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81화 (81/226)

[게이트 오브 서울 81화]

약간의 힘겨루기가 있었지만, 조용히 힘을 주기가 그다지 좋지 못해 결국 석민이 질 수밖에 없었다. 책망 어린 시선이 아영을 훑었지만, 아영은 고개도 돌리지도 않은 채 서성민을 바라보았다.

“예, 하민선이 그 친구 이름입니다. 사태 이후 저는 제대하고 헌터 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우연히 그 친구가 괴물이 되어서도 다리를 지키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처음엔 설마 그가 그런 괴물이 되었을 줄은 몰랐지만, 아무리 거대해지고 뒤틀리고 피부색이 변했다고 해도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헌신자 괴수였나?’

어째서 괴수 주제에 ‘헌신자’라는 거창한 수식언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 친구가 우리를 위해 희생했는데, 괴물이 되어서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목적인진 모르겠지만, 전 그 친구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것에 족합니다. 부디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아영은 그의 말에 혹한 분위기였지만, 석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린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즉 신용이 전혀 없단 말이야. 지금 말한 사연도 얼마든지 조작할 방법이 있고.”

“저를 끼워 주신다면, 그 녀석을 죽일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죽일 방법이 있다고?”

그건 알고 있는데.

석민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어.”

“아.”

그 말에 서성민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는 듯 하더니 아까 그들에게 보여주었던 다이아몬드가 담긴 주머니를 꺼내서 석민에게 주었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성공한다면 이것만큼 보석들을 더 드리겠습니다.”

“네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저는 헌터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보석을 모았습니다. 제가 가진 보석들을….”

석민이 여전히 부정적으로 말을 하자, 서성민은 항변하듯이 우물쭈물 거리며 덧붙였지만, 보석이 중요치 않은 석민에겐 그저 하찮은 변명과 귀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석민은 손사래 쳐 그의 말을 막았다.

“아, 됐고. 알았으니까 나중에 이야기해보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성민은 눈치를 보듯이 석민과 아영의 얼굴을 살피더니 엉거주춤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석민은 그가 문을 닫자마자 아영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왜 그랬어?”

매서운 시선에도 아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정도면 진실이겠죠.”

“그래, 나도 그러긴 한데, 저 인간 정보는 믿을 수 없어. 누구나 다 사연이 있고, 그리고 이야기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확실히 방식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의도는 좋다고 봅니다.”

너무 감정적이지 않은가? 석민은 아영이 왜 이러는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네가 보증할 수 있겠어?”

보증이라는 말에 아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사태 때 전우들, 부하들을 잃은 적이 있었지? 동변상변을 느끼는 건가? 그래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가?

‘그렇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엮이는 것은 질색인데.’

그의 개인적인 성향은 둘째치더라도 그들이 하는 임무는 다른 사람들과 엮이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아영의 반응을 보건데 데리고 가길 원하는 듯했다.

“그래서, 저 남자를 내가 데리고 가길 원하는 거야?”

석민의 질문에 아영은 말없이 그를 보았다.

“…그래, 알겠어.”

석민은, 이번만큼은 자신이 지기로 마음먹었다.

안식

“scar에, 유탄발사기라.”

석민이 중얼거렸다.

성민이 가지고 온 무기는 7.62mm 나토탄을 사용하는 마크 17버전이었다. 그는 그 위에 4배율짜리 조준기를 달아놓았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탄창들이 전부 20발짜리들이라서 지속적인 화력이 좀 걱정스러웠다.

“뭐, 그래도 유탄발사기가 있으니 괜찮겠지.”

“지금 바로 갈 것입니까?”

성민이 군장을 바로 챙기며 묻자, 석민은 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 핵의 위치는 정확하게 어디 있지? 그것도 알고 있는 건가?”

“몸의 오른쪽 위에 있습니다.”

“오른쪽? 정확하게 어디?”

“얼굴 오른쪽에 혹처럼 부푼 부문이 있잖습니까? 그쪽입니다.”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군장과, 무기들을 챙겼다.

