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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70화 (70/226)

[게이트 오브 서울 70화]

와이번들이 물러난 것은 결국 아침이 되서였다. 그들은 이제야 전리품을 챙겨 호텔 말리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석민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호텔근처에 매복한 직후 처리한 팀이 몇 팀이지?”

“5팀입니다. 총 35명이구요.”

전에 2팀을 더 처리했으니, 정탐군들 이후로 대충 그들보다 많은 수를 처리했다.

지난번에 잡은 버림받은 오르바와 함께 경험치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다음 레벨로 올라가려면 더 많이 죽여야 할 것이다.

“호텔 근처에서 자리 잡은 게 정답이었어. 이렇게 많은 수를 잡을 줄이야.”

“하지만, 슬슬 조심해야겠습니다. 근방에서 계속 죽어 나가면 그들도 의심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스탯, 뭐 올릴 건가요?”

아영이 물었다.

“글쎄?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 이왕이면….”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평상시에 듣던 것과 소리가 달랐다.

석민과 아영은 순식간에 좌우로 흩어졌다. 석민은 조심스레 하늘을 살폈다. 그리곤 곧 멍한 표정이 되었다.

“봤어?”

“예?”

아영은 하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

“봤냐고?”

“뭘요?”

그제야 아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여느 때와 똑같은 우중충한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갑작스레 윽박 받는 기분에 아영이 대답하는 목소리도 날카로웠다.

“아뇨, 전 못 봤는데요? 잠깐, 어디를….”

석민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달려 나갔다. 자연스레 그는 대로 쪽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얀 2쌍의 날개를 보았다.

전에 보았던 오르바와는 달랐다.

몇 년 묵은 감염자들 마냥 바짝 마르고 뒤틀린 형상이 아닌, 정말 영화나 명작 속에서나 등장하던 아름다운 형상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존재였다.

피부는 마치 스스로 빛이라도 내는 것처럼 윤택이 흘렀다.

어두운 구름과 차가운 바람만이 부는 서울에서 그것은 매우 독보적이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것도 오르바처럼 옷과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고, 긴 2개의 창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폐허가 된 건물 위의 모서리에 서서 낡고 상처투성이인 창을 바라봤다.

석민은 그것이 바라보는 창이 예전 오르바가 가지고 있던 창이라 생각했다. 다른 한쪽에 들고 있던 창은 그와 다르게 매우 깨끗하고 날이 바짝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바와 싸운 뒤엔 경황이 없어서 그 창을 찾지도 않았고, 주울 생각도 못 했다. 나중에 생각나서 찾으려 했을 땐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마 저것이 가져간 것이겠지.

천사 같은 그것은 창날을 어루만지며 사색에 빠져 있다가 이내 어딘가를 향해 응시했다.

그저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인데도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는 자태여서, 석민은 저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흘렸다.

그 순간, 그것이 석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 언뜻 보면 티아라처럼 보이기도 한 투구의 안쪽에서 쏘아지는 맹렬한 눈빛과 마주하자, 석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두려움을 느꼈다.

아름답다는 것이 이렇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그는 마치 자신이 죄인이나 악인이라도 된 기분을 느꼈다. 보통이었다면 그런 걸 느꼈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출했을 법한데, 그것을 마치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은 채 석민을 계속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석민의 머릿속에 의문이 생기려 할 때, 그것은 날갯짓 한 번으로 순식간에 솟아오르더니 건물 너머로 사라졌다.

“천사야.”

하늘에서 깃털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는 거의 60센티는 될 만큼 긴 깃털을 낚아챘다.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은 순백의 빛이 어둡고 추운, 이 저주받은 땅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그것이 날아간 방향은 북서쪽이었다.

‘강북이군.’

“어디 가신 겁니까? 아!”

그는 깃털을 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아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도 전에 보았던 깃털이었다.

“아니, 이것은…….”

시체 같았던 오르바에게서 보았던 그 깃털과 다름이 없었다.

“천사가 강북으로 날아가 버렸어 한강 너머로 갔다고.”

***

천사에 대한 석민의 생각은 호텔 말리나에 돌아온 직후에도 떨쳐지지 않았다. 왜 그것이 북서쪽으로 갔을까?

그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알렉산드라는 석민이 가져온 드레이크의 가죽을 보는 중이었다.

눈이 나쁜 편도 아닐 텐데, 그녀는 자기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서 가죽에 붙은 비늘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폈다. 무두질이나 어떤 작업을 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피나 기타 이물질이 묻을까 봐 고무로 된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알렉산드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이크 가죽을 내려놓았다.

⌜생가죽치고 연한 것이 새끼 드레이크 가죽인가 보군. 비늘도 단단하지 않고 연해.⌟

그녀는 장갑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렇겠지.⌟

⌜그리고 이런 가죽을 뒤집어쓰고 활동하는 헌터들을 알고 있는데….⌟

그 말에 석민은 속으로 뜨끔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산드라를 마주 보았다.

⌜사기 싫으면 말던가.⌟

석민이 견본품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알렉산드라의 손이 더 빨랐다.

⌜가죽 전부를 사지. 다만 경고 좀 해야겠어. 요즘 손님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석민은 이곳으로 복귀하려는 헌터들을 사냥했으니 알렉산드라 입장에선 대단히 언짢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호텔 밖에서 무슨 활동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잠재적인 손님들을 잡는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도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호텔을 미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증거 있나?⌟

석민이 대놓고 배짱을 부리자 어이가 없던 알렉산드라는 헛웃음을 토했다.

