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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90화 (90/226)

[게이트 오브 서울 90화]

생존자

“엎드려!”

말보다는 몸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들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드래곤의 아가리가 그들의 가방을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몸이 그들의 몸 위로 지나가면서, 생겨난 풍압에 그들의 몸이 붕 떠서 튕겨 나갔다.

비명과 욕설이 자연스레 나왔다.

“이 빌어먹을 도마뱀새끼!”

가방이 있는 쪽으로 떨어진 덕분에 충격이 덜 했던 석민은 그대로 소총을 난사했다. 연사력 좋은 ak-107이 불꽃과 함께 매우 빠른 속도로 드래곤에게 탄환을 토해냈지만, 탄환이 비늘에 막혀 깨지면서 생기는 불꽃이 그대로 보였다.

안 통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안 통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같이 사격을 가하려고 하는 아영에게 소리쳤다.

“소병기 따윈 역시 씨알도 안 먹혀! 싸우는 건 무리야! 뛰어!”

그는 등에 멘 가방을 벗었고, 아영도 그 모습을 보고선 따라 짐을 벗어 던졌다.

그들은 바로 근처에 있는 상가 건물로 달렸다. 그들 옆을 스쳐 지나가던 드래곤의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그들을 끝까지 주시했다.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지능도 높은지, 아마 자신들이 들어가는 건물을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그는 아영의 팔을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그 건물 말고, 이쪽 골목으로!”

그는 아영을 이끌고 방향을 틀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그들은 반파된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집 계단으로 내려갔고, 석민은 거칠게 문을 잡아 열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는 아영이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어간 후 문을 닫았다.

엄청난 괴성과 함께 화르륵- 불길을 내뿜는 소리가 들렸다. 석민과 아영은 집의 구석에 누워서 숨죽인 채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듯 서로 부둥켜안았다. 태초의 두려움도 이와 같지 않을까. 아무리 강심장이고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쳐 왔으나, 지금처럼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밖에선 석민의 예상대로 드래곤이 그들이 원래 숨으려 했던 건물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10분쯤 지났을 때, 밖이 잠잠했다.

끝난 것인가? 석민이 눈을 떴다. 그 순간, 날갯짓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 그들이 숨어든 방의 창문을 흔들었다. 그리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간 건가? 아, 이런!”

서로 껴안고 있던 석민과 아영은 후다닥 떨어졌다.

“미안하게 되었네.”

“저도요.”

민망함과 쑥스러움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이내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실실거리며 웃었다.

드래곤이 지나간 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니 실제로 드래곤이 완전히 사라졌는지도 알 순 없지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그들을 절로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즐거운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현실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그들은 도망치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보급품을 전부 버렸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두 사람은 주머니와 군장의 파우치를 모두 꺼내서 남은 물건들을 확인했다. 무기나 탄약은 그대로 있었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비상식량도 없네요.”

막상 먹을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갑작스레 배고픔이 밀려왔다. 즐거움에서 깨어난 석민이 낮게 투덜거렸다.

“저런 게 언제부터 저런 게 자리를 잡고 있었데? 강북지역 방벽에선 저걸 모르고 있었나?”

아영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몰랐던 것 같다. 아영은 손으로 턱을 괴곤 잠시 상황들을 재보는 듯 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돌아가야지. 그래, 바로 갈까? 아니, 잠시만.”

그는 반지하 집의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더니 다행히 깨지진 않았다. 재로 얼룩덜룩한 창밖으론 어두움이 내려앉아 있었다.

“지금 몇 시지?”

그는 작게 속삭였고, 그 뜻이 무엇인지 감지한 아영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후 2시입니다.”

‘그런데 왜 밖이 어두워?’

원래 구름이 끼긴 했지만, 이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에라이, 시발 설마….’

석민은 발소리를 죽인 채 다른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곳엔 창문이 깨져있었다. 석민은 깨진 구멍 사이로 밖을 살폈다.

그곳엔 드래곤의 거대한 다리가 보였다.

‘이 빌어먹을 자식, 언제 돌아온 거지?’

이 드래곤은 자신이 불태운 건물에 자신들이 없단 걸 눈치 챈 것이다. 바퀴벌레처럼 숨어버린 자신들을 찾기 위해 날아가는 척하고선 다시 돌아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큰 덩치 덕에 가려져 어두워진 밖이 아니었으면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다.

석민이 아영에게 돌아가 밖의 상황을 전달하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더 심각해졌다.

“조금 더 대기하지.”

그러나 대기할 시간조차도 곧 강제로 끝나야 했다. 밖에서 이상한 아우성들이 들려온 것이다.

석민은 긴장한 채, 창밖을 살펴보았다.

‘감염자들!’

그것들이 이 모여들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들은 마치 주변의 집들을 수색하는 것 같이 행동했다.

‘아니, 뭐야? 감염자들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

감염자들은 이곳저곳 들어갔다가 나오는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필 난데없이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집을 수색하다니?

드래곤은 감염자들의 모습을 관전하고만 있었다.

‘뭐지? 제기랄.’

