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78화]
병장 하민선
서성민 병장은 하늘 위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 헬리콥터를 보았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항공등을 켠 채 날아가는 헬리콥터들의 모습은 마치 반딧불이처럼 보였다.
서울에 이렇게 헬리콥터가 많았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수가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간혹 너무 급히 움직였거나, 혹은 무언가 타격을 받았는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간신히 비행을 이어가는 헬기도 보였다.
사태가 벌어진 지 6시간이 지났을 무렵, 서성민이 속한 중대는 구리암사대교의 톨게이트에 검문소를 설치, 강남지역으로 가거나 그 밑의 도로를 통해 구리시 방향으로 빠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검문해서 감염자들을 색출하거나 교통통제, 혹은 아직 혼란이 발생하지 않은 강남지역에 감염자들과 이상한 괴물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라는 임무를 맡았다.
중대병력 89명, 차륜형 장갑차량 9대와 중대 지휘차량이 배속되어 있었다.
“서 병장, 여기 좀 도와!”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서성민 병장은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톨게이트로 움직였다.
톨게이트 너머에는 세상의 모든 차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별의별 차종들이 다 보였다. 심지어 그 혼잡한 차량들 사이에서 비집고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대혼란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비극적인 장소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선생님, 차에서 내리시죠.”
하사인 분대장이 빨간색 승용차에 타고 있는 여성에게 말했다. 그 차는 억지로 바리케이드를 넘어 지나가려다가 군인들에게 막혀 멈춘 상태였다.
만일을 대비해서 뒤쪽에 장갑차가 톨게이트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차가 군인과 바리케이드를 민다 해도 막힐 것이었다.
군인들이 그 차를 막은 이유는 조수석에 목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혈을 위해 셔츠로 목을 누르고 있었지만, 환부를 중심으로 검게 혈관들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얼굴은 거무죽죽한 회색으로 변해있었고, 황달이라고 걸린 것처럼 눈의 흰자위마저 황색으로 변한 채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누가 봐도 무언가에 감염된 것 같아 보였다.
“감염자, 맞죠? 감염자들은 다리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완전 좀비 같잖아.’
서성민 병장은 그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총을 겨누었다.
좀비영화에서 보던 그것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그는 현실감각을 잃을 것 같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걸 현실에서 직접 목격하니, 혹시 영화촬영 중은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만큼 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사태가 일어난 지 고작 6시간. 감염자를 본 이보다 못 본 사람이 더 많을 때였다.
군인들도 대부분 본 적이 없었으나, 하사 이상급 간부들은 스마트폰이나 SNS 등을 통해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상부에선 감염자들을 ‘처리’하라고 명령한 상태였다.
분대장은 다시 말했다.
“차에 내리세요. 당장!”
“나, 남편은 안 물렸어요. 병원만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제발….”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던 아이들이 3명이 차례로 목청껏 울어댔다.
분명 비싼 외제차에, 이런 일만 벌어지지 않았다면 다복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감염의심자를 함부로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 동조자일 뿐이었다.
뒤에선 빵빵거리는 경적이 끝없이 울렸다. 어디 선간 총성까지 들려왔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서성민 병장이 윽박 대듯 낮게 내뱉은 말을 듣고서 여성의 안색은 파랗게 변하더니, 곧 그 말에 반발하는 것처럼 차량의 엔진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는 차가 그대로 전진하더니, 범퍼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혀 찌그러졌다.
거리가 너무 좁아 다행히 차량의 가속이 늘어나진 않았다.
“아, 시발, 진짜!”
발이 밟힐 뻔 한 병사 하나가 놀라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제발, 안 돼요.”
그러는 사이 남자는 숨이 넘어갈 듯 숨을 헐떡였다.
“제발!”
하사는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운전자인 여자에게 물었다.
“남편분입니까?”
하사의 물음에 그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유감입니다.”
하사는 눈도 깜짝도 하지 않고 자신의 기관단총을 그대로 조준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크게 터져 나오자 뒤에서 울리던 경적과 아우성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남편 좀 봐 달라 애원하던 여자와 울고 있던 아이들도 차 안에서 울려 퍼진 총성에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소리들이 사라졌다.
“시체 치우고 이 차량 통과시켜. 하 병장, 서 병장, 둘이서 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총을 바로 쏜 통에 같이 있던 군인들도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분대장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을 본 소대장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령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뭣들 하는 거야? 시체 치우라고!”
다그침을 받은 하민선 병장과 서성민 병장은 서로 눈을 마주 보다가 보조석 쪽 문을 열고 시체를 꺼냈다.
보조석 창문에 피와 뇌수, 뇌 조각들이 튀어있었다. 하민선 병장과 서성민 병장은 그것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성실히 명령에 따랐다.
그제야 운전석에 있던 여자와 뒷좌석에 있던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민선아 도와줘.”
“시발, 아주 보기 안 좋군.”
그의 동기 하민선 병장은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시체의 양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서 꺼냈다. 그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우리 말년에 이게 뭐냐.”
라고 투덜거렸다.
그 둘은 동반입대로 같이 들어온 친구 사이로, 제대를 3주 앞에 두고 사달이 벌어진 통에 앞날이 깜깜한 상태였다.
시신은 갓길로 치우고, 최소한의 예우를 위해 모포로 덮었다.
“좀비가 창궐한 게 진짜인가 보네.”
“이 사람이 정말 좀비일까?”
