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97화]
“잘 오셨습니다.”
경원이 문을 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환대를 했다. 지나칠 정도의 환대가 아닌가 싶었지만, 반대로 6년간 혼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 말고는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한 채 이곳에 있었단 걸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거기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석민과 아영이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돌아왔으니 그 감격은 말로 다 표현 못 할 것이다.
“먹을 것 좀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수프 통조림과, 죽이 든 레토르트 음식, 신선한 야채가 들어있는 팩과 비타민, 약, 생수병 등을 꺼냈다.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어르신 드시라고 보약도 한 첩 가져왔습니다.”
경원은 그것들을 성배라도 잡는 것 마냥, 두 손으로 들어서 부엌으로 옮겼다. 그러더니 그는 식어서 차갑고 미라처럼 바짝 마른 손으로 아영의 양손을 붙잡고 연신 흔들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식량을 구하기도 힘들었는데.”
거칠고 소름 끼칠 정도로 찬 손이 그녀의 손등을 꽉 잡자, 등줄기로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쫙 퍼졌으나, 그녀는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뭘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커피라도 대접해 드려야 할 텐데.”
석민과 아영은 경원을 만류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경원도 진정이 되었을 때, 아영은 그의 아버지를 탈출시킬 방법을 설명했다. 하지만, 경원은 석민이 우려한 대로 점점 더 심해지는 추위 때문에 부정적이었다.
“아버지는 그 추위를 버티지 못합니다. 아니 요즘 많이 약해지고 계셔요. 장판이라든가, 보일러를 틀 수 없어서 바닥에 이불을 잔뜩 깔긴 했지만, 그래도 이 추위는….”
“그것을 대비해서 발열조끼와 방한용품도 챙겨왔습니다. 오래 지체될수록 위험합니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도 아니고, 점점 더 추워질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지 않으면…….”
그녀는 말끝을 흐렸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경원은 잠시 가만히 앉아있었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고민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여생은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여기보단 걱정하실 필요 없을 거예요.”
“……드래곤은요?”
“드래곤의 눈은 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가지 미끼를 준비한 상태입니다. 혹여 걸린다고 해도, 드래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강남 지역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그가 고민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무너지고 문명이 파괴된 이곳에서도 6년 동안 아버지를 모신 효자였다.
그는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남자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에 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잠시 이 말을 해도 될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예전 직업군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저는 정부를 대표할 수 없지만, 군인으로서 국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를 대신해 사죄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됐어요. 괜찮아요.”
그 말에 경원은 손사래를 쳤다.
“지금이라도 도와주시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괴성이 울렸다. 괴수의 소리가 아닌, 경원의 아버지 소리였다.
“아저씨! 아저씨! 나 쉬 마려!”
유아퇴행까지 오는 건가?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보고 아저씨라고 하다니. 석민은 경원이 얼른 가서 아버지를 안고 화장실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이런 곳에서 변기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으니 화장실의 상태는 어떨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내가 저분을 업고 가는 건가?”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석민 씨가 RPG를 가지고 있으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그걸 사용해주세요. 제가 그분을 업고 가겠습니다.”
자기가 벌인 일이니까 자기가 하겠다는 건가? 아영은 짐가방에서 고생고생하여 가져온 마네킹을 꺼내고 자이로드론에 설치했다.
혼자서 자이로드론과 그 할아버지를 데리고 갈 생각인가? 아무리 그녀가 초인이라도 그것은 무리였다. 그녀의 몸은 하나였다.
앞뒤로 붙이고 다니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갈 수 있나? 아니다. 그는 말없이 마네킹을 잡아들었다.
“드론 조종기는 가지고 있지?”
“예.”
그들은 드론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마지막으로 점검을 마쳤다.
“언제쯤 출발할 거지?”
“밤이 좋겠죠. 우리는 밤눈이 좋으니까요.”
“그나저나 저 할배, 조용히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재워드려야 하죠.”
경원이었다. 언제 일을 마무리 지었는지, 그들에게 와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알약들을 꺼냈다.
“그건?”
“수면제입니다. 아버지가 종종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발광할 때 씁니다. 한두 알이면 푹 주무십니다.”