깊이 오래 생각할 수 없었다. 몇 분 안에 감염자들이 들어올 것이다.

석민은 아영에게 갔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탈출해야 한다.

감염자들이 지금 같은 속도로 수색을 한다면, 곧 이곳에도 닥칠 것이 분명했다.

“무기 장전해.”

“하지만, 어떻게요? 나가면 죽을 텐데?”

석민도 딱히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있다가 개죽음당할 수도 없었다. 그는 초보적인 시선 끌기라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석민은 군장에서 수류탄 1발을 꺼내 들었다.

“저쪽 밖으로 던질 테니까 반대편으로 달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방으로 가서 그대로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은 유리창을 깨고 나가 반대편 건물로 날아갔고, 그대로 폭발했다.

그 소리에 감염자들은 괴성을 지르며 폭발이 난 곳으로 달려들었다.

그 소란에 바위처럼 굳건히 자리만 지키고 있던 드래곤도 머리를 스르륵 움직여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류탄을 던진 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석민은 먼저 뛰쳐나간 아영의 등을 따라 달렸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한 채여서 무작정 드래곤의 반대편을 향해서 달렸다. 그들은 단지 이 위험에서 빨리 벗어날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하필 그 길이 오르막이었다. 아무리 스탯을 찍은 그들이라도 뛰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달리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쯤, 앞서가던 아영이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급하게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제적으로 열려고 하면 할 수 있었겠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아무 데나, 빨리!”

폭발이 일어난 곳에 그들이 없단 걸 눈치 챈 드래곤이 다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석민은 불안한 눈으로 그 상황을 주시했다.

“문이 다 안 열려요!”

그녀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문고리들을 흔들어댔다. 석민은 어깨를 잡아 건물 옆 골목길로 들어갔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다급한 나머지 그는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제기랄….”

두 사람이 절망으로 빠지는 순간, 옆문이 열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총을 조준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 들어와요!”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같았으면 절대로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위험도 마다않는 헌터들도 들어서지 않던 곳이 바로 서울 강북지역이었다. 아직 그들 말고 강북에 진입한 자들도 별로 터였다.

그런데 문이 열린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석민과 아영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았다.

그 둘은 문가에 귀를 대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두 사람을 못 찾아서 화가 난 드래곤의 분노 가득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고 이내 그 소리는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감염자들의 괴성과 발걸음 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됐어.”

안전함을 느낀 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 정말 고맙습니다.”

아영은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둘러보며 은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석민과 아영은 잠시 서로를 본 후 무기를 바로 쥐고 집안을 조준했다.

“선생님?”

아영이 불렀지만,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아영은 장전손잡이를 당겼다. 찰칵거리면서 무기를 장전하는 소리가 나자, 무언가 움찔거리는 소리가 났다.

“……부디 무기를 치워주시겠습니까?”

어두운 방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마르고 쉰 남성의 목소리였다. 매우 거친 목소리는 듣기에 불쾌할 정도였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자아를 가지고 있고, 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문틈으로 메마른 잿빛의 손이 나왔다. 살이 바짝 마른 나머지 가죽과 뼈밖에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그리고 저런 몸체를 가진 것은…….

“감염자?”

아영이 물었다. 석민은 놀라 저도 모르게 총을 그 팔에 조준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 낌새를 바로 눈치 채고선 다급히 손을 도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예, 감염자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생전의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물거나 공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총은 치워주세요.”

석민과 아영은 서로 보았다. 잠시간의 눈짓이 오가고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에 석민이 총을 내렸고, 아영도 같이 총을 내렸다.

“좋아요, 총 내렸어요. 나오세요.”

나온 것은 역시 감염자였다.

그는 마치 추운 날씨를 느낀다는 듯,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있었다. 다만 그런 것에 비해 등이 굽고, 감염자 특유의 마른 미라 같은 몸 때문인지 덩치가 커 보이진 않았다.

그는 3중으로 후드티를 눌러쓰고, 얼굴은 두건으로 가린 채였다. 아마 옷을 껴입은 것은 추위가 아니라,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자는 석민과 아영이 두려운지, 몸을 내밀었다가 급히 다시 뒤로 빼내더니, 잠시 뒤 다시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개를 내밀었다.

“괜찮아요.”

아영은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재촉했고 그녀는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양손을 들어 보였다. 석민도 그것을 보고 따라 했다.

그 덕분인지 그자는 용기를 내어서 앞으로 나왔다. 그는 석민과 아영은 번갈아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건과 후드를 여러 겹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아마 의도적으로 얼굴을 못 보게 하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몇 년 만에 사람인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감격에 겨운 나머지 다리도 떨어댔다. 해진 바지의 기단 아래쪽에 드러난 맨다리가 눈에 보였다. 미라처럼 앙상하게 마른 회색빛의 종아리였다.

설마 사태 이후로 계속 줄곧 혼자 살아왔던 것인가? 하지만, 그 남자의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이곳을 나갑시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얼른 따라오세요.”

그는 부엌 쪽 문을 열어서 그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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