“……그걸 전부 사용할 생각입니까?”

9.3mm 탄약이 50발 들은 탄창 5개에 RPG발사관과 탄두 6발이 든 가방, 러시아제 티타늄 재질의 바이저가 달린 방탄 헬멧과 방탄복 등, 그가 챙긴 단독군장만 해도 거의 4kg는 훅 넘을 것 같아 보였다.

“물론 갈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챙기고 가다가 괴수라도 만난다면 어쩌시려고요?”

“내 걱정 하지 말고 가지.”

아영 또한 혜원에게서 산 t-5000을 챙기고 많은 양의 탄창과 보조무기들을 포함한 군장을 짊어지고 있었다. 군복의 주머니에도 탄창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때 문득 탄두의 색이 다른 탄약이 석민의 눈에 띄었다.

“그건 뭐야? 거기서 산 게 아니네?”

“네, 맞습니다. 이거, 일반적인 탄환이 아닙니다.”

아영이 탄창에서 탄환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탄두가 녹색인 탄환이었다.

“고폭소이철갑탄이라 불리는 건데, 작렬탄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인 탄환보다 강력합니다. 거기서 산 탄약은 일반적인 탄약이라, 많이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어서 새로 마련했습니다.”

“그래?”

그런 게 있다면 나중에 자신도 혜원에게 부탁해봐야겠다고 석민은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괴수와 싸울 준비를 나름 철저히 했으나, 당연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좀 우스웠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는데.’

“가지.”

그들은 다리 쪽으로 향했다. 석민과 아영은 스탯을 올린 덕분에, 가볍게 산책하듯 움직였고, 뒤처지는 이는 성민뿐이었다. 성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석민을 바라보았다.

‘잘하면 진짜로 민선이에게 안식을 줄 수 있겠어.’

석민과 아영은 지난번에 괴수를 관측했던 건물로 들어가 다리 주변을 살폈다.

다리는 예전처럼 매우 고요했고,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또 안 보이는군.”

“지난번처럼 다리 밑에 숨은 게 분명합니다.”

아영이 스코프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다리 근처에서 소리가 나거나, 누군가 나온다면 민선이도 바로 나타날 것입니다.”

성민이 말했다.

“다리에서만 서식하는 건가?”

석민은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 마주쳤을 때, 괴수가 이곳까지 추적한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네, 없습니다. 민선이가 총을 쏘면서 공격하긴 하지만, 다리에서 멀리 떨어진 적은 없습니다.”

“지박령 같은 거라고 보면 되겠군.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지.”

석민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내가 RPG를 톨게이트에 쏴서, 놈을 나오게 만든 후에 아영이 원거리에서 녀석에게 총을 쏘는 거야. 그러면 놈이 너에게 총을 쏘기 시작할 테지만, 그래도 원거리니까 엄폐만 잘하면 맞을 일은 없을 거야. 그 이후에 놈의 탄약이 떨어지고 재장전에 들어갈 때 내가 조금 더 접근해서 다시 RPG를 쏴 그 핵이라는 걸 파괴해 보지. 괜찮겠나?”

성민을 향해 한 말이었지만,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영이 먼저 고개를 저었다.

“왜?”

“RPG는 연기가 많이 납니다. 차라리, 유탄발사기 폭음이 놈을… 아니, 민선 씨를 끌어들이기 좋을 것입니다.”

그녀는 성민의 눈치를 보며 말했고, 그에 동조하듯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면 너는 나를 따라서 같이 가도록 하고, 아영은 뒤에서 대기해줘.”

그들이 건물에서 내려가는 동안, 석민은 성민이 바짝 긴장한 것을 알았다.

“여태껏 몇 번 실패했던 거야?”

“……총 6번 실패했습니다. 처음엔 쏴 죽이려고 했고, 두 번째는 백린탄, 세 번째는 대전차로켓으로 터트리려고 했지요. 헌터들과 같이해보기도 했지만 계속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안 죽나?”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던 트롤 같더군요. 아, 제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서….”

