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98화]
석민이 운이 좋게도 굴다리 밖으로 바로 나가지 않은 것은 뒤처진 아영과 경원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제 여기만 넘으면 될 거야.”
석민이 말했다. 바람이 낮보다 더 차갑고 거세졌다.
굴다리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이곳은 바람이 유독 많이 불어서 석민도 다리를 떨었다.
“잠시 쉬었다 가면 안 되겠습니까? 바람이 거센데요.”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여기랑 상봉역이랑 얼마 안 되니까, 좀만 더 가서 지하에서 쉬는 게 나을 거야. 거기서 따뜻한 음료도 한 잔 더 하고. 금세 추워지네.”
먼저 서둘러 밖으로 나서던 석민은 조용하고 유독 세한 분위기에 입구를 나와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구름이 낀 밤하늘이 대신, 어두운 그늘이 보였다.
“제기랄!”
그는 그대로 가지고 있던 총을 쏘았다.
탄환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드라니트의 목에 작렬해 작은 폭발과 불꽃이 일어났다. 드라니트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냈다.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입안이 비늘만큼 단단할 리 없었다.
석민은 얼른 무기를 교체하고 RPG를 꺼내 그대로 냅다 갈겼다. 일단 후폭풍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무작정 냅다 갈긴 것이었지만, 다행히 지면이 경사라서 일부만이 그에게 반사되어 돌아왔다.
석민은 뜨거운 폭풍을 견디면서 드라니트를 노려보았다. 탄두 추진부가 불타오르면서 드라니트의 거대한 몸체가 드러났다. 이윽고 더욱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유감스럽게도 탄두가 기폭 되진 않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신관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었다. 대신 탄두가 드라니트의 머리에 박혀 부스트 화염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역으로! 빨리!”
석민이 열압력탄두를 꺼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영은 고개를 저은 채 터널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종기를 꺼냈다.
“마네킹을!”
석민은 마네킹을 바로 내려놓기보다, 일단 탄두를 장전하여 드라니트의 머리를 노려 쏘았다.
하지만, 드라니트는 그것이 발사되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 피했다.
‘피했어?’
또 후폭풍을 무시한 채 갈긴 것이라, 등 뒤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터널 안으로 뛰어갔다.
분노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머리에 박혔던 대전차로켓탄두가 밀러나가듯이 빠져나왔다. 상처가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아물어갔다. 그만큼 드라니트의 치유력은 매우 대단했다.
분노한 드라니트는 불을 뿜어내기 위해 드릉드릉 불길한 소리를 냈다.
그때, 드라니트의 눈에 인간 하나가 빠른 속도로 반대편에서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드라니트의 눈이 번쩍였다.
***
“가자.”
고개를 살짝 내밀어 드래곤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석민이 먼저 뛰쳐나갔고, 아영도 바로 뛰어갔다. 그녀는 조종기를 만지면서 달렸고 경원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그대로 상봉역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석민과 아영은 스탯 덕분에 빠르게 달릴 수 있었지만, 경원은 아니었다. 감염자인 그는 빠르게 달린 수 없었고, 그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석민과 아영이 걱정스런 얼굴로 뒤처지는 경원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할 뿐이었다.
“먼저 가세요, 먼저 가요.”
그는 혹여 자신이 짐이 될까 걱정하는 듯했다.
“빨리 오세요!”
안타까운 마음에 아영이 소리쳤다.
그녀는 이미 너무 거리가 떨어져 조종이 불가능한 드론의 조종기를 멀리 던져버리며 다시 소리쳤다.
“드래곤이 곧 눈치챌 겁니다!”
그러나 아영의 생각과 달리 분노에 눈이 먼 드래곤은 쉽게 미끼를 눈치 채지 못했다. 대신 미끼를 포함하여 그 일대를 다 날려버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불을 뿜어냈을 뿐이다.
앙상하게 남아있던 가로수가 순식간에 불타서 재가 되어 버리고, 바닥에 깔아 둔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녹아버렸으며 버려진 차들에서 검은 연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거대한 불길을 뒤집어쓴 건물의 외벽은 녹아 말 그대로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그 엄청난 열기에 주변의 공기들이 그쪽으로 매섭게 빨려 들어갔고, 찬 공기와 만난 뜨거운 공기가 엄청난 수증기를 만들어 순식간에 난기류를 형성했다.
엄청난 양의 연기와 재가 바람을 타고 눈 폭풍마냥 그들을 덮쳤다. 석민과 아영은 일시적으로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였다.
그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드래곤을 노려보았다.
‘저거였구나.’
이 주변 일대가 재로 뒤덮인 것이 저놈 때문이었구나, 석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적개심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지금 덤빌 순 없었다. 현 상황에선 자신이 덤비다 깔짝대지도 못한 채 목숨만 버리게 될 터였다.
그들을 뒤덮던 재들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드라니트 쪽으로 흘러갔다.
드라니트는 흡족하게 자신이 불태운 곳을 내려다보았다.
신선한 고기를 먹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홧김에 불태워 죽인 것만으로도 그것은 매우 만족해했다.
터널 안에 숨은 다른 것이 있으니 그거라도 먹으면 되겠지.
짐승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가 뿜어낸 화염으로 만들어진 바람이 드라니트의 등 뒤를 덮쳤고 바람을 통해서 냄새가 맡아졌다.
드라니트는 킁킁거렸다.
그것은 냄새를 통해 암놈과 수놈쯤은 구분할 수 있었다.
방금 불타버린 할 수놈의 냄새가 왜 바람을 통해 맡아지는 거지?
짐승의 고개가 석민과 아영이 있던 상봉역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자신이 죽였어야 할 인간이 보이자 드라니트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며, 노성(怒聲)을 질렀다. 그 엄청난 소리에 주변일대의 지축이 흔들렸다.
