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89화 (89/226)

[게이트 오브 서울 89화]

그는 전속력으로 달려 아영의 손을 잡아 반대편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굉음과 함께 중랑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지축이 크게 울리고 흙먼지가 크게 일어나 지하에 웅크리고 있던 그들을 덮쳤다. 그 순간, 그들이 있던 건물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이쪽으로!”

아영이 지하 방 쪽을 가리켰다. 그녀는 녹슨 쇠문을 억지로 열어 먼저 들어갔고, 석민도 따라 들어갔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렸다. 석민이 올라갔던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충격과 진동에 그들이 대피한 건물도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가 들어간 눈이 따가웠다. 석민과 아영은 기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석민은 짐가방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라이터 꺼내 불을 켰다. 따뜻한 온기가 은은하게 전해졌다.

“우린 마트 안에 들어왔군.”

그들이 들어온 출구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뭐, 최소한 추위는 막을 수 있겠네요.”

석민은 라이터를 끈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리통에 대부분의 물건들이 약탈당했는지 진열장이 텅 비어 있었지만, 잡화들이 있는 코너에는 물건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물건들 사이에서 흰 묵같이 생긴 막대 같은 것이 보였다.

양초였다. 3개나 있었다. 석민은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였다. 아까 전보다는 더욱 따뜻한 온기가 전달되었다. 석민은 신선야채용 냉장고에 쭈그려 앉아 그 앞에 초를 놓았다.

“밖으로 나가는 곳을….”

아영이 그의 말을 잘랐다. 우산카와 발라크라바를 벗은 그녀는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조금만 쉬죠. 너무 많이 추웠어요.”

강동역에서 구리 암사대교, 그리고 터널을 지나 사가정역 쪽, 그리고 여기까지. 그들은 강추위 속에서 대략 10킬로미터를 걸어서 왔다. 아무리 스탯을 올렸어도 추위는 추위였고, 그들도 휴식이 필요했다.

석민과 아영은 장갑을 벗고 땀에 젖은 손을 말렸다. 겨우 촛불 3개의 불빛이 이렇게 따스할 줄이야, 그런 감상적인 생각이 절로 떠오를 지경의 추위였다.

“날씨가 더 추워질 것입니다.”

아영이 말했다. 그 말에 석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12월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1월, 2월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약간의 휴식 후, 그들은 나갈 곳을 찾아보았다. 이곳은 무너진 입구 쪽 말고는 오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즉 갇혔다는 거군.’

생각보다 상황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무너진 입구 틈새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단 것이다. 건물 전체가 무너지지 않았을 테니, 치워야 하는 장애물도 생각보단 적을 것이다.

“돌무더기를 치우면 되려나.”

석민은 수박처럼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를 들었다. 상당한 무게였으나 석민에겐 한 손으로도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시멘트 사이사이, 철근들이 삐죽이 솟아있었다. 그는 그것을 옆으로 던졌다.

“잠깐.”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불길한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아영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댄 채 주변을 살피듯 눈을 굴렸다.

그러나 이내 아무런 위협이 없는 것 같자, 아영과 석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긁었다.

“너무 조심성이 사라진 것 아닙니까?”

“미안.”

석민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너진 입구 밖에서 들려왔다. 석민과 아영은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 순간, 돌무더기 밖에서 무언가가 미친 듯이 긁어대는 소리가 났다. 괴수들이 잔해를 파헤치는 것이 분명했다.

석민과 아영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총기의 조정간을 자동으로 바꾸었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빛은 점점 뚜렷해졌다. 그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 너머에 어떤 괴물이, 몇 마리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엄청난 괴성과 함께 건물을 긁어대던 소리가 멈췄다. 마치 주변을 모두 뒤흔드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괴물들의 울음이 울려 퍼졌다. 그저 짖어대는 소리가 아닌, 겁에 질린 말 그대로 비명소리였다.

그리고는 땅이 울려댔다. 다급한 괴수들의 발소리였다. 울리는 규모를 봤을 때 못해도 20마리는 넘을 듯했다.

점점 발소리가 멀어져가고, 석민과 아영은 침묵이 감도는데도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석민과 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것들이 여기에 들어왔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방금 그 소리 뭐죠?”

