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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92화 (92/226)

[게이트 오브 서울 92화]

차를 따라 준 후 경원이 부엌으로 가고, 석민과 아영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다가 이내 뱉어버렸다.

차에서 아주 역한 냄새가 났다. 자세히 맡아보니 곰팡이 냄새였다. 차가 아니라 곰팡이를 우린 물을 먹는 꼴이었다.

‘차가 괜찮다고 했지만, 이거 완전히 곰팡이가 슬었잖아? 일부러 그런 건가?’

찻잔을 내려놓은 석민은 바로 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근처에 다른 고지대는 없는 건가?”

석민은 창밖을 살피고 싶었지만, 이 집의 창문은 전부 커튼이 쳐져 있었다. 2중인데다 모포처럼 두꺼운 천 재질을 봐선 방한을 위해 그런 것 같았다. 심지어 바깥 면이 검은 걸 봐선 빛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함부로 열어선 안 될 게 분명했다.

그때, 아영이 자신의 전투복 건빵 주머니에서 원통형 물체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야?”

그녀가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택티컬 잠망경이었다. 아영은 그것을 펼치더니 커튼을 살짝 들추고 밖을 보았다.

“……안 되겠는데요? 주변에 높은 건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길을 찾기 위해 일일이 수색해야 한다는 건가?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지도 어플를 보며 골몰하다가, 지하철역 하나에 시선을 멈췄다. 그곳은 망우역이었다.

“이 노선, 중앙선이지? 이 노선을 따라가자.”

“중앙선이요?”

그에 대답한 것은 경원이었다.

그의 손에 데워진 베이크즈빈즈 통조림과 옥수수통조림이 쥐어져 있었다.

“그거 이용하면 안 됩니다. 해당 노선은 노면전차라서 드래곤에게 바로 들킵니다.”

“아, 그렇지.”

석민은 혀를 찼고, 아영도 잠깐 인상을 쓰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이 노선을 이용하면 저 망할 문의 중심부, 그러니까 왕십리로 바로 갈 수 있는데….”

그것은 간절한 소원과 다름이 없었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경원은 고개를 저었다.

“저 드래곤은 평소엔 돌처럼 굳어 있고, 간혹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론 잠을 자지 않아요. 눈도 매우 밝고, 귀는 예민하죠.”

“……잠을 안 잔다구요?”

그 말에 석민은 적잖게 당황했다. 그사이 경원은 통조림의 내용물들을 잘 섞은 후 그들에게 권했다. 군내가 심하게 나긴 했지만, 먹을 만한 냄새가 났다.

“놈은 매우 영리한 사냥꾼입니다. 보통은 이틀에 한 번꼴로 괴수 사냥을 하는데,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감염자들이 해서 바칩니다. 놈은 감염자들을 수족처럼 부리죠.”

“혹시 그러면 감염자들은 전부 저 드래곤의 수족으로 부려지는 걸까요?”

아영이 속삭이며 물었지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정하기엔 일러.”

분위기를 전환시켜야 생각하는지 경원은 가지고 있던 음식을 내밀었다.

“일단은 드세요. 음식은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요.”

조금 쿰쿰한 냄새를 빼면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맛있진 않았지만, 일단은 따뜻했다.

처음엔 느렸던 수저질이 점차 빨라졌다. 몸속에 따뜻한 기운이 들어가자, 힘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석민은 마지막 국물을 마시기 위해 통조림을 들어 탈탈 끌어 먹었다. 그리고도 조금 부족한 느낌에 통조림 구석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남은 국물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보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들었다가 경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보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먹는 것을 보니 부럽군요.”

그 말은 너무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 그… 미안합니다.”

아영이 말했다. 경원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고 신체를 움직일 수는 있지만, 죽은 것이 다름이 없었기에 인간으로서 하는 기본적인 생활이 전부 불가능했다.

식사도, 용변도, 잠도.

