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86화]
-그가 쉬는 날에 영화를 보든, 쇼핑을 하든, 무기불법거래를 저지르든, 여자를 사든….
“…….”
아영의 찡그려진 표정에 대통령이 잠시 헛기침을 내뱉었다.
-여하튼 난 신경 쓰지 않는다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만 해, 그가 무엇을 하는지. 난 대위가 당장 오늘 브리핑에서 내일 혜성이 떨어진다고 말해도 그 말을 100% 신뢰하겠지. 하지만 최석민 씨는 아니야. 난 그 친구를 모르지. 대위가 좀 언짢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네. 난 그를 100% 신뢰할 수 없어.
“다른 건 몰라도… 외국에 정보를 넘길 사람은 아닙니다.”
-그 말은, 그를 100% 신뢰한단 건가?
“그렇습니다. 그를 믿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본인도 100% 믿는다고 할 수 없었다. 점차 귀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정부를 속이고 강북으로 갔던 것 때문에 죄책감이 쌓인 상태였다.
-만일을 대비해서 그가 우리를 배신하지 못 하도록 얽매이게 하게.
“무슨 말씀이신지….”
-방법은 자네에게 맡기지만, 반드시 우리를 배신하지 못 하게 목줄을 채우란 말이네. 약점을 잡는 게 쉽겠지만, 좋진 못하겠지. 신뢰관계를 쌓아서 정부를, 정확힌 그대를 배신하지 못 하게 하란 소리야.
“……알겠습니다.”
아영은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듯 통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번잡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
“혹시 작렬탄을 구해 줄 수 있나?
그날 밤, 치킨과 맥주로 한 상을 벌인 술자리에서 석민이 물었다.
“철갑소이고폭탄? 9.3mm?”
혜원은 혼자서 치킨 한 마리와 맥주 1리터를 마신 덕분에 평소보다 얼굴이 붉었다. 그녀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크게 트림을 하며 물었다.
“어.”
“그 탄으로 작렬탄은 없는데.”
“그러면 만들어 줄 수 있나?”
혜원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석민은 그녀가 그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만들 수 있나 보군.”
“날 뭘로 보는 거야. 당연히 가능하지만, 보편적이진 않아도 작렬탄은 7.62mm에서도 쓰니까 가능은 하지. 다만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내 입장에서 돈이 안 되면 안 하니만 못하단 거지. 탄 소요는…….”
“매주 1천 발에서 2천 발 정도면 되겠군. 발당 1천 원은 더 넘을 거 아냐?”
그 말에 그녀는 기분 좋게 트림을 하며 그를 비웃었다.
“가격이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낮군. 발당 재료비가 최소 5천 원쯤 들 거야. 안에다가 텅스텐 탄심에 소이제도 넣어야 하고, 고폭약이 들어가니까.”
그 말에 석민은 살짝 움찔거렸다. 못해도 최소 200만 원이 매주 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 인건비도 합치면, 더 받아야지.”
“……그래, 만들 수 있어, 없어?”
“있어! 하지만, 이건 미리 계약금 좀 받아야겠는데?”
석민은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서성민에게서 받은 다이아몬드가 담긴 주머니였다.
그는 보석의 가치를 잘 몰랐기 때문에 처분하는 법을 자세히 몰라 이참에 이것으로 혜원에게 돈 대신 지불할까 생각하고 꺼낸 것이었다.
“미안한데, 나는 이런 거 잘 모르고 현금을 받았으면 하는데.”
그 말에 석민은 인상을 쓰며 다이아몬드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둘 다 몰랐지만, 적어도 개당 400만 원은 넘는 가치를 가진 다이아몬드였다. 석민의 입장에선 혜원도 가치를 몰라서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런가?”
잠시 후 석민은 5만 원짜리 지폐뭉치를 꺼내 들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혜원은 돈을 보자마자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고객들 중 이 인간처럼 재깍재깍 바로 돈을 꺼내주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200만 원.”
그것이 혜원이 석민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바로 돈이 나와서 좋군.”
그녀는 바로 돈을 세어 본 직후 그것을 금고에 넣었다.
“원한다면, 계약서도 써줄까?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그럴 필요까지 없어 이 바닥은 신뢰가 없으면 바로 시체가 되니까. 구두계약으로 하지. 계약서 같은 거 남기면 나중에 단속 나왔을 때 곤란해져.”
“알았어.”
혜원이 다시 석민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탁상 옆엔 이미 빈 맥주병과 소주병이 줄지어 서 있었다.
“넌 왜 소맥을 안 하냐.”
빨개진 얼굴로 혜원이 웅얼거리듯 말했다. 일이야기가 끝나니 다시 취기가 확 오른 것 같았다.
석민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소주나 맥주를 홀짝거렸고, 혜원은 맥주와 소주를 몇 병이나 벌컥 들이켠 뒤 이젠 소맥을 말아서 대여섯 잔을 마신 상태였다.
“그건 너무 빨리 취하게 만드니까. 게다가 맛이 내 취향이 아니야.”
그러나 석민도 제법 마셔서 살짝 취기가 올라 있었다.
혜원은 그 대답이 맘에 안 든다는 듯, 작게 혀를 차고는 젓가락으로 순살 파닭을 뒤적거렸다.
“그나저나 넌 여기서 아예 안 나가면서 사는 거냐?”
그의 물음에 혜원은 입에 치킨을 넣은 채로 대답했다.
“어, 여기가 안전하거든. 건물주이기도 하니까. 아, 어떻게 건물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묻지 마.”
“답답하진 않냐?”
