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69화]
다리위의 괴물
강동민의 팀은 6일간의 사냥을 끝내고 밤을 타서 강동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강동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으며, 표정 또한 매우 편안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번 사냥으로 대박을 쳤다.
“거봐, 미사리 쪽에 둥지들이 많다고 했잖아.”
이들은 기존의 사냥방식에서 벗어나, 와이번이나 드레이크들이 새끼들을 위해 사냥해서 다른 괴수를 물어 둥지에 두고 새로운 사냥을 떠났을 때, 그 사체에서 드래곤하트만 도려내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 같은 방식은 직접 사냥하는 것보다, 그리고 덫을 놓고 잡는 것보다도 매우 쉽게, 많은 드래곤하트를 수집할 수 있었다. 덕분에 팀의 자금 사정이 여유로워져, 비싼 독일제 7.62mm 소총(hk417)을 가질 수 있었으며, 밤중에 야시경도 무리 없이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거적때기는 언제까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냄새가 너무 지독한데.”
팀의 화력을 책임지는 기관총사수 전성욱이 물었다. 그는 거구에 근육질로, 그 몸집 덕분에 들고 있는 m60기관총이 단순한 소총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이번 사냥이 처음이었다.
“그게 니 목숨줄이니까 걸치고 있어.”
그들이 둥지에 무사히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사냥한 새끼 드레이크의 가죽 덕분이었다. 원형을 유지한 채 통째로 가죽을 벗긴 후 그것을 덮고 다니면, 드레이크들이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덤비지 않아서 안전했다.
물론 다른 무리를 마주친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미 미사리에 둥지를 튼 무리가 이 근방 대부분을 영역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한 행동이었기에 걱정은 없었다.
“그거 덕분에 드레이크들이 건들지 않는 것이니까. 그 가죽은 이 근방을 영역으로 두고 있는 드레이크들의 가죽이야. 그거 아니었으면, 니 짐 속에 숨겨둔 거 때문에 쫓아왔을 거다.”
그 말에 성욱이 입술을 쑥 내밀고는 비아냥거렸으나, 다행히 성욱은 고개를 돌린 뒤인지라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과거 천호동 로데오거리라 불리던 곳을 따라 걸어갔다. 유탄사수 경근수가 길에 널린 술집 간판들을 보더니 입맛을 다시고는 슬그머니 근처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뭐하는 거야?”
2, 3분이 지난 뒤 나온 그의 손에는 술병 하나가 쥐여있었다.
“이것 봐, 30년 묵은 위스키야.”
그러자 화색이 감도는 자도 있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자도 있었다.
“어차피 말리나에 가서 술 마실 텐데 뭐하러 그걸 마셔?”
“거긴 술 비싸잖아.”
근수는 성욱에게 다가가 희희낙락거리며 위스키를 들어 보였다.
“아, 알겠으니까 빨리 오라고.”
참다못한 동민이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와이번의 괴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섬뜩한지, 다들 몸을 움츠리며 사방으로 흩어져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갯짓 소리와 요란한 금속음, 그리고 브레스를 내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대략 3분간 지속되던 소리가 사라졌다.
“빌어먹을, 괜히 소리를 질러가지고.”
동민은 투덜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직도 엎드리고 있는 근수와, 성욱에게 다가갔다.
“뭐하는 거야? 이 겁쟁이들아, 와이번 소리 들으니까 무섭냐? 말리나에 다 왔으니까, 빨리 가자고. 일어나!”
하지만, 그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야, 경근수, 자냐?”
보다 못한 동민이 근수의 옆구리를 발을 찼지만 경근수는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뭔가 더 말을 붙이려던 동민은 쓰러진 근수 주변 바닥이 물기로 반짝이는 것과 코를 맴도는 묘한 냄새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 즉시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그가 고개를 돌려 위험을 알리려는 순간, 소총을 들고 있던 다른 동료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팍에 무언가 맞고서 쓰러졌다. 방탄조끼를 입었는데도 동료는 힘없이 바로 쓰러져 즉사했다.
“숨어!”
그가 소리치는 순간, 다시금 총탄이 튀었고 건물 안으로 도망치던 다른 동료도 쓰러졌다. 총성은 그의 귀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매복이다!”
아음속탄환에 소음기를 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공허한 통보였다. 남은 사람은 동민뿐이었다.
‘다 죽은 거야?’
그는 무전을 치며 다른 동료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점차 허물어져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는 몸을 숙여 근처 속옷가게로 도망쳤다.
“개…시발, 어디 있는 거냐?”
그의 입에서 말을 내뱉을 때마다 거친 숨이 함께 따라 나왔다. 그때마다 가지고 있던 총기에 김이 서렸다.
그는 건물의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숨은 후 모자와 거적때기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짐 가방 속에서 야시경을 꺼내서 착용했다.
‘시발, 어디냐? 이 새끼야, 어디냐고!’
총알이 날아온 것을 보건데, 그가 있는 건물의 반대편이 분명했다. 아마 2층이나, 3층 창가에서 쏘았을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어디냐, 모습을 보여라.’
동민은 주변을 살폈다. 주변 건물의 유리들은 대부분 깨져있었다. 그놈도 어둠 속에 숨어있을 테지만, 자신에겐 매우 좋은 야시경이 있었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저질이 아닌 군대, 그것도 미군이 사용하는 고성능 야시경으로 색감이 보이는 컬러 야시경이었다.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헌터들은 야시경을 잘 사용하지 않았고, 또 사용하더라도 민간에나 허용되는 저질 야시경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이 가진 것은 안경렌즈가 4개짜리로, 시야각이 매우 넓어서 적이 어둠 속에서 은폐하고 있더라도 자칫 고개라도 들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성능을 가진 놈이었다.