그들의 집은 서울이 아니라 대전인 덕분에 가족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지만, 서울이 고향인 다른 중대원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해 보였다.
“김 하사님, 지금 집에 있는 사람들 전화연결이 안 된다고 했었지?”
서성민 병장은 소대장이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는 분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병들도 그렇지만, 간부들도 지금 많이 날카로워졌어.”
하민선 병장이 말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감염된다고 하질 않나, 갑자기 가만히 있던 사람이 그냥 변해버린다는 말도 있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그들은 시신을 치운 직후 아무도 건들지 않자 눈치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거대한 도마뱀 같은 괴수도 나타났다고 하던데, 아직 본 건 없고.”
“괜한 유언비어 퍼져서 사람들이 도망가는 거 아닐까?”
“그건 아니겠지. 피 묻은 사람 봤잖아.”
어쩜 그때 자신들이 흡연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실제로 그것들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하민선 병장은 남은 꽁초를 다리 밖으로 던져버렸다.
“만약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나 쏴줘라.”
하민선 병장의 말에 서성민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 말에 하민선 병장은 발짓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이 꼴이 돼서 사람들 물려고 하면, 물리는 사람이나 물려는 사람이나 대단히 곤란하단 말이지. 그러고 싶냐. 그렇게 괴물로 살고 싶지 않다. 그때가 온다면 나에게 안식을 줘.”
“그럴 일 없을 테니까 말 함부로 하지 마. 서울 강북 지역만 이 꼴이지 아직…….”
“당직자 제외하고 전원 집합!”
확성기를 통해 중대장의 명령이 퍼졌다. 그들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중대장 쪽으로 달려갔다.
중대장은 자신의 소형전술차 보닛에 올라가 자신의 중대원들을 내려 보았다.
그는 검문소에 있는 민간인들이 들을까 봐 확성기를 내려놓고 주변을 살핀 직후 입을 열었다.
“대열 갖출 필요 없어 다들 편안히 들어.”
그 말에 우울한 소식임을 직감했다. 다들 그랬는지 풀이 죽어있거나 잔뜩 굳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방금 대대에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코드 1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말에 엄숙하게 있던 이들이 웅성거렸다.
“코드 1이라면….”
평소엔 이렇게 말을 흐리면 가만히 안 두었겠지만, 상황이 심각해서인지 중대장은 별말 없이 그 의문에 대한 답해주었다.
“대통령님 말이야.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중대장은 갑작스럽게 곳곳에서 생겨난 괴수와 감염자들 때문에 청와대의 경비단과 경호부대가 순식간에 밀려났고,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인물들이 벙커로 피신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뚫려버렸다고 한다.
“현재, 대통령님의 권한 대행은 총리님이 인계받으셨고, 총리께서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오늘 저녁 중으로 타 지역에 있는 보병사단과 기계화보병사단이 출동해서 서울로 온다고 하니까, 그때까지 다리를 지키는 게 우리 중대의 임무다.”
중대원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황이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안 좋다. 아까 벌어진 일 때문에 다들 기분이 안 좋을 텐데, 이 이상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감염자들이 퍼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감염자들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평시처럼 절대로 민간인들에게 약하게 보이지 마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통제가 풀리고 만다. 위협사격은 간부들만 할 것이니까, 절대로 시민들에게 발포하는 일 없도록. 질문 있나?”
평소 같았으면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겠지만, 서성민은 평소와 다르게 손을 들었다. 사태 이후 계속 마음속을 맴돌던 의문이 불쑥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병장, 서성민. 질문 있습니다.”
“어, 해.”
“감염자들 말고도 파충류 비슷한 괴물이 생겼다고 하는데 저희 중대병력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 청와대를 지키는 경비단에는 장갑차와 전차가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중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당황스러운지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도 웅성거렸다.
“조용, 너 뭔가를 잘못 안 것 같은데.”
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제1경비단에는 전차는 없어진 지 오래고, 장갑차만 있었다. 게다가 이번 사태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경비단이 제대로 준비하기 전에 휩쓸린 것뿐이야. 우리는 장갑차의 중화기도 있고 미리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으니, 막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너무 애매모호한 답이라 서성민은 그 답에 신뢰가 가질 않았다.
“지금은 준전시에 가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실탄을 보급할 것이지만, 절대로 약실에 장전하지 말고, 가지고만 있도록. 괜히 약실에 넣어두었다가 오발사고 나면 큰일 나니까 주의하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믿음직하지 못한 설명에도 서성민은 재빠르게 중대장의 말에 대답했다.
***
‘서론이 너무 길잖아.’
석민은 인상을 찡그리며 아직 본론을 말하지 못한 서성민을 예의주시했다.
사연이 있는 건 알겠는데, 갑자기 사람에게 총을 겨누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면 아무리 인자한 사람이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령 교황이라도 화를 낼 거야.’
그는 목구멍으로 나오는 욕을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하민선이란 친구랑 다리를 지키다가 무슨 문제가 생겨서 일이 벌어졌다는 거잖아.”
마치 추억에라도 빠진 듯 멍한 표정으로 과거를 읊던 서성민의 인상이 순식간에 구겨지면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아영이 석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부탁을 드리는 입장이긴 합니다만, 부디 가만히 들어주십시오.”
서성민의 손에 들려있는 권총엔 여전히 그의 손가락이 걸려있었고, 안전멈치도 풀려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석민이라도 그의 권총을 쉬이 빼앗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석민은 어차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친절하게’ 질문을 하는 서성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황이 터진 건 그날 저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