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87화 (87/226)

[게이트 오브 서울 87화]

“밥 좀 많이 먹어라, 무슨 새 모이마냥 적게 먹고 앉았어?”

“아, 신경 쓰지 마!”

“6만 원짜리 뷔페라고, 최소한 본전은 뽑아야….”

삐, 삐-.

일정하게 울리는 소리에 석민은 눈을 떴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그는 손으로 머리를 쓸며 잠에서 깨려고 했다.

요즘 들어 꿈자리가 영 뒤숭숭했다.

소리 때문인지 혜원도 깨다가 인상을 쓰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숙취가 무섭게 몰아치는 듯했다.

이젠 숫제 경고음처럼 들리는 소리에 석민이 눈을 한 번 더 비비고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8시 20분이었다.

“뭔 소리야?”

“…우리 가게 입구, 지금 문이 잠겨 있잖아. 누가 회원카드로 문을 열려고 해서, 경고음 울리는 거 같은데….”

그녀는 대충 눈곱을 떼더니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서 카운터에 앉았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는 석민이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뭐야, 벌써가게? 아침이나 먹고 가지?”

“나가자.”

“뭐라고?”

“나가자고, 오픈이 10시라고 했지? 아직 시간 많네. 해장이나 하지. 근처에 수육국밥집 있던데, 사줄게 가자.”

혜원은 석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로 밑에 식당이나 편의점을 가는 것 말고는 이곳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속 안 좋잖아.”

“……그러는 너는 멀쩡해 보이네.”

활력 스탯 덕분에 숙취가 없거나 있어도 금방 사라졌지만 굳이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석민은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너보다 적게 마셨으니까. 나갈 거야 말 거야?”

“아, 알았어. 갈게.”

혜원은 조금 쏘듯이 대답하고는 구시렁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나왔을 땐 머리도 감고 스킨케어도 한 다음, 가진 옷 중에 제일 깔끔한 걸입고서 나왔다.

“아, 잠깐만.”

이내 그녀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곧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술 좀 마신다 했더니, 잘 마시는 게 아니고 그냥 너무 많이 마신 것이었군. 아무래도 나가서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나가기 위해 준비했다. 국밥은 아무래도 그가 직접 포장해서 가지고 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다시 들려오는 토하는 소리에 살짝 인상 찌푸린 석민은 어젯밤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나섰다.

***

다시 서울에 들어온 석민과 아영은 현재 호텔 말리나 로비에 서 있었다.

“여기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었나?”

오늘따라 호텔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다행히도 석민과 아영은 하나 남은 방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대충 짐 정리를 끝낸 석민은 종업원을 불렀다.

“사장은 어디에 있나?”

“라운지 쪽에 있습니다.”

직원의 말에 석민은 힐끔 아영을 쳐다봤다.

“전 객실에 있을게요.”

“점심은?”

“부탁할게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객실을 나와 라운지로 향했다.

라운지도 사람으로 북새통이었다. 주변을 살피던 석민은 혼자 점심을 먹고 있던 알렉산드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 앉자, 놀랐는지 조금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산드라를 볼 수 있었다.

“샤샤, 오늘따라 호텔에 사람이 많네?”

석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알렉산드라에게 묻자, 알렉산드라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먹던 빵 접시와 소금이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석민은 빵을 집어 들었다. 이럴 때 입에 구멍이 뚫린 발라크라바를 써서 편하다 싶었다.

“평소엔 좀 이래야지. 누구 덕분에 손님들이 줄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뭐야? 왜 그래? 드디어 내가 마음에 든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말이지.”

“당연하지.”

미소를 짓는 입술은 핑크색 루주와 함께 양고기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요즘 괴수들 많지 않아. 헌터들이 족족 잡고 있고, 또 그것을 노리는 약탈자들도 있어.”

그녀의 언성이 매우 작아져서 속삭이듯이 변했고 러시아어로 말했다.

⌜헌터들이 그러는데 근래에 강남지역의 괴수들의 숫자가 눈에 뜨일 정도로 줄었데.⌟

⌜줄었다고?⌟

석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난번 강서구 쪽으로 갔을 때 괴수가 보이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괴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석민은 자신이 생각하도고 말도 안 된단 생각에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알렉산드라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에 석민도 믿기지 않는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짜냐?⌟

⌜그 때문에 헌터들 사이에서 사냥터 쟁탈전까지 벌어지고 있다는군.⌟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그걸 알고 있으면, 너희가 2차 서울 수복작전 때 실패하지 않았겠지. 여하튼 그래서 우리가 조금 정보를 주었지. 그랬더니 다들 여길 중간 경유지로 쓴다잖아?⌟

돈을 갈퀴로 쓸어 담아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녀는 꺅! 거리면서 발을 동동 굴렸다. 이때만큼은 그녀의 겉과 속이 일치해 보였다.

⌜다들 장기 투숙이 목적이야. 탄약이나 식량, 맥주 같은 것도 잔뜩 사놓고 여자들도 몇 명 더 고용했어. 분명 돈 좀 많이 벌 거야.⌟

⌜강북에 가보니 감염자들이 엄청 많던데, 헌터들이 거길 갈까?⌟

그 말에 알렉산드라의 미소가 깊어졌다.

⌜어디로 갔었는데? 광나루 쪽?⌟

⌜어, 그래 거기로 갔었지. 거긴 이미 다른 헌터들이 다녀왔었나 보군.⌟

알렉산드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은 허리를 살짝 숙였다.

⌜길을 개척했나?⌟

⌜맞아. 그리고 우리가 얻은 정보는…….⌟

그녀의 말끝이 흐려지자 석민은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그녀 특유의 긴 손가락으로 그것을 석민 쪽으로 다시 밀었다.

