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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82화 (82/226)

[게이트 오브 서울 82화]

하지만, 지금 상대는 괴물이 아니던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손은 이미 장전을 마쳤다.

석민이 발사한 로켓에 맞은 괴물이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며 석민에게 달려들었다.

“엄호!”

그의 부름에 성민이 견제를 위해 총을 쏘았지만, 괴물은 이미 100미터 앞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석민은 2번째 RPG를 발사했다. 이번엔 몸통을 노리고 쏘았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탄두가 그 괴물의 몸에 박혔지만, 이번에도 탄두는 폭발하지 않고 괴물의 몸에 박혔다. 그나마 타격이랄 게 로켓이 박힌 충격에 몸이 움찔거린 게 전부였다.

“이런!”

석민은 SVDK를 집어 들었고, 성민은 유탄발사기를 발사했다. 유탄발사기는 괴수의 몸에 박히기 무섭게 폭발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미약한 폭발은 그저 괴수가 뒤로 살짝 움찔하게 만들 뿐, 돌진을 막을 순 없었다.

석민은 괴수의 머리를 노리고 SVDK의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다행히 9.3mm 탄환은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한발, 한발 맞을 때마다, 괴수는 차원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무지막지한 크기와 몸무게를 가진 괴수의 움직임을 저지하진 못했다. 석민은 아직 자신이 총검을 총에 끼워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그가 성민에게 엄호사격을 해달라고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성민은 이미 등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아까 보였던 것은 뭐란 말인가?

‘역시 믿지 말아야 했어!’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성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의 사고는 오로지 생존에 쓰여야 했다.

그가 다시 괴수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그것은 거의 눈앞에 있었다. 괴수의 주먹 하나가 그를 노리고 다가왔다. 그는 본능적인 방어본능으로 몸을 숙였고, 주먹이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석민은 미친 듯이 기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막 몸을 돌리려 하던 괴물의 등을 향해 총을 쏘았다. 수많은 팔들 중 하나가 탄환을 맞고 그대로 잘려 나갔다. 50발짜리 탄창이 이때 빛을 발했다. 서서히 다른 팔들도 잘려 나갔다.

-지원 가겠습니다!

아영의 무전이 들려왔지만, 석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다급했다. 괴물의 여러 손들이 빈총을 거꾸로 잡아 둔기처럼 휘둘러 댔다. 그는 뒷걸음질 치면서 계속 방아쇠를 당기다가, 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괴물의 몸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탄입대에서 탄창을 꺼낼 시간조차 없었다.

재장전을 포기한 그는 몸을 던져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사전에 그것의 탄약을 다 빼어버린 덕분에 총을 이용한 공격을 안 받게 된 것이지, 안 그랬으면 그는 진즉에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시간을 번 석민은 혜원에게서 얻은 총검을 뽑아서 장착했다.

그의 머리 위로 내려쳐 지는 무기들을 피하고 총검으로 팔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마치 썩어서 부풀어 오른 듯 빵빵하게 부어있는 팔들이 순식간에 3개가 잘려 나갔고, 엄청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

석민은 자신의 힘이 이렇게 강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탯을 올리긴 했지만, 자신의 힘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선아!”

그때 도망쳤던 쌍놈의 새끼가 어느새 돌아와 고함쳤다. 잿빛의 얼굴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저렇게 이성을 잃었는데도 자기 이름은 기억하는 건가?

괴물이 자신을 보자, 성민은 유탄발사기를 조준했다.

“약속 지키려고 하는 거니까, 제발 좀 죽어라.”

바로 쏘았다. 그는 괴물의 몸에 박힌 불발 난 RPG탄두를 노렸지만, 유탄은 반대편에 맞아 폭발했다. 괴물이 주춤거리는 사이, 석민은 SVDK에 탄창을 새로 하나 꺼내서 끼워 넣었다.

석민은 지금이 바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괴물의 상처 난 몸들이 아물었고, 잘려 나갔던 팔들이 새싹이 돋아나듯 눈앞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다시 쏴!”

