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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99화 (99/226)

[게이트 오브 서울 99화]

용사냥

그것을 전해들은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남은 탄두라곤 대전차탄 1발, 열압력탄두가 1발이 전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넉넉하게 챙겨오는 건데.”

석민과 아영은 즉시 무장을 점검했다.

석민은 SVDK와 RPG-7, 아영은 AKS-74U와 T-5000이였다.

탄약은 충분했지만, 아마 드래곤에겐 RPG-7 외에 다른 무기들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뭐 이딴 퀘스트가 다 있어? 혹시 다른 폭발물은 없고?”

아영이 주머니에서 수류탄들을 꺼냈다.

총 6발이었다. 그나마 없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수류탄은 유효한 무기가 전혀 없는 아영이 전부 쓰기로 했다.

저런 상대로 퀘스트라니, 석민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했다.

온갖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너무나 현실성 없는 생각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0분 정도 시간이 흘러 그들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당장 싸우는 것은 무리야.”

“그럼, 도망이라도 치게요?”

도망? 어디로? 석민이 되물으려고 했지만, 아영이 답을 들으려고 물은 건 아니라 생각됐다.

한강 이남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목은 여기가 유일했고, 그 외엔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 강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경원의 집으로 갈까?’

상봉역이나 그 다음 역인 중화역을 통한다면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다.

보급품도 있을 테니 어느 정돈 버티겠지만, 그게 떨어지면? 결국 파멸의 예정 시기를 연장하는 것일 뿐, 해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싸우자니, 지난번 헌신자 괴수처럼 약점을 알지도 못했다.

그는 반쯤 무너진 담벼락의 아주 작은 구멍으로 드라니트를 보았다. 그것은 다시 돌처럼 굳어서 미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동자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를 노려볼까?”

그가 제안을 했다. 목을 노렸을 때 유효한 타격을 입혔던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하지만, 목을 맞았는데도 죽지 않았잖아요. 보통이면 그것만으로 죽어야죠.”

“목뼈를 부순 것 같지는 않던데.”

그리 말하면서도 석민의 얼굴은 다시 심각해졌다. 자신들의 목숨은 하나뿐이었다. 불확실한 근거로 무작정 공격하여 시험해보기엔, 그들이 가진 자원은 너무 한정적이었다.

그때,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뭐지?”

아영의 말에 석민도 고개를 들었다. 불빛은 깜빡이고 있었다. 그 둘은 드래곤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생각도 멈춘 채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떨 땐 길게, 어떨 땐 짧게 깜빡였다. 마치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아!”

무언가 깨달은 아영이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깜빡이는 불빛을 보며, 점과 선을 적어내었다.

“모스부호야?”

석민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석민은 어둠으로 뒤덮인 터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집중해보니, 터널 속을 날아다니는 불빛은 알렉산드라가 운용하는 전투드론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샤샤였군.’

알렉산드라의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단 기쁨과 함께 동시에 겨우 저 드론 2개로 괜찮을까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아니, 천군만마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그녀가 있다면, 고마움에 허그를 했을 것이다.

잠시 후 아영이 해석한 신호를 알려주었다.

“도와줄까? 라고 묻는군요.”

“도와주면 고맙지. 먼저 공격을 해서 시선을 끌어달라고 해줘. 권총에 레이저 포인터 있지? 그걸로 보내면 될 거야.”

“일단은 해보겠습니다.”

***

“먼저 공격을 해서 시선을 끌어달라고 합니다.”

이곳은 호텔 말리나의 패닉룸이자 드론을 조종하는 통제실이었다.

드론의 콘솔기기를 조종하는 한국인 오퍼레이터 남성의 말에 알렉산드라는 낮게 혀를 찼다.

이 방에 앉아있는 남자들은 전부 알렉산드라에게 고용된 이들로, 이번에 드론을 들이면서 새로 고용한 사람들이었다.

남성은 썩 좋지 못한 표정의 알렉산드라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시선을 끌어주면, 우리 드론들이 공격받을 것입니다. 저게 얼마짜리인데….”

“아니야. 저 남자는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야.”

남자는 낮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저 사람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드론의 가격만큼 목숨 값을 지니진 않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상급자인 그녀의 의견을 거스를 순 없었다.

“드론으로 드래곤 공격은 가능해?”

“가능은 합니다만, 저거 공격받자마자 상처가 아물기 때문에, 한 방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분명 순식간에 드론들이 다 망가질 것입니다. 별로 시간을 벌진 못할 거예요.”

“뭐, 어때? 저 남자가 죽는 것보단 났겠지. 저쪽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 드론에 있는 무장현황, 보고해.”

그 말에 남자는 콘솔기기를 조작했고 이내 답이 나왔다.

“14.5mm 중기관총 1정 3천발과, 40mm 유탄발사기 1정 30발, 대전차미사일 발사관 2발입니다.”

“미사일 조준 방식은?”

“고블린2(드론 코드네임)는 레이저조준방식이고, 고블린4는 유선유도방식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알렉산드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고블린4부터 미사일을 조준해. 고블린4가 먼저 미사일을 쏜 후 고블린2도 발사한다. 그 이후에도 녀석이 살아있다면 유탄발사기를 쏘도록 하지. 일단 먼저 저들에게 신호를 보내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옆의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현석아, 고블린4 통제권을 맡아.”

“예, 알겠습니다. 미사일 안전장치를 해제합니다. 1번, 2번 장전.”

오퍼레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리가 가까우니까 미사일탄두 안전거리를 0으로 맞춰놔.”

그 말에 오퍼레이터는 낮게 혀를 찼다. 드론이 망가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물주는 그녀이고 드론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타깃과의 거리는?”

알렉산드라의 말에 처음 말했던 오퍼레이터가 바로 대답했다.

