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00화]
화면을 통해 석민의 모습을 지켜본 알렉산드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추가명령을 내렸다.
“좋아, 고블린6는 철수.”
알렉산드라의 말에 오퍼레이터가 눈을 치떴다.
“계속 지켜보지 않을 것입니까?”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탄약도 없는데, 이 이상 볼 필요는 없지. 드론을 철수시키고 탄약 재장전에 들어간다. 이걸로 되었어. 이미 저 타깃한테 채권은 이미 두둑하게 졌으니까. 이 이상할 필요는 없어.”
그녀의 말에 오퍼레이터들은 묵묵히 명령에 따랐다.
***
‘드론이 가네.’
주변에 날아다니던 드론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석민은 될 수 있으면 남아있었으면 좋을 텐데, 생각했다. 석민은 드론이 완전히 철수한 후 천천히 드래곤을 향해 갔다.
‘정말, 죽은 건가?’
석민은 드래곤의 머리 가까이 다가갔다. 거리는 대략 10미터, 예전에 그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티라노사우르스의 머리뼈보다 2배, 3배쯤은 더 커 보였다.
드래곤의 눈은 질끈 감겨 있었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죽은 건가? 뒤에서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며 뭔가 생각하던 아영은 퀘스트 창을 불렀고, 이내 그녀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더니, 다급하게 외쳤다.
“녀석을 쏘세요!”
바짝 긴장한 채 다가가던 석민은, 뒤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영은 쏘아보았다.
“뭐?”
“녀석을 쏘라구요!”
“왜? 확인사살하게?”
“살아있어요! 우리가 받은 퀘스트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고요!”
아, 잊고 있었다. 너무 긴장을 하다 보니 그런 간단한 확인도 안 하고 말았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순식간에 식은땀이 났다.
드래곤과 그의 사이는 채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시발.”
그가 다시 드라니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파충류의 길쭉한 세로동공이 석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영악한 괴수는 석민이 접근하길 기다렸던 것이다. 드라니트의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기 무섭게 석민은 그 목구멍을 노리고 RPG를 쏘았다.
탄두는 그대로 목구멍 안으로 들어갔지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가까웠던 게 화근이었는지, 신관이 작동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했으나,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젠장.’
30센티는 더 되어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발사관을 드래곤의 머리에 던졌지만, 그것은 바다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석민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강한 드라니트의 비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 뿐이었다.
‘죽는 건가.’
절망의 그림자가 석민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는 피하려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가정역에서 아영이 권총을 쏘며, 석민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드라니트에게 그딴 딱총은 고통의 범주에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흉측할 정도로 망가진 신체는 다시 아물어가고 있었다.
머리가 석민을 덮치려는 순간, 날개소리가 들려왔다. 드라니트에겐 매우 익숙한 날개소리였다.
드라니트가 고개를 올린 순간, 거대한 창이 그것의 주둥이에 내리 찍혔다.
“뭐?”
놀란 석민은 고개를 올렸다. 천사였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처음 보는 천사였다.
분명 영상에서 본 천사들이나, 예전 강동에서 만났던 천사와 비슷하게, 날개 1쌍에 푸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의복이나 갑옷, 투구의 디자인들이 비슷했으나, 옷이 해졌다든지, 갑주의 일부분이 일그러지고 상처가 나 있을 것을 보아, 꽤나 격전을 거쳐 온 것처럼 보였다.
천사가 내리찍은 창에 주둥이를 꿰인 드래곤은 비명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버둥거렸으나, 상처 났던 몸은 이미 거의 회복된 상태여서 앞발을 움직여 창을 쳐내려 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석민은 등을 돌려 아영 쪽으로 도망쳤다.
“괜찮아요?”
“난 괜찮아.”
석민은 그녀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천사는 드래곤에게서 창을 뽑은 후, 곧바로 드래곤이 하늘로 도망가지 못하게 창을 휘둘러 한쪽 날개를 잘라버렸다.
검처럼 양날을 가진 기다란 창은 분명 천사의 덩치로 휘두른다면 어마 무시한 절단력을 가질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비늘로 덮인 드래곤의 날개가 무 썰리듯 잘려 나가는 건 좀 이상해 보였다.
날개가 잘린 드라니트는 날아오르지 못한 채 입에서 화염만 뿜어댔으나, 천사의 날갯짓이 더 빨랐다.
불길을 피한 천사는 높은 하늘에서 창을 쭉 뻗은 채, 수직으로 낙하하면서 다시 드라니트를 찌르려고 했다.
그 순간, 드라니트는 전투드론을 제거했던 레이저에 가까운 브레스를 뿜었다.
천사의 몸에 다급하게 푸르스름한 막이 생기면서 레이저를 막아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지 낙하하던 천사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서 레이저를 피했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천사는 전의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 주변에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같은 아름다운 불빛들이 생겨나더니, 유성우처럼 드래곤을 향해 작렬했다.
드래곤과 그 주변 대지에 작렬한 불빛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불덩이 중에 하나가 남아있던 드래곤의 박쥐같은 날개의 피막에 크게 구멍내 버렸다.
드래곤은 머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고통의 함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드래곤의 놀라온 회복능력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터져나간 상처 자리는 마치 새싹이 돋아나는 장면을 빨리 감기해서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아물었다.
‘좀비 같은 놈.’
그 회복능력에 석민은 기가 질려버렸다. 석민과 아영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들은 행동에 들어갔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선 저 둘 중 승자가 누가 될지 끝까지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이 틈에 가자.”
