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68화 (68/226)

[게이트 오브 서울 68화]

아영은 침착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꼬았으나, 눈동자가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흔들렸다.

“모르겠어요. 저도 지금 혼란스러워요.”

“이 저주받은 곳에서 어떻게 이런 게 만들어질 수 있지? 아니, 언제 만들어진 거야? 이런 게 만들어지는 동안 너희 정부는 도대체 뭘 해왔던 거야?”

아영이 해 줄 수 있는 답이 없었다.

그녀도 현 정부가 생각보다 많이 무력하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아영은 석민에게 지하철 노선은 대부분 사용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공언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건데 자신이 한 말임에도, 그 말을 100% 신뢰할 수 없었다.

“일단은, 이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내죠. 이것을 만든 단체, 혹은 조직, 정부, 그리고 이것 말고 다른 역이나 건물에도 이러한 장사가 성행하고 있는지.”

“일단 한 가지는 알아냈어.”

석민이 말했다.

“어떤 것이죠?”

“여기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거. 정재석이가 왜 여길 필사적으로 오려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석민은 군장을 벗은 후 무기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뭐하시는 거죠?”

“알아봐야지. 여기가 어디인지 말이야.”

그는 모든 무장을 내려놓은 후, 장갑까지 벗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단감만 팔뚝에 숨겨 두었다.

“반대편 라운지에 가보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겠지.”

문을 나서려던 석민이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아영을 쳐다보았다.

“같이 갈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무기가 여기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요.”

“알았어.”

석민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객실에서 나왔다.

그가 다시 지하 2층으로 올라가는데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그는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말 그대로 라운지였다. 긴 승강장 의자엔 아까 보았던 알렉산드라처럼 몸이 거의 가려지지 않는 옷들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대략 숫자는 10이 넘어 보였다. 하나같이 예쁘고, 몸매도 좋았다. 그녀들 또한 한국인으로 보였다.

주인만 러시아인인 건가?

석민이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그녀들이 석민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관심을 보였다.

석민은 괜한 쑥스러움에 고개를 돌리고는, 그녀들을 지나 전동차 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맥주와 칵테일을 제공하는 바(bar)로 꾸며져 있었다.

객실과 비슷한 인테리어에, 원형탁자들과 의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차가운 맥주가 가득 담긴 업소용 냉장고와, 주방도 눈에 들어왔다.

‘완전 살림을 차렸군.’

전동차의 앞과 뒤를 살폈다.

천호 방면 쪽에 모래주머니로 쌓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얼마나 촘촘하게 쌓았는지, 터널의 천장까지 완벽하게 막혀 있었고,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주의, 반대편 터널은 한강 물로 가득 차 있음.

역시 강북 쪽 터널은 군이 터트렸군.

석민은 반대편을 보았다. 그곳은 강철로 된 문이 있었다.

저쪽도 이용하고 있는 건가?

‘지하수 펌프를 가동하고 있는 건가?’

대충 살필 만한 곳은 둘러본 석민은 바(bar) 안으로 들어갔다. 맥주들은 한국 게 아니라 러시아제였고, 맥주 번호마다 병의 포장이 달랐다.

거기다 친절하게 한국 돈으로 가격이 나와 있었다.

‘500ml짜리가 개당 4만 원이라….’

숙박비가 싼 대신, 이런 것들로 돈을 버는 듯싶었다. 그는 맥주 5명을 꺼내 값을 지불한 뒤, 자리에 앉았다.

바는 한산했다. 테이블이 총 12개 있는데, 고작 2개의 테이블에 여자를 한 명씩 끼고 있는 손님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전부였다.

무기를 가진데다가 군복과 비슷한 복장을 보아, 헌터인 게 분명했다.

예쁜 여자가 옆에 있고, 술까지 들어가니 완전히 들떴는지 여러 가지 주절대고 있었지만, 대부분 군담이나 자신의 영웅담이어서, 영양가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곤 양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상당히 맛있는 맥주였다.

“발티카가 마음에 드나 보네.”

