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74화]
“SVDK, 이걸 추천할 줄은 몰랐네. 완전 마이너해서 사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생긴 건 드라구노프(SVD)와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총열이 더 굵고 개머리판의 생김새도 다른 총이었다.
“이건 뭐지?”
“러시아제 탄환, 9.3x64mm를 사용하는 저격총이야. 그쪽 분류방식으론 대물저격총이지. 7.62mm보다 강하고 12.7mm보단 약한 탄환이야. 딱 너의 니즈와 알맞은 것이지.”
석민은 SVDK를 들어 보았다.
[SVDK]
내구도: 100%
품질: 상상
탄약: 9.3x64mm
러시아에서 생산한 대구경 저격총,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저격총으로 타격하기 힘든 목표물을 처리하기 위해 Взломщик연구소에서 개발하였다.
“반자동 저격총이야. 물론, 네가 원한다면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고?”
탄약도 그렇고 총 자체가 완전히 마이너한 제품이라, 커스텀이 가능할 거라 석민은 생각지도 못했다.
“탄창도 봐줄 수 있나? 10발짜리지? 이걸 저격총으로 쓸 생각 없어.”
석민은 일단 커스텀에 대한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탄창부터 살피기로 했다.
그 말에 혜원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괴물을 잡을 생각이고 저격용이 아니면, 아마 지근거리에서 탄약을 마구 퍼붓는 방식으로 싸우려는 것이 분명하리라.
“C매거진 같이 드럼탄창이 필요한 거지? 몇 개?”
그게 된단 말인가? 석민은 혜원의 대단함을 새삼 다시금 느꼈다.
“50발짜리로 5개.”
석민은 총을 들어서 자세를 잡고 조준해보았다. 러시아제 특유의 좋지 못한 권총손잡이의 그립감 말고는 썩 괜찮았다.
“탄환 성능은? 9.3mm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최고야. 내가 보장하지. 나중에 쏴보면 알겠지만, 손맛이 아주 죽이지.”
그녀는 활짝 웃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해.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어깨를 쭉 펴고 으쓱거렸다.
“탄약 좀 볼 수 있을까?”
그의 말에 혜원은 다시 가게 뒤쪽으로 가서 커다란 탄약들을 꺼내왔다. 석민은 커다란 황동탄피가 인상적인 탄약을 꺼내서 보았다.
[9.3×64mm 7H33]
내구도:99%
품질:상
러시아에서 생산한 탄약.
탄약상태도 매우 좋았다.
석민은 위에 달린 전등에 탄피를 비추어 좀 더 자세히 보았지만, 아주 작은 흠도 없이 유리같이 깨끗한 면만 보였다.
러시아 놈들이 만든 것 치고는 마감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성능이 별로면 다음에 네놈이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정직하게 파는 거야. 성능은 내가 보장하지. 난 내 고객이 죽어서 다시는 물건 못 팔게 되는 걸 싫어하거든. 그리고 그런 일이 이어지면 결국 내 신용을 잃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
혜원이 말했다
“그렇지만, 탄창 같은 경우는 기성품에서 9.3mm 탄환에 맞는 게 없어서, 맞춤 제작해야 되거든. 돈 좀 들 거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석민이 탄약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렇지만, 아직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9.3mm 규격은 처음 들어 보거든 정말 신용할 수 있나?”
계속 보장한다고까지 말했는데….
혜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의심 많은 손님의 의문을 풀어야 했다.
석민은 이걸 소개받기 전까진 9.3mm 구경의 탄약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이걸 들고 앞으로 서울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가지고 갈 순 없었다.
혜원은 탄약을 집어 들고 설명해 나갔다.
“이 규격은 1920년대 유럽, 아마 정확하게는 독일일 거야. 하여튼, 아주 역사가 깊은 탄약인데, 맹수들을 잡으려고 만든 사냥용 탄약이야. 빅 파이브라고 들어봤어?”
그 말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 보는군.”
혜원은 탄약을 들어 보였다.
“빅 파이브, 다른 말로는 빅 아프리카파이브라고 하는데, 그 다섯 안에 들어가는 맹수는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 사자, 표범을 말하는 거야.”
“오호.”
그 말에 석민은 흥미를 보였다.