석민이 소리쳤다. 성민은 새로운 유탄을 넣고 장전했다. 괴물이 그것을 보더니 수많은 팔로, 자신의 얼굴과 몸을 가렸다.

성민은 잠시 어딜 노릴까 고민하더니 몸통에 박힌 탄두를 보고 그곳을 노렸다.

유탄과 RPG탄두가 서로 부딪치면서 큰 폭발이 일어났고, 괴물은 상반신과 하반신이 폭발에 의해 분리되었다.

“꽤에에액!”

괴물이 여태껏 들어 보지 못한 커다란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쳤다. 마치 여자 같기도, 남자 혹은 노인, 어떨 땐 어린아이 목소리 같은 소리로도 들렸다. 그 처절한 울부짖음은 수많은 목소리가 담긴 비명이었다. 아마 그때 남았던 모든 이들의 소리가 아닐까.

괴물은 자신의 팔로 기어서 움직였다. 그것은 성민을 향해 움직였다.

‘미친?’

아직도 움직이는 상태가 너무나도 징그러 석민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괴물은 하반신이 잘려 나갔음에도 팔을 허우적거리며 조금이라도 다가오려고 했다. 잘려 나간 단면부에서 검고 진득한 피가 샘물처럼 흘러나왔다.

잘려 동떨어진 하반신도 여전히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성민은 안색이 완전 창백해졌다.

“미, 민선아?”

“뭐하는 거야! 다시 쏴! 쏘라고!”

기겁한 석민이 고함을 쳤지만, 성민은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잠시간의 망설임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순 없었다.

‘저따위로 하니 계속 실패하지.’

석민은 총검을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괴물이 허우적거리는 것을 멈추더니, 이내 석민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그대로 기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타란툴라 같았다.

석민은 폐차를 밟고 올라서서 그대로 높게 도약했다. 그는 방아쇠도 당길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총검을 괴수의 뒷목에 찔러 넣으며 덮쳤다.

괴수는 일으켰던 상체를 그대로 다시 바닥에 엎어졌고, 총검의 날이 목뼈를 뚫고 그자의 턱으로 삐져나왔다.

“끄으으으으.”

짐승보다 더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총검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손에 별로 기분 좋지 못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는 괴수에 달린 손들을 보았다. 수많은 손들이 그를 어떻게든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팔들 사이로, 표면에 미라화가 된 얼굴 형상들이 진흙을 마구 뭉친 것 마냥 붙어 있는 모습이 띄었다.

다들 괴로움과 절망에 깃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이 무수한 팔들의 주인들이었겠지.

입들이 뻐끔거리며 움직였고, 뻥 뚫린 눈구멍들은 마치 보인다는 듯이 석민을 향해 있었다.

역겨우면서도 안타까운 모습에 석민은 시선을 회피하고 싶었다.

손들은 물귀신처럼 계속해서 석민을 잡으려 했다. 다행히 석민은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총격에 터져나가고, 자신이 잘라서 아직 다 자라나지 못했기에 자신을 잡지 못하는 것일 테다.

그는 힘을 줘 칼날을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우드득 뼈를 자르고, 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총검을 뒤틀어서 뽑았다. 목의 절반과 혹같이 나온 살덩이가 잘려 나가면서, 탄두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 잘린 절단면에서 호박(琥珀)처럼 황금빛을 내는 돌덩이가 보였다. 분명 이것이 핵일 것이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석민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괴물에게서 들리는 것이었다.

“지켜야 해.”

분명 움직인 것은 그것의 입이었다.

‘말했어?’

석민은 인상을 썼다. 말하는 것이 마치 죽은 사람의 사념이나, 망령이 중얼거리는 것 같았기에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핵을 빼내기 위해 총구를 비틀어 보석을 향해 찔러 넣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었다. 다 자란 팔 하나가 석민을 쳐냈고, 그는 충격에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는 다시 시도하려고 했지만, 괴물은 이미 몸을 돌렸다.

“쏴!”

그는 성민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성민은 괴물의 목소리를 들은 직후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사이 잘려버린 상반신과 하반신 사이에서 촉수들처럼 신경줄기들이 길게 나오더니 서로 엉겨 붙어 재생을 시작했다. 석민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어느새 100미터 앞까지 다가온 아영이 쏜 것이었다.

