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66화]
나흘 후, 석민은 고기 집에 앉아 있다.
새빨갛게 변한 숯불 위에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이 한 가득이었다. 석민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쌈장에 살짝 찍어 먹었다.
“역시 추운 날엔 돼지고기야.”
기름진 고기만이 자신에게 구원을 선사했다.
석민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석민의 잔에 맥주가 비자, 박선우는 얼른 맥주를 채워 넣었다.
“고맙군.”
그들은 1명의 사망자를 냈으나, 총 8개의 드래곤하트를 확보했고, 탄약의 부족으로 복귀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것을 ‘천사’라고 봐도 될지 여전히 의문이나, ‘천사’의 존재는 박선우가 찍은 사진을 통해 교단에 보고했다. 그러나 그 천사의 몸에서 나온 보석은 석민이 가지고 있었다.
박선우도 교단엔 ‘천사’를 목격했다는 것 외엔 따로 더 보고하지 않았으며, 이선재가 그 ‘천사’라는 것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목격한 것뿐이고, 이선재는 감염자들과의 접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되었다.
“뭘요. 형 덕분에 살아남았고, 선재도 장지로 보낼 수 있었는데요.”
석민은 박선우의 부탁으로 이선재의 시신을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옮겨주었다.
원칙상으로 시신은 서울에 두고 오는 것이 맞았다. 거기다 시체는 살아있는 인간보다 훨씬 무겁다. 그러나 석민은 박선우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단순한 선의에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은 씁쓸한 방법이긴 하지만.’
박선우의 신뢰 가득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결국 다 연기라는 사실에 석민의 기분이 마냥 좋진 못했다.
“우리와 좀 더 같이 일했으면 좋았을 텐데.”
석민은 복귀하기 무섭게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고, 지원받았던 무기와 군장, 군복 같은 것들을 전부 반납해야 했다.
이선재가 죽고, 문으로 가는 루트를 찾지 못했을 때부터 어느 정돈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얄짤없이 바로 짤릴 줄은 몰랐었다.
“그 양반, 처음부터 형에게 괴수 잡는 노하우를 알아내면 바로 버릴 생각이었어요.”
고기를 한 점 집어먹으며 박선우는 말했다. 제법 친해졌다고 교단 내부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발설했다.
박선우는 교구장 박재만에게 석민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받은 주의 따윈, 이미 기억 저편으로 넘긴 지 오래였다.
“교단에서 계획이 바뀐 것 같습니다. 교주님께서 내리신 명령이지요.”
“계획이 바뀌었다고?”
고기 한 점을 더 집어먹으면서 말하는 박선우를 쳐다보며, 자신도 고기를 입에 욱여놓고는 박선우의 잔에 사이다를 채워주면서 물었다.
“뭔 일 있나?”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매우 중요한 행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석민이 눈을 가늘게 뜨자, 박선우는 우물거리며 주요행사가 있지만 그 내용은 함구하라며, 간부급 말고는 말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좋은 일인가 보군.”
“네, 분명 좋은 일이겠지요.”
박선우는 잔에 남은 사이다를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죠. 아, 그리고 그때 도와주시곤 바로 떠나버리신 여자 분에게도 감사했다고 인사 전해주세요.”
“그러지. 아, 잠깐만.”
“예?”
나가려는 박선우를 석민이 다시 부르자, 그는 몸을 돌려 되물었다.
석민은 자신의 단검을 하나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네, 군용대검은 내가 창으로 써버렸잖아. 내 것을 주지. 잘 써.
석민은 예전에 박선우가 이 단검을 보고,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선우는 잠깐 내적 갈등이 일어났는지 멈칫거렸지만, 이내 그것을 받아들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하지.”
박선우가 인사를 꾸벅하고는 자리를 뜨자, 석민은 ‘이모’를 외치며 삼겹살 2인분을 더 시켰다.
***
한 20분쯤 지나자, 아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석민이 앉아있던 테이블엔 새 젓가락과 앞 접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 들었지?”
“네, 상부에선 많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영이 자연스레 새로 마련된 자리에 착석했다.
석민은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한 번 더 뒤집고는 아영의 앞 접시에 올려놓았다.
“애초에 교단 놈들은 처음부터 잠깐 쓰고 버릴 생각이었던 거 같던데. 마치 비정규직처럼 말이지.”
그는 눈을 살짝 올려 아영의 안색을 살핀 후, 시선을 내리깔고는 다시 고기 굽는 데 열중했다.
“대통령께서 많이 아쉬우신가 보네.”
석민의 말에 아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는 차라리 이렇게 돼서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우리와 맞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해?”
다 익은 고기들을 가로 빼고는 새로 고기를 올리던 석민이 약간 늦게 반문했다.
“그럼요.”
“뭐,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해. 남 속이는 일은 머리도 아프고, 답답해서 안 맞더군. 게다가 혼자 작업하는 건 너무 힘들어.”
그 말에 아영이 맥주를 마시며 웃었다.
“그래서, 따로 내려온 지령은 있고?”
“아, 네. 있습니다.”
아영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공교롭게도 강동구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입니다. 러시아 쪽에서 고용한 것 같은데, 이번에 대규모로 사냥을 한다더군요.”
“숫자가 좀 많네.”
석민은 목록에 적힌 이름이 30명이나 되자,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천사에 대해 알아봤어?”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보고를 하긴 했지만,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저, 그리고 아무리 해봐도 새로운 퀘스트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 그래.”
고기를 뒤집던 석민은 집게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시스템은 불친절해도 너무 불친절했다.
그래도 단서가 없는 것은 아예 아니었다.
