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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71화 (71/226)

[게이트 오브 서울 71화]

“말씀드리기가 뭣한데, 거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사태 초기에 군부대가 있다가 퇴각한 곳이라서, 그곳을 통해 감염자와 괴수가 유입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들 거길 신경 쓰지 못했고, 또 초기엔 육군과 해군 공조가 잘 안 되다 보니, 그 다리가 다 끊어진 줄 알기도 하고….”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연설명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았는지 설명 도중에 입을 다물더니 헛기침을 했다.

“하여튼 2차 서울 수복작전이후로 드론 정찰로 알게 된 사실인데, 괴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석민은 눈을 치떴다.

“괴물? 괴수들이 아니고?”

“예, 일반적인 괴수가 아닙니다. 뭐라고 설명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앞서 말했듯, 감염자와 괴수가 강남으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못 온 이유는 그 괴물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까지 설명을 듣자, 석민은 비현실적인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영이 거짓말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드론으로 영상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지금 없으니까요.”

“그럼 내일 한번 가보지.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싶네.”

아영은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지만, 석민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

“20분간 휴정에 들어가겠습니다.”

국무회의가 잠시 휴정에 들어갔다. 국무위원들이 회의장을 나간 직후, 대통령 성현제는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고는 다리를 쭉 뻗은 뒤 담뱃갑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실내는 금연이었지만, 애연가인 그에게 회의장이란 장소가 담배를 못 필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는 상석에 앉은 채 궐련에 불을 붙였다.

지금 당장 담배를 태우지 않고서는 답답한 속을 달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본과 중국의 압박이 점점 노골적으로 심해지고 있었다.

최근에 그들 정부에서 드래곤하트 관련 기술을 공동 연구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외교적 수사로, 정확하게는 기술과 자원을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이미 전부터 기술이나, 인적자원을 빼내려는 조짐은 보였다. 예전부터 적지 않은 기술들이 빠져나갔고, 성현제는 국정원을 통해 원천봉쇄 해왔다. 그러자 이젠 대놓고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 두 나라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중국은 한국기업의 제재, 세무조사나 수출품 위생검사 등으로 압박했으며, 일본은 자금원조의 중지, 관세 등으로 압박을 가했다.

중국 놈들도 그렇지만, 일본이 이렇게 나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그의 마음은 더욱 불쾌해져 갔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은 미국이 우리의 편이라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근래에 셰일가스 같은 자원으로 새로운 산유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드래곤하트 같은 신자원이 생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일본과 중국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게 어디인가?

‘그나저나 다시 생각하니 빡치네.’

그는 저도 모르게 피다 만 담배를 부러트리고 말았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서로가 한국의 기술을 상대에게 넘기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외교적인 줄타기만으로 압박을 가했다. 아직까진 견딜 만한 수준이었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문 그는 다른 고민거리를 떠올렸다.

아영의 보고. 그도 천국의 문 교단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군사작전까지 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여기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교인들의 숫자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을 보건데 무시 못 할 전력을 가진 것은 분명했다. 그것들이 그러는 동안 군‧경은 뭘 했단 말인가?

‘국방위원회에서 말한 대로 총기소유 합법화를 없애야 하나? 치안도 안 좋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해봐?’

하지만, 부끄럽고 유감스럽게도 계엄군과 경찰은 괴수의 위험으로부터 완벽하게 국민들을 지킬 수 없었다.

다른 지역은 그렇다 쳐도, 경기도지역 주민들의 반발까지 감당할 생각을 하면 아찔했다. 심각하면, 총기회수는커녕 오히려 음지화가 돼서 치안문제가 더 나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금지만 된다면, 양지에서 총을 쓸 수 없으니 지금보다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경기도 지역 계엄군이 국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할 만큼 병력을 배치할 수 없었다. 북쪽의 돼지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어서, 충분한 병력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화근이었다.

군대뿐만 아니라, 경찰도 수가 부족했다.

아님, 아예 경기도 지역민들을 다른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그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다른 지역민들의 반대도 심했고, 지방에 충분한 주거시설이 마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잡생각을 지우고 다시 교단 쪽으로 집중했다.

국가보안법이나, 치안법을 적용해서 조사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이미 그는 교단에 감시를 붙여놓은 상황이었다. 그것이 민간에 대한 불법사찰인 것도 각오하고 한 실정이지만, 교단은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쓸 만한 정보는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면 철저하게 보이는 거거나, 정부 내부의 교단사람이 가려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천국의 문 교단이 고민거리가 되자, 그의 머릿속에 ‘천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영과 석민이 천국의 문 교단의 정찰대를 심문하면서 나온 단어였고, 그 전에 이미 존재 자체는 알고 있던 것이었다.

언젠가 그것들과 접촉을 해야 했지만, 아직은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그것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무슨 목적인지 아직 몰랐고, 또 그것들의 언어도 몰랐다.

‘정말로 그게 천국의 문 교단의 배후인 건가?’

교주 백은호가 기적을 사용한다는데, 그게 정말로 사실이란 말인가?

정보가 부족했다.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서울에 활동하는 헌터들에게서 간간이 천사를 봤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그는 아영과 석민에게 천사들에 대해 조사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성현제는 그들이 천사들보다는 외국에 포섭된 헌터들에 더 집중하길 원했다.

그들은 지금 생각 이상으로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었다.

