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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95화 (95/226)

[게이트 오브 서울 95화]

기가 질린 석민이 음식을 주문하는데 옆에서 불쑥 혜원이 질문을 던졌다.

“사람을 쏜 것은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쏘게 된 거야?”

“아니, 사태 터지고 난 후부터. 치안이 개판 되니까, 식량, 돈, 섹스, 납치, 인신매매 등으로부터 생존하려면 날 지켜야 했거든.”

별로 좋지 못한 이야기에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뒤 혜원은 ak-74m 두 정을 꺼냈다. 그것도 그녀의 컬렉션 중 하나로, 러시아제 정품이고 피카티니레일과 수직손잡이, 도트사이트가 달린 것이었다.

“이번엔 이거 어때? 같이 쏴보자. 100발짜리 탄창으로.”

“이번에도 내기?”

그녀는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그 덕분에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가 말 그대로 말꼬리마냥 찰랑찰랑 흔들렸다.

“미쳤냐? 내기하게? 내가 질 게 뻔해. 그냥 쏘자고.”

“그러면 별로 안 당기는데?”

“아, 진짜! 총 쏘는 재미로 하는 거지.”

“목적 없는 사격은 안 하자는 주의거든.”

“……쳇. 이번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낮게 뭐라 중얼거리듯 투덜거리면서 이번엔 원형 표적지를 꺼냈다

“이번엔 탄착군 대결을 하지, 어때?”

“이번 내기 지는 사람은 뭐하는 거야?”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상야릇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글쎄? 뭐든지 소원 들어주기?”

석민은 뭐든 지라는 단어 주목했다.

“뭐든지?”

“그래, 뭐든지.”

“또 자신 있나 보네. 근거 없는 자신감.”

“흥, 재보면 알겠지.”

석민은 ak-74m을 들어 탄창을 넣고 장전했다. 준비를 마친 혜원도 장전을 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준비하고, 준비된 사수부터 쏴.”

소총들의 총구에서 불꽃이 마구 뿜어져 나오면서 탄환들을 토해냈다.

***

결론적으로 이번에도 석민이 이겼다.

혜원은 석민에게서 이기기 위해 석민의 총탄은 5.45mm 중 가장 강한 강장탄으로 넣어두었고, 자신의 것은 장약이 적게 들어간 개조 탄환을 넣어두었다. 장약이 기존의 것보다 3할 정도 적게 들어간 것으로, 그녀가 연사로 사격할 때 어깨에 부담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둔 것이었다.

화약의 양이 줄어들어 총성으로 눈치 챌 수도 있었건만, 다행히 서로 연사를 하던 중이라 석민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승리해서 그를 엿 먹이려 했으나, 석민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탄착군 지름은 5센티 정도 차이가 났다.

“너 잘 쏘는데?”

석민이 그녀의 탄착군을 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고, 일반인들의 탄착군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혜원의 탄착군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패배했다는 사실에 잔뜩 토라진 혜원은 별말이 없었다. 물론 속으론 마지못해 그가 자신보다 총을 잘 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른쪽 어깨가 뻐근해진 그녀는 어깨를 풀어주면서 살짝 피멍이 든 총의 견착 부분도 어루만진 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졌다, 졌어. 그래, 소원을 말해봐. 뭐든 들어주지.”

석민이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혜원은 탁자 위에 걸터앉아서 양손을 깍지 낀 채, 무릎을 받쳤다.

“얼른 말해봐.”

‘조금 들뜬 거 같은데.’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사는 RPG 탄두, 공짜로 줘.”

“……공짜?”

혜원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어, 공짜. 뭐든 소원 들어준다고 했잖아. 탄두 공짜로 줘. 드래곤 때문에 그게 필요하거든.”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낮게 혀를 찼다.

“……없는 놈.”

“뭐라고?”

“아니, 아니야.”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설마 이 여자가 자신보고 돈도 없는 놈이라고 한 건가, 생각했다.

‘아니면 다른 거라던가.’

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기대하는 게 설마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희망에 근거한 착각일 수도 있었기에 곧 접었다.

