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91화]
석민과 아영은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자는 돌담을 바로 넘어 옆집의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자는 이런 방식으로 이 도시를 오가는 것이 분명했다.
“길거리를 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다니는 것이 드래곤의 눈도 피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요.”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4채의 건물을 뛰어넘거나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죠?”
아영이 물었다. 그 말에 그자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상체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후드와 두건을 여러 겹으로 쓰고 있다 보니 그가 석민와 아영을 보려면 고개를 크게 돌려야 했다.
“그야 우리 집이죠.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가깝습니다. 곧 도착할 것입니다.”
곧 도착한다 하였지만, 그들은 대략 1시간 정도 집과 집을 넘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느 아파트 단지였다.
“이 근방은 드래곤 덕분에 괴수들도 없지요. 올라오세요.”
아영이 석민을 툭 쳤고 한곳을 가리켰다. 그 아파트 단지는 봉화산 바로 밑에 있었다.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올라갔고, 석민과 아영도 따라 올라갔다.
“단지 안에선 크게 떠들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는 앞서 걸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느 부대에서 오신 거죠? 생존자들을 찾는 것입니까?”
왠지 기대하는 목소리였기에 아영은 대답할 때 마음이 무거웠다.
“아뇨, 우리는 그런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아영의 얼굴이 조금 복잡해졌다.
“우리는 군인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그 말에 그자는 살짝 멈칫거렸다가 다시 움직였다.
‘상당히 실망한 것 같군.’
그것을 보며 석민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뇨,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 없죠. 사실 그런 것은 익숙합니다.”
그자는 웃음인지 기침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석민과 아영은 불편한 기분을 억눌렀다.
그들은 아파트 6층으로 올랐고, 610호의 문 앞에서 그자는 열쇠를 꺼내서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지요.”
집안은 사람이 사는 것처럼 매우 깨끗했고, 유리창이 깨지지 않아 단열이 잘 되어서 내부 공기는 밖에 비해 상대적으로 훈훈했다.
그자는 신발장 앞에 놓인 젖은 걸레로 자신의 발을 닦은 직후 안으로 들어갔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그는 친절하게도 소파에 자리를 권했고 석민과 아영은 조금 어색하게 군화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상황에서 서울 북부에 이렇게 안락한 집이 있는 줄은 몰랐기에 그들은 조금 어리숙하게 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짐가방을 뒤쪽에 두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양 손바닥을 비볐다.
“차를 내어오죠. 재스민 차인데, 향이 아주 좋습니다.”
감염자인데 차향을 맡을 수 있나? 석민은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영이 물었다.
“아, 이런 미안합니다. 김경원입니다.”
그는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어떻게 당신은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아영이 다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경원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다시 차를 끓이기 위해 움직였다.
“자세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가 겪은 것을 말하자면… 저는 출근 중에 그 드래곤을 만났습니다.”
그는 옛 생각을 떠올리고선 그때의 두려움을 다시 느끼는지, 몸을 심하게 떨며 흐윽흐윽 신음소리를 냈다.
아영은 그에게 괜한 질문을 한 것이 아닌가 불안을 떨었다. 혹시 어쩌면 아니, 어떨 땐 자아를 잃고 다른 감염자들처럼 움직이는 게 아닌가.
“저, 저는 공장으로 출근 중에 만났습니다. 하늘에서 커다란 빛이 나오는가 싶더니 나타났죠. 그것은 하늘에 나타나기 무섭게 주변 건물 위로 내려앉으며 건물을 무너트렸습니다. 그 충격에 건물 상층부가 무너지고, 큰 진동이 일어났죠.”
그는 물을 끓이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 정말 오랜만인지, 억양에서 들뜬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과 공포로 굳어버린 사람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죠. 그때 저는 그것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눈빛만으로 이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죠. 저를 포함해서 그것과 눈을 마주친 사람들 모두가… 그것은 정말, 죽는 게 더 편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마치 염산 욕조에 몸을 담근 것처럼, 아! 진짜 담가 본 적은 없지만, 그 정도로 뜨거운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정신인 감염자를 처음 본 것이니,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아영은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드래곤과 눈을 마주치니 감염되었단 말인가? 석민과 아영은 서로를 보았다.
여러 소문들이 있긴 했지만, 감염자들이 나타나기 전 사람이 어떻게 감염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었다.
아니, 감염자가 피해자를 물어 감염시킨 것은 이미 흔하게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 숙주라던가 그것이 균인지 바이러스인지, 알려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몇 년 동안 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석민은 팔짱을 끼고 앉은 채 깊은 시름에 빠졌다.
“불타오르는 고통 속에 다들 쓰러졌고 ‘다시 일어났지만’,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다시 일어난 자들이 감염되지 않은 다른 일반인들을 물어서 감염시키는 아비규환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는 그 드래곤이 뒤에 있었습니다.”
“드래곤이요?”
아영이 되물었다.
“드래곤이 감염자들을 자신의 노예마냥 다뤘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의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확산되었죠. 나는 보았습니다. 죽거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감염자들이 들고 옮겨서 입을 딱 벌린 드래곤의 아가리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요. 때때론 감염자들이 스스로 그 입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아영은 도저히 뭐라 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감염자들이 드래곤의 노예가 되었을 때 나는 그 무리 속에서 눈치를 보다 빠져나왔죠. 이미 나는 감염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감염자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더군요.”