외국 정부들이 조금씩 이상함을 눈치 채기 시작한 것 같지만, 아직 현 정부를 의심하고 있진 않았다.

거기에 외국에서 고용한 헌터들이 모으던 드래곤하트도 부산물로 얻으면서 적지 않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현재 정부에서 헌터들에게 지불하는 드래곤하트 매입가격은 드레이크가 150만, 와이번이 300만으로 단순 수치로는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이득이지만, 자원으로서의 가치는 그 이상이었다.

…물론 석민에게 지불하는 페이는 적었다.

당장 사태 후 완전 추락한 코스피, 전보다 과대하게 늘어난 국방비, 서울을 상실함으로써 부동산의 폭락, 사회 인프라의 손해 등…. 사태 때,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사회취약층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 복지 쪽으로는 지출이 많이 줄긴 했으나, 국가부채나 채권 만료일도 다가오고 있었고, 복구사업을 위한 자금도 부족했다.

“하아.”

그는 벌써 재떨이에 4번째 담배꽁초를 짓눌러 껐다. 머리가 아파왔다. 생각할 것도 많고,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었다.

사태가 일어난 이후,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 외의 모든 시간들을 정무에 쏟고 있었다.

47세 나이에 걸맞지 않게 벌써 머리의 절반 이상이 백발이 된 상태여서, 늘 염색을 해야 할 정도였다.

‘지금 가지고 있는 산업과 인프라만으론 국채와 복구사업을 감당하는 것은 무리야.’

그랬기에 정부는 다른 나라만큼 비싼 가격에 드래곤하트를 매입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게 정답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매입하는 가격이 최소 1천만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돈이 없었고, 드래곤하트에 그 정도 돈을 쏟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애국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쉬는 시간이 끝나고,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국무위원들이 들어왔다. 비서관들이 종종걸음으로 창가에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시켰다.

찬바람이 뺨을 스치자, 성현제는 고민에 파묻혔던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갑시다. 서울 수복을 위한 군 개편 안에 대해서 논의합시다. 또한 최근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치안과 경기지역 주민들의 이동제한에 대해서…….”

***

“이미 5번째로 말하는 거지만, 전혀 안 보이는데.”

석민이 말했다.

아영의 말대로 구리암사대교는 중간이 폭파된 다른 대교들과 다르게 멀쩡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던 괴물을 보기 위해 그들은 근방의 고층 빌딩 위로 올라가 다리를 살피고 있었으나,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살펴보죠.”

“이미 2시간째야.”

석민이 말했다. 타깃을 잡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긴장감을 푼 채로 있자니 그는 좀이 쑤셨다.

“지박령처럼 다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 것은 너야. 아니면, 다리 밑바닥에 숨어있는 거야?”

다리 밑에 괴물이 숨어있을 만한 곳은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 석민은 살짝 빈정대듯 말했다.

아영은 점점 퉁명스러워지는 석민을 보며, 혹시 자신이 일부러 그를 강북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려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할까봐 초조함을 느꼈다.

‘괜한 오해를 사게 만들어서 신뢰관계를 잃고 싶지는 않은데….’

그녀는 인상을 쓰며 버러진 톨게이트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 톨게이트 건물에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건물을 주시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움직임이 전혀 안 보이잖아.”

침묵이 감돌았고, 그들은 인내심을 가지며 계속 다리 주변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다시 1시간쯤 지났을 때, 지루함에 석민이 크게 하품을 하였다.

슬슬 석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영이 그런 석민의 눈치를 보며 다리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추위에 점차 익숙해지고 다리에 감각은 사라졌으며 슬슬 졸리기까지 하자, 석민은 몸을 살짝 일으켜 세운 채 굳은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욕창에 걸리겠어.”

그는 뻐근해진 어깨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 괴물 죽은 게 분명해. 여긴 괴수들 천지잖아? 그게 아무리 강해봤자 괴수들의 인해전술이면, 죽고도 남지 않아?”

아영이 대답하지 않고, 그저 여전히 집중해서 가늘게 뜬 눈으로 어떤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의아함을 느낀 석민은 그녀를 봤다가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리 남쪽에 사람들이 보였다.

“헌터들인가?”

석민은 찬찬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4명으로 이루어진 팀으로, 특이하게도 모두 다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m240 2정에, hk11 기관총, HK417이라…. 용케도 저런 조합으로 활동하는 하는군.”

전부 7.62mm 나토탄을 사용하는 총기들로 강력하고 괴수들에게도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많은 총탄을 소지하기 힘들어 석민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탄약을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없고 반동제어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를 기준으로는 망할 괴수의 비늘도 9mm 아음속탄이나 5,56mm 철갑탄으로 충분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강한 총탄으로 규격을 통일시켜 사용한다면, 매우 효율적으로 싸울 순 있을 것이다.

“제갈재현의 팀이군요. 우리 정부 쪽에서 일하는 팀입니다. 몇 달 전부터 보건복지부와 계약을 맺었는데, 감염자들 샘플 채취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도 하는구나.”

그들은 주변이 탁 트여서 저격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다리를 건너는 대신 근처 버려진 차에 엄폐한 다음 망원경으로 사주경계를 했다. 석민과 아영은 괜스레 들킬까봐 몸을 숙였다.

우연인지 몰라도, 진짜 괴수가 있다면 저들이 매우 훌륭한 미끼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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