지금 자기 부모에게 수면제를 먹인다고?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가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저씨, 나 배고파. 밥 줘요. 밥.”
안방에서 경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경원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이군요. 가져오신 것도 있으니 오늘은 조금 푸짐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먹을 수 없겠지만요.”
경원의 아버진 그날따라 폭식했다. 아영이 가지고 온 신선한 음식이 그의 오감을 만족시킨 듯했다.
비록 이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소화기능도 많이 떨어져서, 거의 죽밖에 못 먹었지만, 신선한 채소와 쇠고기까지 들어간 죽은, 6년간 통조림밖에 못 먹은 그에겐 산해진미나 다름없었다.
“아, 잘 먹었다.”
6년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경원이 귀띔해 주었다.
“아버지, 약 드실 시간이에요.”
경원은 마른 손을 가지고 약과 물이 든 컵을 내밀었다. 약을 내미는 손을 본 경원의 아버지는 경원의 손을 잡았다가 그 이상한 촉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아저씨는 팔이 왜 이리 가늘고 딱딱해? 나무 같아.”
“…어서 약을 드셔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경원의 아버지는 이내 그것을 받아먹었다.
포식을 한 덕분인지 몰라도 경원의 아버지는 금방 잠들었다.
***
“잠드셨나요?”
“예, 주무시고 계십니다.”
입에 문 전자담배를 뺀 석민은 그것을 건빵 주머니에 넣고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좋아, 준비하지.”
밖은 저녁이 되어 깜깜했다.
석민과 아영은 실탄을 장전했다. 석민은 RPG에 대전차탄두를 장전한 후 안전핀을 뽑아두었다.
수면제를 먹은 경원의 아버지는 매우 조용히 잠들었다. 아영이 나서서 그에게 발열조끼에 방한복을 입히고, 방한모자를 씌운 후 마스크까지 이중으로 씌웠다.
그 직후 포대기에 싸인 아기마냥 아영의 등 뒤에 묶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석민의 물음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게가 채 40이 안 나가는 것 같습니다.”
“노인들이 다 그렇지 뭐, 가지.”
석민이 가장 앞에 서고 아영이 그 뒤를, 마지막은 경원이 따라가기로 했다. 경원이 마지막으로 문밖으로 나서면서 열쇠를 챙겨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뽑다가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영이 물었다.
“그게… 또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는 바람에, 열쇠를 챙길 뻔했거든요.”
그는 열쇠를 쥐고 잠시 내려 보더니 그것을 아영에게 주었다.
“이젠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영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고맙습니다.”
“상봉역까지만 가면 안전하니까 조심해서 가지요.”
그는 RPG를 오른쪽 허리에 비껴 걸고 SVDK를 들었다. 그는 아영에게서 잠망경을 받은 후, 계단 쪽 창문을 살짝 열어 잠망경의 렌즈 하나만 나오게 한 후 봉화산을 보았다.
드래곤의 눈이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렌즈 하나 나온 것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드래곤은요?”
봉화산은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니었다. 거리는 고작 200미터 내에 있었다. 드래곤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똬리를 틀고 가만히 있었다.
비늘 표면이 회색 암석 같아서, 언뜻 보면 산을 둘러싼 암반처럼 보였다.
“여전히 둥지를 지키고 있네. 미동도 없어.”
하지만, 눈은 여전히 도시를 주시하고 있으리라.
드래곤, 드라니트라고 했나? 눈이 그리 크지 않아 보였는데도, 별빛마냥 밤중에 반짝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석민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때, 드래곤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 같더니 이쪽을 주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시선과 드래곤의 눈동자가 마주친 것 같았으나, 석민은 머리를 흔든 뒤 잠망경을 도로 접어 안으로 넣었다.
“이 밤중에 앞이 보입니까?”
“예… 뭐, 그렇죠.”
그들은 아파트 단지를 나와 주택단지 쪽으로 갔다. 석민은 그다지 힘들진 않았지만, 아영이 문제였다.
