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94화]
혜원이 너무나도 자신감에 차 행동하는 것 때문에, 석민의 머릿속은 아까처럼 잡생각으로 가득해졌다.
‘만약에 내가 지면 어떡하지? 명색에 총으로 먹고사는 양반인데, 만약에 지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잖아.’
잔뜩 들떠 있는 그녀와 다르게 그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그사이 혜원은 장전을 마쳤고 석민이 두 번째로 마쳤다.
“가지.”
***
그들이 사격장에 도착을 한 후 혜원은 표적지가 담긴 상자를 열어 표적지 하나를 건넸다.
표적지는 드레이크의 얼굴이었다.
양쪽 눈의 점수가 10점, 입 부분이 9점, 이마 부분이 8점 등 실제로 드레이크에게 유효사를 먹일 수 있는 지점이 가장 높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점수가 낮았다. 대신 실제 드레이크의 크기에 비하면 좀 많이 작았다.
“드레이크에게 원한이 좀 많나 보군.”
석민이 그것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 말에 혜원은 살짝 혀를 찼다. 언뜻 그녀의 눈에 분노가 차오르는 듯했다.
“저 괴수들에게 원한 안 가진 자들도 있냐?”
“하긴, 그렇기야 하지.”
그 모습에 석민도 착 가라앉은 눈길로 드레이크 표지를 주시하다가 표적지를 붙였다.
“거리는?”
“25미터.”
그렇게나 멀리? 도마뱀과인 드레이크 얼굴의 정면은 사람 얼굴만큼 작기 때문에 제대로 조준하고 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석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스탯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말로 어지간히 자신 있나 보군.”
“왜, 너는 없어?”
그녀의 가벼운 도발에 석민이 넘어갈 리 없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슬라이드를 뒤로 당긴 후 조정간을 안전으로 돌린 후 귀마개를 썼다.
“까불지 말라고.”
그 말에 그녀는 피식거리며 웃었고, 주머니에서 노란 고무줄 하나를 꺼내더니 머리카락을 이마가 드러나게 포니테일로 묶은 후 귀마개를 썼다. 그리곤 색 렌즈가 달린 보안경을 착용했다.
“준비하고, 준비된 사수부터 쏴.”
두 사람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고, 사격장은 총성으로 크게 울렸다.
***
“잠깐 모두들 나가게.”
대전으로 돌아간 아영은 대통령과 독대로 만났다.
“왜 명령을 어겼지?”
경호실장까지 나간 집무실에서 문이 닫히기 무섭게 대통령의 질책이 시작되자,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 되는 것을 굳이 왜 대전으로 불렀나 했더니 이런 것이었군, 그녀는 도대체 뭘 들킨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
“강북으로 가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다리를 지키던 괴물이 없어졌던데…. 혹시 자네들이?”
“아니, 그건 아닙니다.”
아영은 거짓말을 한 자신의 죄책감이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도대체 왜 강북으로 갔나? 발뺌할 생각 말게! 자네와 최석민이 강북을 건너는 것을 우리 정찰 드론이 확인했어!”
아영은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자,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왜 그랬나?”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이렇게 주춤거리면 의심이 늘 것이다. 아영은 대통령의 신뢰를 잃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정찰 드론은 그들이 괴물을 잡은 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괴물이 사라진 후 괴물이 사라진 사실을 안 다른 헌터들이 강북으로 가는 것을 보고 추적한 것입니다.”
그 말에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강북으로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강북으로 가는 길은 오직 그곳뿐이기 때문에, 강북으로 가는 헌터 팀들은 반드시 그곳을 지나야 하는데다가, 강북을 넘는 헌터 팀은 무시 못 할 숫자입니다. 다리에서 대기하다가 거기에 지난번에 보고 드렸던 호텔 말리나가 구리암사대교의 다리와 터널을 점령해서 임무 수행을 사전에 막고 있기 때문에….”
