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77화 (77/226)

[게이트 오브 서울 77화]

처음 보는 사람의 난데없는 감성팔이를 믿고 들어줄 만큼 석민에게 시간과 여유가 넘쳐나진 않았다. 지금 같은 시대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석민이 알렉산드라에게 시선을 돌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

서성민이 석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어느새 석민의 단검은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진정해주세요.”

그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석민을 바라보았다.

칼이 목을 겨누고 있는데도 매우 침착한데다가 적의도 없어 보였지만,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다.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에 석민은 경계를 낮추지 않았고, 아영 또한 숨겨둔 권총을 의식하며 꺼내야 하나 살피고 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내겠습니다. 돈을 원하시면 돈을 드리고, 다른 걸 원하시면 다른 걸 드리겠습니다.”

그의 경험상 저런 말을 하는 놈들 중에 제대로 무언가를 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저놈 내가 전에 말한 헌터들도 같이 데리고 갔다가 혼자 돌아왔었지.⌟

알렉산드라가 러시아어로 말했다.

‘이거 귀찮게 되었네.’

석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전히 그를 노려보다가 칼을 거두었다.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꺼져.”

그러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마치 복주머니처럼 생긴 또 다른 주머니였다. 그는 그것을 꺼내서 탁자 위에 내용물을 쏟았다. 족히 3캐럿은 되어 보이는 다이아몬드 12개가 탁자 위를 굴러다녔다.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그것을 무심하게 보았다.

“같이 참여하게만 해주시면 이것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서울에서 모은 것들이고 진품입니다.”

그러나 석민은 보석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진짜와 가짜 구별법을 몰랐으며, 현금화시키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딱히 보석을 좋아하지 않았다.

돈다발을 꺼냈다 해도 그를 끼워줄 마음이 없던 석민의 표정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서성민은 마음이 다급해져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그 괴물, 아니 민선이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라고.”

석민은 그자를 거칠게 밀었다. 성민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석민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낮게 혀를 찼다. 알렉산드라와 대화를 할 때 부주의하게 큰 소리로 떠든 것이 화근이었다.

“필요 없으니까. 저리 가라고.”

설령 성인군자의 할배가 온다 해도 이런 곳에서 난데없이 끼어들어 도와주겠으니 자신도 끼워달라고 하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신용이 없으니까.

“그건 사람입니다. 제 친구이자 전우였지요.”

계속 거절하는데도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그 사람에게 질린 석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알렉산드라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뜻을 이해한 알렉산드라는 옆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남자에게 눈짓을 했고, 남자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아 그대로 끌고 나갔다.

“자, 잠깐만요!”

서성민은 끌려 나가면서도 다급하게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으나, 이미 밖으로 쫓겨난 직후였다.

“최소한 내 건 도로 가지고 가게 해야지!”

그 말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 하나가 다가와서 다이아몬드를 전부 주머니에 넣은 후 서성민에게 돌려주기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잠해지고, 석민은 그가 나간 문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 잘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서성민이라고?”

그 말에 알렉산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여기에 한 1년 정도 자주 찾아왔어. 1년 동안 그 괴물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지. 한 6번 실패했나? 4번은 직접 했고, 2번은 다른 헌터들과 같이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하다가 마지막엔 혼자 겨우 살아 돌아왔지.”

“다른 헌터 일은 안 하고?”

“어, 안 해. 일단 내가 아는 선에서 말하자면 그래.”

아까 한 말이 진짜인가? 타인을 통해 어느 정도 서성민에 대해서 듣고 나자 냉정했던 석민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졌다.

‘사연이 있긴 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할 수는 없지.’

“그럼 괴수에 대해서나 아는 거 말해줘.”

***

알렉산드라는 계속 자기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 나갔다.

