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72화]
“만약에 그 괴수가 있다면 저들을 덮칠 거야. 아니면 쉽게 지나가겠지.”
대략 10분이 지난 후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다리의 인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차도엔 버려진 차들로 뒤엉켜 있어 통행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석민과 아영은 숨죽이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총의 방아쇠를 손가락에 걸고 여전히 사주경계를 하며 건너갔고, 어느새 다리 중간을 지났다.
이변은 없었다. 석민은 콧방귀를 뀌며 설명을 해보실까? 하는 얼굴로 아영을 보려는 순간, 다리 밑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찢어질 듯 한 비명을 지르며 톨게이트를 그대로 뛰어올라 제갈재현의 팀 앞에 착지했다.
“뭐야?”
석민은 자신의 눈을 확대해 보았다. 다리 밑에 아무리 봐도 없었는데, 저게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덩치가 거의 대형트럭만 했다.
꼽추처럼 등은 굽고, 낙타처럼 혹이 나 있었으며, 사지가 뒤틀린 덕분에 두 다리로 서지 못했다. 심지어 짐승의 다리로 보이는 것도 달려있어서, 마치 여럿의 사람과 짐승을 한 데 진흙으로 뭉쳐놓은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괴수의 손마다 기관총을 비롯해 각종 권총이나 소총이 쥐여 있었으며, 몸뚱이엔 구속이라도 하듯이 탄띠와 링크탄이 잔뜩 둘러져 있었다.
반쯤 맛이 가고 일그러진 머리에는 방탄모가 씌워 있었으며, 다리에는 다 해진 군복이 깃발처럼 나부꼈고, 발엔 낡은 군화가 신겨 있었다.
그사이사이마다 드러난 맨살은 잿빛이었다.
잿빛의 피부를 가진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감염자?”
괴수는 감염자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감염자는 아니었다. 그는 저렇게 큰 감염자를 본 적이 없었다.
“변종, 혹은 돌연변이인가?”
[‘헌신자 괴수’와 조우했습니다.]
상태창이 석민과 아영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은 상태창보다 헌터와 괴수가 싸우는 것에 더 집중했다.
혹은 조금 기대에 섞인 표정으로 보았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저들이 저 괴수를 잡아버릴지도.
헌터들 중 하나는 정말 놀랐는지 괴수가 나타자마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었지만, 금세 평정심을 찾은 그들은 빠르게 흩어져서 총을 쏘며 대치했다.
헌터들은 자동차나 난간 같은 곳에서 엄폐를 한 채 괴수를 조준하고 쏘았다. 총알들이 박히면서 검게 변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괴수 또한 비명과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총을 쏴 반격했다.
총을 든 괴수의 손들은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각각의 목표를 노리고 총을 쏘았다. 조준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았지만, 괴수의 손에 쥐여 있는 총이 기관총이나 자동소총이란 게 문제였다.
헌터 한 명이 먼저 쓰러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제때 엄폐하지 못하고 총탄에 난사 당했다.
거의 한 탄창 분량의 탄환을 맞은 헌터의 온몸은 터져나가듯이 주변에 육편과 피를 흩뿌렸다. 그 모습에 석민과 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싸울 수 없는 상대라고 여겼는지 사격을 가하면서 조심스레 뒤로 빠졌다.
계속해서 총탄에 맞자, 괴수도 버티기 힘들었는지, 몸을 차 뒤로 숨겼다. 하지만, 팔만은 꺼내놓은 채 계속해서 헌터들을 노리고 쏘았다.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이 탄창을 꺼내서 새 탄창을 끼워 넣었다.
완전히 제압당한 헌터들은 오도가도 못 하고 자리에 묶여버렸다. 헌터들의 발이 묶이자, 그때를 노렸다는 것처럼 괴수가 바로 달려들었다.
괴수는 가장 가까이에서 m240을 사용하던 헌터부터 노렸다. 몸을 숙이고 있던 그자가 위험을 알고 반격하려는 순간, 괴수가 그자의 목덜미를 물고 낚아챘다.