“그 러시아 놈들이 그곳을 점령했단 말인가? 거기서 사업을 한다고?”
기가 막힌 나머지 대통령이 아영의 말을 잘랐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헌터들을 추적하고 처리하려면 강북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아영을 주시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아영은 무고한 사람인 것 마냥 약간 불쌍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성현제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다음부턴 어기지 말게. 자리에 앉겠나?”
그는 손수 아영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도 집무실 의자에 앉아 몸을 축 늘어트렸다.
“언성을 높여서 미안하네, 요즘 너무 예민해서…….”
“아닙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먼저 숙이고 들어오다니, 아영은 그런 점이 ‘성현제’라는 대통령의 대단한 점이라 생각하며 존경스러웠다. 한편으론 감격스럽기도 했다.
대통령에 대해 새삼 감동을 받은 그녀는 강북에서 만났던 김경원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대략 10분이 지난 후 대통령은 말문이 막힌 듯 괜스레 노란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대통령님?”
아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를 불렀지만, 그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6년 동안, 그 감염자가, 아니 우리 국민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아버지를 모셨다고?”
“그렇습니다.”
“……올겨울이 지나면, 7년이 되겠군. 부끄러운 일이야. 우리로서는, 아니 나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잔뜩 우울해진 그는 힘없이 몸을 돌려 옆모습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 굽은 등이 초라해 보일 정도라 아영은 당황하고 말았다.
솔직히 성현제라는 대통령은 목소리나 외모로는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주변 사람을 휘어잡을 능력을 갖춘 자였다. 존경스러운 점도 차고 넘겼다.
그런 그의 처량한 모습을 볼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지 못한 아영에겐 이 상황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경원 씨가 자기는 괜찮으니까 아버지라도 서울 밖으로 빼내길 원합니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당연히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대통령 성현제는 그럴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데리고 오지 말라는 뜻인가? 하지만 이어진 대통령의 대답은 아영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그 남자도 데리고 오게.”
아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산처럼 솟구쳐 나오려고 하는 환호성을 애써 참았다.
“서울 밖으로 말입니까?”
대통령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염자이긴 하지만, 이성이 남아있는 이상 우리 국민이야. 혹시 모르지. 살아있고 이성이 있는 그자라면 감염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예, 그렇습니다.”
아영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하지 일단은 원하는 지원은 최대한 해보겠네. 그 어르신은 서울 밖으로 빼낸 뒤 안전가옥에 모신 후에 연락을 주게. 요양병원은 내가 알아보겠어.”
“알겠습니다.”
아영은 자신과 석민의 일을 들키지 않은 채 경원의 일도 잘 마무리되었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대통령 성현제의 시선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
오늘을 통해서 석민은 혜원에 대한 새로운 2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빼고, 첫 번째로는 중국요리를 미친 듯 좋아한다는 사실과, 트리거 해피1)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름 사격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기가 끝나고 그녀의 점수는 87점으로 거리와 표적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높은 점수였다. 10점짜리에 한 번 맞추기도 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석민은 총 100점이 나왔다.
“이거 뭐냐?”
석민이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 게 신경질 났는지 그녀는 화풀이로 MG3기관총을 잡아 표적지를 걸레로 만드는 중이었고, 이미 총열을 2번이나 교환한 상태였다.
석민의 손에는 혜원의 가게 밑에 층에 위치한 중국집 메뉴판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요리목차를 보는 중이었다.
“자신 있는 요리, 자신 없는 요리라니. 무슨 목차가 이레?”
귀마개까지 하고 있는 데다, 기관총의 난사소리가 난무하니 석민의 물음이 혜원의 귀에 닿을 리 만무했다.
저런 신경질적인 면도 귀여워 보인다니, 자신이 미쳐가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석민은 웃음을 흘리며 총을 쏴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가느다란 팔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힘을 줄 때마다 별로 없는 근육들이 꿈틀거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의 생각보다 그녀는 강했다.
‘하긴 건스미스이니,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하겠지.’
