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83화 (83/226)

[게이트 오브 서울 83화]

석민은 그 틈을 타 괴수의 머릴 피해 아까처럼 다시 등에 올라타고 혹처럼 생긴 부위에 다가갔다.

가려졌던 핵이 다시 드러나 있었다. 석민은 있는 핵 주변에 대검을 힘껏 찔렀다. 의외로 괴수의 살은 치즈를 자르듯 부드럽게 베어졌다.

그는 그대로 핵의 가장자리를 따라 칼날을 움직였다. 칼날이 피부를 가르고 근육을 베어낼 때마다 구정물 같은 피가 마구 튀었다. 그 어느 것보다도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

이윽고 둥글게 잘라낸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핵을 잡고 잡아당겼다. 잘라내지 못한 살점들이 핵을 따라 튀어나왔다.

“오, 오오….”

하민선의 입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왔다.

턱이 탈구된 마당이기 때문에 그는 제대로 된 발음을 하지 못했다.

석민과 아영은 보지 못했지만, 성민은 순간적으로 하민선의 두 눈에서 총기가 돌아오는 듯 한 것을 느꼈다.

심지어 그것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턱뼈가 박살 나 덜렁거리고, 감염자처럼 얼굴이 썩어버린데다가 타서 가죽만 남은 얼굴이었지만,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축 처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헌신자 괴수를 처지 하였습니다.]

[헌팅 트로피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잡은 건가.”

서성민이 중얼거렸다.

“그런 것 같네.”

석민과 아영은 지퍼백을 꺼내서 그것의 살을 잘라 안에 집어넣었다.

그 작업 중에 남아버린 육신이 천천히 녹아내렸고 이내 물처럼 흘러내렸다.

남은 것은 괴물이 쓰던 총기와, 그의 몸 안에 박혀있었던 수많은 총알과 파편들이었다. 얼마나 많이 박혀있던지, 수백 발은 족히 넘을 탄두들이 바닥에 굴렀다.

“끝났군.”

석민은 아영에게 괜찮다고 사인을 보낸 후 남은 RPG-7 탄두들을 전부 강으로 던져버렸다.

괴물의 신체가 물렁해서 격발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터지지 않던 이 불량(?)탄두 때문에 정나미가 뚝뚝 떨어진 상태였다.

“빨리 떠나지. 여기 있으면 위험해 괴수들이 모여들 거야.”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 수많은 와이번들이 모여들었다. 석민과 성민, 그리고 아영의 몸이 움츠렸고, 빠르게 근처 폐차 안쪽으로 숨었지만, 와이번들은 내려오질 않았다

“……왜 안 내려오는 거지?”

석민이 천천히 차량에서 나왔다. 와이번들은 먹이를 노리는 까마귀들처럼 맴돌 뿐, 내려오진 않았다. 어떤 놈들 일부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안전한 것 같습니다.”

아영이 말했다. 석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것들이 왜 저러는 건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곧 그는 이곳이 죽은 헌신자 괴수의 영역이고, 그 때문에 다가오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석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죽어서 물처럼 흘러내리는 괴물의 신체였다. 그는 저것도 채취하기로 마음먹고 군장의 뒤쪽 잡낭에서 샘플링용 유리병들을 꺼냈다.

“혹시 모르니 둘 다 가지고 가야지.”

지퍼백에 넣은 것들은 다행스럽게도 액화되진 않았다.

알렉산드라의 약속은 이 괴물의 표본을 얻는 것이었다. 액화된 샘플을 값을 쳐 줄진 의문이었으나,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 여겼기에 일단은 수집했다.

석민이 수집을 하는 동안, 아영은 여전히 불안한 눈초리로 하늘의 와이번들을 살피며 경계했고, 성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그저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았다.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수고했어.”

석민은 병을 전부 가득 채운 후 그것들을 잡낭에 넣은 후 성민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멍했던 눈동자에 이지가 생긴 성민은 허리를 숙이면서 석민의 손을 맞잡았다.

“여러분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민선이도 편히 영면에 들어갔겠지요.”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그는 또 눈물을 보였다. 아영이 석민의 얼굴을 주시했고, 석민 또한 힐끔 아영을 쳐다봤다.