석민의 표정을 보더니 성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리더니,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안 죽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핵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내뱉는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초점이 사라진 채 상념에 빠져있었다.

“저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걔가 우리를 위해서….”

그런 눈에서 곧 방울방울 물이 맺혀 흘렀다.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석민은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초면에 눈물이나 보이고.”

“아니, 됐어.”

그 이후 둘은 말 한마디 없이 다리 초입부까지 이동했다. 이윽고 버려진 차들 근처에 엄폐했다.

석민은 SVDK를 버려진 차량에 비스듬하게 세워둔 후 RPG를 챙겼다.

탄두의 안전장치를 풀어 바로 발사할 수 있게 해둔 뒤, 여분의 탄두도 전부 조립을 마쳤다. 준비를 마친 그는 아영은 호출했다.

“울프 1, 준비를 마쳤어.”

-알겠습니다. 이쪽도 준비완료입니다.

“좋아.”

그는 성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성민이 장전해놨던 유탄발사기를 발사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유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버려진 승용차의 유리창을 뚫고 폭발했다.

폭음이 들리기 무섭게 그들은 몸을 숙였다.

괴성과 함께, 묵직한 발걸음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헌신자 괴수, 아니 하민선이라 불리던 존재가 다리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이다.

그것은 어쩜 비명처럼 들리기도 하는 괴성을 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괴물의 온몸에서 작은 폭발들과 함께 불꽃들이 튀면서, 총알이 박힌 곳에 불이 붙었다. 총탄은 쉼 없이 박혔고, 괴물은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화력이네.’

작약도 들어있고, 티타늄 탄심이 든 유탄발사기는 괴물에게 매우 효과적인 타격을 주었다.

물론 그 괴물은 맞고만 있지 않았다. 괴물의 수많은 팔들 중, 무기를 가진 것들이 아영을 향해 뻗어왔고, 곧 총이 발사됐다.

권총이든 소총이든 중기관총이든, 십 수개의 총구가 아영을 노리고 동시에 불꽃을 뿜으면서 엄청난 총성들이 울렸다.

‘이 소리 때문에 서울에 모든 괴수들이 다 여기로 몰리는 거 아냐?’

석민이 걱정하는 사이, 탄환들이 아영 있는 곳에 작렬하면서 수많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녀는 계획대로 몸을 엄폐한 상태였다. 괴물과 대략 1킬로미터 더 떨어져 있었기에, 저렇게 무작정 사격하는 방식으로 그녀가 맞을 일은 없었다.

그의 예상대로 괴물은 일단 마구잡이로 총을 쐈고, 그 때문에 총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탄약이 다 되면서 총성들이 끊기기 시작했고, 1분쯤 더 지났을 땐 아예 멈췄다.

“좋아.”

석민은 RPG를 쥐고 차에서 상체를 올렸다. 괴물과의 거리는 300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RPG는 처음 쏴보는 것이지만, 이 정도 거리는 자신이 있었다.

이거 한발이면 아무리 잘난 저 괴수라도 두 쪽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잠시간의 조준이 끝난 후 폭음과 함께 석민이 쏜 RPG탄두가 성민의 말대로 괴물의 얼굴 오른쪽 혹처럼 부푼 부분을 노리고 날아갔다.

로켓은 정확하게, 그곳에 박혔다. 곧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탄두는 격발되지 않았다.

“불발?”

석민은 얼른 다른 탄두를 집어 들었다. 이것은 폭발물이라, 일반적인 탄환처럼 알림글 같은 것이 뜨지 않았다.

탄두의 신관에 문제가 있는 건가?

‘아니면, 피부가 사람처럼 말랑말랑해서 작동이 안 된다던가.’

대전차 로켓 탄두의 신관엔 인간의 신체 정도는 부드러운 방해물에 지나지 않아서, 신관이 격발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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