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93화 (93/226)

[게이트 오브 서울 93화]

“만나긴 만났어. 게다가 밥도 얻어먹었고. 그 양반 아버지 나이가 80이 넘었고, 치매까지 걸렸더군.”

“……효자네.”

그녀는 거의 다 피운 시가를 뺀 후 이번에는 궐련을 물었다.

“거기 라이터 좀 줄래?”

석민은 귀찮게 그녀의 라이터를 가져오는 것보다 자신의 라이터를 꺼내서 던져주었다.

“터보라이터라….”

그녀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하나를 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담배를 무는 건가?

석민은 그녀의 흡연습관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본론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깨에 멘 외줄가방에서 독주하나를 꺼냈다.

“위스키?”

그것을 본 혜원이 관심을 보였다.

“양주라니, 귀한 걸 가져왔네.”

“그렇게 비싼 건 아니야.”

그것 말고도 여러 과자와, 사탕, 음료수들이 석민의 가방에서 나왔다.

“이번에 하나 사 왔어. 밖에 나가서 놀까 했더니 너무 춥잖아?”

“나가자고 해봤자, 안 나갈 거라고 했을 텐데.”

그가 꺼낸 위스키 병에 혜원의 눈이 돌아갔다. 그녀는 가볍게 침을 삼켰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일에 열중했다.

“안 돼, 안 돼. 일이 아직 많아. 게다가 요즘 너무 잘 먹었어. 살찔라.”

너무 말라서 왜소해 보이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라고 생각하던 석민의 머릿속에 그녀와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그녀가 상당히 잘 먹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잘 먹는 것 치고는 상당히 말랐지만.’

그는 눈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작업용 커버올의 사이즈는 컸지만, 그 안에 있는 신체는 작았다.

물론 궂은일을 하기 때문에 근육이 다른 이들보다 많겠지만, 석민이 보기엔 작고 물렁물렁한 신체였다.

“넌 그래도 조금 살찌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몸무게가 50은 넘나? 아니지 40은 넘어?”

“아, 시발, 몸무게 이야기는 하지 마. 벌써부터 관리 들어가냐?”

그녀는 히스테릭하게 신경질을 부렸고 석민은 입을 다물었다.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

석민은 다른 대화거리를 꺼냈다.

그녀가 좋아하는 돈과 거래 관련으로 하면 괜찮을 것이다. 원래 사려고 하던 것이기도 했다.

“여하튼 그래서 말인데, 그 드래곤 때문에 이번에 RPG 탄두 좀 사려고 하거든? 그리고 작렬탄 탄환은 만들고 있어?”

“네가 주문했던 탄환 말인데, 만들기 좀 까다롭더라고.”

“그래서, 불가능해?”

“아니? 단가 좀 더 세게 받으려고.”

그 말에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도 이런 방식인가? 악덕 상인들 중에 이런 방식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 인간들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한 50만 원만 더 줘.”

50만 원씩이나? 인플레가 사태 전보다 심해졌다고 해도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석민은 단호하게 팔짱을 꼈다.

이 여자가 지금 덤터기 씌우려고 그러는 건가? 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 없었다.

“그건 너무 비싼 거 아냐?”

“아니거든요? 이 망할 고객님아?”

허나 이미 필터가 낀 석민의 귀엔 고객이 아닌 호객이란 말로 들렸다.

그의 표정을 본 그녀는 설명이 필요하다가고 느꼈는지, 금새 다 피운 궐련의 꽁초를 재떨이에 넣고는 혀로 입술을 한 번 훑고 난 뒤 어떻게 이 우수고객에게 설명을 해야 잘 설득이 될지 눈동자를 굴러 가며 생각했다.

“9.3mm 버전의 작렬탄이 없어서, 탄두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거든? 프레스기에 알맞은 틀부터 CNC로 깎아야 하고. 또 러시아에 탄피를 주문했는데, 주문할 때 환율이 올라서 비용이 증가했어. 지금 50만 원 달라고 한 것도 솔직히 내 인건비를 줄이는 거라서 손해거든?”

저렇게까지 말하니 석민으로서는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줄게. 다만, 물건을 받으면 주지.”

“좋아. 그 정도는 감안할게.”

그것으로 대화가 사라졌다.

혜원으로서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거였고, 석민으로서는 더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 석민이 멍 때리고 있을 때, 혜원이 입을 열었다.

“커피 좀 가져다줄래?”

“얼마나 오래 봤다고 벌써 뭘 시키는 거야?”

