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85화]
-적을 찾아라. 적을 찾아 죽여라. 그들이 문으로 도달하지 못하게 막아라.
천사는 그 말을 한 직후 거대한 날개로 자신의 몸을 덮는 듯 한 자세를 취하더니 처음 나타났던 것처럼 밝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약간의 깃털들이었다.
천사의 깃털! 모든 교구장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전에 교주 백은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사도대들에게 손짓을 했다.
박선우를 포함한 사도대의 인원들이 움직여 깃털들을 모두 수거해 가버리자, 교구장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였다.
“모두 들었지?”
백은호의 말에 교구장들은 다시 본론에 집중했다.
“일정을 조금 앞당겨야겠다. 각 교구의 대원들을 준비하라. 박재만 교구장.”
“예.”
박재만이 일어나 부복했다.
“정탐군들을 언제 보낼 수 있나?”
“적어도 한 달 정도…….”
“이주 뒤에 보내게. 정탐은 취소하고 바로 강북으로 보내게. 그리고 강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게.”
“모두를 말입니까?”
“그래, 모두 강북에 있는 사람은 전부 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강북으로 갈 수 있는 루트를 점령하는 것도 좋겠지.”
“알겠습니다.”
박재만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어떻게 하면 교주가 내린 명령을 완료할 수 있을까?
‘일단 10명으론 부족해.’
수를 늘려야 할까? 아니다. 선발로 보냈던 정탐군은 너무 많은 수 때문에 괴수들에게 쉽게 포착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한 20명? 10명씩 팀을 나누어서 말이다. 지휘관급 2명을 더하면 총 22명으로 말이다.
‘그래, 그게 났겠어.’
박재만이 결심하는 사이 교주는 다른 교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떠났고, 누군가 낮게 탄성을 질렀다.
단상 구석에서 깃털을 발견했던 것이다. 깃털을 쟁취하기 위한 소란이 벌어졌고, 박재만은 한심한 얼굴로 교구장들을 지켜보았다.
‘등신 같은 것들, 겨우 깃털 하나 가지고 저 지랄이라니.’
그에겐 저런 행위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
1주일이 지났다. 어느 폐건물 5층에서 석민은 전자담배를 물었다. 강서 쪽은 헌터들이 없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허탕 쳤다.
어찌나 조용한지 그 흔해 보이는 괴수들도 보이지 않았다.
괴수들이 겨울잠에 들어갔나? 바깥에 찬 공기를 동반한 강풍에 다 얼어 죽었나? 너무 추워서 안 나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괴수들이 추위에 강한 편은 아니지만, 기온에 상관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을 텐데.’
괴수들이 없으니 활개 칠 헌터들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한 놈도 볼 수 없었다.
“지금 기온이 몇 도지?”
그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아영은 온도를 확인했다.
“영하 37도입니다.”
그 상태에서 강풍이 불고 있으니 체감기온은 더더욱 떨어졌다.
“이만 여길 떠나지. 더 이상 여기 볼 일 없어.”
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터는 그냥 우리끼리 찾는 게 났겠어. 아니, 이런 식으로 간섭하지 말라고 해야지.”
“그 핑계로 다시 강북으로 가려는 거죠?”
석민은 피식 웃었다.
“그래, 가야지. 재정비도 좀 하고 말이야.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 정부 쪽의 일도 할 수 있을 거야.”
아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은 창밖을 지켜보다가 이내 찬 벽에 허리를 기대며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 벽이 너무 찼던 것이다.
옷이 얼어서 바스락거렸다. 아직 11월 중반인데도 그랬다. 따뜻하고 아늑했던 호텔 말리나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아니지, 애초에 임무 포기하고 비트로 돌아가면 되는데. 나도 참.’
그는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렉산드라는 부탁한 대로 다리 쪽에 괴물이 사라진 것을 헌터들에게 말할 거야. 그렇다는 건 헌터들이 강북으로 간다는 거지. 강서 쪽에 이렇게 괴수들이 없는데, 헌터들이 돌아다니겠어?”