“모르겠어. 일반적인 괴수들 목소리는 아닌데. 혹시 드래곤인가?”

석민은 아직 드래곤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울음소리도 들은 적 없었고.

다만 다른 괴물들이 이렇게 낌새를 차린 먹이조차 버리고 갈 정도면, 웬만한 상대는 아닐 거란 소리였다.

“밖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여기에 있지.”

“그러죠.”

아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혹시 모르니까 여기 다 수색해보고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좀 찾아보자고. 이봐, 괜찮아?”

방금 일 때문인지 아영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무언가 멍한 표정에 석민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정신 차려.”

“…아, 미안해요.”

아영은 조금 전 석민에게 조심성이 없다고 해놓고, 자신이 딴생각했단 게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한 생각은 방금 전의 일이 아닌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배신하지 못하게 얽매라니.’

뭘 더 어떻게? 그녀는 석민의 뒷모습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은 이제 날 신뢰하고 있지 않나? 이미 우리는 전우가 아닌가?’

이 이상으로 긴밀한 관계, 배신할 생각도 못 하게 목줄을 채울 만한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대통령님이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가 없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그녀는 일단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트를 살피던 그녀의 발걸음이 육류코너로 향했다. 그곳엔 거대한 냉동고가 있었다.

조금 특이한 것은 레버식 손잡이에 누군가 구멍을 뚫고 쇠줄과 자물쇠를 채워 놓았단 것이다.

뭐지? 손잡이 위에도 자물쇠를 채우는 부분도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이것 봐, 파인애플 통조림이야. 구석에 숨겨져 있던 걸 찾았어. 유통기한도 아직 안 지났어. 그리고 바닥에 재와 그을음 자국을 보건데 여기서 생존자들이 살았던 것 같은데… 뭐야? 뭔 일이야?”

그녀의 손짓에 석민도 냉장고로 향했다. 그 또한 냉장고의 쇠줄과 자물쇠를 보고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생존자들이 한 것 같은데? 이 자물쇠는 원래 이 냉동고에 있던 게 아니야.”

“네, 그런 것 같아요. 한번 열어 볼까요?”

석민은 대답 대신에 가지고 있던 소총을 거꾸로 잡았고 개머리판으로 자물쇠를 내리쳤다. 강철로 된 커다란 자물쇠였지만, 한번 내리치자 반쯤 부서졌다. 석민은 총을 내려놓고 손으로 잡아당겼다.

아영이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지난번에 괴물 팔을 한 번에 잘라버린 것도 그렇고, 힘이 얼마나 강해진 겁니까?”

“그런 거 몰라. 재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나중을 위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지. 석민은 와이어를 풀었다.

석민이 손잡이를 잡자, 아영이 총을 들고 준비했다. 무언의 대화가 오간 후 석민이 문을 열었고 아영이 그곳을 조준했다.

“……뭐야? 왜 그래?”

“시발”

석민은 아영이 욕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뭐지? 석민도 안을 들여다보았고 아영처럼 욕설을 내뱉었다.

안에 든 것은 사람이었다. 미라처럼 바짝 말라버린 사람들이 보였다. 총 3명이었는데, 체구가 작았다.

“어린애들이잖아?”

많이 쳐줘야 6살, 7살? 뭐지, 이 시체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확실한 건, 누군가 이 애들을 여기다 두고 갔단 거야.”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타박상이나, 총상 같은 건보이지 않았다. 즉 산채로 여기에 가뒀단 말이었다.

냉동고 안에는 안전밀대가 있었고, 안전밀대를 누르면 안에서 열 수 있어 보였지만, 밖에서 자물쇠를 걸어두었었다.

“여기는… 생활공간이었던 것 같네요.”

냉장고에서 시선을 떼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3단 매트리스라던가 그릇, 수저 등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아이들은 형제나 자매였을 것이다. 아니면 서로 의지하던 사이이거나.

분명 이들의 부모나 보호자들이 이곳에서 이들을 데리고 살았을 것이다. 구조나, 생존을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왜 잠겨 있을까? 일부러 버리고 가려고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괴물에게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일지도?