⌜누가 돈을 원한데? 나중에 보답을 해.⌟

석민은 그 보답이 무엇일지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로 다시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알렉산드라는 석민의 그런 눈초리마저도 즐거운지 웃으며 양 꼬지를 입에 물고서 말했다.

⌜대부분의 감염자들은 강변 근처 시가지에 몰려있어. 용마터널을 통해서 시내 중심부로 들어가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거야.⌟

⌜그 말은 터널을 개척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석민이 터널을 어떻게 개척하느냐고 투덜대려는 순간, 알렉산드라가 덧붙여서 말했다.

⌜터널 쪽은 이미 개척했어.⌟

⌜누가?⌟

⌜우리가.⌟

석민은 처음엔 뭔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우리 애들을 풀었어. 그래서, 그 터널과 다리의 소유는 우리 호텔 거야.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다리랑 터널에선 사업은 금지야. 이 호텔 내에서의 규칙이 적용된다고 보면 돼.⌟

그렇군, 그래서 이렇게 설명해 주는 거였구나.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도 다리 쪽에 지분율이 있는 거 아니야?⌟

⌜네가 이 호텔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벌려 놓은 게 있잖아? 그 덕분에 손해가 막심해. 그 손해 메운다 치고 봐주지.⌟

‘말은 잘해요, 망할.’

석민은 결국 두 손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터널 사용료는 없겠지?⌟

⌜그래, 없어. 할 일 해.⌟

석민은 대충 주요한 대화가 끝나자 잠시 숨을 돌릴 겸 고개를 틀었다가, 식사한다고 바를 가득 메운 남자들을 보았다.

⌜그런데, 저기 있는 것들은…….⌟

남자가 가득 메우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입고 있던 군복은 그가 전에 본 적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때 봤던 장비도 그대로였다.

바로 천국의 문 교단의 대원들이었다.

‘이런, 젠장.’

여긴 어떻게 알고 왔단 말인가? 석민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알렉산드라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들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아, 단체손님들이야. 강북에 볼일들이 있데. 오늘 아침에 이리 왔어. 천국의 문 교단 사람이라더군. 잘 먹고 돈도 잘 쓰고 무기들도 잘 사서 좋은데, 종교 쪽 이다 보니까 여자는 관심 없어서 아쉬워. 뭐, 그래도 쟤네들 덕분에 3일 치 매출을 반나절 만에 채웠으니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군복과 요대, 권총집을 찬 배 나온 50대 후반쯤 되는 남자가 보였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에선 어울리지 않는 무장이었다.

‘아니지, 무장을 풀고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 남자는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쪽에 볼일이 있나? 석민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보았다가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박재만이군, 교구장이 어떻게 여기로 온 거지?’

순간, 발라크라바를 쓰고 있어서 자신의 얼굴이 저자에게 드러날 일은 없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온 거지?

그는 뚫어져라 알렉산드라를 보고 있었다.

⌜저 남자가 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뭐? 중년 남자는 내 취향 아닌데.⌟

석민의 물음에 알렉산드라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때 박재만의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이쪽으로 올 것 같았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은 석민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알렉산드라가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가지 마, 여기 있어.⌟

석민은 살짝 눈을 찡그렸지만,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말없이 눈앞에 놓인 흑빵을 집어 입에 밀어 넣었다.

흑빵 특유의 향기로운 냄새와 시큼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아쉽게도 식감은 퍽퍽했다.

석민은 입을 헹구기 위해 물 잔을 들었을 무렵, 가까이 다가온 박재만이 인사를 걸어왔다.

“박재만이라 합니다.”

“안녕.”

가슴골을 부각시키고, 허리라인을 강조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금발 미녀의 미소에 박재만의 웃음이 더 음흉해졌다.

‘당장 어떻게든 해버리고 싶네.’

매끈하게 뻗은 알렉산드라의 다리로 그의 시선이 고정됐다. 그러나 그도 이 여자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 호텔의 주인이니까.

“다름이 아니라,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 합니다.”

그는 석민을 보았지만, 석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박재만이 다시 알렉산드라를 보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여기서 해. 일단 자리에 앉고.”

그 말에 박재만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엉거주춤 거리면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 호텔과 다리, 그리고 터널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무뚝뚝한 대답에 그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내 본론을 꺼내 들었다.

“혹시, 다리와 터널 임대권을 혹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임대권?”

알렉산드라는 눈이 치떠졌다. 생각지 못한 제안에 갑작스럽게 나온 소리인지라, 되묻는 그녀의 말투는 바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독재’를 하겠다는 거야?”

“독재가 아니라 독점.”

석민이 정정해주었다.

그는 평소보다 약간 중저음으로 말을 했다.

석민의 말을 들은 알렉산드라는 인상을 쓰면서 석민을 향해 러시아어를 쏟아 부었다.

⌜저 돼지새끼가 말하는 게 지금 임대를 통한 터널과 다리 독점권을 달라는 거지?⌟

⌜어.⌟

⌜돌았나?⌟

그 말에 석민은 저도 모르게 피식거리고 웃음을 터트렸고, 러시아어를 모르는 박재만은 의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석민과 알렉산드라를 보았다.

⌜너 지금 이 호텔에 무장한 경비원이 몇 명 있어?⌟

그녀가 석민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손가락 5개를 펼쳐 보였을 때, 인내심의 한계를 느낌 박재만이 조금 짜증 섞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국어로 부탁드립니다.”

⌜지금 여기에 저 새끼 부하들 20명쯤 되잖아.⌟

“임대료로 얼마나 주려고?”

“10장 드리죠. 달러로 말입니다.”

“매월 1천 달러를 준다는 거야? 우리 가게가 그렇게 못 버는 줄 알아?”

“하루에 1천 달러입니다.”

박재만의 말에 석민이 놀라서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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