사람의 악력이나 힘이 아니었다. 목덜미가 물려 그대로 즉사한 헌터의 시신을 괴수가 그대로 한강으로 던졌다. 사람의 신체가 높이 떠올라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남은 헌터들이 다시금 총을 쏘며 뒤로 물러났다.
헌터들은 동료들이 당하고 있는데도 차분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프로였다.
한 명이 괴수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엄호사격을 가했고, 폭발에 괴수가 비명을 지르고 주춤거리자 바로 연막탄을 던졌다. 그렇게 상호 간의 엄호 속에 한 명씩 천천히 뒤로 물러나 자리를 잡았다.
주춤거리던 괴수가 총격이 벌어지건 말건 다시 달려들었다. 헌터들은 몇 걸음 도망치지 못하고 괴수에게 물어 뜯겼다. 비명소리가 멀리 떨어진 그들에게도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새로운 탄약상자를 개봉하여 장전한 기관총으로 난사했다. 200발짜리 탄띠가 순식간에 약실로 들어가고 총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찬 공기를 만나 하얀 김을 만들어냈다.
괴수는 총을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았고, 이내 괴수의 수많은 손에 의해 마지막 헌터의 사지가 잡혔다.
사지가 잡힌 헌터가 산 채로 찢겨 나갔고, 석민은 저도 모르게 눈을 살짝 감았다.
헌터들이 전부 죽은 후 그것은 죽은 헌터들의 무기와 탄약을 챙겼다.
지능이 너무나도 뛰어났다. 생전에 군인으로 보이는 괴수가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행동하니, 매우 위험한 놈이 분명했다.
게다가 자기 몸은 숨기고 총을 쏘는데도 너무 잘 맞지 않는가? 자아가 없는 것이 확실한가?
그의 눈에 그 괴수는 상당히 지쳐 보였다. 총을 줍는 도중에 괴수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3개의 팔들이 난간을 잡아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역시 아무리 괴수라 해도 총알을 저렇게 맞으면 버티지 못하는 거군.’
막타를 치면, 그래 킬스틸을 할 수 있을 상황이었다.
그 헌터들에게 매우 유감스럽겠지만,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이지, 같은 생각을 하며 석민은 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잡자.”
“예?”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영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저격이 가능하지?”
그는 신뢰 가득한 얼굴로 물었지만, 아영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다.
“…1,200미터쯤 되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가능은 합니다만, 지금 탄환으로 저것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거리를 이야기하며 거부를 하려다가 석민의 얼굴에 실망이 차오르자, 아영이 얼른 덧붙여서 말했다. 솔직히 1,200미터쯤은 그녀에게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다.
“몇 발 더 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갈 것 같은데, 한번 머리를 노려봐.”
그 말에 아영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그녀의 SV-98 저격총을 꺼냈다.
고급 독일제 스코프까지 달린 놈에다 그녀의 실력까지 더해지면 저 괴수쯤은 충분히 맞힐 수 있을 것이다. 석민은 그녀가 준비하는 동안 그 괴수를 보았다.
‘이름이 헌신자 괴수라고?’
크게 몸을 들썩이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괴수의 몸에서 검은 피가 쭉 뿜어져 나왔다.
심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그는 곧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지워버렸다.
‘저 상태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나?’
순간 그의 눈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는 시야를 확대했다.
괴수의 피부 속에 커다란 기생충들이 우글거리듯 몸이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형언할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
석민이 헛구역질을 참고 있을 때, 준비를 마친 아영이 탄창을 넣고 노리쇠를 당겨 전진시켰다. 석민은 감적수로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거 받으세요.”
그것은 레이저 거리측정기였다.
“이게 필요해?”
그 말은, 그들에게 생긴 능력으로 적의 조준점을 잡아주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의미였지만,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필요할 때는 필요해요.”
석민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았어.”
석민은 거리측정기를 집어 들어서 렌즈를 통해 괴수를 보았다.
겨우 기본 4배율이었기 때문에 그의 능력으로 확대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작게 보였다.
그는 렌즈에서 눈을 떼고 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거 지친 게 분명해. 회복하기 전에 처리해야 해.”