드레이크의 크기는 다양했으나, 코끼리 정도의 크기도 많았기에 그런 것을 잡을 수 있는 탄약이라고 하니 흥미가 안 생길 수 없었다.
“당시 유럽 놈들은 아프리카에 가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스포츠가 보편화되어 있었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러시아 놈들이 그들 기준으로, 나름 대구경인 저격총용 탄약으로 채택했어. 이유는 아마 너랑 비슷할 거다. 이 러시아제 탄약은 7.62mm 나토탄보다 1.7배 더 탄자가 무겁고, 더 강한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물론 12.7mm보다 약하긴 하지만, 네가 원하는 바로 그 탄약이야. 솔직히 이거 말고 다른 건 모르겠어.”
매우 진지한 얼굴로 탄약을 들어 보이면서 설명했지만, 한편으로는 착 내려앉은 얼굴이 빈정 상한 듯 보였다.
뭐, 저렇게까지 말하니 석민은 안 믿을 이유가 없었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이걸로 하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혜원은 다시 사업적인 미소와 함께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연신 비볐다.
석민은 자신의 총기를 살펴보았다.
“이건 총검을 꽂을 수 없군. 총열을 더 굵게, 그리고 총검도 달 수 있게 해주고, 소염기 대신 반동제어에, 좋은 머즐 브레이크가 났겠어. 총구화염 따윈 신경 안 쓰니까.”
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장을 꺼내 석민의 요구사항을 적어나갔다.
“권총 손잡이도 인체공학적인 것으로 바꾸고, 수직 손잡이도 달아줄까?”
“그래, 그게 좋겠어.”
“그 외에 다른 건?”
“9.3mm 탄약 가진 거, 다.”
혜원의 얼굴이 미소로 만개했다.
“지금 재고품이 딱 3000발이니까, 그거 주면 되겠군. 한 발에 2천 원이야.”
조금 비싼 것 같지만, 12.7mm보다는 가격이 싼 편이었다.
“나머지 탄환들도 좀 보지.”
“기다려봐.”
혜원이 탄환 한 발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석민이 왼팔을 뻗어 탄환을 잡으려는 순간, 혜원의 눈에 석민의 소매에서 살짝 튀어나온 단검의 손잡이가 보였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손을 뻗어 석민의 손목을 잡았다.
“뭐하는 짓이야?!”
석민이 본능적으로 손목을 빼내었다. 갑작스런 혜원의 행동에 석민이 적잖이 날카롭게 대응했으나,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한 채 단검의 손잡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칼, 어디서 났냐?”
“뭐? 너 이거 아냐?”
석민은 자신의 단검의 손잡이를 보여주며 물었다.
“페어번 샤익스(Fairbairn-Sykes)아냐? 영국 SAS에게만 지급해주는 단검이잖아. 그거, 한번 봐도 될까?”
석민은 조금 주춤거렸으나, 자신조차 명칭도 모르던 이 칼에 대해 알고 있단 사실에 조금 반가운 기분이 들어 선뜻 그녀에게 칼을 뽑아 건넸다. 혜원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그것을 받더니,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날카롭군, 게다가 아주 반질반질해. 오래 쓰지 않는 이상 이러지 않지. 이거 자주 쓰나 봐?”
석민은 대답하지 않았고, 혜원도 대답을 원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걸 내가 직접 보다니, 게다가 짝퉁 중국제도 아닌 거 같고. 어떻게 얻은 거야?”
“SAS대원에게 카드게임으로 땄어.”
“뭐?”
혜원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쳐지자, 석민도 그녀를 따라 어깨를 으쓱거렸다.
“구라가 아니고 진짜야.”
“……그런 게 가능하다니, 나참.”
그녀는 뒷머리를 긁더니 이내 그것을 자심의 품속으로 넣었다.
“이거 나줘!”
애교 잔뜩 섞인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윙크까지 하자 석민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지는 것은 당연했다.
“되도 않는 애교부리면서 낯간지러운 개소리를 지껄이면…….”
혜원의 손이 클레이모어 격발기를 쥐자 석민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 천장에 그게 있기는 했다.
무안해진 혜원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아, 이걸 주면 나도 괜찮은 거 하나 주지. 나도 1개밖에 안 가지고 있는 거야.”
