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88화 (88/226)

[게이트 오브 서울 88화]

하루에 1천 달러라니, 저 교단이 저렇게 돈이 많았나?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그 말에도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그럴 일 없으니까. 사업은 여기까지 하지.”

“그러지 말고…….”

“그만, 난 임대니 뭐니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박재만이 아니었다.

박재만이 의자에 앉은 채 뒷짐을 지자 이쪽저쪽에서 지켜보던 자들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민은 주머니에 넣어둔 권총을 꺼낼지 말지 고민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않는 게 좋아.”

알렉산드라는 그리 말하며 궐련을 꺼내 입에 물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곧 담배 연기를 훅- 뿜었다. 그리고선 옆에 있던 석민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넘겼다.

석민도 마다하지 않고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진한 연기가 그들 사이를 맴돌았다.

“여기는 내 호텔이자, 내 왕국이야. 니가 멋대로 내 왕국에서 네 의지를 마음대로 행사할 권한 따위 없어.”

교단 사람들이 그들의 주위를 점점 압박하듯 다가왔다. 역시 실력행사인 건가?

⌜도와줄까, 샤샤?⌟

박재만이 석민을 주시했다. 그의 손이 자연스레 오른쪽 홀스터로 향했고 석민은 그것을 주시했다.

⌜아니.⌟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드레스 치마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ppk권총을 꺼내 박재만의 이마를 겨냥했다.

“니 똘마니들이 오는 게 빠를까? 아니면 니 머리에 구멍 나는 게 빠를까?”

박재만의 이마에 권총이 조준되자, 그들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듯 멈춰버렸다.

“……그냥 조용히 지내지.”

“그래, 손님은 그래야지.”

박재만은 이를 악문 채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석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 들어간 손을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대로 쉽게 박재만이 물러날 리가 없었다.

⌜저것들, 그냥 물러날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 당장은 힘들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긴 헌터들에게 꽤나 좋은 보금자리거든.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사람도 있어.⌟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놈들은 반드시 여길 뺏을 거야. 성전인지 뭔지를 위해서 말이야. 강북으로 가는 활로가 열렸으니, 여길 전진기지쯤으로 쓰려는 게 분명해.⌟

알렉산드라의 이마와 콧잔등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그녀로선 당연히 이 사업장을 빼앗길 수 없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듯 보였던 그녀는 이내 촉촉한 눈길로 석민을 주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얼마?⌟

알렉산드라의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무리야. 우리는 2명인데, 저쪽은 20명이 넘잖아.⌟

⌜하지만, 저것들 그대로 두면 여긴 위험해지잖아? 넉넉하게 보수를 줄게. 한 3천만 원 정도 주면 되려나?⌟

3천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석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임대받지 그랬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저것들을 어떻게 믿고 임대해줘? 그리고 하루에 1천 불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 거야? 그냥 툭 던진 거에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라는 권총을 도로 치마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녀가 새 담배를 꺼내 물자, 석민이 라이터를 켜서 가져다 대줬다.

⌜아, 고마워. 여튼, 다음부터 단체손님은 받지 말아야겠어. 숫자 많다고 나대는 꼴이란!⌟

⌜이런 곳에 겨우 5명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그래, 어느 정도 보완을 해야지. 서울 밖에 있는 부하들을 부르던가 하고.⌟

그녀는 담배 연기를 크게 뿜었다.

⌜부하들이 서울 밖에 있나?⌟

⌜어, 그러니까 터널도 개척할 수 있었던 거지.⌟

아, 그렇지 그렇겠지. 겨우 경비 5명으로 그곳을 개척했을 리가 없지. 석민이 납득을 하는 사이 담배를 다 피운 알렉산드라는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사업 확장하느라고 여러 명을 고용한 덕분에 인건비가 좀 올랐는데, 저런 식으로 상도덕도 모르는 놈이 설치는 꼴은 못 보지. 일단은 의뢰는 네가 맡을 거지? 기대할게.⌟

석민은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천국의 문 교단은 자신이 처리해야 할 타깃 중 하나였다. 거기에 3천만 원이 굴러 떨어진다면, 꽤 쏠쏠한 부업이 될 것 같았다.

⌜……그러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영의 점심거리로 샌드위치와 탄산음료를 챙기고는 객실로 돌아갔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구장님?”

기분 좋은 거래를 망치고 알렉산드라에게 모욕까지 당했다 생각한 박재만은 잠시 바를 머물다 그대로 숙소로 돌아온 터였다.