“하지만, 헌터들은 강북에 안 가려고 하잖아요? 단지 괴수가 위험해서 안 가던 건 아니니까요. 거긴 길도 알려지지 않았고, 정부가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정비하던 지역과는 다르니까요.”
“강북지역은 강남지역과 다르게 감염자와 괴수들이 아주 많아. 이렇게 괴물 불경기면 거기라도 가야지. 괴물에게 죽거나, 돈 못 벌어서 죽거나 어쨌든 거기서 거기니까. 계획대로 하는 거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뒤로 퀘스트, 또 나온 게 없지?”
“예.”
아영의 대답에 석민은 조금 미심적은 눈으로 그녀를 보다가, 아영이 눈치 챌까 돌렸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그는 아영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었다.
“강서구 쪽에 게이트가 있나?”
“아뇨, 없습니다. 강남 쪽으로 다시 가야 합니다.”
석민은 혀를 낮게 찰 수밖에 없었다. 괴수들을 피해서 움직여야 하니 짧으면 하루, 운이 나쁘면 이틀이나 사흘을 가야 할 거리였다. 밖을 살피던 아영은 밖에 바람이 멎은 것 같자, 짐을 챙겼다.
“이제 가죠.”
그 말에 석민은 전자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마지막 증기를 내뿜었다.
“그래, 이놈의 군용음식은 이제 지긋지긋해.”
그 말에 아영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돌아가면, 돈가스 먹고 싶네요.”
강한 추위 속에 노출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기름진 음식이 그리웠다.
“아니면 탕수육과 짬뽕이요.”
“그 비싼걸?”
석민의 물음에 아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번엔 소득이 없지만, 요즘은 생각보다 돈 많이 버니까 나쁘지 않죠. 석민 씨도 뭐 먹고 싶은 거 있지 않아요?”
석민은 잠시 시선을 한곳에 둔 채, 생각에 빠졌다. 아영은 뭔가 문제가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석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딸기, 딸기가 먹고 싶네.”
***
“뭔 일 있어?”
오랜만에 가게에 석민이 들어오자, 반가운 얼굴로 환영을 했다가, 그의 얼굴이 피곤함에 살짝 굳어있자 약간 걱정스럽게 물었다.
“9.3mm 탄환 아직 안 들어왔는데….”
“9x39mm는?”
“그건 들어왔지. 지난번처럼 580발짜리 4상자. 살 거야?”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선반에서 금속으로 포장된 상자를 꺼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돈 좀 많나 보네? 2천여 발을 한 번에 사게.”
“강북에 갔다가, 피 좀 봤거든. 니가 준 탄약 다 썼어.”
“9.3mm를? 전부?”
“어, 이번 기회에 탄약 좀 많이 챙기려고, 탄약값은 여기가 가장 싸거든 5.45mm는 6천 발. 짐 옮기려고 아는 형에게서 렌터카도 빌렸어. 그리고 RPG-7 탄두, 대전차용이랑, 대인용을 각각 10발씩. 열압력 탄두도 있다고 했지? 2발 줘.”
혜원의 얼굴에 미소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석민은 혜원의 표정을 보고는 ‘돈 번다고 좋아하는 꼴 봐라’싶은 생각에 기분이 좀 더러워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딱히 나쁘게 여기진 않았다. 오히려 자주 오다 보니 조금 친근감을 느꼈다. 처음과 다르게 그의 마음이 조금 풀어진 것이다.
“기다려봐, 탄두는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아주 구석에다가 두었거든. 시간이 좀 걸릴 거다.”
그녀의 말대로 석민은 대략 15분 뒤에 그가 원하는 것을 전부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물건을 챙기는 동안, 혜원은 석민을 지켜보았다. 저 무거운 탄약을 한 손으로 옮기다니.
“너, 참 힘세네.”
“고맙다.”
심드렁하게 대답해주고는 석민은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마무리를 끝낸 직후 석민이 나가려는 순간,
“아, 시발. 잠깐만.”