“들켰다!”
“거의 다 왔어!”
아영의 말에 석민이 외쳤다. 그들과 역사 입구는 30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문제는 경원이었다. 그는 그들과 100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었다. 드래곤은 분노에 미쳐, 나는 대신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앞뒤 발을 움직이며 뛰어왔다.
크기 차이가 심하게 나는 이상,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아영은 그녀의 등 뒤에 업힌 경원의 아버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수면제를 먹었다지만, 피가 멎을 것 같이 무서운 드라니트의 괴성에 깬 것이 분명했다.
먼저 역사 입구에 도착한 석민은 짐가방을 역사 아래에 그냥 던져버리고, RPG 열압력탄두를 장전했다.
“뛰어!”
아영은 거의 미끄러지듯이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녀가 넘어지지 않는 것이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석민은 그 사이 조준기로 드라니트를 조준했다. 그사이로 드래곤의 분노에 찬 눈을 마주했다. 공포로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석민은 다리에 힘을 빡 준 채 경원을 재촉했다.
“빨리 와! 빨리!”
경원은 여전히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난 괜찮아요.”
경원이 말했다. 드라니트의 입가에서 불꽃과 검은 연기가 솟았다. 불길을 뿜을 징조로 보였다.
이윽고 입이 벌어지려는 순간, 석민은 주둥아리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4.7킬로그램짜리 탄두가 날아갔지만, 바람 때문인지 탄두는 드라니트의 입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주둥아리 왼쪽 볼살 부분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다.
드라니트의 머리를 뒤덮을 만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면서 달리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석민은 드라니트를 잡았다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덴 1초면 충분했다.
불길 속에서 드라니트의 머리가 나타났고, 주둥아리에선 다시 불길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석민은 그대로 몸을 돌려 계단에 뛰어내렸다.
노도 같은 불길이 그들 사이를 뒤덮었고, 불길은 이내 역사 입구를 통해 뿜어져 내려왔다.
“지하로! 내려가! 빨리!”
쿵쿵거리는 굉음과 함께 천장과 바닥이 흔들렸다. 분노한 괴수가 앞발로 상봉역을 무너트리기 위해 내려치는 소리였다.
석민과 아영은 불길을 피해 구석으로 기어들어 가며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이미 2차례 서울수복작전을 경험하고, 온갖 고생과 경험 두려움이 익숙하던 그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들도 죽을 것이란 생각으로 가득했다.
불길과 진동은 대략 10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내 잠잠해져도 그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눈만 뜬 채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먼저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석민이었다.
가련한 경원, 석민이 먼저 생각이 난 것은 그것이었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그를 동정했다.
후회가 밀려들어 왔다. 괜히 그에게 탈출하자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눈물이 흘렀다. 그는 소매로 그것을 훔쳤다.
“경원… 씨는요?”
인기척에 눈을 뜻 아영이 상체를 세우며 물었다.
“죽었어.”
“죽었다고?”
아영이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경원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2쌍의 눈동자가 탁한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 아들이… 내 아들, 우리 경원이가. 죽었단 말이야?”
그는 충격에 좌우로 흔들리지만, 이지를 가진 눈동자로 석민과 아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석민과 아영은 잠시 서로를 보면서 우물쭈물거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이 먼 경원의 아버지는 그들을 찾으려는지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아영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그를 끌어 않았지만, 비쩍 마른 노인의 팔은 힘없이 그녀의 가슴과 어깨를 두들겼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내 아들 살려내 이놈들아! 여긴 또 어디야….”
그는 우는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으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러다 곧 힘없이 축 늘어졌다.
“어르신……. 어르신?”
그의 등을 토닥이던 아영이 손이 멈췄고 그녀는 얼른 그의 목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녀는 얼른 그를 눕혀놓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석민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살아날 것이라 희망을 가지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고, 지병도 있는데다가 정신적 충격도 너무 컸다.
“……돌아가셨습니다.”
몇 번을 심폐소생하던 아영은, 그의 가슴에서 천천히 손을 떼더니 마지막으로 진맥을 살피고는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에 두르던 목도리로 노인의 얼굴을 덮어주었다.
퍽-, 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석민은 울적한 감정을 가리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영은 터지려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으나 비집고 나오는 울음을 결국 참지 못했다. 그녀는 연신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훌쩍였다.
그렇게 침울한 시간이 잠시간 흐르고,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신은….”
“묻을 곳도 없잖아.”
석민은 그의 시신을 안아 올린 후 기계실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내부는 어두웠다. 그는 경원 아버지의 시신을 그곳에 눕혀놓은 후 다시 문을 닫았다.
“이러면 되겠지…. 가자. 전동자전거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아영은 닫힌 문을 한 번 더 쓰다듬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동에 방해되는 수레를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렸다.
벽에 부딪친 그것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러나 신소재인 덕분인지 몰라도 멀쩡했다.
그들은 말없이 전동자전거를 타고 철로를 따라 사가정역 쪽으로 갔다.
원래 하려던 일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터널에 도착할 줄 알았다. 사가정역 입구를 나서기 무섭게 나타난 드라니트가 누군가를 덮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석민과 아영을 놓쳤다고 판단한 드라니트가 민감한 코와 눈을 이용해 주변을 수색하여 사가정 쪽 작은 구멍에서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을 알아채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급강하듯 덮친 것이라, 불쌍한 그들은 반격도 못 해보고 그대로 한입에 잡아먹혔다.
드래곤의 입에서 오독오독 뼈가 부서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석민은 놀란 채 굳어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운이 좋았다. 이름 모를 저들 덕분에 드라니트의 위협을 미리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아영의 눈앞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드래곤 ‘드라니트’기다릴 것이다. 드라니트를 처치하여 사명을 완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