“네.”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은 거리측정기에 눈을 붙인 채 조준점을 맞췄다. 그러자 렌즈 위로 바로 숫자가 나왔다.
“거리, 1401미터.”
그 말에 아영은 살짝 움찔거렸다.
“예.”
그녀는 잠시의 뜸을 들인 후 숨을 들이마시기 무섭게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압이 조금 강해서인지 그녀의 조준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총성이 울리고 조금 안 되어서 괴수에게 총탄이 박혔다.
머리를 노리고 쏜 것인데, 어깨에 맞았다. 괴수에게 그리 치명상이 되진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몸에 총탄이 박히자 그 괴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착탄.”
“저도 확인했어요. 오차 수정하죠. 그런데, 저게 가만히 있질 않아서….”
이윽고 그녀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정확하게 괴수의 방탄모를 뚫고 머리에 박혔다. 석민은 휘파람을, 아영은 낮게 희열이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죽을 줄 알았던 괴수는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뭐야, 안 죽은 거야?”
머리엔 정확하게 총알이 박혔다. 그런데 왜 멀쩡하지? 아니, 멀쩡하다고?
“몸이 치유되고 있어요!”
아영이 말했다. 그녀도 크게 놀랐는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 돼.”
그 순간, 석민은 괴수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쪽을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아니 눈을 마주친 것….
괴수의 여러 손 중에 기관총 하나가 튀어나왔다. 12.7mm를 사용하는 k-6중기관총이었다.
번쩍이는 섬광이 일어났다.
‘k-6 중기관총의 유효사정 거리가 얼마더라.’
찰나의 순간 석민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 그래 유효사거리가 1,800미터이던가.’
그러면 유효사거리 안에 들고도 남겠네. 라고 그의 머리가 결론을 내린 순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엎드려!”
그는 아영의 목덜미를 잡아 눌렀다. 총탄이 건물의 벽면에 박히거나, 머리 위로 지나가면서 섬뜩한 바람소리를 만들어냈다.
“뭐야? 뭐가 저렇게 정확해?”
석민은 총탄에 맞아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는 콘크리트 조각을 보며 기겁했다. 탄환 한 발이 그들이 엄폐를 하고 있는 콘크리트 난간을 박살냈다. 조금만 더 낮은 각도로 날아온다면, 그들이 다칠 가능성이 있었다.
콘크리트 파편 하나가 눈으로 튀어 들어가, 석민은 아린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후퇴하자.”
“네.”
그들은 몸을 바짝 숙인 채, 기어서 천천히 뒤로 빠졌다.
중기관총의 사격을 조심하며 기어서 이동을 하던 도중, 석민은 무언가 이변을 감지했다.
괴수가 쏘고 있는 기관총의 사격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석민과 아영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사격음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묵직한 것이 콘크리트 벽과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스스슥-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아, 이런.”
석민은 저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뛰어!”
아영이 저도 모르게 반말로 소리쳤다. 그 암시의 가장 최악상황을 알게 된 그들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계단이 있는 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갔다.
석민이 문을 닫기 무섭게 요란한 괴성과 무언가 착지하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마구잡이로 들려왔다. 그리고는 그가 방금 닫은 문에서 귀를 찡하게 할 정도의 요란한 금속음이 나더니 숭숭 구멍이 났다.
“몸을 엎…….”
탄환 하나가 석민의 방탄모에 맞아 그는 충격으로 뒤로 넘어가 계단을 굴렀다.
“석민 씨!”
아영은 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그를 부축했다.
“난 괜찮아! 괜찮아!”
문의 철판을 뚫고 들어온 상태에서 석민의 방탄모를 거의 비껴 맞은 덕분에 탄환이 뚫리지 않았다. 제대로 맞았으면 아무리 잘난 티타늄 방탄모라도 뚫렸을 것이다.
“내려가자, 내려가자고.”
문이 거칠게 한 번 두드려지는 것 같더니, 공성추가 부딪치는 것 마냥 문짝이 박살 나 석민이 있던 자리로 떨어졌다.
기겁한 석민과 아영은 몸을 돌려 그대로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