박선우가 빠진 분대장급 대원들은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와 틀어진 계획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바로 이곳을 점령하시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유보하지. 먼저 할 일이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저쪽에서 경비를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투숙객들 포함해서 40명 조금 넘지만, 무장을 한 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점령을 하시려면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인간 이름이 뭐였더라? 고순? UDT 대위를 나왔다고 했나? 박재만은 잠시 그를 보았다.

올곧듯 반듯한 눈빛은 자신보다 높은 상급자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있었다. 지금 하는 말은 군인으로서 자신이 아는 경험을 통해 조언을 하는 것이었다.

박재만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다른 정탐군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봤자 몇이나 되겠나? 우리의 성전이 시작하면 1만의 정예성도들이 모일 텐데, 내가 그대들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혹여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가 생기면? 천사께서 전달한 신의 지상명령을 잊지 말게. 우리의 원래 임무에 지장이 생겨선 안 돼.”

“……알겠습니다.”

납득을 했는지 그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럼 푹 쉬게. 그리고 내일 바로 임무를 수행하지. 저녁과 아침도 원하는 대로 먹어.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알겠습니다.”

물론 교구장인 그는 내일 바로 서울 밖으로 나갈 것이다. 교구장씩이나 되는 그가 여기까지 마중을 나온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교주도 그의 헌신을 인정해 줄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석민과 아영은 말리나를 나섰다.

강북을 정찰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를 열자, 매서운 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군복 안에 몇 가지 방한용품들을 덧입고, 발라크라바로 안면을 가렸으며, 티타늄헬멧 대신 우산카라 불리는 러시아제 방한모자와 방한군화, 거기다 방한장갑까지 꼈다. 그럼에도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좀 심한데?’

호텔을 나서기 전 확인한 밖의 온도는 영하 20도쯤이었다. 강서구보다 분명 덜 추워야 했다. 그러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인지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석민은 손에 쥔 ak-107이 얼까 봐 걱정돼, 품에 안고서 움직였다.

“가지.”

그들은 이동하는 내내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기도비닉 같은 이유가 아니라, 너무 춥다 보니 대화조차 할 기력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정도 추위엔 괴물들이 자신들의 둥지에서 되도록 벗어나지 않으려 했기에, 정찰하기에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앞에 먹이가 있다면 득달같이 달려들겠지만.’

그들이 다리에 도착할 때까진 아무런 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 일도, 어떤 괴물도 만나지 않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적막했으며 흉흉한 바람소리만이 울렸다. 심지어 괴물의 울음소리조차도 없었다.

다리 입구에 도착할 때쯤 바람이 더 강해졌다. 강가였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그 입구를 지키는 것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드론, UGV(Unmanned Ground Vehicle)라 불리는 무인지상차량이었다. 그것들은 각각 중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장비하고 있었고, 두터운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아마, 샤샤가 마련해둔 것이었다.

UGV는 석민과 아영을 발견하고는 조준하려하였으나, 둘이 공격의사를 내비치지 않자 이내 돌아섰다.

이 정도 추위면 기계가 얼만도 한데, 드론들은 멀쩡해 보였다.

샤샤는 어디서 저런 것을 어떻게 구했을까? 그녀는 분명 저런 것으로 다리와 터널을 개척했을 것이다.

다리는 ‘정리’되어 있었다. 격전의 흔적도, 버려진 폐차들도 전부 불도저에 밀려난 것처럼 좌우로 치워져 있었다.

그들이 서울에서 자리를 비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이 모든 것을 다 했단 말인가? 정말로 그녀가 말한 대로 개척된 느낌이었다.

‘이 여자, 발이 얼마나 넓은 거지?’

석민의 얼굴만큼 아영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다리를 지난 그들은, 똑같은 무장을 한 무인지상차량을 지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터널은 매우 어두웠으나, 석민과 아영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터널 안 역시 정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곳마저 드론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장갑이 두꺼워서 일반적인 공격이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박재만처럼 누군가 독점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좀 따뜻하네요.”

아영이 말했다. 그러나 석민은 대답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터널 안이 밖보단 따뜻했으나, 여전히 추웠다.

한참을 가도 터널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 어두운 터널 너머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더럽게 기네.’

터널 출구에도 드론들이 있었다.

드론이 도대체 몇 대야? 밖으로 찬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들은 몸을 움츠렸다.