난사로 무력화시킨 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괴수는 회복하여 되살아났으며, C4와 6연발 유탄발사기, 1회용 대전차로켓 등을 이용해 공수하여 공격하여도 결국 그놈을 잡지 못했다고 헌터가 푸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대전차로켓에 유탄발사기를 맞고 육체가 완전히 사방으로 찢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순식간에 복구가 되었다더군.”

알렉산드라의 말에 석민은 오뚝이처럼 고개만 계속 끄덕였다.

“몸을 재구성까지 한단 말이지? 자가치료에 재구성이면 답이 없군.”

분명 그런 놈이라도 지난번의 천사처럼 드래곤하트 같은 핵이 있을 테니, 그것만 찾아 없애버리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에 가깝게 판단하고 있었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는 혀로 말라버린 입술을 적시고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무한으로 살아날 텐데.’

“영상이 남아있거나 하진 않나?”

“없어.”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없다고? 네 말을 들어 보면 헌터들 사이에서 유명한 것 같은데, 현상금까지 걸었다며?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말하는 거야? 헌터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걸 그놈들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에게 보여주거나 하진 않겠지.”

아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석민은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렉산드라가 마치 비웃는 듯, 비밀을 담고 있다는 듯, 묘한 눈길로 석민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민은 허리를 살짝 숙여 날카로운 눈빛으로 알렉산드라는 주시했다.

제대로 정보를 주는 게 아닌, 떠보면서 이걸 석민이 어떻게 알아차리나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고급 정보를 얻으려면 무언가 대가가 필요한가 보네. 그래, 뭘 원해?”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알렉산드라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턱을 간질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정보를 준 어떤 놈이 말했었지. 우리 호텔 여자들 덕분에 잔뜩 흥에 취한 채 술에 저린 상태여서 신빙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그 괴수의 몸속에 드래곤하트 같은 핵이 있다고 하더군.”

‘역시.’

석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영은 지난번에 싸웠던 버림받은 오르바가 생각나서인지 몸을 살짝 떨었다.

⌜그 인간뿐 아니라, 다른 팀의 헌터도 그런 말을 했었거든. 근데 그 2명 빼고는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인진 알 수 없지.⌟

알렉산드라가 러시아어로 말했다. 한국어를 하긴 하지만, 익숙지 않은 말을 장시간 하다 보니 지쳐서 저도 모르게 모국어가 나와 버린 것이다.

⌜그때 목격한 헌터가 그걸 보고서 노리고 쐈는데, 결국 맞추진 못했다고 하더라고.⌟

그 때문에 아영은 다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없어서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석민은 그를 눈치 채고 알렉산드라의 말을 간단히 번역해 전달했다.

그리곤 석민은 의심스런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물었다.

⌜그 말, 신뢰할 수 있는 거야?⌟

⌜보고 들은 거 토시도 틀리지 않게 말한 거야. 믿는 것은 네 자유지.⌟

알렉산드라가 그렇게까지 그렇게 말하니 석민도 할 말이 없었다.

‘젠장 괜히 물었잖아.’

그건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인지라 딱히 새로운 정보도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정보를 들은 이상 값을 지불해야만 했기에, 석민은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석민은 불퉁한 표정으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래, 그러면 그 정보의 보수는 얼마 주면 되지?⌟

그 말에 알렉산드라는 고개를 저으며 지갑 위에 손을 올려 돈을 빼내지 못 하게 했다.

⌜돈은 됐어. 다만, 그걸 처리하고 여기로 돌아오면 그때부턴 날 샤샤라고 불러. 그걸 보수라고 치지. 그거면 우리도 좀 더 신뢰가 쌓이고 유대감도 깊어지지 않겠어?⌟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의심이 드는 석민이었다.

이 여자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는 여자였다.

‘미인계는 더럽게 못 하긴 하지만…. 아니다 그건 미인계가 아니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져대는 것을 미인계로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경계심만 부추길 뿐.

“뭐라고 하던가요?”

석민은 아영에게 통역해준 뒤 다시 알렉산드라에게 러시아어로 물었다.