그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아. 심심하면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그러니까. 경기도는 혼자 살아남은 여자가 살기엔 조금 위험한 곳이니까,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 할 수 있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히키코모리 같아 보일 수도 있고. 네가 보기엔 지금 내가 한 말이 찐따의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만의 왕국이니까.”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지 그러냐.”
혜원이 젓가락을 탁자에 집어 던졌다. 덕분에 파닭 양념이 옷이 튄 석민은 인상을 썼다. 뭐 본인도 그리 좋은 말 한 건 아니었으니, 그녀의 행동을 나무라진 않았지만.
“새끼야, 자꾸 이상한 소리 할 거야? 아무 연고도 없는데다가 서울이나 경기도 출신은 이 지역에서 못 나가게 배척하는 거 잘 알면서 그딴 소리 하는 거냐?”
“그냥 물어본 거지, 그렇게 화낼 필요 있나? 진정해.”
석민은 옷의 양념을 털면서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리곤 술을 한 잔 따라주면서 새 나무젓가락도 뜯어 건넸다.
“좋아, 그러면 다른 질문을 해보지. 별로 기분 나빠하진 않을 거야.”
“말해봐.”
“난 왜 여기 안으로 들여보내 줬냐?”
“아, 그건…….”
“난 위험한 사람이 아닌 거야?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있어?”
그 말에 붉어져 있던 혜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걸 어찌 말이야 하는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웃고 있는 석민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자신의 머릿속을 한 바퀴 돌고 온 듯했다.
‘젠장, 놀림당하고 있군.’
석민은 고개를 돌려 큭큭 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너 표정관리 정말 못한다.”
“……시발.”
혜원은 시선을 내리깐 채,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고는 소맥을 단숨에 들이켰고 혼자서 잔을 따르려고 하자, 석민이 그것을 빼앗았다.
“그만, 이제 그만 마셔.”
“아, 왜?”
“난 정신이 말짱한 사람하고만 대화하고 싶거든.”
석민의 말에 그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변하였고 석민은 여유롭게 맥주에 입을 댔다.
“너, 정말 재미있는 인간이야. 성격은 더럽지, 욕도 무진장 많이 쓰고, 근데 총은 잘 다루지. 공순이에다가 집순이기도 하고.”
그 말에 혜원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집순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
그녀는 투덜거렸다.
“난 공대도 나오지 못했어. 기술교육원을 나왔을 뿐이지.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으면 CNC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거야.”
“그건 뭐 나라고 다를 게 있겠어?”
석민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곤 손으로 입을 닦고서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난 작가가 되고 싶었어.”
“작가? 네가?”
석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석민을 생각하자면 전혀 안 어울리는 직업군에 혜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혜원의 모습을 무시하고 석민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가자고. 관심 좀 있었나 봐? 너만의 안전한 왕국에 날 들여보내 주다니.”
“그래, 시발, 지금 후회 중이니까 이젠 닥쳐. 놀리지 마. 관심 가진 내가 병신이지.”
“한국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석민은 잔을 옆으로 치운 뒤 상체를 살짝 숙이고 팔을 탁자에 기댄 채, 혜원의 얼굴을 부담스럽게 계속 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도 않았을 거야.”
혜원의 얼굴이 다시 붉어져 갔다.
“……에이 씨, 손발 오그라드네.”
석민은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에 남은 잔을 들었다.
“……야, 나 솔직히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하냐?”
혜원이 물었다. 석민도 솔직하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그녀에게 살짝 밀어주었다.
“일단 폰 번호나 교환하지.”
“야! 씨, 돈 많은 놈이 2G폰을 쓰냐?”
그 말에 석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스마트폰도 쓰고 있긴 한데, 그건 정부 쪽 업무 때문에 쓰는 거라서…. 그리고 나 그렇게 돈 많지 않아. 너보다 없을걸?”
“지랄.”
혜원은 입을 삐죽였다. 진심으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버는 족족 무기 사고 탄약 사느라고 너에게 고스란히 바치고 있거든? 이번에도 탄환만 수천 발 써가지고 지금 탄환 달라고 하는 거 아냐?”
“그래?”
여전히 안 믿는 눈치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돈이 고스란히 오고 있단 소리에 기분은 좋은지 혜원은 히죽거렸다. 석민은 그녀의 휴대폰을 들고서 자신의 번호를 입력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서울에서 총알을 많이 썼단 건 위험에 처했었다는 뜻인데……. 조심해, 난 되도록 너 오래 보고 싶거든?”
석민은 자신의 휴대폰이 울리는 걸 확인하고서 그녀에게 폰을 넘기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다들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했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가 사람을 잃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런 자기만의 왕국에 갇혀, 사람과의 관계를 끊었는 게 아닐까.
석민이 빤히 쳐다보자 혜원은 입을 꾹 다물더니, 하품하는 척하며 기지개를 폈다.
“이만 자야겠다. 이것만 마저 먹고 끝내자.”
석민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새 10시가 넘어 있었다.
그들은 조금 남은 순살파닭을 처리하기 위해 젓가락을 빨리 놀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치킨 집 맛있네, 고기가 냉동도 아니고 양도 많고.”
“돈 값하는 거지. 네 덕분이야.”
그녀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탄약은 내일 재료 주문할게.”
“기대하지.”
그녀는 살짝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석민은 그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내가 여기서 총이라도 꺼내면 어쩌려고?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만큼 그녀가 자신을 믿는다는 것 같아서 석민은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혼자 남은 석민은 잔에 찰랑이듯 남은 맥주를 마저 입에 털었다.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그도 취한 채 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