석민은 투덜거렸지만, 이미 몸은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전기포트의 전원을 올렸고 커피 티백을 한 개 들었다.

“한 개 말고 두 개.”

그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티백을 두 개 더 꺼내서 본인이 마실 커피도 준비했다. 혜원은 살짝 고개를 돌려 그의 움직임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저렇게 보면 청부업자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사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준비해 온 석민이 그녀 얼굴 앞으로 머그잔을 들이밀었다.

“자.”

그녀는 선뜻 머그잔 몸통을 잡다가 뜨거움에 손을 뗐다. 잔에는 커피가 끝까지 차서 찰랑거렸다.

“아뜨, 아뜨.”

그녀는 다시 머그잔을 집어 들고는 카운터에 올려놓고선 뜨거워진 손가락으로 귀를 잡아 화기를 돌렸다. 이윽고 약간 물기가 고인 도끼눈이 석민을 쏘아보았다.

“일부러 그런 거지?”

“뭘?”

그의 잘못은 없었다. 단지 그녀가 잘못 잡았을 뿐.

석민은 혜원이 쏘아보든 말든,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그녀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더니 다시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역시 물을 너무 많이 넣었어.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석민은 말없이 부엌으로 가서 티백 하나를 가져와 그녀의 잔에 넣었다. 혜원은 뾰족한 눈으로 석민의 행동을 바라보더니 이내 커피를 홀짝이고는 달콤한 티백 커피 맛에 표정을 풀었다.

그녀는 속까지 따뜻해지는 커피의 맛에 노곤한 표정으로 석민을 쳐다봤다.

“오늘 자고 갈 거냐?”

“그러니까 술 가져왔지. 아까 말했듯이 갈 곳 없잖아. 이 추위에 나가고 싶냐? 뭐 내 동료는 대전으로 내려갔지만.”

“대전이라고? 경기도, 서울 사람이 아닌가 보지?”

“어.”

상당히 부러운 일이었고 그녀는 혀를 찼다.

“그래?”

“응.”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켜더니 일어나 목까지 올려진 커버올 지퍼를 쫙 내렸다.

그 덕분에 좁고 둥근 어깨와 그 안에 입고 있던 네이비색 브라 탑에 그 밑으로 배꼽까지 드러났다. 그래도 허리띠를 한 덕분에 하반신까지 커버올이 벗겨지진 않았다.

“……너, 뭐하냐?”

석민은 커피를 뿜을 뻔 한 것을 애써 참으며 물었지만, 혜원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지, 커버올 상의를 벗어젖혔다. 커버올이 통풍이 안 돼서 그런지 드러난 맨살은 땀으로 반들거렸다.

“일 안 잡힌다. 하자.”

“하자고? 뭘?”

그는 바보같이 되물었다.

“뭐긴 뭐야, 한판 놀자고.”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무슨 의도로 말한 거지? 설마? 진짜로?’

석민의 시선이 가슴골을 스쳤다. 급히 돌리긴 했지만 땀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피부가 계속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말라 가슴 아래에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한 덕분에 그렇게 보기 좋은 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계속 떠오르는 게 자신이 진짜 그녀에게 품은 마음이 진실한 것처럼 느껴져 이상했다.

그보다, 그녀의 말이 신경 쓰였다.

‘벌써?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하지만, 바로 저렇게 옷 벗은 것은, 역시 그 뜻인가? 아니지, 놀리려고 그냥 날 떠보는 건 아닐까? 아니, 그건 그렇고 같이 먹는 걸 보면 살이 좀 쪄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저렇게 말랐어? 더 먹여야 하나?’

석민의 머릿속이 잡생각으로 혼란스러워진 사이에 혜원은 석민에게 등을 보이며 진열장으로 갔다. 그곳 구석엔 그녀의 컬렉션들이 있었다.

그녀는 권총 2개를 꺼내 들었다.

“너 권총 mk23을 쓰고 있지? 그럼 이건 어떠냐? 체코제 권총인데.”

‘아, 그런 건가.’

총을 들고 다가오는 혜원을 보며 석민은 혼자만의 착각에 부끄러워졌다. 그는 혹시 혜원이 자신의 속마음을 눈치 챈 거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모호하게 행동하는 건가 생각하며 약간 홍조 띤 얼굴로 대답했다.

“cz-75? cz-75는 이젠 질색이야.”