⌜진짜로 그거면 되는 거야?⌟

⌜어, 그리고 그 녀석 표본을 가지고 오면 현상금 2천만 원, 너에게 지불하지.⌟

‘2천만 원이라.’

석민은 입맛을 다셨다. 그는 방금 전 말한 내용을 아영에게 통역해 주었다.

“샘플이라면 가령 어떤?”

아영의 물었다.

⌜피부, 혹은 모발, 피 등 그런 거 말하는 거야.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핵도 얻어 와 봐.⌟

알렉산드라는 말을 마친 뒤 바텐더에게 손짓을 해서 맥주를 가져오게 했다.

⌜많이 목말라 보이네. 이 맥주는 내가 사지.⌟

석민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갈증을 깨닫고는 맥주를 들이켰다.

⌜왜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거지?⌟

⌜내가? 아니야.⌟

한입에 맥주 절반은 들이켠 석민이 병을 내려놓으며 묻자 알렉산드라는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꺄르르 웃었다. 그리곤 다른 손으로 석민의 어깨를 살짝 툭툭 치더니 팔을 붙잡았다.

눈에 훤히 보이는 알렉산드라의 행동을 보며 아영은 미간을 찡그렸고, 석민은 무표정하게 알렉산드라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알렉산드라는 쳐내진 손을 매만지며 다시 피식 웃음을 보이곤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 오는 손님들에게 전부 친절하게 굴어.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휴식처와 먹을 거, 마실 거, 무기, 탄약 그리고 여자까지 제공하지. 그렇지만 손님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손님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이야. 그러니 귀하디귀한 손님들에겐 친절하게 굴 수밖에.⌟

⌜그런가.⌟

석민은 남은 맥주를 전부 다 마셔버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샘플은 될 수 있으면 확보해서 오도록 할게.”

“그래, 기대할게. 죽지 마, 고객닌.”

“닌이 아니라 님이야.”

석민은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아영도 석민을 따라 객실로 향했다.

***

“드래곤하트를 파괴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니까 파괴하는 것보단 그것을 뽑아내는 것으로 하지.”

“그게 가능할까요?”

“버림받은 오르바도 했었으니,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석민은 그 말을 하며 자기 객실 열쇠를 꺼내서 문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석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객실 안에 사람이 있었다.

석민과 아영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려고 했지만, 먼저 방을 차지하고 있던 자의 몸과 손에 달린 폭탄들을 보고 움직일 수 없었다.

석민은 안전핀이 뽑히고, 레버를 꽉 쥐고 있는 서성민의 주먹에 눈을 고정했다.

“천천히 들어와. 소리를 지르거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면….”

알지? 눈빛으로 말하는 서성민의 배엔 폭발물들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는 살짝 상체를 움직여 석민의 어깨 너머로 밖을 살폈다. 얼굴엔 진땀으로 가득했고,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매우 긴장한 상태로 보였다.

이 정도로 행동할 정도면 진심으로 절박하단 소리였고, 자칫하다간 진짜 폭탄을 터트릴 수도 있단 말이었다.

석민과 아영은 양손을 들고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안으로 들어왔다.

“문 닫아.”

아영이 몸을 돌려 한 손만 내려서 문을 닫았다. 그는 석민과 아영의 무기를 빼앗거나 따로 빼내도록 시키지 않았다.

“저쪽 침대로 앉아.”

그런 직후 서성민은 반대편 침대에 앉았다. 초조한지 잠시간 입술만 뜯던 서성민은 입을 열었다.

“이런 짓을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무언가 위해를 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까와 다르게 매우 침착하고, 정중한 말투였다.

석민과 아영은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래, 이야기해 봐.”

석민은 손을 든 팔이 저려오는 걸 느끼며 자포자기하듯이 말했다.

“손은 내려도 좋습니다. 편안하게 들어주세요. 저는 제 친구를, 제 전우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강제로 시작된 인간극장이 두 사람 앞에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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