 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무모했어요. 만약에 그거 드래곤하트에 박히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그 말에 석민은 뒷머리를 긁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천사를 도울 생각만 가득 찼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당황한 것은 사태 초기 이후로 처음이야. 그거 알아? 우리 상봉역 구석에서 서로 끌어안고 비명을 지르면서 질질 짰던 거.”
그 말에 아영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돌렸다. 생각하기도 싫은 듯했다.
“천사는 서쪽과 북쪽으로 날아갔어.”
석민이 말했다. 원래의 목적과 맞게 그것들을 추적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했기에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돌아가자. 말리나로 가서, 샤샤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그전에 저 드래곤하트부터 채취하구요.”
두 쪽이 난 드래곤하트는 수박 2통 정도의 크기였다. 그들로서는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드래곤의 드래곤하트를 채취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었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남고 드래곤하트까지 채취한 그들은 잠깐 안도와 즐거움을 느꼈다가, 이내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경원과 경원 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오롯이 석민과 아영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통솔 하에 그들을 인도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기에 그에 따른 죄책감이 막대했다.
또 그토록 찾던 천사를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어서 석민은 더 착잡했다.
그래도 일단 그들이 인간에게 아주 적대적이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 같단 점에서 약간 기분이 나아졌다. 분명 대화는 통하지 않고, 석민은 머리만 아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석민이 본 천사는, 강동에서 본 천사 빼고 총 7명. 하지만, 석민은 그게 전부라 생각지 않았다. 분명 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몇 명이나 더 있는 거지?
‘일단 일행들이 북쪽으로 갔단 것은 북쪽에 있다는 뜻 일 텐데.’
그러면 북쪽으로 가봐야 하나? 그는 자신이 서울수복작전 때 있었던, 서울 북부지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머릿속은 샤샤로 가득 찼다. 전투드론 1대로 도와달라고 했는데, 2대로 도와주었고 심지어 1대는 파괴까지 되었으니, 그에 따른 청구서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니지. 애초에 1대를 요구했는데 2대는 꺼낸 건 그쪽 잘못이잖아.’
솔직히 샤샤는 가까이하고 싶은 여자가 아니었다.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대놓고 자신에게 접근했다. 부리는 부하들도 보건데,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분명 엄청난 것을 요구해올 것이다.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일단 도와주려고 쏜 미사일 값 만해도 억 단위일 텐데.’
앞으로의 걱정이 태산이었다.
***
석민이 어깨를 짓누르는 걱정을 들고 호텔 말리나에 도착했을 때, 알렉산드라는 호텔 정문에서부터 등불을 들고서 석민과 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터석에 등을 기대고서 앉아있던 그녀는 계단을 통해 나온 석민과 아영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사람은 구했어?”
주변을 살피는 그녀의 눈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당연히 석민과 아영이 구해올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대답하는 석민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듯, 축 가라앉아 있었다. 아영 또한 울적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그 대답만으로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텔 안으로 끌어들였다.
“일단 들어가자, 얼른.”
그녀는 그들을 몰아내듯 라운지로 안내하고는 미국산 담배와 가장 비싼 브랜디 병을 들고 왔다.
“오늘은 내가 살게. 크게 마음에 두지 마. 이미 익숙한 감정이잖아. 어쩔 수 없었어. 너희 잘못 아니야.”
브랜디 뚜껑을 따고는 브랜디 병 끝에 코를 대고 향기를 한 번 맡은 후 그들의 잔에 따라주었다.
“원래 사람 구하는 게 죽이는 것보다 어렵잖아. 한잔해, 한잔. 너희는 특수부대도 아니잖아.”
“난 원래 그런 쪽인데…….”
아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석민은 듣지 못한 듯했지만, 알렉산드라는 그 사실을 듣고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아영은 술잔을 바라보더니, 원샷하고는 연달아 잔을 채웠다. 아영이 술병을 놓기 무섭게 석민 또한 벌써 비어버린 자신의 잔을 채웠다.
뜨겁다 못해 탈 것 같은 알코올 맛이 식도를 따라 내려가자 그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빈속이라 그런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알렉산드라는 이게 석민과 좀 더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며 직접 술병을 잡아 그들의 잔을 계속 채워주었다.
“고마워.”
알렉산드라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석민을 바라보는 동안, 석민은 아영을 걱정스런 눈길로 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조금 우울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자신은 할 만큼 했고, 금방 털어내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아영은 자신의 직업군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국심만큼 동정심도 넘쳤다.
그들은 거의 5분 동안 말없이 술만 마셨다. 그러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영이었다.
“제 잘못입니다. 괜히 구하자고 해서…….”
석민은 고개를 저으며 보드카 병의 마지막잔을 채웠다. 알렉산드라는 석민이 탈탈 털어 잔을 채우는 것을 보고서 새로운 병을 꺼내러 갔다.
“아니야, 나도 그러길 바랐으니까. 솔직히 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은 위험했어. 네 말대로 올겨울을 넘기기도 힘들었을 거야. 그저, 어떻게 안 것인지 모르겠지만, 드래곤에게만 걸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거 아세요?”
“뭐가?”
아영은 잠시 잔을 들고서 말하는 걸 주저하더니 입 안에 브랜디를 털어 넣었다.
“…드래곤이 한 마리 더 있어요.”
침묵이 감돌았다. 그사이 알렉산드라는 바텐더에게 무언가 언질을 준 후 냉장고에서 새로운 보드카를 가지고 왔다.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나타난 드래곤이 있어요. 그것은 검은 비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듣기로는 그것이 나타나기 무섭게 감염자들이 나타났죠.”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잡은 그 드래곤, 이름이 드라카르? 아니지 드라니트였나. 그래, 드라니트. 그것도 힘들었는데, 그 드래곤은 어떠려나?
“그러면, 그건 어디 있지?”
“몰라요. 정부쪽도 모를 거예요. 2차 수복작전 이후로는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석민은 평생 그것과 마주치지 않길 바랐다. 잔을 입 안으로 털어 넣은 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원래 하던 일을 하죠. 드래곤도 죽었으니 헌터들이 더 많이 강북으로 갈 겁니다. 근래에 잡은 헌터들이 없어서 대통령님이 의심하고 있어요.”
“그래야지.”
아영은 더 말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안 좋은 소리들이 이어져봤자 분위기만 가라앉을 것 같아서였다.
그 순간, 알렉산드라는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다.
“자, 자. 분위기가 잠겼잖아. 이건 너희들답지 못해. 내가 좋은 거 준비했어.”
무슨? 의문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야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바에 설치된 간이 공연장에 올라가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러시아 노래여서 아영은 알아듣지 못했으나, 목소리는 부드럽고, 노래는 근사했다.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따스한 음색과 조화로운 반주는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그렇게 멍하니 음악을 감상하고 있을 때, 바에 있던 어떤 남자가 야유를 보냈다.
“집어치워! 교회음악 같잖아!”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이상 떠들지 못했다. 알렉산드라의 눈짓에 경비 2명이 다가가 그를 제지했기 때문이었다.
술에 취한 인간은 ‘술에 취하면 개가 된다.’는 완벽한 예시를 보여주듯 꽥꽥 소란을 피웠는데,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누어지자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지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해졌다.
“미안합니다.”
그 비굴한 모습에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석민과 아영은 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