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75화 (75/226)

[게이트 오브 서울 75화]

‘RPG 탄두까지 주문하려는 것을 봐선 잡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괴수 잡이는 아닌 것 같은데….’

따로 물어볼 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털어버리려고 했으나, 머리 한편에 의문이 똬리를 틀었다.

“살아남을 자신이 있나 봐? 미리 주문하게?”

혜원은 애써 침착하게 농담 삼아 말했지만, 석민은 자못 심각하면서 진지한 얼굴이었다.

“SVDK의 커스터마이징이랑 탄창제작은 언제쯤에 끝나지? 되도록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우선적으로 해주면 더 고맙고.”

그녀는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였다.

“3일.”

“상당히 빠르군.”

만족스러운 대답이 이어진 후 용무를 마친 석민은 돌아가기 위해 총과 탄약들을 챙기는 동안, 혜원은 개조주문을 받은 구식 ak-74을 꺼내 작업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석민은 예전에 교단한테서 전리품으로 얻은 ak-102가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팔았던 ak-102는 어떻게 됐어? 팔렸나?”

“그건 진즉에 팔았지.”

혜원은 목재로 된 손잡이와 개머리판을 분해하며 대답했다.

“어디에 팔았는데?”

“교단.”

그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순간적으로 천국의 문 교단 말고 다른 사이비종교단체를 지칭하는 말인가 생각했으나, 자신이 아는 선에서 ‘교단’이라는 말을 쓰는 곳은 천국의 문뿐이었다.

“뭐?”

“천국의 문 교단한테 팔았다고.”

교단에서 빼앗은 무기를 교단에 되팔았단 말인가? 석민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바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게 가능해? 아니 그걸 어떻게?”

“총기 몸체랑, 개머리판, 각인이 새겨진 부위를 떼어버리고 이렇게 남아도는 부품을 달았지. 탄창도 다른 걸로 바꾸었고.”

그녀는 낄낄거리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북한 놈들도 요즘 이런 단축형 소총을 만들기 때문에 비슷하고 싼 물건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거든.”

그녀는 떼어낸 나무부품들을 바닥에 둔 박스에다 던졌다.

“그전에 봤던 뚱보 녀석이 총을 많이 원하더군. 그래서 구하는 대로 공급하고 있어. 마치 뭐랄까, 전쟁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던데, 너랑 문제가 있는 놈들이지?”

“그렇긴 하지. 얼마나 많은 양을 사들이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거지?”

석민은 긴장으로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무시하며 물었다.

“매월 백수십 단위의 총기와 그에 걸맞은 탄약, 그리고 탄창을 사고 있어. 여기는 커스텀을 주로 하는 곳이고, 완제품 물건을 단순하게 파는 건 순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가 아니지만, 근래에 손님이 줄어드는 추세라 해주고 있지.”

그녀는 무심한 듯이 말을 했지만, 혹시 석민이 자기와 적대관계인 단체에게 무기 파는 것을 언짢아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았다.

“혹시 그들도 대전차로켓을 사가나?”

석민의 물음에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종류 안 가리고 사긴 했지만, 많이 사진 않았어. 몇 개 샀더라? 발사관 20개? 탄두는 곱하기 6.”

눈알 굴리는 혜원을 보며, 그녀가 어떤 생각하는지 대충 알 거 같은 석민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석민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 판 총을 들고 교단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쏠 생각이 들자,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세상은 참 좁았다.

사실 그녀가 웬만하면 교단인들에게 무기를 팔지 않았으면 하지만, 자신이 뭐라고 그녀에게 간섭할 수 있겠는가.

“장사 잘되겠네.”

그는 간신히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이쪽은 생각보단 수익이 안 나오는 사업이야.”

묘하게 양심에 찔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 혜원이 그것을 부정하듯 얼른 대답했다.

“적이 많고, 또 손님 대부분은 그다지 좋은 의도로 오는 양반들이 아니지.”

그녀는 작업을 하면서 눈은 석민과 작업물을 연신 왔다 갔다 했다.

“질문 좀 해도 돼?”

“말할 수 있는 거면.”

짐을 다 싼 석민이 가방을 등에 멨다.

그녀는 머릿속에 있던 걱정과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알라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잡으러 가는 괴수가 많이 위험한 놈이야?”

“어, 아주 위험한 놈이야.”

생각보다 쉽게 답해주자 혜원은 잠깐 당황했다.

“얼마나 위험한 놈인데 그래?”

“돌연변이 감염자 같은데, 마치 사람과 동물의 진흙인형을 뒤죽박죽으로 섞은 것 같고, 심지어 지능도 남아있어. 총을 쏠 줄도 알고. 크기는 무슨 덤프트럭마냥 커.”

“음?”

그 말에 혜원은 의문을 느끼고 작업을 멈추었다.

“그런 게 있나?”

“생각보다 많더군. 돌연변이 감염자들. 남아있는 옷을 봐서는 군인이었던 거 같아. 다리 검문소를 지키다가 그 꼴이 난 것 같은데, 조금 불쌍하게 됐어.”

그는 그것의 정체라던가, 이름, 그리고 사명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돌연변이 감염자가 되어서도 그 상태에서 다리 위를 지나가는 모든 생물체를 죽여온 거 같더군. 심지어 괴수나 같은 돌연변이도 말이야.”

석민의 말에 혜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구나.”

혜원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석민은 그 모습에 잠깐 그녀의 쓸쓸함이 배어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오빠는 사태 때 예비군으로 고장 난 무기를 들고 괴수들과 싸우다가 죽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용건이 끝났다 생각한 석민이 먼저 등을 보였다.