석민이 말했다. 두 사람은 싸우고 있는 그것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동 자전거를 타고 터널 쪽으로 달렸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본 드래곤이 막으려고 했으나, 천사가 다시 공격을 하였고, 결국 그들을 막지 못한 채 다시 천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달리면서 석민은 천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천사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주친 눈동자에선 당황이 내비치는 듯했다. 가만, 당황했다?
‘우리를 구하고 같이 싸울 생각을 했던 건가? 뭘 믿고?’
그러는 사이 그들은 터널 입구로 들어섰다. 석민은 전동자전거를 멈추고 몸을 돌려 천사와 드래곤을 보았다. 엄청난 격전이었고, 그가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 천사가 신경 쓰였다. 천사와 드래곤이 호각으로 싸우는 것 같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천사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정도로 굼떠지고 있었다.
드래곤도 체력의 한계가 왔는지 회복이 느려지고, 군데군데 비늘도 빠져있었다.
휘두르는 드래곤의 앞발공격을 몸을 숙여 피한 천사는 날갯짓 한 번에 잠시 크게 물러나는가 싶더니, 창에 푸른빛의 전기를 튀게 만들었다.
덮쳐오는 드래곤의 앞발을 향해 천사는 창을 찔러 올렸다. 아주 살짝 찔린 것 같았는데, 드래곤은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드래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천사는 지상으로 내려와 정확하게 가슴, 가장 비늘이 크고 두꺼워 보이는 그곳을 노리고 창을 뻗었다.
창이 비늘에 찍히고는 뚫고 들어가려는 찰라, 드래곤이 앞발로 창날을 후려쳤다. 그러나 창과 함께 비늘도 떨어져 나갔고, 그곳에서 황금색 덩어리가 보였다. 저기가 약점, 즉 드래곤하트가 있는 곳이 분명했다.
아니, 저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단 말인가? 석민은 놀란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다가 튕겨 나간 천사를 살폈다.
이미 힘을 다 소진한 것 같아 보였다.
심지어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천사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고,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뒷걸음질만 쳤다. 이대로 있다간 곧 드래곤에게 잡힐 것이다.
‘구해야 해.’
그의 내면의 이성이 말했다.
천사가 그를 구해주었으니, 자신도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석민은 떨리는 손으로 혜원에게서 얻은 총검을 꺼내 SVDK에 끼웠다.
원래는 드레이크나 상대하려고 산 물건이었다. 드래곤의 비늘 따윈 뚫리지 않겠지만, 비늘이 벗겨진 드래곤하트가 눈에 보였다. 비늘이 없다면, 저것만 없애버리면…. 게다가 지금은 회복력도 눈에 띄게 더뎌진 상태였다.
석민은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가방과 군장을 전부 풀고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에서 아영이 뭐라 부르는 것 같았지만, 석민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천사를 노려보던 드라니트가 석민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늘게 뜨인 파충류의 눈은 마치 석민을 가소롭게 보는 듯했다. 석민은 두려움에 굳어버릴 것 같은 발에 힘을 주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드라니트는 석민을 위협을 하듯 날개를 활짝 펴 포효를 내뱉은 후, 불을 뿜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때, 비늘 안에 박힌 드래곤하트가 크게 빛을 냈다.
석민은 자세를 낮게 하여 달려왔다. 그는 애초에 드래곤하트를 근접에서 찌를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엔 거리도 너무 멀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와 드래곤의 사이가 대략 50미터쯤 되었을 때, 석민은 그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서 던졌다.
스탯 체력 4 덕분인지 몰라도 그 무거운 총은 작살처럼 그대로 날아갔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드래곤은 브레스를 뿜기 위해 가슴을 더욱 활짝 폈다.
그 덕에 총검은 정확하게 드래곤하트에 박혔다. 어찌나 세게 박혔는지 총검의 날이 전부 안에 들어갔다.
드래곤하트는 정확하게 2갈래로 쪼개졌고 쪼개진 드래곤하트에서 황금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드래곤은 그 상황을 모르는 듯, 불을 뿜어내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렸으나, 입에선 불길 대신 컥컥거리는 신음소리만이 나왔다.
그렇게 무겁게 늘어지는 몸에 가슴에 큰 통증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본 드래곤은 자신의 몸에 박힌 총검을 빼내고자 주둥이와 손으로 발버둥 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발악을 하듯 주변의 건물을 쳐내고 괴성을 질러대던 드라니트는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한 눈으로 석민을 노려보았다.
석민은 혹시 자기가 잘못 알고 던진 게 아닌가 조급함이 들 정도로 두려웠고 그의 심장이 차갑게 굳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의 몸은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마침내 쿵-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드라니트의 신체가 무너져 내렸고, 지면에 쓰러졌다.
주변에 재와 먼지가 커다랗게 일어났다.
회색빛의 비늘이 하얗게 물들어갔고 일부 비늘은 경도가 약한 돌 마냥 바스러지더니 드래곤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해치운 건가?”
석민의 질문에 답을 하듯 눈앞에서 알림글이 나타났다.
[드래곤 드라니트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겨우 레벨이 2개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웠는데, 겨우 이것만 준단 말인가? 짜증과 함께 그래도 잡은 것이 어디인가, 싶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석민은 드래곤의 몸에서 SVDK를 빼내었다. 그리곤 드래곤의 몸을 총으로 툭툭 두드려 보았다.
그것은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드래곤의 드래곤하트는 총검에 박혀 반으로 쪼개지면서 빛을 잃었지만, 헌신자 괴수 때처럼 사라지진 않았다. 그는 그것을 챙길까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사이 천사도 일어나서 자신이 놓쳤던 창을 도로 주워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