하여튼 무슨 이유든지 아이들은 여기에 버려졌다는 것이다. 어느 때든 가장 보기 힘든 것이 어린아이의 시신들이었다.

게다가 굶어 죽은 시체는 항상 가장 비참한 얼굴들이었다.

“문 도로 닫아.”

그는 단숨에 여기에 있기 싫어졌다. 하지만, 바로 나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여기에 있어야 했다.

***

다음 날 아침 석민은 바로 잔여물들을 전부 치웠다. 괴수들이 제법 파냈는지, 그가 치우는 잔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구멍이 열리기 무섭게 차가운 공기가 엄습했다. 어제보다 더 추웠다.

“밖으로 나갔다간 2시간 안에 얼어 죽을 거야.”

“그럼…….”

석민은 지도를 들었고, 사가정역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까?”

“지하철이요? 이용이 가능할까요? 지하수를 생각하셔야지요.”

“강이랑은 머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내 말은 그러니까, 이쪽 지대가 높으니까. 지하수가 고여 있지 않을 수도 있어.”

그 말에 아영은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하라서 지상보단 따뜻할 것입니다. 괴수들이 둥지를 텄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괴수들에겐 지하철은 별로 좋은 여건이 아니야. 입출구가 많고, 또 넓어.”

아영은 석민의 의견이 영 터무니없다고 생각진 않았는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확인해 보고 결정하죠.”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있는 곳은 사가정역과 상당히 가까웠다. 그들은 역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엔 탄피로 가득해, 아영이 넘어질 뻔했다. 이곳은 군인들의 전진기지였고 공격받았던 곳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입구 주변엔 죽은 채 얼어있는 괴물들의 시신이 보였고, 그 괴물들에게 당한 희생자들의 흔적도 곳곳에 널려있었다.

어두웠고 차가웠다. 이게 다였다. 그들은 정거장 쪽으로 내려갔다.

혹시 지하수가 차지 않았을까? 석민은 자신이 낸 의견임에도 걱정했으나, 이내 그것은 기우로 밝혀졌다. 물은 고여 있었으나, 얼어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부도 영하권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지하수가 그리 많지 않았는지, 철로도 잠겨있지 않았다.

“이쪽으로 가면 될 거야.”

석민은 다시 지도를 펼치고 상봉역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면 봉화산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역을 나온 후에 좀 걸어야 하겠지만, 1시간은 걸리지 않을 거야. 보자, 사가정 다음역이 어디지?”

“면목역이요.”

아영이 턱짓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들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상봉역으로 향했다.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석민은 그렇게 말하고 조정간을 연사로 돌렸다. 하지만, 석민은 또 긴장의 끈을 놓았다. 이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무사히 상봉역을 나왔다.

“내 말이 맞지?”

석민은 활짝 웃어 보였다. 발라크라바에 가려져 있었으나, 활짝 휘어진 눈웃음은 선명하게 보였다. 아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신뢰받을 정도면 이 이상 할 필요는 없겠지.’

그들은 산으로 갈 수 있는 굴다리를 지났다. 그리고 산이 보였다. 그런데, 산 위에 무언가 보였다.

“저게 뭐지?”

산 위에 커다란 회색 모자를 씌운 것 같았다. 석민은 시야를 확대했다.

“봉화산에 봉화가 있으니까, 그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게 저렇게 크다고?”

시야가 확대하자 나타난 것은 거대란 파충류였다. 그는 저렇게 큰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대형 여객기처럼 컸다.

“드래곤입니다.”

“드래곤?”

[드래곤 ‘드라니트’와 조우했습니다.]

두 사람 앞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석민은 아영을 보았다.

“아뇨, 퀘스트 같은 게 나오진 않았어요.”

“그럼?”

“아무것도요. 아무런 말도 없어요.”

드래곤의 머리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의 시선이 이쪽으로 고정되었다.

“이런 젠장.”

저것이 우리를 보는 건가? 아영과 석민이 움직이려는 순간, 그것도 움직였다. 그들은 다시 굴다리 쪽으로 가려 했으나, 드래곤이 더 빨랐다.

화강암마냥 거친 회색빛 비늘은 두껍고, 날개는 매우 컸다.

그것은 곧 아가리를 쫙- 벌린 채 그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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