알렉산드라였다. 석민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그녀는 자연스레 석민의 옆에 앉았다.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 안토노바 라셴코야. 편하게 샤샤라고 불러도 돼.”

“알렉산드라 안토노바 라셴코, 내게 무슨 볼일이지?”

친하게 지내자고 애칭을 허용했더니, 격식을 차려 풀네임을 부르는 석민에게 그녀는 삐뚜룸하게 입술을 올렸다.

“러시아말 좀 하나 보네? 발음도 괜찮고.”

⌜전우들 중에 러시아인들이 많았지.⌟

그의 입에서 유창한 러시아말이 나왔다. 알렉산드라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발음이 완벽하진 않지만, 나쁘진 않네. 난 한국어 잘 못 하거든.⌟

⌜그 정도면 잘하는 거지.⌟

그녀는 흥미를 가진 듯, 석민을 향해 상체를 숙이고는 다리를 꼬았다.

그러나 석민은 그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기, 뭐가 궁금한 거야?⌟

⌜뭐?⌟

⌜우리 호텔을 둘러보던데, 궁금한 거 있는 거 아냐?⌟

‘이런, 그렇게 보였나?’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대놓고 돌아다녔나 싶어 스스로 찔린 석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걱정 마, 우리 대화는 아무도 못 알아들어. 여기서 러시아인은 나 혼자거든. 나에게만 말해봐. 난 네가 제법 마음에 들거든. 모국어를 쓴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한국사람들은 러시아어에 익숙하지 않지.⌟

그런 말 같잖은 이유에 내가 말하겠냐?

석민은 코웃음을 흘렸으나, 제법 찔린 구석이 아파서 표정 관리하느라 바빴다.

⌜그냥, 여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거든. 전력이며, 지하수 펌프도 그렇고. 어떻게 한국정부에게 안 들키고 장사를 하는지, 그리고 이 장사가 돈이 되는지도 말이야.⌟

⌜장사야 그럭저럭 되지. 서울에서 따뜻하고 안전하면서 마음 놓고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어.⌟

거기다 여자까지 말이야.

그녀는 말을 덧붙이며, 석민의 맥주잔을 뺏어 마셨다.

⌜헌터들은 돈이 많아. 안전과 쉼터를 제공해 준다면, 그들은 돈을 아끼지 않지. 그래서 이 사업을 시작했어. 난 자본금을 조금 가지고 있었거든. 연줄도 있고, 뇌물 먹일 정도의 돈도 있고. 정보를 수집하고 판매도 하고 있어서 나름 돈은 짭짤하게 벌고 있지.⌟

⌜여기로 물자들은 어떻게 공급하고? 전력은?⌟

⌜다 방법이 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서 뒤쪽을 보았다. 그쪽은 막히지 않은 터널이었다.

⌜돈은 좀 많이 들었지만,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3달도 걸리지 않았어.⌟

⌜여기 노리는 불한당 같은 놈들은 없었나? 괴수들은? 생각보다 보안이나 방어시설이 부실한 것 같은데.⌟

⌜여기서 장사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무사한 것을 보면 알 거라 생각하는데?⌟

석민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노골적으로 질문하다간 의도를 들킬 게 뻔해서 입을 닫아야만 했다.

사실 알렉산드라가 들려준 이야기만으로도 상당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 주나 싶을 정도로.

⌜왜 이렇게 나에게 친절하게 구는 거지?⌟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짙어지자, 석민의 눈초리가 가늘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석민의 맥주를 한 잔 더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난 헌터들이 좋아. 마치 호랑이나 불곰처럼 위험한 맹수를 사냥하는 시베리아의 사냥꾼들 같거든. 난 예전부터 사냥꾼들을 동경했어. 뭐,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난 사냥꾼들이 잡은 맹수를 사고 싶어 하는 수집가들처럼, 괴수들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을 사고 싶어 하는 자들과 연이 닿아있지.⌟

⌜그렇군.⌟

석민은 알렉산드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드디어 알았다.