경원의 할아버지는 노인이라 그런 건지, 이곳에서 보낸 6년간의 생활로 힘들어서 그런 건지, 그리 무게가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식이 없는 사람을 등에 업고서 건물과 건물을 넘는 것은 아무리 능력이 있는 그녀라도 고역인 일이었다.
“조심, 조심해서 뛰어.”
창문과 창문 사이를 뛰어넘는 곳이 조금 떨어져 있자, 먼저 뛰어넘은 석민이 말했다. 이윽고 아영이 뛰었는데, 조금 힘이 약했다. 그녀는 겨우 창문틀을 붙잡았다.
“이런!”
석민의 손이 그녀의 팔뚝을 붙잡아 올렸다.
“조심해.”
올라온 아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석민과 시선이 맞자, 서로의 동료 의식이 한층 더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사이 경원이 뛰어넘어 왔다.
“아버님은 무사합니까?”
아영의 말에 경원이 가서 아영의 등을 확인했다.
“숨은 쉬고 계십니다.”
“발열조끼는 따뜻해요?”
“얼굴이 불그스름한 것을 보니 괜찮은 듯싶습니다.”
그들이 가진 발열조끼는 6시간 정도 지속되는 것이지만, 추위가 강해서 언제 효과가 사라질지 알 수 없었다.
석민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정부에게서 지급받은 비화폰이 아닌, 자신이 쓰던 2G폰이었다.
“아니, 왜 그 휴대폰을 가지고 왔죠?”
기겁한 아영과 다르게 석민은 휴대폰을 자연스레 주머니에 넣었다.
“혜원이 연락할 수 있으면 해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챙겼지.”
“혜원? 아 그 건스미스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어차피 여기서는 일반적인 통신기기로 통신이 불가능하잖아요. 괜히 통화를 했다가 오히려 걸릴 수 있습니다.”
“알았어, 주의할게. 여튼, 1시간쯤 지났군.”
대충 이곳의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상봉역이랑 얼마 안 남았군. 바로 앞이 굴다리이니까, 굴다리만 지나면 드래곤을 피해서 이렇게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을 거야.”
그러나 그게 석민의 오만한 방심이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가 잠망경을 든 순간부터 드래곤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으니까.
***
드라니트는, 아니 그것의 종족은 말을 하거나 도구를 만들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물건들의 그 쓰임새와 물리, 그리고 사용방법이 어떤 것인지 추론할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뛰어났다.
그 종족이 문명을 이루지 않고 도구를 쓰지 않는 것은 단순하게 몸이 도구를 쓸 만큼 몸이 진화한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먹고 자는 것 말고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고등생물인 영악한 짐승은 예전부터 경원과 그의 아버지의 존재를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육질이 질겨서 먹어봤자 이빨 사이에 껴서 잘 빠지지도 않는 것과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도 자신의 권속에서 탈출한 노예로 기억할 뿐이었다.
짐승은 자신의 기준에서 매우 하찮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맛은 없지만, 유사시 먹을 노예는 많았고 질긴 고기는 짐승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신선한 고기는 달랐다. 근래에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신선한 고기였다.
짐승은 지난번에 놓친 신선한 육질을 가진 남녀를 생각했고 오랜만에 온 포식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판단을 마친 짐승이 움직일 기회를 엿보았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직후 놀라울 정도로 매우 조용히 움직였다.
거대한 육체와 암석과도 같은 비늘을 가진 그것은 거대한 몸집과 달리 발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용은 이미 이 근방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들이 어디로 다닐지 추론했다.
이윽고 그것은 중앙선 철도 위에 조용히 올라 반대편 굴다리 입구에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렸다.
얼마나 미동이 없는지 마치 바위처럼, 원래 거기 있었던 조형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인내하며 기다렸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석민은 그 굴다리의 출구 쪽에 서 있었고 코가 예민한 드래곤의 코에 그의 몸 냄새가 맡아졌다.
드래곤의 입에서 침이 고였다.
지난번에 심심풀이로 잡으려다가 실패한 놈들이었으니 이번에 잡는다면, 그 성취감과 맛은 배가 될 것이다.
오늘 밤은 짐승에게 포식의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