아니, 뜨여야 하는데 3분이 지나도 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지? 시선을 돌리던 그의 눈에 가게의 마네킹이 띄었다.
속옷가게이다 보니 회색빛 팔다리 없는 여성상체의 모양을 가진 몸통에 야한 속옷이 걸려있었다.
그것이 그에겐 필요했다.
그는 몸을 숙이고 마네킹 가까이 간 다음, 그가 집어던진 모자와 드레이크 가죽을 씌웠다. 그리고는 마네킹을 밖으로 살짝 밀어 올렸다.
그러나 기대하던 총성은 들리지 않았고, 총탄은 마네킹에 박히지 않았다.
‘뭐지? 눈치 챈 건가?’
어둠 속에서 그걸 알아본 건가? 역시 저놈들도 야시경이 있는 모양이군, 그는 뒤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이곳에 더 머무르면 곤란했다. 그는 사격 받는 도중에 이곳으로 피신했기 때문에, 이쪽의 위치를 들켰을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되면 포위될 게 분명했다.
그는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이고 기어서 가게 뒷문으로 향했다. 총성이나 다른 것은 울리지 않았다. 혹시 철수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리석은 것들, 죽은 애들은 몰라도 그가 등짐으로 짊어진 드래곤하트 개수만 무려 20개였다.
‘이번 기회에 그냥 이 일 때려 치고 마무리 지어야지.’
동료들이 죽었으니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강동민의 눈이 탐욕스럽게 변했다.
‘나에게 돌아올 수익만 해도… 경기도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겠군.’
원이 아닌 달러나 엔화로 판다면 돈이 휴지 조각될 걱정도 없었다.
그가 문고리를 잡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문을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문의 이음새에선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좋았어.’
그는 문틈사이로 인기척을 확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안심을 하며 문을 열었다. 그때, 몸을 문밖으로 빼내기 무섭게 총성이 울렸다.
“크윽!”
동민은 얼른 다시 몸을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이 얼얼했다. 총알이 그의 소총에 맞아 불꽃과 함께 망가졌다. 그는 혀를 차며 총을 버렸다.
이미 뒤쪽으로 온 건가? 아니면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우선 확실한 건, 그는 완전히 포위되었단 것이다.
‘방심했어, 바로 빠졌어야 했는데.’
상가 정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들이 압박해 들어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가장 어두운 구석인 카운터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가 밟히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안에 아직 있다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알겠어. 수색하지.”
동민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숙였다. 그자는 야시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라이트를 쓰고 있나? 그것도 아니었다. 흔한 손전등도 없었다.
‘야시경도 안 쓰고 안으로 들어왔나?’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그는 품속에서 단검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권총도 있었지만, 소음기가 없었다. 군용 단검을 검게 칠해두었기에, 단검으로 들킬 일도 없었다.
저자는 야시경이 없으니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발소리는 더 가까워졌고, 그는 몸을 웅크리고 덮칠 준비를 했다. 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이윽고 그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가 숨은 곳은 정말 어두운 곳이라 밤에 적응한 사람이라도 쉬이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야시경의 녹색화면을 통해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상대는 자신이 처음 본 대로 야시경도 쓰지 않고서 샷건을 조준한 채 다른 곳을 살피고 있었다. 상대가 자신에게서 등을 보인 순간, 동민은 달려들었다.
“뭐야?”
발소리에 상대가 몸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거리는 1미터도 안 되게 좁혀졌고, 동민의 단검이 그자의 배를 노리고 들어갔다. 놈은 이제 죽을…….
남자가 몸을 옆으로 빼서 칼을 피한 후, 동민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동민은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보고 저렇게 피한 거지? 어떻게?
“어떻게?”
석민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밀었고, 동민은 힘없이 쓰러졌다. 아니, 저항하려고 했지만, 상대의 괴력에 저도 모르게 쓰러졌다.
석민은 그대로 트렌치건을 조준했다.
“잠깐……!”
그가 손을 뻗어서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석민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피가 얼굴로 튀었다.
“울프 1, 잡았어.”
석민은 소매로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음?”
석민은 레벨이 왜 올랐는지 짐작되지 않았다.
“뭐야, 우리 사명과 관련된 것들이 레벨과 관련 있던 거 아니었어?”
-일단,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상태창은 아영에게도 떴는지 적잖이 당황스러운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전달됐다.
-그보다 울프 2, 하늘에 와이번들이 보입니다.
총성을 듣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지.”
석민은 지하실을 찾아 들어갔다.
***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레벨을 오르는 게 하는 것은 천국의 문 교단뿐만 아니라, 서울 이 자체가 필드인 것 같아요. 아니면, 저와 석민 씨가 만난 직후 잠겨있던 레벨시스템이 풀렸다던가요.”
그 결론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아무리 적응한다 해도,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
특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고통은 배가 되기 때문에, 석민은 웬만하면 상대가 입을 열기 전에 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경험치가 된다니, 그들의 입장에선 매우 꺼림칙한 일인 것이다.
그저 게임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레벨 업을 위해 사냥을 즐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신들이 레벨업 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많이 죽여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뭐, 확실한 것은 이제 헌터들도 게임상 몬스터와 다름없단 거군.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냐? 알려주려면 제대로 알려주던가.”
석민은 불쾌감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곤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