⌜정확하게 어떤 부산물?⌟

⌜가죽, 머리, 이빨, 손톱,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고기도. 부위는 가슴살이나, 목살, 꼬릿살 갈빗살 등. 잘 모르겠으면 통째로 가져와도 좋고.⌟

예상외의 대답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괴수고기를 왜? 설마 식용이야?⌟

⌜응.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닭고기 비슷한데 더 맛있다 하더군. 들리는 말로는 그래. 돈 좀 있는 것들은 한번 먹어보려고 애를 쓰지. 신선하지 않으면 무리거든.⌟

석민은 손가락을 탁자에 톡톡 두드리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말한 것 중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드래곤하트는 필요 없나?⌟

⌜아, 심장?⌟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는 필요 없어. 개입하는 세력들이 많아서 난 취급 안 하거든. 괜히 취급했다가 엮이면 내 사업이 곤란해진다고. 그리고 어차피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스폰서가 있을 거잖아.⌟

석민은 조금 가만히 있다가 선선히 끄덕였다.

⌜여하튼, 부업 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져와. 좋게 쳐줄게. 괴수 말고도 다른 동물이 있다면 가져오라고. 돌연변이(감염자)들도 있으면 가지고 오고. 그것을 연구하는 자들도 있거든.⌟

⌜돌연변이도?⌟

⌜그래, 돌연변이. 걱정 마. 난 그쪽 취향이 아니야.⌟

⌜그러지.⌟

감염자라니. 얼마 전 ‘천사’가 떠오르면서 씁쓸해진 석민은 맥주를 병째 마셨다.

그러자 알렉산드라가 석민에게 좀 더 바싹 붙어 앉았다. 덕분에 화장품과 진한 향수 냄새가 석민의 코끝을 자극했다.

석민은 그녀에게서 상체를 조금 띄었다.

그가 고자거나 여자를 안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경계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오늘 처음 보는 사인데도 이렇게 들이대는 것부터 수상했다.

⌜그런데, 정말 술만 마실 거야? 저쪽에 이쁜이들도 있는데.⌟

그녀의 손이 밖에 앉아있는 여자들을 향했다. 석민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자, 여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피곤해.⌟

석민이 도로 고개를 돌리자, 김이 빠진 알렉산드라는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단물 빨았다고 이제 필요 없단 거야?⌟

⌜내 맥주 값이라고 쳐.⌟

그녀가 새로운 맥주병을 여는 것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 뒤로도, 별 시답잖은 대화로 그녀를 더 상대해주고 나서야 석민은 객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석민에게서 보고를 들은 아영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했다.

“그러면 지하터널이 복구된 곳이 있다는 것이군요.”

복잡한 서울 지하철을 이용해 헌터나 혹은 괴수들이 활동할 수도 있단 가능성에 아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즉시 보고해야겠습니다. 돌아가죠. 어떻게든 여긴 없애버려야 합니다.”

“아니야.”

석민이 고개를 젓자, 아영의 양 눈썹이 치떠졌다.

“그게 무슨….”

“여길 이용하자.”

“…예?”

“여길 이용하자고. 러시아 주인이 말했다시피, 여긴 아마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일 거야. 그렇다는 건 여길 이용하는 헌터들도 있겠지. 그놈들을 치자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던 아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여기 주인장이 알면 난리 나는 거 아니에요? 이쪽 고객들을 줄이는 행위이니까요.”

“우리가 헌터들 전부를 죽이는 건 아니잖아. 명단에 있는 놈들만 죽이면 되지.”

석민은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쉬자고. 불침번 없이 잘 수 있는 순간인데, 푹 쉬고 내일 다시 일하지.”

“그러죠.”

아직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라, 딱히 졸리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은 곧 약속이나 한 듯이 잠에 빠졌다.

서울에 들어오고 나서 매일 밤마다 3시간 간격으로 불침번을 섰기 때문에, 평소 그다지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둘 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제법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물론 스탯 덕분에 지친 몸이야 금세 회복되긴 했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 풀리진 않았다.

그들은 오랜만에 마음 놓고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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