작렬탄이 상반신과 하반신의 접합부에 박히면서 작은 폭발을 만들어냈다. 엉겨 붙던 촉수들의 일부가 끊어졌다. 포효하듯 괴성이 울렸다. 괴수는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했다.

석민은 다시 핵을 꺼내기 위해 움직였으나, 핵은 벌써 아물어져 가려진 상태였다.

아영은 연신 장전손잡이를 당기고 새 탄약을 넣어서 쏘았다. 그녀는 팔들의 관절 부위를 노려서 쏘았고, 그때마다 팔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이윽고 그녀는 혹을 노리고 총을 쏘았다.

총알이 살에 박히면서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가 싶더니, 총상 자국이 난 부분에 화염이 피어올랐다.

썩은 살이 타는 냄새가 코끝에 풍겼다. 석민은 이상한 냄새에 적잖은 고통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코를 잡았다. 그의 코가 살짝 빨개졌다.

그러나 타격이 가는 만큼 회복도 엄청나게 빨랐다. 핵을 따려면 좀 더 강한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석민은 성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유탄! 빨리!”

성민이 움직이는 사이 석민도 다시 달렸다.

그가 가지고 있는 대전차로켓의 탄두들이 불량이라면,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석민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영이 사격을 멈추고 발사관을 둔 곳으로 달려가 열압력탄두를 꺼내서 발사관에 조립하여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걸 왜 던져! 위험하게!”

손에 총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석민은 빨리 가지고 있던 SVDK를 얼른 어깨에 메고 그것을 간신히 잡았다. 이미 탄두안전핀이 제거되고 방아쇠도 격발가능 상태로 만들어 두었기에, 떨어트렸을 때를 생각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아영에게 핀잔을 주었다.

“쏴! 빨리!”

석민이 다시 성민을 향해 윽박지르자, 그제야 약간 정신을 차렸는지 성민이 화들짝 놀라며 유탄을 발사했다.

유탄은 괴물의 얼굴에 맞고 살짝 튀어 오르는 가 싶더니, 공중에서 터져 그것의 팔을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 혹을 가릴 팔 같은 것은 없었다.

석민은 괴수와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대략 가늠해보았다.

열압력탄두라고 하지만, 폭발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는 알지 못했다.

“물러서! 물러서라고!”

서성민이 그의 지시에 따라 물러서자, 석민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혹을 노리고서 발사했다.

로켓이 꽤나 커서인지 매우 느리게, 그리고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조준에 조금 실패했는지, 약간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살짝 욕지거리를 퍼부으려는 순간 탄두가 국화꽃처럼 쩌억 갈라진다 싶더니, 하얀 가스 같은 것이 순식간에 괴물을 감쌌다. 이윽고 작은 불꽃이 일어나더니, 커다란 화염폭풍이 일었다.

괴물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비명도 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서 있던 자들은 뒤로 엄청난 폭발의 위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괴수는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거라고 한 게 사실이었군.’

자칫하면 폭발에 자신도 휘말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할 뻔했으나, 석민은 매우 강력한 화력에 만족했다. 열기에 얼굴이 잔뜩 화끈거렸다.

석민은 발사관을 내려놓고 SVDK에서 대검을 뽑아 괴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끝이야.’

그는 짙고 검은 연기 속으로 달려갔다.

불길 속에서 타 녹아내리는 하민선 병장의 거대한 얼굴과 마주쳤다! 그것은 정확하게 석민에게 시선을 맞추고서 아가리를 쫙 벌려 덤볐다.

이제 와서 자세히 보니 드레이크, 그러니까 도마뱀의 얼굴과 사람의 얼굴을 아수라 백작마냥 반반 섞어 만든 듯 한 얼굴이었다.

“이런 젠….”

순간, 총성이 울렸다.

총탄은 하민선 병장의 턱관절에 착탄했고 하민선 병장의 턱뼈가 빠져버렸다.

“이제 끝내자, 민선아.”

백내장처럼 희뿌연 눈동자가 서성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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