살아있을 때 가졌던 평범한 일상들은, 이제 그에게 누릴 수 없는 특권과 다름없었다.

“괜찮아요. 단지 그것을 기억할 때마다 조금 고통스러울 뿐이죠.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입이 하나 준 덕분에 아버지만 드시면 되니까.”

산자들의 무안한 식사가 끝이 난 후 그들은 다시 지도를 살펴보았다.

“드래곤은 눈에 들어오는 곳을 전부 다 볼 수 있습니다. 숨어 다닌다 해도, 단 한 번이라도 눈에 띄면 찾아내죠. 그래서 지하로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경원은 곁에 앉아 조언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석민은 살짝 인상을 썼다.

“우리도 지하철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만, 주변 관측이 필요합니다. 근처에 고지대가 없어서 저 산으로 가려는 것이죠. 근방에 높은 건물이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전부 다 포격을 당해서요. 이 아파트 단지는 무사했지만, 보시다시피 여기도 완전히 멀쩡한 곳은 없어요. 이 집이 가장 안전해 보였기에 고른 것일 뿐이죠.”

석민은 다시 지도를 보았다. 그러면 저 눈을 피해 갈 곳이 없었다. 포격이 너무 떨어져서 지역이 거의 평탄화 된 상태에서, 잠도 안 자고 주변을 감시하는 눈 좋은 드래곤의 눈을 피해서 왕십리로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래선 안 되겠어요.”

아영이 말했다.

“다른 길을 알아봐야겠어요. 7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서 왕십리로 가는 방법이 났겠어요. 운이 좋으면 5호선 지하철이 침수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지하로 이동하면 이 강추위도 어느 정돈 견딜 수 있겠죠.”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무작정 남쪽으로 갈 수 없어. 게다가 이 근방은 저 드래곤 때문에 괴수들도 없다고. 이쪽에 루트를 만들어낸다면 안전하고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도 석민 역시 자기가 한 말이 조금 억지라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

갑자기 괴성이 울렸다. 드래곤의 괴성이었다. 그 쩌렁쩌렁한 소리에 아파트의 유리창들이 흔들거렸다. 곧 거대한 그림자와 날개 소리가 바람과 함께 지나갔다.

“뭐지?”

“드래곤이 또 뭔가를 발견한 것 같군요.”

경원이 말했다. 드래곤이 가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성과 폭음이 잔뜩 울렸다. 다른 헌터들을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석민과 아영은 폭음이 울리는 쪽을 잠시 지켜보았다. 커튼이 쳐져 있었지만, 폭발에 의해 섬광이 커튼 틈새로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드래곤은 잡을 수 있을까?”

석민의 말에 아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수복작전 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래? 비행기로 폭격하고, 전차로 쐈는데도?”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글쎄요. 싸웠던 부대가 전멸했었다고만 들었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현대의 무기를 맞으면서도 살아남은 거지?

‘하긴, 천사도 일반적인 화기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도대체 그가 보았던 천사는 어떻게 저 드래곤의 눈을 피해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을까? 석민은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야.”

갑자기 문에서 고성이 울렸다. 경원의 할아버지였다. 경원은 ‘또 그러네.’ 하면서 할아버지 방 쪽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일단은 돌아가죠. 보급품을 다 잃었으니까, 돌아가서 다시 준비하고 오죠.”

그는 그녀에게 뭔가 있단 것을 느꼈다. 아영의 시선이 벽 쪽으로 향해 있었는데, 그곳은 경원의 할아버지 방이었다.

“대통령에게 옮겨달라고 말하게?”

석민이 물었다.

“그분이라면 도와드릴 겁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성이 있는 감염자라면 감염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보다 네가 착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런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의심하는 게 아닌데 말이야.”

그녀를 칭찬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영의 죄책감을 깊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

석민은 적잖은 추위를 느꼈다. 그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설탕 두 스푼을 넣어 말이다.

이번엔 서울에 들어온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됐으나, 마음은 일주일도 더 된 것처럼 피곤했다.

