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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73화 (73/226)

[게이트 오브 서울 73화]

다행히 괴물은 몸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억지로 건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해도 도저히 들어올 수 없었다.

석민은 아영을 따라 내려가면서 계속 위를 보았다.

몸이 들어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것은 기다랗고 기괴하게 뒤틀린 팔만 문 안으로 뻗어 내려 그들을 노리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그때쯤엔 그들은 이미 3층 정도 더 내려간 이후였다.

가지고 있는 무장과 군장의 무게 때문에 무릎이 아작 날 수 있는데도,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크게 놀란 그들은 계단을 한 번에 3개씩 뛰어내렸다.

이제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석민은 저것이 끝까지 쫓아올까 봐 걱정했으나,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듯했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다리로 돌아가는 그 괴물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젠장,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근방이 안전한 것을 확인한 석민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방탄모를 벗었다.

“이것 봐봐.”

바이저의 윗부분이 깨끗하게 구멍 나 있었고, 헬멧의 정수리 부분은 살짝 홈이 파이고 페인트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자국의 크기를 봐 추정해 보건데, 적어도 7.62mm 나토탄인 것 같았다.

“아무리 운이 좋은 거라지만, 762나토탄을 맞고도 살아남다니.”

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꽤 심하게 흥분했는지 쉽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담배가 당긴 석민은 애꿎은 손가락만 비벼댔다.

“거봐요. 제가 있다고 했죠?”

아영의 말에 석민은 순순히 수긍하며 사과했다.

“미안해.”

그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는 어때? 괜찮은 거야?”

아영은 자신의 반쯤 박살 난 저격소총을 들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총몸 부분이 완전히 박살 났지만, 총열을 멀쩡해 보였다.

그렇다 해도, 탄창삽입구가 찌그러졌고 양각대도 작살난 걸 보아 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였다.

“완전히 망가졌어요.”

“수리를 해보거나 새로 사야겠군.”

그 괴수는 말도 안 되는 거리에 유효사격을 가하는 기관총을 가진데다가, 1.4킬로미터를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매우 빠르게 접근해서 건물 옥상에 있던 그들을 노리고 쫓아 올라왔다.

상식을 뛰어넘은 괴물이었다.

게다가 아영 또한 저 괴물이 강하단 것쯤은 알았지만, 자가치유까지 가능하단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한 가지 공통의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 가진 무기로 저것을 잡을 수 있을까?

석민은 자신의 5.45mm, 애용하던 9x39mm로 그것을 잡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려면 녀석을 반드시 없애야겠지.’

생각을 마친 석민이 입을 열었다.

“상태창이 뜬 것을 봐서 우리 사명이랑 연관 있는 놈이 분명해.”

아영은 잠시 주저하는 듯싶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녀석에 대해서 조금 알아봐야겠어. 분명 다른 헌터들도 저것을 알고 있을 거야.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자. 무기도 망가졌으니 새로 보충해야겠지? 정부에서 줄 수 있으려나.”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아영의 말에 사실 별 기대도 않던 석민은 속으로 역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아는 곳에 가서 한번 수리를 부탁해보도록 하지. SV-98이 러시아제 무기지? 러시아 무기 좋아하는 양반이니까, 고쳐줄지도 몰라.”

새로운 무기

“글쎄, 이건 무리일 것 같은데.”

혜원은 아영에게서 받은 저격총을 들어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세하긴 하지만 총열도 휘었고, 총몸은 대체부품이 없어. 아니, 정확하겐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분해해서 동류전환에 가깝게 하면 고칠 수는 있는데, 그냥 새거 하나 사는 게 나을 거야.”

그 말에 아영은 아쉬운지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진열된 총기들을 살폈다. 마치 자신의 장난감을 고를 수 있게 된 어린아이처럼.

석민은 아영의 모습에 문뜩 옛 생각이 나,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총기를 사는 것은 그의 지갑에서 나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아영은 이렇게 위험하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하는데도 월급 말고는 수익이 없어서, 새 총기를 사는 것이 꽤나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그녀 덕분에 나름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던 석민이 도의적으로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혜원은 살짝 경계 어린 눈초리로 주시했다.

혜원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석민과 아영을 번갈아 쳐다보다 석민의 희미한 미소를 감지했다.

‘친한 사람인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아영의 얼굴을 주시했다.

원칙대로라면, 회원카드를 소지한 사람이 아닌 이상 절대로 이 가게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사전에 석민에게 연락을 받았고 또 그에게 갚을 은혜가 있어서 이번만큼만 허락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혜원은 영 아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인상부터.

딱히 외모가 아니라, 아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나 느낌, 발걸음이나 행동거지, 억양과 말투가 딱 군인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뿌리는 로션이나 향수 냄새만 맡아도 군인이 분명했다.

‘헌터 일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정부 쪽 일이었나? 아니지, 군대 물이 덜 빠진 여자일 수도 있으니….’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영을 노골적으로 노려보았다.

‘물건 하나쯤은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니, 일단은 가만히 있도록 하자.’

생각을 정리한 혜원은 마침 자신이 사놓고도 오랜 시간 팔리지 않던 물건을 이참에 팔아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도발은 필수였고.

“그런데, 괴수를 잡는데 고작 7.62밀리 탄으로 되겠어?”

그 말에 아영은 잠깐 인상을 쓰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뭘 추천해줄 수 있습니까?”

호기심이 들어서 이곳저곳 살피긴 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혹은 혜원은 아영에게 그저 불법무기판매상이자, 불법무기개조업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영은 혜원이 경계 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더욱 심화되고 있던 참이었다.

혜원은 아영의 질문을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기다란 박스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저게 뭐기에 저러는 거지?’