거기다 자신의 소원은 지극히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탄약값의 지출이 많아서 그로서 RPG 탄두 값을 내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의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니 그래도 서로 사귀는 사이인데 혜원이한테 큰 지출을 요구한 꼴이긴 하네.’

괜한 소원을 말했나 싶어서 취소하려는데 혜원이 말을 걸어왔다.

“치우는 것 좀 도와줘.”

“알겠어.”

쐈던 총기들을 원래 자리로 옮기고, 대충 탄피수거도 마친 후 혜원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나 이제 샤워할 거니까. 밑에 편의점 가서 탄산음료 좀 사 와.”

“탄산음료? 어떤 거?”

“아무거나.”

아무거나, 이 얼마나 귀찮은 미션인가? 그러면 대충 콜라나 사면되겠지 생각하며 석민은 문을 나섰다.

***

석민은 콜라를 대충 탁자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앉았다.

화장실은 방음이 잘 안 되는지 샤워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석민은 가지고 온 술과 간식거리를 꺼내놓았다.

씻는 데 제법 오래 걸리는 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사이 중국집에선 주문했던 요리가 도착했다.

석민은 그것도 탁자에 세팅해 두고서 혜원을 기다렸다.

이윽고 몇 분이 더 지나고 아슬아슬하게 허벅지를 가리는 검은색 티셔츠 하나만 걸친 혜원이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으며 나왔다.

“아, 왔나? 음료수는?”

“사 왔지.”

“그래?”

그녀는 봉지 안을 보더니 뭔가 더 찾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곧 한숨을 내쉬고는 콜라만 꺼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잔을 건넸고, 술을 따라주었다. 술잔이 몇 잔 돌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잡담을 하며 얼굴이 서로 조금씩 달아오를 무렵, 혜원이 물었다.

“이번엔 언제 또 서울 가냐?”

혜원의 물음에 석민은 직접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대답했다.

“글쎄, 빠르면 내일 저녁에 바로 갈지도 몰라.”

그 말에 그녀의 이마가 살짝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졌다.

“그렇게나 빨리?”

“아직 결정 난 것은 없지만, 되도록 서울에 빨리 갈 생각이거든. 아까 말했던 그 효자랑 아버지를 서울 밖으로 구조할 생각이야.”

“호오? 니가 그런 일도 해? 의외인데?”

그 말에 석민은 인상을 썼다.

“넌 나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있냐?”

그 말에 혜원은 헤죽 웃어 보였다. 물기가 도는 눈에 살짝 붉은 기가 서려 있었다. 초점도 살짝 풀린 게 오늘따라 빨리 취한 것 같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자, 혹은 눈치 없는 새끼.”

“눈치 없는 뭐?”

그는 처음엔 잘못들은 줄 알았다. 전자는 그의 직업특성상 이해가 갔지만, 후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그는 모르는 척했다.

모르는 척 할 때마다 나오는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너 눈치 없는 새끼라고.”

“아니, 어디가?”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걸 모르는 게 눈치 없는 거야, 새끼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독한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진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어? 어?”

위스키 잔을 내리자 코앞에서 시야를 가득 채운 석민의 얼굴에 그녀는 놀라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비틀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석민이 감싸 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서로의 귀를 터트릴 듯 크게 들려왔다.

굳은살이 두껍게 박인 거친 손이 그녀의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티셔츠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매끈한 피부가 만져졌다.

두 사람의 상체가 더욱 밀착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감촉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서로의 손이 서로의 몸을 거침없이 탐했다.

평소 술을 마셨을 때보다 더 붉어진 혜원의 얼굴이 석민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노골적인 유혹은 처음 봤거든.”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것도. 석민이 속삭이듯 전하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혜원의 심장이 그에 동조하듯 더 세게 울렸다.

석민도 이런 경험이 난생처음이었기에, 긴장도 되고 끓어올라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만도 벅찼다.

마치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 포근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혜원이 보였다.

코끝으로 그녀의 샴푸향이 스쳤을 때, 그녀의 작고 보드라운 손이 그의 아래로 향했다. 그의 것은 이미 그녀의 손보다 따뜻했다.

