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79화]
시민들에게 집안에서 대기하라는 방송과 긴급문자가 발송되었지만, 서울 시민들은 그러지 않았다. 강남지역이나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차량 행렬은 여전히 줄을 지었고, 피를 흘리면서도 서울을 걸어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들이 전부 물렸는지 안 물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통과되지 못한 채 그대로 돌려보내졌다.
서성민 병장은 사이렌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반대편 차선, 반대편 터널에서 역주행으로 급히 달려온 차량을 멈춰 세웠다.
“강북지역에 있는 병원들은 지금 포화상태이거나, 괴물이나 감염자들에게 습격당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응급환자를 강남으로 옮겨야합니다!”
구급차의 운전자가 다급하고 정신없게 소리쳤다.
어찌나 가까운 거리에서 고함을 치는지 양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패닉에 빠진 몇몇 차량들이 반대편차선으로 이동해서 슬금슬금 가까이 오자, 중사가 나서서 공중에 경고사격을 가했다.
차들이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그 빈자리를 뒤쪽의 차들이 메워버리는 통에 들어가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멈춰 섰고, 결국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환자 좀 봅시다.”
“아니, 시발! 이럴 시간 없다니깐?!”
서성민 병장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 말들을 무시하고서 차량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뒷좌석엔 환자가 대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서성민 병장은 그들을 쏘아보았다.
거짓과 더러운 위선. 통제를 벗어난 놈들이었다.
자기들만 우선 살겠다고 꾸민 짓들이었다.
구급차는 어떻게 구한 것인가? 잠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갔으나,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걸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장이라도 협박하려는 듯한, 사나운 눈빛으로 서성민 병장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입을 열기 전에 분노한 시선들을 무시하고 문을 닫았다.
“차 돌려.”
“이 새끼가…….”
적반하장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운전석에서 내리려고 하는 운전자의 문을 서성민 병장은 발로 차서 닫아버렸다.
“그냥 조용히 통과시켜, 니들이 그냥 통과시키기만 하면….”
분대장이 앞으로 나와 그자에게 권총을 쏘았다.
총알이 운전자의 귀를 스치고 반대편 유리창을 깨트리고 나와 아스팔트 바닥에 박혔다. 탄두가 깨지면서 작은 불꽃도 튀었다.
차 안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꺼져, 씹새끼야.”
“아, 알았어. 갈게.”
권총의 총구가 다시 가까워지자 운전사의 목소리는 처량하게 줄어들었다.
“뭐라고?”
“……가겠습니다.”
떠나가는 구급차 뒷모습을 보던 서성민은 순간적으로 차의 뒤쪽을 소총으로 조준했다. 지금이라도 방아쇠를 당겨 정의를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교대해라.”
그때 분대장이 그의 헬멧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교대 시간이니까.”
서성민은 흐트러진 헬멧을 한 손으로 정리하며 교대하러 자리를 떴다. 그는 교대를 한 직후 다리 난간에 편하게 기대앉았다.
“미쳤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같이 당직이 끝난 하민선 병장도 다가와 그의 곁에 앉았다.
“나도 모르지, 대통령도 죽었다는데 여긴 도심과 떨어져서 별 실감이 안 나는 걸 수도. 도심은 난리라는데.”
얼마나 심한 일인지 몰라도, 대통령까지 죽은 마당에 사람들이 저렇게 해서라도 강북지역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정확하게 본 게 없는 그들로서는 어느 정도의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아마 그땐 아직 자신들이 이걸 받아들일 만큼의 무언가가 형성되지 못했던 것일 테다.
“내가 보기엔….”
하민선 병장이 말을 끝내기 전에 요란한 경적과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대편 차선에서 아까 쫓아냈던 구급차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길 막으려고 하지마라! 어차피 못 지나가!”
분대장이 소리쳤다.
톨게이트를 통한 길은 이미 장갑차들이 들어와서 봉쇄되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가드레일이 있었기 때문에 구급차가 통과하는 것은 무리였다.
“모두 물러나!”
소대장들과 중대장이 다시 한 번 중대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그 차의 뒤에 무언가 커다랗고 다른 존재가 붙어있었다.
그것은 구급차와 비슷한 크기에 구급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구급차를 쫓고 있었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경적을 누르는 주기가 빨라졌다.
그것은 터널 입구쯤에서 커다란 앞발을 이용해 구급차의 뒤쪽을 후려쳤고, 구급차는 그대로 차체 뒤쪽이 튕기듯 들썩이며 옆으로 누운 채 관성에 의해 길게 쭉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끔찍한 장면들이 이어져 나갔다.
그것은 커다란 앞발로 마치 종이를 찢어버리듯이 구급차의 차체를 뜯어버리더니 포크로 소시지를 찍듯이 사람을 찍어서 자신의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아직 덜 죽은 사람이 버둥거리면서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지만,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순 없었다.
절망적인 손짓들이 괴물의 이빨 사이에서 이어졌으나, 자신의 몸뚱이와 머리가 괴물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단호하게 닫힌 괴물의 입에서 빠그적빠그적 질겅질겅 부서지고 씹고 즐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 차 안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괴물은 눈알을 돌려 그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그대로 앞발을 들어 찍어 눌렀다. 발밑에서 버둥거리는 사람을 즐기듯, 그것은 발에 힘을 꽉 주지 않은 채 씹던 입을 멈추지 않았다.
“야! 도와줘! 시발!”