무언의 대화가 오갔고, 석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스럽게도 서성민은 명단에 있는 인물이었다.

“괜찮으시다면, 말리나에서 같이 한산하시겠습니까?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도 정산을 하는 것으로.”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지금 준 보석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악수를 푼 석민의 오른손이 자연스레 오른쪽 등허리 쪽으로 향했지만, 성민은 눈치 채지 못한 채 계속 훌쩍일 뿐이었다.

이 친구는 플레이트 케리어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엔 아무런 보호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석민이 입을 떼며 총기를 꺼내려 할 때, 아영이 판단을 바꾸었는지 석민의 앞을 막아서며 아까의 석민처럼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석민은 알아챘다.

그를 죽이는 것을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다.

이를 알 리 없는 성민은 자신의 왼손을 바지에 쓱쓱 문지르고선 아영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인사가 끝난 뒤 여기서 바로 헤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 그들은 성민과 바로 헤어지기로 했다.

점점 멀어지는 서성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석민은 투덜거렸다.

“다시는, 이런 부탁 같은 거 받지 않을 거야.”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성민의 사연도 사연이었고, 행동 중간에 도망가던 그의 행동도-곧 다시 나타나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건 좋을 일이 없단 사실을 상기시켰다.

“저 친구, 명단에 있던 거 알아?”

석민의 물음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애초에 그녀가 명단에 있는 인물을 모를 리 만무했다.

“딱 한 번만 봐주죠.”

그 말에 석민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꽉 막히고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는데, 의외네.’

“웬일이야? 그런 말을 다 하고?”

“가끔은, 저도 융통성을 발휘합니다.”

“그래? 의외네.”

“그건 무슨 의미죠?”

석민은 피식거리면서 농담이라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괴수가 쓰던 무기들이 바닥에 그득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는 다른 전리품을 쓸 수 있나 무기들을 들어 보았다.

[k-6]

내구도:12%

품질:하

탄약: 12.7mm 나토탄.

대한민국에서 라이선스로 생산한 무기, 녹이 슬고 너무 많이 사용해서 총열이 휘고, 강선이 마모된 상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총을 쏘던 하민선 병장의 집념은 우연찮은 일로 그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켰고 살육의 본능만 남은 괴물로 만들었지만, 그의 집념만큼은 변화시키진 못하였다.

‘변화시켰다고?’

그는 다른 무기들을 들어 보았다. 각각 무기들의 설명을 확인했지만, 무기에 대한 설명만 다를 뿐 하민선의 대한 설명은 똑같았다. 수거한 무기들은 너무 낡고 오래된 데다, 녹아내린 체액들로 인해 더러워서 혜원에게 팔 만한 가치는 없어 보였다.

그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머지 정보를 얻어야 했기에 헌팅 트로피 창을 열기로 했다.

“헌팅 트로피.”

창이 나타나자, 그곳엔 목이 잘리고 눈을 감은 하민선의 얼굴이 새로 나타나 있었다.

버림받은 오르바와 같이 걸린 머리가 나란히 있으니 끔찍했고 기괴했으며, 어떤 변태 자식의 컬렉션 같아 보였다.

[헌신자 괴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려던 남자가 불행한 사고로 여러 생명과 육신이 섞여 버렸다.

지능이 감퇴되고 생전의 기억을 잃었으며 살육의 본능만 남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그 집념만큼은 사라지지 않은 채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도 다리를 지켰다.

따로 실마리나 단서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좀 짜증나는데.’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헌팅트로피 창을 닫았다.

“고마워, 덕분에 처리할 수 있었어.”

그 말에 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이제 어쩔 건가요?”

“일단 말리나로 돌아가지. 알렉산드라에게 샘플도 주고, 좀 쉬어야겠어. 걱정 마, 정부 쪽에 넘길 샘플도 따로 둘 거야.”

“넘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요.”

넘겼다간 정부에게 들통이 날 수 있으니, 훗날에 넘겨야 할 것이다.

“가자.”

그들은 저 와이번들이 다리를 벗어나면 덮치지 않을까 신경을 바짝 세운 채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말리나로 가는 동안, 이상하게만큼 괴수들과 조우하지 않았다.