아영은 혜원이 자랑스럽게 가지고 오는 박스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오르시스사(社) 제 T-5000이야. 338 라푸아 매그넘 탄환을 쓸 수 있지.”

“8.58x70mm인가.”

아영은 작게 중얼거리며 창구를 통해서 그것을 받은 직후 박스를 까보았다.

박스 속에서 검은색의 아름다운 총이 드러나자, 아영은 자연스레 총을 쥐어보았다.

“항공용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강으로 되어있지. 무게도 SV-98보다 더 가볍고 개머리판을 접을 수 있어서 활동성도 좋고… 무엇보다도 SV-98보다 노리쇠가 덜 뻑뻑하고, 방아쇠압이 낮아서 쏘기 편할 거야.”

혜원은 바로 아영이 이것을 살 것이라 확신했다. 노리쇠를 만지고 방아쇠를 당겨보는 아영의 눈에서 광채가 나오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석민 역시 아영이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서 혜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건 얼마지?”

혜원은 손가락 4개를 들어 보였다.

“400?”

“어, 거기에 탄창 8개랑, 바이포드를 포함하면 가격은 450쯤 되지.”

나쁘지 않는 가격이었다. 석민은 아영을 보았고,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했다.

“좋아.”

그는 품속에서 5만 원짜리 돈다발을 꺼내서 세어본 직후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338 라푸아 매그넘탄도 사지.”

“그래, 그래야지.”

돈 계산과 탄환을 확인한 뒤, 석민은 아영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그것들을 한 번 들어 보았다.

[ORSIS T-5000]

내구도: 100%

품질: 상상

탄약: 338 라푸아 매그넘

러시아 오르시스(ORSIS)사에서 생산한 저격총.

아직 단 한 번도 발사하지 않은 매우 좋은 상태.

그는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살짝 당기기 무섭게 찰칵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방아쇠가 그의 기준에서 상당히 민감하고 가벼웠다. 숙련되지 않는 사람이 사용한다면 오발사고 위험이 클 것 같았지만, 아영은 숙련된 조교와 다름이 없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방아쇠압이 엄청 가볍네.”

“그게 기본적인 거라 어쩔 수 없어.”

혜원의 대답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어, 그…. 좋다는 뜻입니다. 생각보다 정말 좋은 총이네요.”

그 말에 혜원은 웃었다.

“그치? 다른 총도 좋기는 하지만, 이것도 쓸 만할 거야. 그리고 뭐, 다른 거 필요한 건?”

“없습니다.”

아영은 자신의 무기가방에 총을 챙겼다.

“그러면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좋은 무기를 얻었지만, 그녀는 여기에 오래있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석민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니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나라가 다시 정상이 된다면 저런 가게들은 다 사라져야지.’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했다는 생각에 그녀는 적잖게 만족감을 표했다.

그녀가 문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자 혜원은 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저 여자, 군바리 맞지? 사복 입었지만 내 코는 못 속여. 군바리 냄새가 풀풀 풍기네.”

“맞아.”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즉답을 해주자, 혜원의 양미간 주름이 매우 깊게 잡혔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마카로프 권총을 꺼내 탄창을 빼내고 슬라이드를 뒤로 당겨 약실에 있던 탄환을 빼내서 올려놓았다.

아무리 석민을 믿는다고 해도 아영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녀 나름대로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삿대질까지 하면서 화를 냈다.

“내 보금자리에 공무원을 끌어들여? 여기 사업체가 합법인 줄 아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석민은 평온했다.

“절대로 여길 단속하거나 하지 않을 거야. 서울에서 SV-98이 괴수 놈에게 망가졌거든. 애초에 여기서 무기를 샀잖아? 설마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데리고 왔을까? 날 믿어.”

혜원은 의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석민을 바라보았으나, 정작 석민은 태연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나도 무기 좀 살까 하는데.”

그 말에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혜원은 다시 상인모드로 변했다. 그녀는 과장스럽게 양손을 비비면서 상업적인 문장을 구사했다.

“그래, 우리 친애하는 고객님, 뭘 원해?”

“강력한 무기 없나?”

그 말에 혜원은 히죽거렸다.

“아, 너도 이제 큰 총을 사려는 거야?”

대구경 총을 가지고 사격하는 취미를 가진 트리거해피인 혜원은, 이제 석민이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오해한 채 좋아했다.

“괴수들에게 역시 5.45mm는 별로였지? 그런 건 쓰레기라고. 제아무리 철갑탄이라도 탄자무게가 너무 가벼우니, 사람은 몰라도 그런 커다란 괴수들에겐 저지력이 부족하지. 5.56mm도 괴수들이랑 싸우기엔 힘들어. 그래, 7.62mm는 어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경험상 7.62mm로는 그 헌신자 괴수라는 것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더 강력한 것은 없나?”

“더 강력한 거?”

혜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선반에서 커다란 종이박스를 꺼냈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이거지. m82바렛….”

석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확실히 좋긴 하지만, 12.7mm는 탄환이 크고 무거워서 많이 소지하지 못해. 7.62mm와 12.7mm 사이 정도면 좋겠군. 이 가게의 특성을 고려하면 러시아제로 하지. 의외로 바렛을 취급하네? 그리고 아까 추천했던 오르시스 T-5000은 필요 없어. 볼트액션방식의 저격총은 나에겐 불필요해. 최소한 반자동이었으면 좋겠군. 자동이면 더 좋고.”

혜원은 잠시 뚱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고민에 빠진 듯했다. 이윽고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치더니 다시 선반으로 갔다.

잠시 후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바렛보다는 작은 저격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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