‘헌팅 트로피.’
그가 마음속으로 말을 하자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그의 예상대로 버림받은 오르바라 불리는 감염된 천사의 머리가 액자에 걸려있었다.
그냥 무표정이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것은 고통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형상으로 걸려있었다.
식사 중엔 봐선 안 되는 것이었는데.
석민은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누르며 시선을 내리고는 밑에 새로 생긴 글자를 곱씹었다.
[버림받은 오르바]
일족을 위해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차원을 넘어 이 세상에 당도한 오르바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 뜻을 펼치지 못했다.
육신이 식어 굳어버리고, 이성을 잃은 그는, 동료들에게 버림받아 다른 생물들처럼 방황하였다.
“적어도 참 불쌍한 생물입니다.”
헌팅트로피에 나온 글은 자신에게만 보였기에 그는 아영에게 설명을 해주었고, 그것은 들은 아영은 바로 소감을 말했다.
“아마 이 오르바는 차원이동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 것 같죠?”
“흠….”
석민의 애매한 반응에 아영은 맥주로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천사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찾은 사실인데, 가끔 괴수들 중에 기형이거나 키메라처럼 보이는 변종들이 가끔 나온다고 합니다. 사실 여태까지 그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진 적이 없었는데, 이 퀘스트창을 보니 대략적으로 알 것 같아서요. ‘차원을 넘어 이 세상에 당도한’이란 문구를 보면, 차원이동을 했다는 말일 테고, 그 도중에 다른 생물이 함께 존재하면 뒤섞이는 것이 아닐까요?”
“제법 그럴듯한 가설이군. 그럼, 그 ‘천사’는….”
“아마 차원이동 하는데, 그 자리, 그 공간에 감염자도 있었던 거겠죠.”
그 말에 석민은 혀를 낮게 찼다.
“뭐, 적어도 몇 가진 확실하군. 천사라는 것이 단수가아니라 복수라는 것, 그리고 괴수들처럼 그쪽 차원에서 온다는 것 말이야. 그리고 절대로 천국에서 온 것도 아니고.”
고기 먹을 맛이 뚝 떨어진 석민은 남은 고기를 아영 쪽으로 몰았다.
그리고는 대신 다른 것을 먹기 위해 또다시 ‘이모’를 찾았다.
고기 맛이 떨어졌댔지, 다른 입맛이 떨어졌다곤 하지 않았다.
“이모! 여기 물냉….”
“비냉도 하나 주세요.”
고기를 입에 넣으면서도 아영이 잽싸게 끼어들어 주문했다.
주문이 끝난 후, 석민은 잠깐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어떻게 되었어?”
천사 몸에서 나왔던 보석 이야기였다.
“아, 그거 정밀 조사 중이긴 한데. 적어도 와이번급 드래곤하트보다 8달은 더 오래 탈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나?”
그 말에 석민은 낮게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따로 보상은 없나?”
“죄송합니다.”
즉답으로 나온 아영의 사과에 석민은 언짢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그렇게 고생해서, 기껏 가져온 보석도 넘겼으니 조금쯤은 수고비를 주지 않을까 했었다.
근래에 돈의 여유가 생기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좀 줄어들긴 했어도, 석민은 여전히 돈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이해는 가긴 하는데, 이건 조금 곤란하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술잔에 입을 기울였다.
호텔 말리나(малина)
재석은 숨을 헐떡이며 버려진 쓰레기통으로 몸을 숨겼다. 그가 몸을 던지기 무섭게 총탄 하나가 그를 스쳐지나 바닥에 박히면서 날카로운 금속음을 냈다.
벌써 2시간째 쫓기는 중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정예로운 수색대 간부 출신으로,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는 군인 월급에 결국 생활고로 군을 나오게 되었고, 헌터로 전직한 지 이제 1년 된 신삥이었다.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군인이었을 시절도 생각나고, 나라를 위해 정부에다 드래곤하트를 납품하였으나, 일의 수고에 비해 정부에서 매입하는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낮았다.
거기다 장비나 군수품의 지원도 없었다. 이 대금으로는 무리라고 하소연하여도 돌아오는 담당공무원의 말은 ‘애국심’ 운운밖에 없었다.
애국심도 부른 배에서 나오는 거였다.
특히 아내나 자식에게까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애국심을 강요할 순 없었다.
‘엿 먹어라 그래.’
그는 결국 러시아로 배를 갈아탔다.
물론 직접적으로 러시아에게 고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회사 바지사장을 제외하곤 자금출처나 연락책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죄다 러시아 사람이라, 그는 러시아에게 고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에 고용된 직후, 그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가 가진 ak-74m에 도트사이트, 야시경, 현대적인 군장과 방탄복 등. 전부 그들이 무상으로 지원해 준 물품이었으며, 탄약 또한 원하는 대로 주었다.
심지어 드래곤하트에 대한 보상도 정부의 4배였다. 목숨이 위험하고, 까딱하면 죽는 것은 똑같았는데, 살아오기만 해도 보상이 나오니, 이런 짓거리라도 할 맛이 났다.
하루하루가 생사를 오가고, 괴수들에 의해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지만, 1년만 이 악물고 참으면 제법 목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이도 있으니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의 동료들이 오늘, 전부 죽어 나가기 전까진 말이다.
‘돌아가면, 이 짓 그만둘 거야 젠장! 벌어먹을 약탈자 놈들!’
근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다른 헌터들을 죽이고 드래곤하트를 빼앗은 자들을 흔히 약탈자라고 불렀다.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보다,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쉬우니, 중간에서 드래곤하트를 가로채 돈을 벌려고 하는 자들이었다.