적어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괴수들의 울부짖음이나,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놈들을 보기라도 할 텐데, 그날따라 매우 조용했다.

그러나 매우 지친 그들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

말리나에 도착한 석민은 여장을 푼 후 바로 라운지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앉아서 입술에 담배를 꼬나물고 커피를 마시던 알렉산드라가 보였다. 석민은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샤샤.⌟

그녀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답변이 도움이 되었나 보지?⌟

⌜어.⌟

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을 잡으니까, 몸이 녹아내리면서 액체가 되었어. 물론 다 녹아내리기 전에 샘플을 최대한 챙겼는데.⌟

그 말에 그녀는 눈을 치떴다.

⌜녹아내렸다고? 그게 가능해? 아니, 그래… 그거라도 가져야지. 양이 적어서 아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녹아내리기 전에 챙겼다고 하니. 기껏 신뢰와 신용을 쌓았는데, 널 의심할 수 없지.⌟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후, 그가 넘긴 샘플을 챙겨서 뒤에 있던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는 그녀에게서 샘플을 받고 사라졌다.

그녀는 석민을 빤히 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내게 뭔가를 원하는 눈치군.⌟

⌜어, 한 가지 있긴 해. 정확하겐 사례금보다 내가 하는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좋겠군.⌟

2천만 원을 안 받고 뭘 부탁하려는 거지?

돈의 크기가 상당히 컸기에 무리한 부탁이 아닌가 하고 그녀는 좀 걱정됐다.

⌜뭔데?⌟

⌜여기로 오는 헌터들에게 소문 좀 내주었으면 좋겠어.⌟

⌜무슨 소문?⌟

⌜구리암사대교에 있던 괴물은 죽었다고.⌟

그 말에 알렉산드라는 처음엔 무슨 생각인가 하고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헌터들을 강북으로 보낼 생각이야? 무슨 생각이지?⌟

⌜그런 것까진 알 필요가 없지.⌟

⌜생각보다 값이 싼 조건이네.⌟

⌜그러면 거래하는 건가⌟

⌜좋지.⌟

알렉산드라는 그런 그를 흘깃 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왜 서성민은 안 보이는 거야? 같이 가지 않았어? 처리한 건가?⌟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면 도대체 왜 데리고 간 거야?⌟

⌜우리는 알려지면 안 되거든.⌟

석민은 대답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순순히 실토했다.

⌜뭐야, 그러면 우리도 죽일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여기만큼 좋은 데가 어디 있다고.⌟

⌜그 말은 여기가 좋지 못한 곳이면 공격했을 거란 거잖아. 이거 완전 시베리아 호랑이 아냐?⌟

석민은 입을 다물었고 탁자를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좌우로 굴렸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반값.⌟

알렉산드라는 히죽거리며 웃었고, 커피 주전자를 잡아 그의 앞에 잔을 놓고 커피를 따라주었다.

⌜설탕은 두 스푼? 좋아, 너, 정말 사랑스럽다. 말이 쉽게 통해서 좋아. 그래, 반값으로 봐줄게.⌟

석민은 조금 얼굴이 굳어졌지만, 이내 살짝 웃었다. 괴물도 처리했고, 방해꺼리가 사라졌으니, 이제 강북으로 갈 수 있었다.

RPG-7 탄두를 전부 못 쓰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탄약을 많이 쓰지 않았으니, 그대로 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가서 다른 표본도 구해오면 후하게 쳐줄게.⌟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고 파이프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하자, 샤샤가 먼저 자신의 라이터를 켜 직접 불을 붙여주었다.

⌜고마워.⌟

⌜그건 그렇고, 샤샤라고 다시 말해봐.⌟

석민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왜?”

저도 모르게 한국말이 나올 정도였다.

⌜해 봐, 네 입에서 나오니까 좋아.⌟

이 여자가 날 놀리는 건가?

석민은 알렉산드라는 노려보았지만, 알렉산드라는 기대에 찬 얼굴로 허리를 숙이고 양손을 깍지 껴서 턱을 기댄 채, 석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해 봐.⌟

⌜샤샤.⌟

그녀는 꺄르륵 거리어 웃었고 발을 동동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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