⌜그야 증거는 없지. 다만, 뭐랄까……. 잠깐,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나랑 대화하고 있는 거 맞아?⌟

석민이 대화 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채 대답하자, 결국 알렉산드라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곳의 보스가 누구인지 알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딴 곳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실수가 난 것이다. 석민은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 미안. 별로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

헌터들은 자존심이 강했기에, 보통 그들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알렉산드라는 분노를 감춘 채 석민을 빤히 노려보다가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고는 표정을 풀었다.

⌜좋아, 그리고 그건 드레이크 알인가?⌟

⌜어, 챙겨왔지.⌟

그것은 동민의 팀을 처리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알을 잡아서 이리저리 만져본 그녀는 그것을 내려놓았다.

⌜생알을 잘도 챙겨왔군. 게다가 아주 따뜻해.⌟

그녀는 그것을 마치 성배를 보듯이, 매우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것도 사지.⌟

갑작스럽게 의문이 든 석민이 입을 열었다.

⌜생알은 왜 사는 거냐? 먹게?⌟

⌜뭐? 이걸 먹는다고?⌟

그 실없는 질문에 알렉산드라는 비웃음을 터트렸지만, 석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먹으려고 하는 자들도 있긴 하지만, 구매하는 사람 대부분은 갓 태어난 드레이크를 길들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야.⌟

길들인다고? 석민은 눈을 치떴다. 머릿속에서 천사가 사라지고 대신 드레이크 알이 차올랐다. 괴수들을 길들일 수 있게 된다면, 그 희소성에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아직까지 성공한 사례는 못 들었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인간에게 적의를 보이고, 심지어 먹이로 판단해 덤빈다고 하더라. 갓 태어난 드레이크는 겨우 중형견 크기인데도 인간을 먹이로 인식한다는 게 참 신기해. 아무리 그래도 사람보다 작은 동물인데, 사람을 바로 먹으려고 달려드니까.⌟

김이 샌 석민의 머릿속은 다시 천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흥정은 매우 싱겁게 끝났고, 객실로 돌아온 석민은 아영에게 생각을 해두었던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뭐라구요?”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방음이 잘 되는 격실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조용히 대화했다.

“말한 대로야. 우리, 강북으로 가보자.”

“천사를 따라서 말인가요? 하지만, 지금 우리 임무는…….”

“대통령이 준 임무는 할 만큼 했잖아.”

거기에 알렉산드라의 경고도 있었으니 조금 몸을 사려야 하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저 임무라는 것은 뭔가? 석민은 아영이 자신의 임무랑 사명을 헷갈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 일에 매달릴 건데? 너 조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석민의 지적에 아영은 무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잖아. 말해줘 너는 ‘전달하는 자’잖아. 사명의 끝이 왕십리에 있는 그 게이트라고 했지.”

“정확하겐 추정이죠.”

아영이 얼른 정정해주었다.

“분명 계획 없이 거길 갈 생각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하지만, 아영이 생각하기엔 그곳을 무작정 찾아가는 것이 옳은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

“천사는 강북에 있어. 그리고 그게 강북으로 날아갔단 말이야. 저 천사가 원래 있던 생물이야? 아니잖아. ‘거짓된 전령’이 확실해. 아니, 적어도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해. 단서를 발견했는데도 안 가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

아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석민은 자신의 가방에서 헌터들에게 빼앗은 드래곤하트들을 꺼내 보였다.

“이것 봐봐. 우리가 구한 드래곤하트 숫자가 60개가 넘어. 이 정도 양이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너도 알잖아. 정부도, 대통령님도 만족하시겠지.”

석민은 말을 마치곤 그녀가 결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알려드릴 때가 된 것 같군요.”

“뭘?”

석민이 되물었다. 아영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강북으로 가는 길이요.”

아영은 자신의 휴대폰의 지도 어플을 켰다.

“한강을 건너는 대교들이 있는 건 아시죠?”

그걸 누가 모르나? 석민은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맞장구쳐주었다.

“알지, 잘 알아. 그리고 사태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가 미사일을 쏴서 부셨지. 6.25 때처럼 피난민이고 뭐고, 다리 위에 누가 있던 말이야.”

가시 돋친 말이었다.

“서애 류성룡함이었나? 거기서 발사된 함대지 순항미사일 때문에 제대로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지, 너무 많았어.”

석민에겐 좋지 못한 기억으로, 군과 정부로선 부끄러운 역사로,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태가 벌어져 대통령이 유고하고 청와대가 함락되며 국회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죽어 나가는 중에, 너무나도 당황한 군과 정부는 감염자와 괴수들이 강남으로 퍼지는 것을 막고자 미사일로 한강에 있는 대교를 박살냈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이제 와선 알 수 없지만, 당시엔 그거 하나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나라를 움직이는 각 부서의 수장들이 당황한 상태였다.

그래놓곤 그 밑을 지나는 지하철의 지하도는 그대로 두는 실수를 범했다.

‘안 좋은 일이었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고.’

아영은 고개를 저으며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은, 다리 하나가 남았어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한강의 한쪽을 가리켰다.

“구리암사대교, 개통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지도 업데이트가 늦어져서, 배에서 알지 못했고 미사일을 쏘지 못했죠. 결국 사태 초기엔 군부대가 배치되어서 다리를 지켰는데, 다른 다리들처럼 감염자와 괴수들이 덮쳐왔고, 결국 상당한 사상자를 낸 뒤 퇴각했죠.”

뒷말은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다리는 여전히 있어?”

“예.”

“그러면 이곳으로 가면 되겠군. 그런데 뭐가 문제야? 굳이 ‘알려’ 줄 만큼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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