맨 앞으로 달려오는 남자, 아까 보았던 운전자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의 셔츠 단추는 다 뜯어지고, 무언가 긁히고 베인 상처를 잔뜩 입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리라 생각지 못한 생물과 마주친 서성민과 하민선을 비롯한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총만 겨눈 채 멍하니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실 자신들 쪽으로 뛰어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마구 총을 쏘기도 애매했다.
“엎드려!”
중대장이 소리쳤다.
그는 확성기를 가지고 계속 소리쳤다.
“거기, 엎드리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구급차에 타고 있다가 겨우 빠져나온 몇몇 사람들은 계속해서 달려올 뿐이었다. 마치 구명줄은 톨게이트밖에 없다고 생각하듯이.
마지막으로 천천히 기어 나오던 사람까지 다 잡아먹은 그것은 이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제야 주변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놀라 차 문을 열고서 톨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나오지 마세요! 차 문에 있으세요!”
밑도 끝도 없이 달려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중에, 문제는 더 크게 벌어졌다.
이쪽 터널에서도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급해진 중대장은 각 장갑차량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준비되는 대로 발사해!”
각 장갑차의 차장들이 해치를 열고 총탑에 있는 중기관총을 잡았다.
“민간인들과 섞였는데….”
반대편 터널에서 뛰어오는 괴물이 가장 뒤처진 자를 붙잡았다.
“으아, 안 돼!”
“쏴! 쏘라고!”
중기관총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빨간 예광탄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괴물에게 강타했다.
서성민과 하민선은 장갑차와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총을 한번 쏠 때마다 그 충격파와 진동을 느꼈다.
총알들이 무수히 박히자 괴물은 몸부림을 쳤다. 유감스럽게도 괴물에게 잡힌 사람도 총격을 받고 신체가 절단이 나면서 절명했다.
괴물은 괴성을 지르면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분명 총탄이 박히고 있는데?!
놀란 차장들이 4, 5발씩 끊어 쏘는 대신 계속해서 방아쇠를 눌렀고, 병사들은 그것을 겨눠 총탄을 쏘아댔다.
군인들의 눈에 일반 소총탄들이 비늘을 맞고 튕겨 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이런, 세상에.”
서성민은 이를 악물고 연신 방아쇠를 당겼고, 하민선 병장은 새로운 탄창을 꺼내 넣고 있었다.
다행히 연이은 총격에 괴물은 연신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쓰러져 절명했다.
“사람들 저지시켜! 사람들 저지시키라고! 감염자가 빠져나갈 수도 있어!”
누군가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터널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멀리 너머로 괴물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다른 무언가 이변이 또 생긴 것이 분명했다.
“잠깐만.”
눈을 가늘게 뜨고서 주변을 확인하던 하민선 병장은 결국 잘 안 보였는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버려진 승용차의 지붕 위로 올라가 터널 멀리를 살폈다.
달리는 사람들 뒤쪽으로 무언가 이상한 사람들이 보였다. 멀리서 보는 것이었지만, 확연하게 차이가 났기에 구분이 가능했다.
피부가 마치 죽은 사람마냥 거무죽죽했고 짐승처럼 움직이는 그런 것들이었다.
“감염자다! 감염자가 오고 있다!”
하민선 병장이 소리치자, 당황한 간부들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고함소리 때문에 긴가민가하고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민간인들도 놀라 비명을 지르며 톨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 때문에 책망하는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성민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새로운 탄창을 넣은 직후 차량 위에 올라서 그쪽을 조준했다.
“온다! 와! 반대편에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기해라! 대기해!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발포하지 마!”
중대장과 소대장들이 소리쳤고 분대장들도 명령을 복창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총의 가늠쇠울을 통해 감염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시발, 완전 좀비잖아!”
누군가 소리쳤다.
“입 닥쳐!”
사람들이 감염자들에게 물어뜯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같은 놈들로 변하는 게 또렷하게 보였고, 중대원들이 크게 동요했다.
다들 머릿속에 좀비영화의 클리셰가 떠올랐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죽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던가?
겁을 먹은 몇몇이 천천히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물러서지 마! 물러서지 말라고!”
간부들이 소리쳤지만, 병사들의 마음 한구석을 좀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간부들조차도 물러서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만큼 감염자들의 기세는 대단했고, 총을 쏘든 말든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모습에 병사들은 질리고 말았다.
그건 서성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하민선 병장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물러나지 마. 아무리 좀비라도 저들은 결국 인간일 뿐이야.”
어깨에 닿은 손을 통해 전달되는 떨림으로 그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서 있었다.
“겁먹지 말고 쏴!”
하민선 병장이 앞장서서 소총을 마구 쏘았다.
그는 연발로 소총을 쏘면서 총을 꽉 쥐어 반동을 제어하려고 노력했고, 대부분의 탄환들이 감염자들에게 박혔다.
감염자들은 총알 한두 방에 쓰려져 다신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을 본 서성민도 다시 용기를 얻어 방아쇠를 연신 당겼고, 다른 병사들도 곧 따라 행동했다.
그러는 사이, 장갑차의 차장들도 새로운 탄약상자를 꺼내 중기관총을 장전한 직후 마구잡이로 기관총을 난사했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움직이는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쐈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 때문에 터널 쪽에서 뭐라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의 총성에 거의 파묻혔다.
“쏘지 마! 쏘지 말라고!”
“여기 아이도….”
이미 두려움과 패닉에 빠진 기동중대원들은 총성에 귀가 먹은 채 모든 것을 쏘기 바빴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엔 누군가를,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단 자신들의 삶에 대한 욕구가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