그는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번일은 여기서 끝내야지.’

돌아가는 길은 경원이 잘 알고 있어서 그의 도움을 받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안전하게 구리암사터널로 들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감염자들을 단 한 명도 만나지 않았고, 드래곤의 눈도 피한 채 올 수 있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경원 씨.”

아영은 장갑을 벗어 그의 차갑고 죽어버린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영의 따뜻한 손짓에 경원은 몸을 흠칫 떨었다.

따뜻한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그 마음만큼은 전해졌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군인이 아니지만, 정부 쪽에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다음에 돌아올 때는 경원 씨와 아버님은 반드시 서울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부 쪽이라 했을 때 몸을 떨며 감동을 하던 경원의 몸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아영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굳이 저를 위해 고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만이라도 나갈 수 있으면 되니까요.”

비록 임무 때문에 지금 당장은 군인 신분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어쨌든 그는 천생 군인인 사람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기로 맹세하고서 총을 들고 훈련받은 자였다.

그 자체가 그녀에겐 자부심이며, 당면한 상황에서 몸과 마음을 받쳐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경원과 그의 아버지의 존재는 그녀의 원동력을 흔들고, 자부심이 무너지도록 만드는 증거들이었다.

그녀는 그들 부자를 구해 상황을 바로잡고, 총을 쥔 자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마음먹었다.

***

석민이 혜원의 가게로 온 것은 그들이 경원과 헤어지고 난 후 이틀이 지난 뒤였다.

그는 외줄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챙겨왔다.

석민을 맞이하는 혜원의 입에는 궐련이 아니라, 시가가 물려 있었다.

“아, 왔냐?”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담배를 입에 물어 어물거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날 우리 사이에 뭔가 있었던 거 맞지? 석민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반응은 여전히 똑같았다.

그나저나 시가라니, 그녀가 궐련이 아닌 걸 피우는 모습은 처음 본 거라, 석민의 눈에 살짝 호기심이 감돌았다.

“웬 시가야? 돈 좀 많이 벌었나 봐?”

석민은 시가를 펴본 적이 없었다. 그 물음에 혜원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놈이 파이프 피는 거 보고 따라 했었는데….”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뺀 직후 그것을 빤히 보았다.

“향은 좋지만,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네. 가격도 그렇고.”

석민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방탄유리 안쪽으로 들어왔다.

밖은 영하 20도에 체감온도는 영하 40도를 맴도는 강추위였으나, 여긴 따뜻했다.

아무래도 내부에 가득 찬 기계들이 돌아가는 기계열과 그녀가 작업하면서 사용하는 용접기의 열 때문인 것 같았다.

석민은 따뜻함이 밀려오자 하품을 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서울에서 일찍 왔네? 일이 잘 풀렸나봐?”

그녀는 용접기로 무언가를 조립하며 물었다. 석민은 탁자에 가방을 올리고, 의자에 등을 편히 기대어 앉았다.

“아니, 일이 안 풀렸어 정확하겐 죽을 뻔하고 간신히 살아 돌아왔지.”

그 말에 용접기를 잡고 있던 혜원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하지만 바로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고, 용접을 끝낸 물건을 발밑의 박스 안에다 던져두었다.

“뭔 일인데?”

“더럽게 큰 드래곤을 만났거든. 얼마나 큰지, 산 정상을 다 차지하고 있더라고. 그 망할 것이 공격해 와서 죽을 뻔했어. 그러다가 강북에서 생존자도 만났고.”

“생존자?”

생존자란 말에 혜원이 크게 관심을 보였다. 석민은 뭔가 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잠시 멈칫거렸다.

경원이 감염자란 사실을 말해줘 봤자 별로 좋을 게 없었다.

“어, 아들이랑 노망난 아버지. 아들이 거기서 아버지를 여태껏 공양하고 있더군.”

“…그게 가능한가?”

혜원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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