MG3를 다 쏜 그녀는 장갑을 낀 손으로 뜨거워진 총열을 빼냈다. 저 기관총 난사 덕분에 사격장은 매우 후끈했다.
사격이 끝나자 석민이 다시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녀가 데저트이글을 꺼내 들자 도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권총 사격자세를 취하자 석민은 이상함을 느꼈다.
“자세가 잘못되었잖아.”
아까 같이 내기사격 할 때는 그녀의 사격자세를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기에 볼 수 있었기 망정이었지 그녀의 사격자세는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뭐라고?”
이번엔 조금 크게 말한 덕분인지 혜원이 권총의 조정간을 안전으로 돌린 후 귀마개를 벗었다.
“자세가 잘못됐다고. 허리를 조금 앞으로 굽혀야지. 뒤로 젖히면 어떻게 해? 자, 총 들어봐.”
석민이 다가가서 권총을 그녀에게 쥐어주었고, 그녀의 등 뒤에 손을 올렸다.
“파지법은 괜찮은데 나머지가 다 별로야. 자 허리를 굽혀. 더 굽혀, 그래. 좋아, 다리도 어깨너비 만큼 벌리고,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길 때 손가락 마디가 아니라 지문이 있는 부분의 가운데로. 좋아, 이게 바로 완벽한 자세야.”
그는 그녀의 어깨와 상박을 더듬었다. 그녀의 어깨 근육에 힘이 들어갔는지 돌처럼 단단했다.
“어깨에 힘 빼고, 숨을 천천히 쉬면서.”
내친김에 그는 표적지를 갈아주고 그녀에게 귀마개를 씌워준 뒤 한걸음 뒤로 물러난 후 자신의 귀마개를 썼다.
“이제 쏴봐.”
총성이 연달아 2번 울렸다. 석민의 눈에, 중앙 가운데 10점짜리 표적에 2개의 구멍이 나는 것이 보였다.
자세만 바꾸니 바로 명사수가 되어버렸다.
‘그 엉성한 사격술로 그 정도 점수 나온 거 보면, 사격에 재능이 있나 보군.’
그것을 본 혜원은 고개를 돌려 활짝 웃어 보였다.
“완벽해. 그나저나, 아까 그 엉성한 사격술로도 그 정도 점수가….”
‘나온 것을 보면 재능이 있는 게 분명해’라고 말하려 했으나, 엉성한 사격술이란 단어에 혜원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고 석민은 입을 다물었다. 반대로 입을 삐죽이던 혜원이 입을 열었다.
“괴수도 맞추고 사람도 죽이고 해봐야 배우는 거지, 뭐. 너처럼 군대에 들어간 것도 아니니까.”
심통 난 듯 하면서도 자신이 부족하단 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혜원이 귀여웠으나, 석민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군대에서도 대부분 권총 사격술은 안 가르쳐. 이것도 그냥 내가 자체적으로 배운 거야.”
“그래, 시발. 어련하시겠어.”
기어코 혜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석민은 얼른 화젯거리를 돌려야겠다고 판단하고 다시 메뉴판을 들었다.
“그나저나 요리는 뭘 주문하면 되는 거지?”
뻔한, 행동에 혜원은 그가 왜 그러는지 눈치 챘지만, 넘어가 주었다.
“일단 탕수육 소짜, 깐쇼새우, 마지막은 고추잡채가 좋겠어. 각자 작게만 달라고 하면 알아서 줄 거야. 아, 잠깐만.”
혜원은 손가락을 들어 전화기를 들려고 하던 석민은 제지했다. 그녀는 잠시 그를 빤히 보며, 잠깐 고민에 빠지더니 입을 열었다.
“음식은 1시간 정도 뒤에 오라고 해.”
“1시간 뒤에? 지금 안 배고파? 난 배고픈데….”
“1시간 뒤에.”
총을 1시간 동안 쏜단 말인가? 돈도 많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