“왜 그걸 잡으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에 석민은 다시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혜원은 여전히 몸을 굽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왕 하는 거 그 돌연변이에게 안식을 줄 수 있다면 좋겠네. 죽어서도 다리를 지키고 있다니, 그건 너무 가혹하잖아.”

“그러지.”

“그리고 잠깐만!”

혜원은 석민을 멈추게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 그의 팔뚝만큼 매우 두꺼운 로켓탄두를 가지고 나와서 그에게 내밀었다.

“아까 말한 열압력탄두야. 이게 정말 도움 될 거야. 쓰도록 해. 물론 공짜야.”

“…그거 정말 고맙군.”

석민은 뜬금없이 그녀가 이걸 왜 주는지 알 것 같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강력한 열압력탄두이니,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석민은 다시 몸을 돌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

안전가옥으로 돌아간 아영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비화(秘話)폰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사용하는 폰이었다. 그녀는 대통령과 직통 연락을 이 비화폰으로 주고받았다.

스마트폰에는 방금 도착한 대통령의 명령이 문자로 적혀있었다.

-강북으로 가는 일은 하지 말고, 계속해서 강서구와 강동구 쪽에 미등록 헌터들을 처리할 것.

“퀘스트창.”

[선택받은 자를 인도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헌신자 괴수’를 처치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여전히 심플한 문구였다.

그녀는 헌신자 괴수를 보자마자,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다. 헌신자 괴수를 처치하라는 퀘스트였다.

정부는 그들이 강북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곳은 괴수와 감염자가 너무 많아 헌터들도 강북지역에서 사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남지역은 지속적인 교전과 예방전을 벌이긴 했지만, 강북지역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헌신자 괴수와 마주하자마자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다. 바로 헌신자 괴수를 처치하라는 퀘스트였다.

정부는 그들이 강북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곳은 괴수와 감염자가 너무 많아서 헌터들이 사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남은 그래도 지속적인 교전과 예방전을 벌였지만, 강북은 그러지 못했다. 괴수와 감염자수가 너무 많아서 방벽을 유지하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게이트도 따로 없었다.

강북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곤 유일하게 구리암사대교뿐이었다. 그런데 그 다리마저도 괴수가 지키고 있으니, 정부입장에선 헌터를 사냥하고 드래곤하트를 모아 이익을 가져다주는 아영과 석민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강북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도 괜히 그들이 그곳에 가서 죽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석민은 강북으로 가길 원했다. 그 천사가 이유이든 아니든, 아영 역시 강북에서 괴수와 다시 조우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상부의 명령을 어길 용기도 없었다.

‘어찌 설명해야 하지? 어찌 설명해야 하냐고. 아니, 생각이 있다면 애초에 강북으로 가겠다는 보고도 하지 말았어야….’

그녀는 도리질했다.

‘아니야, 아니야. 헌신자 괴수에 대한 정보를 캐려는 시점에서 결국 왜 알려고 하냐고 되물어 보았을 거야.’

“하아.”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꽉 막힌 융통성에 혼자 절망했다.

애초에 이건 어리석은 모순이었다.

자신은 애국자였고, 나라에 보탬이 될 것이란 판단에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순진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이번 일이 닥치기 전까지 자신은 퀘스트가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영은 재빨리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늦었…. 아니, 그건 뭐죠?”

돌아오는 석민의 손에 RPG-7 발사관이 쥐여 있자, 놀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발사관 말고도 미사일 탄두가 담긴 가방도 잔뜩 가지고 돌아온 석민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일반적인 탄환으론 못 잡을 거 같아서.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건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예요? 설마 아까 그 가게에서….”

“아냐,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거야. 예전에 문제 많았던 무기상에게서 빼앗은 거야. 그 무기상을 처리할 때 네가 드론으로 보고 있었지.”

‘아, 그때 말인가.’

석민은 눈을 슬그머니 돌리며 대충 둘러댔다. 다행히 아영은 크게 의심하지 않은 듯했다.

‘치안이 너무 안 좋은 거 아냐?’

아영이 애매한 표정으로 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중에도 아무 걱정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던 삶. 괴수의 위협도 없고, 거리를 차지하는 빈민들도 많지 않던 그때.

경제야 항상 안 좋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안 좋진 않았다. 과거에 있었다는 IMF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영이 치안에 대한 걱정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이, 석민은 RPG 발사관을 한 번 잡아보았다.

“이거 몇 발 쏘면 그 괴물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석민은 힐끔 시선을 들어 아영의 표정을 살피고는 말했다. 여전히 묘한 표정으로 무기들을 쳐다보는 아영이 보였다.

석민은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대전차로켓이 돌아다닌다는 사실-그만큼 치안이 안 좋다는 사실-을 대단히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한 톨만큼 남은 양심에 석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사관을 내려놓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불법인 건 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일반적인 탄환으로 잡기엔 힘들 것 같고. 접근하기도 힘든데, 수류탄이나 C4보다 더 안전한 거리에서 공격을 해야지.”

“맞는 말이긴 한데, 군인으로서 자괴감이 드네요. 안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지만,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알아.”

석민은 조금 씁쓸하게 대답했다.

“군대는 최선을 다했어. 사태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처음 벌어진 일이잖아. 국군은 북쪽에 있는 적들을 막기 위해, 그리고 정규전투와 국가 간의 전면전을 상정하고 훈련을 받지. 어디서 그것도 후방, 또는 수도 서울에서 괴물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는 서울에서 벌어졌던 대혼란으로 땅에 떨어진 윤리와 준법정신, 그리고 대학살이 떠올라 몸을 살짝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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