“거리, 376미터.”

“1번, 2번, 탄두 신관 활성화. 안전거리 0, 미사일 예열에 들어갑니다.”

고블린4의 콘솔기기 화면의 십자선이 드라니트의 뒤 몸통을 조준했고 이윽고 고블린6도 조준을 마쳤다.

그러는 사이 아무래도 초조함이 밀려온 알렉산드라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순식간에 패닉룸은 담배 연기로 가득해졌다. 환풍기가 열심히 돌아갔으나, 방의 크기에 비해 컴퓨터의 냉각 펜만큼 작은 것이라, 연기가 금방 빠져나가지 못했다.

“저쪽에서 우리 신호를 확인했나?”

그녀가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예, 확인한 듯싶습니다. 지금 엄폐에 들어갔습니다. 저, 그런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미사일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상관없어. 준비가 끝나면, 보고해.”

“고블린4, 발사준비 되었습니다.”

“고블린6, 발사준비 되었습니다.”

2쌍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담배 연기를 코로 길게 내뿜은 알렉산드라는 피우다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입을 열었다.

“발사.”

“고블린4, 1번, 2번 발사.”

전투드론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난데없는 미사일 부스터 소리에, 드래곤의 고개가 돌아갔으나, 이미 미사일이 작렬한 뒤였다.

폭발과 함께 엄청난 괴성이 울렸다.

미사일은 등의 비늘을 뚫고 폭발했다. 엄청난 양의 피와 살점, 비늘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드라니트는 죽지 않았다.

분노의 찬 괴성을 지른 드라니트의 고개가 미사일이 날아온 터널 쪽을 향했다.

그 순간, 알렉산드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고블린6, 발사.”

“고블린6 1번, 2번 발사.”

위험을 직감한 드라니트이 입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미사일이 발사되어 드라니트의 목을 향해 날아갈 때, 드라니트의 입에서 푸른빛의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미사일은 레이저가 닿기 무섭게 터져나갔다. 이윽고 다음 미사일로 레이저가 닿으려는 순간, 미사일이 폭발했다.

“아니?!”

미사일이 날아가기 무섭게 폭발하자, 패닉룸에 있던 오퍼레이터들과 알렉산드라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졌다.

“미사일이 왜 터진 거지? 신관불량인가? 자폭버튼 눌렀나?”

그 말에 오퍼레이터가 얼른 부정했다.

“아닙니다. 신관 불량인 듯싶습니다. 아니면 먼저 터진 미사일의 충격파일 수도 있고요.”

그들은 설마 드래곤이 쏜 레이저 때문에 대전차로켓이 파괴되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유탄발사기를 발사해.”

***

“좋았어!”

역의 계단에서 고개를 내민 석민이 아직 아물지 않은, 허나 아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드라니트의 등의 상처를 노렸다.

제법 크게 난 상처엔 피가 끝없이 흘렀고,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석민은 조준경으로 그 뼈를 조준했다. 발사관에는 열압력탄두가 있었다.

푸른빛 레이저가, 그대로 드론들에게 향했다. 유탄을 발사하던 드론은 레이저에 큰 구멍이 나버렸다.

두꺼운 압축 텅스텐 강판으로 몸체를 이루고 있어서 대전차병기가 아니고선 파괴가 불가능한 드론임에도 너무나 쉽게 뚫려버렸다. 그 직후 드론에 불길이 일어나더니 그대로 불타면서 터졌다.

아직 남아있던 드론의 탄약들이 유폭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격발되었다.

드라니트가 드론에게만 신경을 쓴 나머지 석민을 눈치 채지 못했고 석민은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바람이 그리 심하지 않았고, 열압력탄두가 곧게 날아가 명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한 비명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큰 소리에 석민과 아영은 귀를 막고 몸을 숙였다.

석민은 드라니트의 몸이 거의 반쯤 잘린 것을 확인했다. 아니, 척추 뼈가 박살났는데, 살아있으려나?

“좋아.”

석민과 아영은 각자의 총을 들었고, 드론 또한 매우 크게 벌어진 상처를 조준했다.

“쏴.”

석민이 외치자 드론도 마치 때를 알고 있었다는 듯 사격이 시작되었다.

가지고 있던 소총의 탄창이 순식간에 비어버리자, 아영은 역 입구에 상체를 내민 채 드라니트에게 가지고 있던 수류탄을 던졌다.

그들은 혹시나 드래곤하트가 없으면 어쩌나, 염려하며 그라니트의 온몸을 박살내자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석민은 SVDK의 총열이 뜨거워지건 말건 다음 탄창을 꺼내 들었고, 그때 패닉룸에서 드론을 통해 상황을 보고 있던 알렉산드라는 유탄발사기를 다 썼다는 오퍼레이터의 보고를 듣자마자 바로 기관총을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총탄들은 드래곤의 비늘은 뚫지 못했으나, 상처가 난 곳에는 무수히 박혔다.

그들은 그 상처만 집요하게 노렸다.

그들이 방아쇠 당기는 것을 멈추는데 대략 15분 정도 걸렸다. 석민의 SVDK에서 빈총소리가 딸깍거리면서 났다. 아영도 가지고 있던 탄약을 모두 써버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뜨거워진 총신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죽은 건가?”

“모르겠어요.”

남은 것이라곤 권총뿐이었다. 석민은 움직이지 않는 드라니트를 주시하며 RPG-7에 마지막 남은 대전차로켓을 장전했다.

“여기 있어.”

석민은 그것을 조준하면서 드라니트에게 다가갔다. 아영은 마카로프 권총을 든 채, 걱정스런 눈길로 석민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여차하면 그걸 쓸 생각이었지만, 그것만으론 드래곤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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