그녀의 상체를 매만지던 그의 손이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 은밀한 곳을 향해 들어갔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망설임 없는 손길에 놀란 그녀의 골반이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길도 점차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 익숙하지 못한 감각에 석민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흣.”

그것을 본 혜원이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눈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귀여워 보였다.

“좀 더 제대로….”

“…응.”

두 사람은 점차 농밀하게 서로를 탐하며 침대로 향했다.

***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그들은 밤새 서로를 채우는 데 열중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밤을 보내고, 두 사람이 침대에서 서로 끌어안으며 잠들 무렵, 혜원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죽지 말고 돌아와.”

충족감과 나른한 피곤함에 눈도 거의 뜨지 못한 채 석민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 두 사람은 늦은 새벽녘에 잠들었다.

탈출

이틀 뒤 안전가옥에 정부의 지원 물품이 도착했다.

“택배로 물건을 보내준 거야?”

“예.”

택배기사에게 확인서명을 하며 아영이 대답했다.

1.5톤 트럭은 온갖 상자들을 내뱉고는 수령을 확인하는 사인을 받자마자 신속하게 사라졌다.

석민과 아영은 직접 그 상자들을 안전가옥으로 옮긴 후, 일단 가장 큰 상자 2개를 뜯기로 했다.

커터 칼로 박스를 칭칭 감아놓은 테이프를 뜯자, 전기모터가 달린 자전거가 튀어나왔다.

큰 상자만큼 기대했던 석민은 고작 전기모터가 달린 자전거가 나오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전거? 겨우? 아, 진짜 정부 이러기야?”

“자전거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아영이 말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전거의 동력부를 톡톡 두드렸다.

“일반적인 전동 자전거 같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모터는 매우 특별한 모터입니다. 시속 80km는 거뜬히 나오고, 강추위에서도 배터리가 8시간 이상 지속되죠. 모터 힘이 대단해서 200kg까지 끌 수 있고요.”

그리 들으니 대단하긴 하지만, 짐을 많이 챙겨서 다녀야 하는 그들에겐 좀 부족해 보이는 능력이었다. 짐뿐만 아니라, 거기에 본인들 체중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그러면 무장은 최소화해야 된다는 소리 아니야? 것보단 그 할배를 어떻게 옮길 건데?”

할배라는 말에 아영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대충 넘어갔다.

“그러기 위해서 이게 있는 거죠.”

그녀는 다른 박스에서 재료들을 꺼내더니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퀴 2개 달린 인력거같이 생긴 수레였다.

“여기에 어르신을 모시고 모터의 힘을 이용해서 도망치는 거죠.”

“드래곤은? 걔한테 걸리면 얄짤 없는데.”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짐 속에서 여러 가지 장비들을 꺼냈다.

“여기 연막탄이랑, 수면가스가 든 수류탄으로 교란을 해볼까 합니다. 그것 말고도 준비한 것이 있죠.”

그녀는 자이로드론과 마네킹을 꺼냈다.

마네킹? 석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마네킹에 가짜 군복과 헬멧, 마스크 고글 등을 입힌 후에 이 자이로드론에 고정해 이동시킬 것입니다. 이 자이로드론은 원격조종이 가능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석민에겐 무리인 작전으로 보였다.

“드래곤의 눈이 그렇게 좋은데, 이런 것에 속을까? 그리고 이건 어떻게 챙기고 다닐 건데?”

“그야 당연히 제가 챙겨야죠. 이 수레 또한 제가 끌고 갈 것입니다.”

“이 자전거들을 타고, 서울 시내를 활보할 수 있겠어?”

“그건 우리가 주의해야죠. 자전거 자체도 아주 가볍고 튼튼한 재질입니다. 신소재에다가, 전부 접이식이라서 가방 안에 쉽게 들어갈 겁니다.”

매우 자신있게 말하니 더 이상 반박꺼리가 없었다. 그로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은 작전이었지만, 이 이상 좋은 게 그의 머릿속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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