그녀는 석민의 대답하기도 전에 안쪽으로 쪼르르 들어가서 대검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단검치곤 길이가 조금 길었다.
“16x4, 러시아제 총검이야 길이는 1미터 조금 안 돼. 두 손으로 쓸 수 있게 손잡이도 조금 길고 총에도 장착할 수 있지. 괴수들이랑 싸울 때 편할 거야.”
러시아의 군용총검의 손잡이와 도신의 길이를 늘인 형태인 그것은 총검이 아니라 그냥 검 같아 보였다.
“……괴수들이랑 싸울 때 총검이 유용하단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그걸 알고 있는 자는 정말 잔뼈 굵은 자들 아니면,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우리 오빠가 알려준 사실이지.”
조금 씁쓸한 얼굴로 변한 그녀는 석민에게 칼을 내밀었다.
“자, 봐봐. 마음에 들면 바꾸자고.”
석민은 칼집에서 칼을 뽑아 살폈다. 칼날이 단단한 게 썩 나쁘진 않았다.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아보거나, 몇 번 휘둘러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뭐, 괜찮네.”
그에겐 총검은 윈체스터 산탄총의 총검밖에 없었다. SVDK에 총검에 달아서 괴수와 유사시에 싸울 생각이었기에, 딱 맞는 물건이었다. 총 또한 길어서 총검을 장착한다면 2미터쯤은 우습게 늘어날 것 같았다.
혜원이 가지고 싶어 하는 단검이 석민에게 꼭 필요한 것도 아닐뿐더러, 자신에겐 다른 단검 2개가 더 있었다.
‘지난번에 박선우에게 1개를 줬으니, 저걸 줘버리면 하나만 남는 건가… 이거 좀 아쉽긴 하네.’
마지막 남은 1개는 사실 안 쓰고 모셔둔 것이라, 혜원에게 줘버리고 자신은 그걸 그냥 써도 되긴 하는데, 쓰던 녀석들을 넘기자니 괜스레 자기 자식을 억지로 떠나보내는 기분이라 찜찜했다. 특히 앞서 2개는 자신이 해결사 일을 하면서 여러 사연과 경험이 같이 축적된 녀석들이라 더 그랬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일들에 대한 증거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가 내적 갈등을 느끼는 사이 그걸 참지 못하고 혜원이 되물었다.
“어떻게 할래? 사실 이건 고객들에게 파는 게 아니야. 내 소장품이지. 나도 내 소장품을 파는 거라고. 다른 총검보단 이게 훨씬….”
“그래, 바꾸지.”
혜원의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석민은 말을 끊고서 손목에 묶어둔 칼집을 풀어 창구를 통해 내밀었다. 혜원은 히죽거리면서 칼집에 단검을 끼웠다.
“아, 진짜 이거 너무 마음에 드네.”
그러는 사이 석민도 기다란 총검을 챙겼다.
“그래, 다른 것은?”
필요한 게 더 있긴 했지만, 여기서 취급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에 여기에 그게 있다면, 아영은 혜원을 경멸하거나 여길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혹시 여기 RPG-7 탄두 있나?”
“어, 취급해.”
너무나도 간단하게 대답하자, 괜스레 긴장하며 물어본 석민 자신이 김이 빠졌다. 여기서 취급하지 않는 게 있긴 하려나?
“어떤 탄두를 원하는데?”
그걸 종류별로 살 수 있는 거였냐? 석민은 기가 질린 나머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열압력탄두가 있는데, 그거 한 방이면 크든 작든 괴수도 한 방에 끝날 거야.”
“……지금 당장 사려는 것은 아니고, 나중에 사용한 뒤 보충하려고.”
석민은 이전에 상덕의 아지트를 털면서 탄두 50발을 챙겨두었었다. 보통 잘 사지 않는 물건을 팔 기회를 놓친 혜원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변했으나 곧 풀렸다. 석민이 주문한 것만으로도 1주일 치 매상은 확보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차후에 9.3mm 계속 들여놔 줘. 매주 2천 발씩 들여놓아준다면 사가지.”
매주 2천 발씩이나? 혜원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대답을 하며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감돌았다.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기에 그렇게 많은 탄약을 소비하려는 거지?’
그녀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이긴 하지만, 그녀는 슬슬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