그 순간 안방 쪽 문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 둘은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진정하세요.”
“안에 누가 있는 거죠?”
아영이 물었다.
“진정하세요.”
경원은 문 앞에 서서 그들을 막아섰다. 경원은 불안한 표정으로 석민과 아영의 눈치를 보며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석민과 아영은 아직 그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기에, 여전히 권총을 치우지 않은 상태였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예요.”
“열어보세요.”
경원은 잠시 우물 쭈물거리더니 이내 체념한 듯 문을 열었다. 석민이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노인이 있었다. 백발이 성성했고, 늙은이들이 다 그러하듯 볼살은 쏙 들어갔으며, 등이 굽고 거북목이 심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노인은 탁한 눈동자로 이곳을 응시했지만, 초점은 잡혀 보이지 않았다.
백내장이라던가 아니면 노환으로 시력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권총을 들고 있는데도 저렇게 태연하게 앉아있지 못할 것이다.
“누구야?”
잔뜩 쉰 목소리가 노인의 입에서 나왔다.
80은 훨씬 넘어 보이는 노인은 좋지 못한 안색에, 피부는 누렇게 떠 있었지만, 감염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노인이 있다고? 이곳에? 여기 서울인데?
“아뇨, 아버지, 친구가 왔어요.”
“경원이 친구?”
“예.”
“그럼 인사를 해야지!”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질책에 석민은 깜짝 놀랐고 얼떨결에 꾸벅 절을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최석민이라 합니다.”
앞도 안 보일 텐데 그는 최대한 바른 목소리로 노인에게 인사를 드렸다. 석민의 인사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최석민이라 합니다.”
“뭐라고?”
경원이 말을 덧붙였다.
“귀가 안 좋으셔요.”
석민은 좀 더 큰 목소리로 자기를 소개했다.
“최석민이? 그래, 그래.”
이윽고 아영이 안으로 들어와 인사했다.
“저는 아영이라 합니다.”
“영이? 그래. 어서 오너라 오랜만에 친구가 왔구나. 이거 정말 얼마 만에 손님인지…….”
그 노인은 그러더니 한숨을 쉬고 눈을 감고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여보, 나 좀 도와주게! 이 빌어먹을 놈이 날 이곳에 가둬놓고 밖으로 나가지도 못 하게 하고, 날 말려 죽이려고 해!”
“치매도 있으셔요.”
경원이 작게 속삭였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서울 북부에 치매 노인을 모시는 감염된 아들이라? 석민과 아영은 측은한 감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아버지, 그럼 저희 나가 볼게요.”
“도와달라니까!”
그러더니 그 노인은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왜 나를 여기에 가두어 두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경원은 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현 사태를 모르십니다. 모시고 이곳을 나가고 싶지만, 아버지 몸으로 이 추위를 버티는 것도 그렇고, 도중에 괴성도 지르시니 그게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드래곤이 지키고 있어서요.”
석민은 기가 막혔다.
“아니, 그러면 사태 이후로 계속 여기 계셨단 말입니까? 1차 수복작전 때도요?”
그의 물음에 경원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군인들이랑 공무원들은 노인들까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구하지 않더군요. 국민을 지켜야 하는 것들이 노인들을 왜 구하지 않았는지… 가만히 있다 죽으라는 건지, 노인정이나 요양병원에 방치해두었었습니다.”
‘아니야.’
아영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어버리고 겨우 감염자 무리에서 빠져나온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양병원에 갔다가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모셔왔습니다. 다른 노인들은 데리고 올 수도 없었죠.”
그 생각만 나도 치가 떨리는지 그자는 몸을 떨었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이 없으니 괜찮지만, 아버지는 아닙니다. 솔직히 오늘내일하시긴 하지만, 자식으로서 부모를 버릴 순 없잖습니까?”
동정이 가긴 했지만, 석민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저 말이 나온 것을 보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것이다.
‘부탁하려는 것이겠지.’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역시 아버지를 모시고 여기를 나가는 것은…….”
“미안합니다.”
석민은 경원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바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매정함에 아영도 놀라 잠시 그를 볼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의 내면의 감성이 말하고 있지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따졌을 땐 거부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그들이 고생 좀 하면 이 산뜻한 추위와, 친절한 주민들, 똑똑하고 귀여운 괴수들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제가 못 나가는 것쯤은 압니다.”
경원은 감염자였고, 아직 감염의 원인이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은 이상, 사람들을 그를 피할 것이다. 아니, 바로 죽이려고 할지도 몰랐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만큼은….”
“그 역시 무립니다. 아시잖습니까?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입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요.”
저런 노인이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얼어버릴 것이다. 여기도 상대적으로 훈훈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따뜻한 게 아니었다.
대충 영상 0도에서 1도였다. 나이든 노인에겐 이것도 별로 좋은 게 아니지만, 밖보단 나을 것이다.
“아, 그런가요.”
역시 감염자이기 때문이라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이 분명했다.
“역시… 그렇군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물이 끓어오르면서 증기소리가 났다.
“아, 물이 끓고 있군요. 차 한잔하시죠. 혹시 시장하신가요?”
그 말에 아까 잊고 있었던 배고픔이 다시 밀려왔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