CCTV 화면을 보고 있던 혜원의 말에 석민은 나가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엔 뭐야?”
석민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음, 어… 단속 공무원.”
혜원은 말을 흐리며 대답했다.
“한 번 보여줘 봐.”
아무리 봐도 단속공무원이 아니라, 또 다른 트러블이 생긴 고객으로 보였다. 공무원치고는 행색이 너무나도 남루했고, 품속에 손을 넣고 있는 것이 누가 나오면 당장이라도 꺼내서 방아쇠를 당기거나 찌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였다.
“원한이 너무 많은 거 아냐?”
“그러게, 내가 원한을 많이 살 사람이 아닌데.”
석민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영은 어차피 다른 용무 때문에 내일 안전가옥으로 돌아온다고 했으니 늦게 돌아가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대신 아래층 차량에 옮겨놓았던 짐들이 들어있어서 그게 걱정이었다.
“지금 안 나가면 차에 있는 짐이 위험할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지.”
혜원은 전화기를 들어 아래층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짐이 도둑맞을 수 있는 문제가 일단락되자, 석민은 앉아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저놈, 얼굴 기억해?”
“기억이야 하지.”
혜원이 말했다.
“회원증이 없는 놈인데, 누굴 죽여야 한다고 총번이 없는 불법권총을 원했거든. 이 사업이 아무리 불법이라도 그런 건 무리지. 회원도 아니고, 불법권총에 게다가 페이도 너무 적었거든.”
회원 아닌 것보다 페이가 적었던 게 더 불만인지, 그 말을 할 때 말투가 더 툴툴거렸다. 페이만 잘 지불했으면 회원이야 당장이라도 될 수 있는 거니까. 역시 장사치라고 생각하던 석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2시간쯤 더 버티고 있었을 때 문뜩 석민이 말했다.
“그냥 가서 쏴버리면 안 되나?”
“안 돼. 일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이쪽 근방은 치안이 강화되어서 일 벌리면 우리 가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해.”
2시간하고 조금 더 지났을 무렵, 그 남자도 지쳤는지 결국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냥 떠난 것 같군. 나가봐도 되겠지?”
“미안하지만 안 돼, 아직은. 이해해줘.”
석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짜증난다는 얼굴로 혜원을 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지난번도 그렇고 왜 그러냐?’
“대신 치맥이나 사줄게. 됐냐?”
고작 그런 걸로 날 설득하려고 하다니. 석민은 대놓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
“나야말로 왜 니가 올 때마다 저것들이 저러냐. 불행을 몰고 오는 것 같잖아. 재수가 없군.”
혜원의 말에 석민은 눈을 치뜨며 혜원을 노려보았다.
“왜 그래? 사실인데.”
그 말에 석민은 뭐라 하려다가 참았다.
***
-아무래도 외국에서 눈치를 챈 것 같다.
“예?”
대통령 성현제의 말에 아영은 바보같이 반문하고 말았다. 얼마나 조심하면서 임무를 수행해 왔던가?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마음을 추스른 후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정부가 약탈자들을 후원한다고만 알려져 있어. 당분간은 조심하게. 강서구로 가라 한 것은 미안하네, 헛고생하게 만들었어.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럴 수도 있지요.”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아영은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녀는 대통령에게 호감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진솔한 사과는 오히려 그녀가 더욱더 그를 신뢰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언제 또 서울로 들어갈 건가?
“확정은 아닌데 아마 이틀 뒤에 갈 거 같습니다. 아, 저 그리고 석민 씨가 오늘도 외박을 합니다.”
-또 말인가? 어디지?
“그것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고, 아영은 먼저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할 무렵 현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석민 씨를 신뢰할 수 있나?
“……네, 그런 쪽으로 의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확실한가?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이 어디에 가는지 동료에게도 말해주지 않는데.
“각자 사생활이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 또한 사적인 일로 안전가옥을 나온 상태입니다.”
아영은 자신이 석민을 위해 되도 않는 변명을 하고 있단 것과,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을 느끼면서도 변명을 그만두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