‘도저히 싸울 수 있는 날씨가 아닌데.’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이제 사가정역으로 도착했다. 그들은 강북 시가지에 도착했다.

강북은 강남과 다르게 대부분의 건물들이 포격이나 폭격으로 조금씩 무너져 있거나, 아예 무너져 내려 콘크리트 더미나, 벽돌 더미가 되어 있었다. 길은 완전히 막혀 차량들 사이를 지나는 것도 불가능했고, 폐허가 된 건물과 돌무더기들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지형이 어떻게 된 거지?”

주변에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 수복작전 때 벌어진 영향이었다. 물론 그 작전에 석민도 참가했었지만, 이 동네를 온 적이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다시 둘러봐도 주위에 3층 이상 되는 건물이 없었다. 그리고 천사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흔적을 어떻게 찾지?

그는 황량하게 망가진 도시들 사이에서 우뚝 솟은 산을 가리켰다.

“저 용마산으로 올라가는 게 나으려나?”

그 말에 기겁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됩니다. 저긴 방벽과 초소도 있어요. 거기에 있는 드론들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쏩니다.”

고지대를 찾아야 했다. 그들은 길을 따라가다가 북쪽으로 움직였다. 원래 2차선 도로였던 곳이 완전히 꽉 막혀 있었다.

석민과 아영은 과거 사거리였던 곳 근방의 건물 중에서 반파되긴 했으나 그나마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4층인 건물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옆의 다른 건물에 누워서 기댄 형태였다.

“저라면 저긴 안 들어갈 겁니다.”

“그럼 근처에 숨어있어.”

석민은 무기를 꼬나 쥐고 노리쇠를 당겨 장전했다. 다행히 노리쇠나 공이가 얼진 않았다.

그는 3점사로 조정간을 맞춘 후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이 기울어진 것만큼 바닥도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좌초된 배 마냥 바닥이 기울어져 있기 계단을 오르는데 조금 힘들었다.

안은 고요했다. 포격의 폭풍(爆風)에 의해서인지 유리창은 전부 깨져 있었고, 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면서 건물 안에는 횡횡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 덕분인지 내부엔 먼지나 재가 쌓여있진 않았다.

위험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한 석민은 그대로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허무(虛無)였다.

석민의 시야에 잡힌 건 폐허가 된 강북이었다. 그가 올라온 건물은 고사하고, 하나도 제대로 형태를 갖춘 곳이 없었다.

과거 사람들이 살았을 건물들은 전부 무너져 내렸으며, 그 위를 재나 먼지가 덮어, 잿빛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도 검은 먹구름만 가득해서, 세상이 색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강남은 그래도 멀쩡한 건물들이 있었고, 버려진 차나 간판들을 통해서 옛 문명의 잔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여긴 아니었다.

여긴 모든 게 불타고, 재가 되어버렸다.

그때, 멍하게 회색 도시를 바라보던 석민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잔해 속에서 구더기처럼 꾸물거리는 게 보인 것이다.

뭐지? 석민은 눈에 힘을 주었다. 시야가 확대되면서 나타난 것은 감염자들이었다. 바짝 마른 몸에, 잿빛 혹은 회색빛의 움직이는 시체들.

꾸물거리는 모습에 석민은 절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그의 눈에 갈색 빛이 도는 야트막한 산이 눈에 띄었다. 그 산은 주변 건물들이 죄다 무너진 이곳에서 홀로 우뚝 솟아 보였다.

‘그래, 저기로 가야겠어.’

저기로 가면 주변을 정찰하기 수월할 것이다.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 조금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대략 여기서 북쪽이니까…. 지도를 따라 움직이던 그의 손가락 끝이 닿은 곳은 서울의 봉화산이었다.

‘좋아.’

그는 펜으로 그곳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시선을 다시 감염자들이 있던 곳으로 돌렸다.

‘저것들은 이 추위에 얼어 뒤지지도 않나?’

물론 석민은 감염자들이 이미 죽은 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장도 뛰지 않아서 혈액이 발에 몰려, 어떨 땐, 멀리서 보다 보면 감염자들이 마치 부츠라도 신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저것들의 몸이 얼지 않은 채 잘도 움직이며 다녔다.

다행히도 그들이 가야 하는 북쪽엔 감염자들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 여기서 보기엔 안전했다.

건물 아래로 내려온 석민이 밖으로 나서며 아영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무언가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