예전 권총 사격장에서 쏴본 적이 있던 종류였다. 괜찮은 성능이었으나, 그걸 구하려고 고생 꽤나 했던 기억에 이젠 그닥 선호하는 총기는 아니었다.

그 말에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꺼내 보인 것은 다른 권총이었다.

“오리지널 75가 아니야. 이건 그 걸작을 만든 체코 애들이 새로 만든 권총중 하나지. cz p-07이랑, p-09야.”

그녀가 권총을 내밀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상품이야. 체코에서 직접 수입했어.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총이야. 한번 들어봐.”

석민은 총을 건네받았다. 권총의 손잡이를 쥔 촉감이 다른 것들과 전혀 달랐다. 그의 양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CZ P-09]

내구도: 100%

품질: 상상

탄약: 9×19mm

Česká zbrojovka(체코 조병창)에서 생산한 권총, P-07권총의 풀 사이즈 모델이다. 폴리머 프레임을 가졌다. 아직 단 한 발도 쏘지 않아 상태가 매우 좋다.

“한손권총인가 보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릴 정도로 손에 딱 맞았다.

그는 이런 권총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가진 MK23도 좋았지만, 그립이 두꺼워서 종종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었다.

손잡이 폭은 아주 좁았으며, 엄지와 검지 사이 부분은 맞춤옷처럼 손에 착 달라붙었다.

물론 모든 점들이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미끄럼 방지로 만들어 놓은 돌기나, 홈이 지나칠 정도로 까칠 거려서 살짝 거슬리긴 했다. 그래도 그런 점들은 아주 사소한 거였다.

석민은 총에 욕심이 났다.

“어때? 좋지?”

그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권총을 빤히 내려다봤다.

아직 그의 mk23은 멀쩡하고 문제가 전혀 없었다. 성능도 매우 훌륭해서 그것이 망가지거나 수명이 다 되지 않는 이상 바꿀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이 총과 mk23은 쓰는 탄환이 달랐다.

석민은 미련 없이 이 총에 대한 마음을 접은 채 그저 총을 들고 이리저리 보면서며 자세를 취해보거나 슬라이드를 당겨서 내부를 살폈다.

그러는 동안 혜원은 상인답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조정간이 양쪽에 있고, 유행에 맞춰서 금속이 아니라, 폴리머(강화플라스틱)로 되어있지. 가볍고 쓰기 편하며 무게 중심도 절묘하게 맞춰줘 있고. 이 택티컬하게 짧은 버전이 07이고, 풀사이즈가 09야. 이걸로 우리 내기하자, 어때?”

“내기?”

그 말에 혜원은 씨익- 웃었다.

“사격장에서 10발 쏴서 가장 점수가 낮은 사람이 밥 사는 거야.”

“먹을 건 이미 사 왔는데?”

그 말에 그녀는 힐끗 그쪽을 보았다.

“저건 간식이지 먹을 건 아니잖아? 저거 먹고 배가 차냐? 밥을 먹고 살아야지. 중국요리 어때?”

“그건 지난번에 먹었잖… 아니다, 됐어. 그렇게 하지.”

석민은 눈치껏 말을 바꿨다. 아무래도 혜원은 중국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뭐, 이런 추운 날 기름진 중국요리만큼 좋은 것도 없었고. 게다가 심심했고, 석민 또한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

또한 이 내기에 응한 건, 자신이 한 사격한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콧대를 낮춰야지. 실력 좀 보이면 조금은 나를 존중하려나.’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건가? 같은 모델?”

“어, 같은 모델. 자, 선택해봐.”

석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p-09를 집어 들어 보였다. 그는 짧은 버전의 권총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그나마 익숙한 풀사이즈 버전이 나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가 모델을 선택하자 혜원도 같은 모델의 권총을 집어 들었다.

“컴펜세이터 없이?”

“없이.”

“3판 2선승?”

“아니, 단판 승.”

“자신 있나 봐?”

그 말에 혜원은 콧방귀를 뀌었다.

도대체 어떤 자신감으로 저러는 것이지? 석민이 보기엔 그녀의 알 수 없는 근자감이 당황스러웠다.

‘허풍쟁이는 아닌 거 같은데, 혹시 건스미스라서 숨 쉴 때마다 총을 쏴댄 건가?’

“그야 자신 있지.”

“무르기….”

“당연히 없지.”

석민의 말을 자르며 혜원은 9mm 권총탄이 종이상자를 꺼내 들었고, 그들은 나란히 서서 탄창에 탄환을 10발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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